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 이세계 최면물-103화 (103/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03편

    <--  -->

    긴장된 분위기로 자연히 알았다.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

    진급에 필요한 점수를 한 번에 당겨올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긴급 지령에는 큰 보상이 따릅니다.

    과거에「헤르카 필리오테」양과「틸리아 뱅가드」 양이 그러했듯이.

    멜브릿에는 학생회의 긴급 지령을 완수하고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용사 후보생이 있습니다."

    국가에 큰 공헌?

    내가 알고 있는 긴급 지령은 학교가 뿌린 영혼병 줍기 뿐인데.

    말하는 걸 보니 그런 손쉬운 지령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좋지만, 학생회장의 지시를 교사가 전파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나뿐인가?

    학생회장은 이 학교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일까?

    어쩌면 특별한 건 학생회장이라는 직함이 아닌 그녀 자신일 수도 있다.

    학생회장 시아.

    아직도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정원에 있는 나무를 등지고 우아한 자태로 서서 날 지켜보던 여자의 모습을.

    우리 든든한 암캐, 노아조차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멜브릿에서 가장 수수께끼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플레노어의 언동으로 학생회장이 가진 권력의 일부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긴급 지령을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후보생도 무수히 많습니다.

    후보생 여러분이 크게 다치거나 죽는 일은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이것은 용사 후보를 꿈꾸는 여러분이

    피해갈 수 없는 난관이기도 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지키는 일이니까요."

    무고한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

    어디선가 위급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급한 대로 용사 후보생을 현장에 투입한다. 나쁜 생각은 아니다.

    용사 파티 선별을 노리는 인원이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현장을 미리 체험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여긴 늑대 급이잖아?

    그런 중대한 사안이라면 좀 더 높은 급에서 다루는 게 맞잖아. 왜 이런 얘기를 늑대 급에서.

    그것도 일개 교사가 하고 있는 거지?

    "지원하고 싶은 후보생 있습니까?"

    남 후보생 한 명이 거수했다.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긴급 지령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저도 상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학생회의 긴급 지령은 멜브릿에서 만든 과제가 아닌 밖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

    즉 위험한 마물과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렁술렁.

    교사의 입에서 마물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마자, 잡담하는 무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러한 긴급 지령에는 언제나 정보 부족이 따릅니다.

    그걸 조사하고 올바른 형태로 해결하는 것까지 전부 지령에 포함되는 일입니다."

    어렵군.

    지원해서 학생회실을 찾아간다면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플레노어가 하는 말을 보니 구체적으로 어떤 마물과 싸우게 되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위험한 일이 발생했으니까, 가보자…….

    그런 식이라면, 적이 얼마나 강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역시나 이상한 것은 왜 이런 얘기를 늑대 급에서 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직접 손을 들어볼까 하던 참에, 다른 남 후보생이 거수했다.

    "저희에게 실전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곰급이나 용 급에 더 강한 후보생들이 있지 않나요?"

    음. 내가 물어보려던 것이다.

    물론 앞서 한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실전은 때를 가려서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늑대 급 후보생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긴급 지령에 투입하는 것은 시기상조 아닌가.

    부분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플레노어는 말하기 어려운 듯 주저하다가 결심한 것처럼 말했다.

    "긴급 지령은, 여러분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지……?

    적이 뭐 하는 놈들인지도 모르는데 우리를 보내면 성장할 거라고?

    "멜브릿에서 긴급 지령의 보수로 준비한 보상은 상질의 영혼을 갖춘 영혼병.

    이것은 지금 곰 급이나 용 급에 있는 인원에게는 미미한 변화를 가져다줄 뿐이지만

    토끼급이나 늑대 급에 있는 후보생한테는 극적인 성장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

    기가 막히는군.

    멜브릿은 학교가 아니다.

    영혼병 얘기를 들었을 때 이미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

    지령의 내용은 둘째치고 곰급이랑 용 급은 영혼병을 투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거잖아.

    말하기 껄끄러울 만 하다.

    후보생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곳에 내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면.

    멜브릿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멜브릿이 가진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동원해서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소한 잡음도 나지 않게 한다.

    이것이 합리적.

    하지만, 멜브릿의 생각과 플레노어의 생각은 다르다.

    플레노어는 후보생을 아끼지만 멜브릿은 그렇지 않다.

    늑대 급이나 토끼급.

    영혼병 주기에 적절한 개체를 골라서 곰 급이나 용 급으로 올린다.

    마치 게임 캐릭터에게 경험치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학교의 뜻을 전하는 것을

    플레노어 같은 교사가 하고 있으니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참 좆같이 들렸다.

    역시 여긴 학교가 아냐.

    뭔가 기분 나쁜 게 도사리고 있어.

    이 시스템은 진짜 지독하다.

    감시가 숨 막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학교란 게 뭐야?

    멜브릿 구성원은 성인이 많기는 하지만 미성년자가 없지는 않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학교는, 나라는 학생을 보호해야 한다.

    위험한 일에 떠미는 역할을 맡아서는 안 된다.

    그런 건 군대에서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멜브릿은 나라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쓰레기도 쓰레기를 알아보고, 냄새나면 코를 막는다.

    내 즐거움을 위해 여성의 육체를 마음껏 희롱하는 나조차,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정의롭게 나서서 체제를 바꾼다거나

    그런 귀찮은 짓을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제 이름을 넣어주시겠어요?"

    모두가 망설이는 가운데 디아나 뱅가드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불안감까지 날려버리는 시원한 미소로, 자신감 있게 선언한다.

    "디아나 뱅가드.

    제 언니가 그랬듯이, 이번에는 제가 할 차례입니다."

    "……디아나 양이라면 듬직합니다.

    또, 없습니까?"

    왜 다들 나를 봐?

    디아나까지 날 노려보고 있다.

    "빨리 안 따라올래?

    다른 어중이떠중이가 내 곁을 지킬 수 있을 리 없잖아. 너 정도는 돼야지."

    "……하아."

    생각 좀 해보자.

    멜브릿의 운영이 학교치고는 역겨운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난 후보생인 척하는 파렴치한 최면술사 겸 여신의 대리인일 뿐.

    이 긴급 지령에는 분명히 엄청난 영혼이 걸려있다.

    최근 백 오십…… 진급 시험을 마치고 백 육십 중간에서 정체된 내 레벨을 위험 부담 없이 엄청나게 끌어올릴 기회다.

    나는 여신의 대리인.

    남들보다 능력치빨도 잘 받고 성장 속도도 배는 빠르다.

    내 재능과 상관없이…… 아니, 나는 재능 그 자체를 하사받고 이 세계에 전이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 재능은 이 세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시간을 모조리 메꿔버릴 만큼 우수하다.

    그 때문에 향후 곰급이나 용 급을 목표로 한다면

    클래스에 맞는 힘을 갖추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

    "데칼 씨는 생각 없습니까?"

    플레노어가 쳐다보기를 그만두고 넌지시 권유까지 했다.

    "저는 늑대 급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수업 몇 번 받고 무단으로 결석까지 했는데, 제가 적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여기에 있는 사람 중 데칼 씨의 전투 능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습니다."

    마치 그렇다고 하는 듯이

    다른 후보생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신이 나서 신기술을 남발한 탓인가? 끄응…….

    "또, 근거는 있습니다."

    "근거?"

    "멜브릿은 후보생들의 데이터를 객관화해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긴급 지령이 내려왔을 때 교사진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인원이 적합한지, 누가 뚜렷한 성과를 보였는지…….

    저는 늑대 급에서 데칼 씨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험가 생활을 하며 가진 실전 경험, 씬 울프를 찾아낸 수색 능력과 끈기……."

    나는 낯간지러워서 귀를 막고 싶어졌다.

    플레노어의 칭찬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지다가, 내가 한숨을 쉬고 나서야 멈췄다.

    "하지만 이건 모두 저만의 생각일 뿐. 다른 분들을 설득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으윽. 끝난 거 아니었어?

    "그때, 가만히 있던 시아 양이 말하더군요."

    뜻밖의 이름이 나왔다.

    "「데칼」후보생은 이 지령에 필요한 인재라고……."

    나는 어처구니없을 뿐이지만

    다들 플레노어 교사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학생회장이 지목한 사람이라며 나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발언 하나로 화제가 되는 학생회장의 권위도 두렵지만

    어째서 나를 콕 짚어서 위험한 임무로 보내려고 하는지.

    학생회장님께서는 나랑 말 한마디 나눈 적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내 숨통을 조르고 있는 것 같지?

    "제가 수다를 좀 떨었군요.

    그만큼, 데칼 씨가 멜브릿에서, 늑대 급에서 얼마나 주목받고 있는 유망주인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알았습니다."

    플레노어가 이 정도로 열렬하게 나를 지지하는 줄은 몰랐다.

    그 열기에 데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지원하겠습니다.

    ……아, 학생회 가서 얘기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고사해도 되죠?"

    그렇게 말했더니 후보생들이 웃었다.

    "하하. 예.

    당사자의 의지가 중요하니까요. 그 자리에서 거절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너, 창피하게 잘도 그런 소리를 하네."

    디아나가 내 옆에 붙어서 촐싹댔다.

    "창피해? 뭐가."

    "학생회는 멜브릿 최고 권력이야! 그분들 앞에 가서 안 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큰 창피인 줄 몰라?"

    음…….

    가문의 명예를 우선으로 하는 디아나의 마음은 알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목숨이 걸린 문제니까 창피하지 않아. 쪽팔릴까 봐 죽으러 갈 순 없잖아."

    "모험가다운 천박한 사고방식이야. 용사 후보생이랑 전혀 안 어울리네."

    지금 나, 모험가답다는 소리를 들은 건가?

    나는 어느 쪽에도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굳이 규정 짓자면 셀레네가 정확히 알았지. 나는 파렴치한 변태다.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게 어때?"

    "뭐, 얘기는 들어보고."

    디아나가 나한테만 들리도록 소곤소곤 말했다.

    "……후보생이 아니게 되어도 내가 길러줄 테니까."

    "뭐라고?"

    못 들은 척 되물었더니 디아나는 허둥지둥했다.

    "아, 아냐…!"

    "두 분은 수업이 끝나고 절 따라와 주세요.

    본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분위기는 평소처럼 돌아왔다.

    디아나와 내가 지원했기 때문일까.

    다른 후보생들에게는 이제 지나간 일이다.

    표적판을 마법으로 타격하는 수업.

    평소보다 좀 더 열심히 했다.

    "그럼, 두 분은 절 따라와 주세요."

    수업이 끝나고 나와 디아나는 함께 플레노어를 따라서 본관으로 갔다.

    생각해보니 여기 오는 건 처음이다.

    멜브릿에 왔을 때 정문 너머 가장 먼저 본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멋진 건축물이다.

    성에 비유하는 건 과장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누구나 이해할 것 같은.

    본관 1층 로비는 꼭 예술적 전시품을 구경하는 미술관 같았다.

    로비 중앙에는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대리석 조각상이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본뜬….

    그것도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석상 앞에 있는 반가운 인물에게 눈이 갔다.

    묶어서 내린 빨간 포니테일과 귀여운 노란색 리본.

    제복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풍만한 젖탱이와 잘록한 허리 밑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통통하고 색기 있는 허벅지.

    서서 담소를 나누고 모습만으로 자지를 아프게 발기시키는 여자는 내가 알기로 한 사람뿐이다.

    "아…."

    눈이 마주쳤다.

    카렌은 주인을 만나 기뻐하는 강아지처럼 잽싸게 나한테 뛰어와 안겼다.

    "오빠!"

    "어이쿠."

    나는 그 젖탱이를 전력으로 받으면서 행복에 젖었다.

    오랜만이다. 내 좆집.

    며칠 안 봤을 뿐인데 무척 반갑다.

    "보고 싶었어!"

    카렌은 나를 올려다보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나도 같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다가 흠칫했다.

    이거, 멜브릿에서 할 행동이 아니었지.

    "어흠."

    플레노어가 헛기침 소리에 우리는 현실로 돌아온다.

    있을 리 없는 광경을 본 듯 후보생들의 표정이 경악, 떨떠름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 아읏……."

    카렌은 뒤늦게 창피해졌는지 볼을 빨갛게 물들이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 자기 손가락을 꼼질꼼질 만졌다.

    "실수했다……."

    엄청나게 감점당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만큼 반가웠다는 뜻이겠지.

    나는 카렌과 마주 보며 웃음을 교환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