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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07화 (107/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10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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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장비를 확인했다.

카렌의 무기는 모험가 시절 사용한 짧은 검. 스티아는 대조적으로 얇고 긴 세검.

두 사람의 무기 특징을 적절히 혼합한 것 같은 일반적인 검이 아바의 무기였다.

디아나와 나는 마법사라서 특별한 무기는 필요 없다.

아바가 수배한 로운 가문의 마차는 크기부터 압도적이었다.

씩씩한 준마 셋이 이끄는 마차 크기에 할 말을 잃었다.

"긴급 지령에 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특별히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어.

이 녀석들, 전쟁터에서 활약했으니까 도적 떼가 덤벼도 문제없어. 칼도 겁내지 않거든."

아바는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흠, 봐줄 만하네. 이 정도면 탈 수 있겠어."

디아나는 사뿐히 먼저 올라타더니, 가장 안쪽에 들어가서 앉고는 턱을 괴고 우리를 봤다.

"뭐해? 안 타?"

"……쟤가 주인인 것 같냐."

"하하하……."

아바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디아나의 뒤를 따라서 옆에 앉았다.

이어서 카렌이 옆에, 맞은편 시트에 스티아와 아바 두 사람이 앉았다.

"운전은 마부 한 사람한테 맡겨도 돼?"

"응. 베테랑이셔. 목적지로 안전하게 가주실 거야."

아바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는 동안 계획을 잡자."

"좋은 생각이야."

스티아가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이동하는 동안 가만히 있는 것도 좀 그렇고,

무엇보다 마차에서 내렸을 때 혼란이 생기지 않게 미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한테 좋은 계획은 없다.

하지만 누구한테 말을 시키면 되는지는 알았다.

"스티아, 어떻게 하면 좋겠어?"

"앞서 말한 대로,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서 진행할까 해."

"세 단계?"

"응. 먼저,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한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적의 규모를 파악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의 규모란, 적이 어디에 있는지, 총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무장 수준은 어떤지, 가능한 알 수 있는 모든 것이야."

"마지막 단계는?"

"적의 규모를 파악한 후, 현장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공격한다."

스티아의 얘기를 전부 듣고, 디아나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걸 하고 있다간 날이 새겠어. 적이 어딨는지 알아내고 친다. 그거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싸우는 건 각자 알아서 할 테고.

여기에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 아냐?"

"사태가 급박하면 모를까. 조사는 당연히 며칠 이상 걸릴 수 있어."

"으으……."

디아나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든다.

스티아의 신중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디아나의 손을 잡았다. 디아나는 움찔하며 나를 보았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야. 조사도 잘 해내고, 전투도 잘 해내면 되잖아? 그렇지?"

"……뭐, 그건 그렇지."

디아나는 나랑 다정하게 손깍지를 끼며 놀다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처럼 갑자기 손을 뗐다.

"어, 언제까지 만지고 있을 거야. 정말 방심 못 하겠네."

"너도 좋은 줄 알았지."

"……."

디아나는 모른 척 시치미 떼고 창밖을 봤다.

"스티아의 계획대로 움직이자.

먼저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하고, 적의 규모를 파악하고, 공격하는 것. 모두 동의하지?"

"응!"

카렌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최선을 다할게!"

아바도 의욕이 넘친다.

침대에서 나오기도 싫어하는 녀석이 왜 이 임무에 지원했을까?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처럼, 여자를 이유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런 낌새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바는 좋은 친구로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데칼."

"응?"

스티아가 나를 보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계획에 내 희망을 좀 덧붙이자면, 나는 일이 해결된 후에도 며칠간 마을에서 머무르고 싶어."

"마을에서 머물러? 왜?"

일이 해결되면 볼 일 없는 거 아닌가?

"붉은 영혼석의 잔재가 남아서, 혹시 모를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걸 방지하고 싶어."

"아,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스티아는 눈을 깜빡였다.

"꺼진 불도 다시 본다……. 멋진 표현이네. 데칼의 어휘는 매우 고급스러워."

"……."

큰일이다.

스티아가 너무 진지한 나머지 웃을 뻔했다.

그냥 흔하디흔한 표어 중 하나일 뿐인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공익 광고?

미디어가 없는 세상에서는 참신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실제로 좋은 말이다.

어쨌든 여기 사는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접하는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적으니까.

언어에 의한 인식 차이를 최대한 메꿔주는 여신의 대리인 스킬을 갖고 있어서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걸 잊어먹고 있다가도

가끔은 이렇게 떠오르고, 반가운 기분이 든다.

"데칼, 어떻게 생각해…?"

"괜찮네."

일이 끝난 후 느긋하게 머무는 것도.

오히려 스티아가 적절한 명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임무를 하는 중에 마음 놓고 섹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카렌과 검은 숲에 있었을 때. 섹스가 원인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었고.

붉은 영혼석을 체내에 들이면 마물화가 된다는 말도 있었으니, 최면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도 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질적인 위협을 제거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때는 여자들을 데리고 팔색 조개 성에 가도, 케파에 사는 주민들이 뜻밖의 피해를 볼 일은 없다.

"스티아의 제안까지 합쳐서 계획을 총 4단계로 하자."

"고마워, 데칼. 네가 리더를 맡아줘서 다행이야."

"디아나가 맡으면 큰일 날 뻔했지?"

스티아가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

어? 지금쯤이면 나를 발로 차려고 했어도 안 이상한데.

디아나의 반응이 없다.

"디아나. 「둘이서 나를 놀려먹을 셈이야!? 파티 같은 거 안 해!」라고 하지 않아?"

"푸핫!"

카렌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바랑 스티아는 소리 내 웃는 걸 참기 위해 입을 막았지만, 부질없었다.

내 디아나 흉내는 기어코 디아나의 역린을 건드렸다.

"사, 사람을 뭐로 보는 거얏! 내가 말만 했다 하면 트집이나 잡는 여자인 줄 알아?"

"「그런 거 쓸데없는 시간 낭비야!」라고 일축할 줄 알았지."

디아나가 내 소매를 잡았다.

"그 흉내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야!"

"아하하!"

스티아와 카렌은 이제 마음껏 웃고 있다.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한 것 같네. 뱅가드의 영애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이런 수치, 모욕……! 내가 잊을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해도 전처럼 날 싫어한다는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다.

귀여운 앙탈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고.

"미안해. 네가 귀여워서 그만."

"당신들도 그만 웃어!"

카렌은 눈물 나게 웃었고, 스티아는 숨을 참다가 얼굴까지 빨개졌다.

아바는 디아나 앞에서 차마 폭소할 수 없었는지 앉은 채로 죽은 느낌이었다.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디아나는 한숨을 쉬고 차분하게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뭐, 네가 리더를 못 하는 거?"

"그거 말고!"

"그럼,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계획?"

"그래. 네리스 부회장님이 말씀하셨잖아. 지령에는 다수의 목표가 있었어.

도적단을 치는 것, 붉은 영혼석의 소재를 확인하는 것, 영혼석의 소멸을 확인하는 것."

디아나가 말해줘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분명히 그랬었지.

우리 얘기를 듣고 있을 때, 디아나는 지령의 내용을 상기하고 있었다.

"도적단 괴멸은 당연한 거야. 어떤 형태로든, 마을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는 보고가 멜브릿에 들어가서 내린 결론일 테니까.

한 놈도 살려둬서는 안 돼. 두 번째. 붉은 영혼석의 소재란, 도적단이 어떤 식으로 붉은 영혼석을 입수했는지, 밝혀낼 수 있을 만큼 뿌리를 밝혀내라는 뜻이야. 첫 번째보다 우선순위는 낮네."

디아나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세 번째는 무척 중요해. 붉은 영혼석의 소멸을 확인하는 것.

이건 첫 번째로 돌아가서, 도적단 중 하나 이상은 반드시 붉은 영혼석을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야.

영혼석이 힘을 잃고 파괴되는 것. 더는 붉은 영혼석에 관련된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일 처리를 하라는 뜻이지."

"……."

"알았어? 그러니까 방금, 내가 스티아의 마지막 계획을 반대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어."

"디아나, 대단하다."

나는 솔직히 감탄했다.

"뭐, 뭐야! 갑자기……. 문제를 꼼꼼하게 보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너희, 그러고도 멜브릿의 용사 후보생이야?"

디아나는 내 칭찬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늑대 급 상위권은 괜히 하는 게 아니네요……."

아바가 거들었다.

다들 똑같은 기분을 느낀 것 같다.

내가 디아나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건방지고 무례한 귀족 영애.

처음 본 사람도 눈앞에 무릎 꿇는 고고한 삶을 살았기에 제멋대로인 면은 있어도, 특권계층에 있는 자로써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즉, 입만 살지는 않았다.

그 나이대 소녀답게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하고 함부로 말하는 면은 있지만,

이대로 나이를 먹고 다른 사람의 인생도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게 되면 분명히 멋진 여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전에 돼먹지 못한 쓰레기 변태를 만나서 잔뜩 질내사정 당하고 아이를 배거나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다.

이 미래가 창창한 귀족 영애의 자궁에 듬뿍 정액을 뿌린 게 나라고 생각하면 발기가 멈추지 않는다.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해.

이제 와서 나를 리더로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해도 소용없으니까."

"그건 아니지만."

"큿…! 이게, 사사건건!"

"그래도 네가 있어서 든든해."

"……."

창밖으로 눈길을 돌린 디아나의 귀는 빨개져 있었다.

"알면 됐어."

나는 디아나의 손을 잡았다.

하얗고 예쁜 손가락이 살짝살짝 움직이더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내 손을 꼭 잡는다.

디아나와 더더욱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만 보면 참 아름답지만.

나의 다른 쪽 손은 카렌의 엉덩이를 주무르느라 바빴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스티아와 아바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옆 가슴을 손가락으로 살짝 끌어오듯이 주무른다.

"……."

자꾸 이러면 성가실 만도 한데, 카렌은 나랑 눈이 마주치면 예쁘게 웃었다.

온종일 해도 좋다는 듯이 어깨를 살짝 기대온다.

대놓고 만지는 것도 좋지만, 아는 사람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만지는 것도 즐거웠다.

"다 왔어. 케파가 보여."

스티아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손장난을 그만두고 기다렸다.

이제부터는 일이다. 대충 하지는 않겠어.

마차에서 내린 우리들은, 우선 말없이 케파를 내다봤다.

도적단에 의해 큰 피해를 본 마을……이었을 텐데.

의외로 마을 외관은 멀쩡했다.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들은 평범한 마을 주민으로 보였고.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상 신호가 없지는 않았다.

마을 입구에 경비가 없다.

외벽 용도로 설치한 목책은 군데군데 파손된 흔적이 있다.

"들어가자."

나는 앞장서서 마을에 들어갔다.

그러자 몇 없는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몰려들었다.

"아아! 오셨군요!"

"멜브릿의 용사 후보생님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지 우리를 보자마자 눈시울부터 붉히고 있었다.

이상하게 젊은 사람이 없다.

남자는 싸우다 죽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고, 여자는 끌려갔나?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묻자, 사람들 사이에서 노파가 걸어 나왔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상황은 꽤 심각했다.

스티아의 예측대로 도적단이 마을을 점령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을은 도적단의 행패로 제 기능을 잃고 있었다.

지금까지 시간을 예고한 습격이 여러 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마을의 젊은 남자들이 저항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여자들은 끌려갔고.

이제 무기를 들고 싸울 남자도 없어지자, 도적단은 뻔뻔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젊은 여자들, 술과 고기를 내놓으면 그동안은 살려주겠다고.

그날 밤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측과 받지 못하겠다고 맞서는 측이 싸워서 마을에는 유혈사태가 났고

몇몇은 마을을 떠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아있는 건 도적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뿐.

힘없는 노인과 어린이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여자들…….

기가 막혔다.

"그래서 우리가 올 때까지, 이 마을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까?"

"왕국 병사들이 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당해내지 못하고……."

노파는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몇몇 노인들이 옷을 걷거나 소매를 올려서 자신의 몸을 드러냈다.

"그놈들은 우리가 병사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는 이유로 남은 사람들에게 모진 채찍질을 했다오……."

정말 노인들의 몸에는 채찍으로 심하게 맞은 상흔이 있었다.

제대로 치료하지도 못해서 부어오른 상처들은 차마 보고 있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나는 별빛 조개를 꺼냈다.

"우선 다친 사람부터 치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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