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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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에게 멜브릿의 핵심 인물에 대한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어느새 벨라의 스쾃도 끝이 났다.
우리는 엘프의 쉼터로 나와서 식사를 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카렌 따라서 얼떨결에 입학했지만 최소한의 커리큘럼은 따라가려고 노력할 생각이야.
하지만 목표는 언제나 같아. 즐겁게 노는 것. 용사를 따먹는 것."
나는 세상 진지하게 말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개소리지만 나한테는 중요한 목표였다.
최면과 여자는 술과 담배처럼 떼놓을 수 없다.
그래, 지금까지 쭉 그랬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예쁜 여자 꽁무니를 쫓으며 최면을 걸려고 했을 거야.
아마 내 본질이 변태라서 그렇다.
카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를 막을 수 없다는 거 알아. 나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그렇지만, 나는 오빠의 좆집이니까. 언제든 오빠가 날 필요로 한다면…… 알지?"
모두 앞에서 선언하는 것이 쑥스러운지 마지막에 가서는 얼버무린다.
예쁜 여자의 수줍음이란 참 좋다.
"그래, 1호 좆집은 누가 뭐라고 해도 카렌이야."
"뿌듯하네."
태평하게 차를 마시고 있던 이스티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난 멜브릿의 교사가 될 거야. 달링의 곁에 있고 싶어서 달링한테서 떨어진다는 게 좀 이상하지만…….
달링의 곁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될 것 같으니까.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또, 학생들을 가르칠 만 한 전투력이 있는지 시험도 받아야 하고. 다 형식적인 것들이지만……."
전투력 시험이라. 역시 멜브릿은 다른데.
책상머리에서 하는 공부가 아니니 이스티한테는 가소로운 시험이다.
시원한 얼굴로 통과하겠지.
"저는 당분간 외부 범죄자를 색출, 심판하는 직무에서 벗어나 멜브릿의 집행관들을 억누르는 위치로 가겠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데칼 님의 억제기입니다."
"……억제기?"
"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으니 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데칼 님이 멜브릿에서 매끄럽게 원하시는 바를 이루려면,
용사와의 접촉이 독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전에 이 세계의 신이 데칼 님의 존재를 눈치채어서는 안 됩니다."
"맞아."
내 학교생활을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잠입 게임.
신의 관심 수치를 너무 끌었다간 게임 오버.
그런 제약이 있기에 나는 더욱 불타오르지만, 하다 보면 너무 날뛰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노아가 말하는 억제기란, 바로 그런 걸 막는 역할.
"데칼 님의 능력으로 미처 커버하지 못한 부분을 제가 맡겠습니다."
"또, 내가 폭주하면 막아 주고?"
"보이지 않는 뒤처리 전담반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중간에서 모든 단서를 끊어서, 멜브릿의 눈과 귀를 막겠습니다."
"음. 멋진데?"
마치 쿠데타 모의 같아.
카렌은 한기를 느낀 듯 부르르 떨었다.
"으으……. 테러 집단 같아. 우리."
"어찌 보면 테러가 맞지."
카렌은 이스티와 노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빠. 꼭 후보생들을 건드릴 필요가 있을까? 용사님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 기다리는 것이…… 아니, 그것도 충분히 위험하지만."
"이미 늦었어. 게임은 시작됐어."
후보생 첫 타깃은 디아나.
내 물망에 걸린 스티아. 그 밖에도 멜브릿 랭킹 5위, 홍염의 틸리아. 그리고 당장 이 여관 주인인 엘린까지.
아니, 어쩌면 그보다 한참 전에.
"너희가 내 곁에 있는 이유도 같아."
그날 밤 이스티를 따먹는 걸 주저했다면 이스티는 공간 도약으로 왕국에 떠났을 것이고
기회는 영영 없어졌거나 한참 뒤로 미루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때도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다이아몬드 등급 헌터, 이스티를 내 여자친구 삼았다.
오직 내 즐거움을 위해서.
이것도 규모가 커졌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대충 즐기자.
그러기 위해서 온, 편안한 이세계 아닌가?
"내가 바보 같았네. 오빠는 어차피 할 텐데. 나는 그걸 알면서도 좋다고 곁에 남았지. 응, 그래. 이게 맞는 거야."
카렌의 표정이 확 개였다.
"나가자."
우리는 멜브릿으로 갔다.
카렌은 성실한 후보생, 이스티는 교사, 노아는 멜브릿의 치안을 담당하는 집행관.
각각 맡은 역할은 다르나 모두 멜브릿에서 모인다.
이스티와 노아는 먼저 들어갈 예정이다.
"달링. 건강하게 있어야 해."
"금방 만날 거야."
나는 이스티와 작별 키스를 나눴다.
정문에는 어제 시험 결과가 쓰인 게시판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가서 이름을 확인한다.
"와! 오빠 이름이 제일 위에 있어. 수석이야!"
"어디."
"공동 수석이네? 한 사람 더 있어."
합격자 명단
공동 수석··· 데칼 , 스티아 하르페
2위··· 에카테리나
3위··· 바덱 로운
4위··· 카렌
수석이 둘이라.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수석이 나온다면 분명히 스티아 하르페일 거라고.
카렌한테는 미안하지만 스티아의 실력은 확실히 돋보인다.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 비교하면 내가 봤던 후보생 중 가장 강했던 건 틸리아다.
스티아는 몇 수 아래라고 생각하지만, 보르도 던전에서 스켈레톤 보스를 처리했던 게 마음에 남았다.
그건 오크 보스처럼 말도 하고 레벨도 엄청 높은 보스였을 것이다.
붉은 영혼석의 영향을 받았으니까.
의외로 둘은 박빙일지도 몰라.
"오빠. 합격자는 여기로 오래."
카렌이 게시판에 걸린 약도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시간도 마침 딱 맞네. 갈까?"
"응."
우리도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약도는 처음 시험을 봤던 샛길로 우릴 안내하고 있다.
언제까지 도둑놈처럼 뒷문을 써야 해?
그곳에 가니, 어제 질싸했던 안경녀가 있었다.
어제 본 얼굴들이 좀 보인다.
"데칼! 언제 오나 기다렸어."
스티아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눈부신 금발에 붉은 눈이 아름다운 소녀다.
나한테 기묘한 오해를 하고, 호감을 드러내는 여자이기도 했다.
참 드문 일이다.
"카렌도 기억하지? 보르도 던전에서 만났던……."
"아! 응!"
"내 이름은 스티아 하르페. 하르페 가문의 장녀다."
"저는 카렌이에요. 가문은 없고 단순한 모험가……."
"어깨를 펴. 카렌. 나도 이제 막 후보생이 된 병아리일 뿐이야. 우린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럼 스티아라고 부를게. 다시 봐서 반가워. 스티아."
스티아는 나에게 그랬듯이 손을 내밀고, 카렌과 악수를 했다.
"이제 들어갈 때가 된 것 같아. 곧장 헤어지겠지만, 수업 때는 만나기를 바라고 있을게. 데칼."
"……응? 어."
헤어지게 돼?
무슨 말인지는 곧 알았다.
안경녀의 안내를 따라갔더니 남자 따로 여자 따로 가는 게 아닌가.
"오빠! 다음에 봐!"
카렌이 손을 흔들며 날 배웅한다.
그 젖가슴이 출렁출렁 흔들리는 걸 보고 남자들이 꿀꺽 군침을 삼켰다.
이 자식들이. 내 좆집을 탐내?
"남자 기숙사는 이쪽입니다."
안경녀도 떠나고 남은 건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를 넘긴 남성이었다.
벌써 여자가 그립다. 안경녀도 그립다.
노아가 그랬지. 이성 교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곳이라고. 그러면 애초에 기숙사를 나누는 건 당연한 일…… 아니, 금지하지 않더라도 그게 보통이다.
지금은 일단 순순히 따르는 게 맞는 것 같다.
기숙사 건물은 본관에 밀리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남자들은 각자 방을 배정받았는데 2인 1실이 기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같이 쓰는 사람은 룸메이트.
아마 건너편에 있을 카렌과 스티아도 비슷한 상황이겠지.
기숙사 방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넓은 홀에서 안내역 남성의 교육을 받았다.
내용은 반쯤 예상한 대로였다.
이 멜브릿에서 여자를 사귀는 게 얼마나 끔찍한 미래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였다.
"……이 멜브릿에는 약 50명의 집행관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집행관은 멜브릿의 치안, 질서를 담당하며,
유사시에는 집행관 재량으로 후보생들을 직접 포박, 구금하는 것도 허락받고 있습니다. 멜브릿은 인성 교육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러분이 멜브릿에 걸맞지 않은 품행을 보일 경우 즉시 조치합니다."
누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어떤 행동이 처벌을 받습니까?"
"사소하게는 복장 불량, 바닥에 침을 뱉는 등 품위 없는 행동, 멜브릿의 비품을 망가뜨리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엄격하게 금지된 것은 여성과 교제하는 일입니다."
애들만 모인 것도 아닌데 대놓고 불평하거나 야유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내역 남성은 픽 웃었다.
"자기 용기를 시험해볼 생각이라면 말리지 않습니다.
멜브릿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입니다. 그중에는 여자 기숙사에 숨어들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오!"
"그 사람은 어떻게 됐는데요?"
"두부 손상으로 죽었습니다."
…….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안내역 남성은 진지했다.
즉, 웃기려고 한 소리가 아니라 진짜라는 말이었다.
"집행관들은 범죄자를 제압하기 위해 항상 무기를 소지하고 다닙니다.
그것도 주로 둔기류. 맞으면 어디든 손쉽게 부러집니다. 머리에 잘못 맞으면 반은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됩니다. 죽어있든. 살아있든."
"아, 아니…. 그냥 일탈 행위 같은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집행관들은 힘 조절을 하지 않습니다.
멜브릿에는 용사 후보를 지원하는 일당백의 전사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가 범죄를 마음먹고 기숙사에 숨어들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음……."
안내역 남성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
여기에 모인 건 진짜 그냥 학생이 아니다.
다들 젊은 편이기는 했지만 연령도 제각각 해온 일도 조금씩 다를 것이다. 거기에 이곳은 최전선에서 싸우는 용사의 파티가 되기 위한 인재를 기른다는 목적이 있다.
말이 학교지 개인 능력이 특화 된 특전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런 자가 밤에 불순한 의도로 이성의 기숙사에 잠입하는 일을 단순한 일탈 행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멜브릿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원래 학생이었다가 멜브릿에 고용되어 일하기로 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보다 경험도 많고 강하고 똑똑합니다. 누구든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여성과 단둘이 있지 마세요. 이게 이제부터 멜브릿에서 후보 생활을 시작하는 여러분께
해드릴 수 있는, 가장 도움 되는 조언입니다."
……생각보다 빡빡한데.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것도 걸리면 집행관이 나선다는 말 아냐.
새삼 노아가 아군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적으로 만났으면……. 어후. 소름이 돋는다.
그 통파로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더이상 불평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건 남자들 본능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곳에 올 정도라면
애초에 섹스할 목적으로 오는 사람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나는 제외하고.
거기다 설령 그런 목적이라 해도 입 밖에 낼 순 없다.
복도를 순찰하고 있는 떡대 집행관을 본다면 말이다.
저 수녀 옷, 남녀 공용이었구나. 집행관의 풍선 같은 근육 때문에 검은 옷감이 터질 것만 같다.
설마 저 사람도 노아처럼 안에 속옷을 입지 않…… 우욱.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 상상하고 말았다.
"이제 각자 지정된 방으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A5라고 쓰인 열쇠를 받았다.
이게 내 방인가? 1층 우측 5번째 방. 다행히 나가는 길이랑 가까워서 마음에 든다.
방은 그냥저냥이었다. 팔색 조개 성 때문에 눈이 너무 높아진 탓인가. 여관이랑 비교하면 훌륭한 방이기는 했으나 감탄할 정도도 아니다.
침대는 싱글 사이즈로 두 개. 작은 탁자, 옷장, 책장, TV는 당연히 없다.
내 침대에 비닐도 아닌 무언가 얇은 막으로 포장된 제복이 놓여 있었다.
내 옷이다.
룸메이트는…… 있었구나. 자고 있는 건가? 옆 침대가 불룩하게 솟아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바로 옷을 벗어서 제복으로 갈아입어 봤다. 교복 벗을 나이에 다시 교복을 입다니…… 세상일 모르는 거야.
마침 전신 거울이 있어서 앞에 선다. 바지는 회색, 블레이저코트와 윗옷은 하얗다. 코트에 금자수로 붙은 멜브릿 문양은 여성 제복과 같았다.
이것도 그저 그렇다.
이 세계에서 본 복장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세련됐으나 방금 현대 옷을 입고 있었던 내 눈에는 좀 촌스럽기도 하다.
뭐 어쩌겠어.
"음?"
블레이저코트 주머니에 뭔가 들어있다.
학생수첩으로 보인다. 안에는 멜브릿의 규칙이 꼼꼼하게 쓰여 있었다. 읽을 마음이 바로 사라져서 다시 주머니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거야?
그때 침대 뒤쪽 벽면에 내 스테이터스 메뉴 같은 글씨가 떠올랐다.
12:00~2:00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식당 개방되었습니다. 기숙사 내의 학생들은 모두 이동해서 식사를 마치시기 바랍니다.
"오, 뭐야 이거."
마법이지?
마치 증강현실처럼 눈앞에 멜브릿 건물의 설계도가 그래픽으로 펼쳐지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내하고 있다.
갑자기 근미래로 온 것 같은 느낌……인데. 계속 보니 무언가 친숙했다.
손을 뻗어서 그래픽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만졌더니, 마치 휘발성 물질처럼 스르르 퍼져나간다.
이 느낌…….
"영혼……."
영혼석에 영혼이 들어갈 때 느꼈던 질감과 비슷하다.
그 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는 건가? 묘한 기분이었다.
그때 지금까지 죽은 듯 가만히 있던 침대 위 불룩한 것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다음 달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3연참 준비했습니다. 추천으로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