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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78화 (78/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7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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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아와의 관계는 하늘이 도와서 발전하는 수준이라면

    디아나는 마치 나 때문에 인생이 꼬이는 숙명을 점지받은 것만 같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나는 양손에 포장된 빵을 들고, 귀족 가문의 사병들에게 둘러싸여 잔뜩 화가 난 아가씨와 대치하고 있다.

    사람들이 호기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못 들었어? 결투 신청이라니까!"

    "너… 언니한테 허락 안 받고 왔지?"

    "그게 너 따위랑 무슨 상관이야? 이건 내가 모욕당한 걸 청산하기 위한 결투야."

    "디아나."

    나는 일부러 디아나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디아나는 움찔하며 부들부들 어깨를 떨었다.

    "그 일은 거기서 끝난 거야.

    너는 대가를 치렀고, 나는 만족했어. 이제 앙갚음할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그건 네 생각이야!!"

    디아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평생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받았어. 너 때문에!"

    "그래서 결투 신청을 하겠다?"

    "베일 노아 경이나 고고한 사냥꾼을 이길 수 없다는 건 알아! 당신도 언니는 이길 수 없겠지. 우리 둘의 결투야. 이기면, 네 목숨을 받아 가겠어!"

    아니, 뭘 걸고 결투를 신청하나 했는데 내 목을 달라고?

    정말 두서없네.

    "그럼 너는 상응하는 걸 걸어야지."

    "나는 뱅가드 가문의 여자야! 그런 일을 당하고 모욕을 씻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하아……. 그래서 결투를 하자고?"

    "그래!!"

    솔직히 피곤했다.

    체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디아나한테 휘둘리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냥 이거 먹고 사이좋게 지내지 않을래?"

    "닥쳐! 그런 더러운 빵, 너나 먹어."

    반성의 기미가 없네.

    웬일로 나는 진짜 화가 났다.

    "그 일을 곱씹을수록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내가 마음먹었으면 너랑 네 가문 사람들은 다 죽었어."

    "그러면 죽는 건 너도 마찬가지야. 뱅가드 가문에 그런 일을 하고도 뒷감당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디아나는 어지간히 분했는지 이를 악물고 반박한다.

    "죽는 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지. 나는 네 가문에게 당할 앙갚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야. 알고 있겠지?

    그 자리에서 너희 자매를 강간하고 벗긴 다음 마차 바퀴에 매달아서 성도까지 함께 올 수도 있었어."

    "……."

    디아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말이 자극적인 걸 떠나서, 아마 전해졌을 것이다.

    정말 수틀렸으면 내가 그러고도 남았을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납득하라는 거야? 그 정도로 했으니 싸게 끝난 거라고! 고작 열매 쏟아진 일에…."

    "맞아. 싸게 끝난 거야."

    디아나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서로 일어난 일에 비해 더 많은 걸 가져가려 했다는 건 사실이지.

    결투 후의 불합리한 결과에 대해 불평할 수 있는 것도 내가 봐줬기 때문이고."

    "윽……!"

    "그런데 또 결투하겠다? 좋아."

    갑자기 내 태도가 돌변하자, 디아나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나는 개인 보관함에 있는 얼마 없는 금화 하나를 꺼냈다.

    "이 동전을 튕겨서,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 지로 결투하자."

    "……뭐?"

    "네가 이기면 내 목을 가져가고."

    "……."

    "대신, 내가 이기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게 될 경험을 시켜줄 거야."

    "나, 나는…."

    디아나는 뒤늦게 공포에 질린 듯했다.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알았겠지.

    결국 틸리아처럼 배짱 있는 척 굴지만, 디아나는 그럴 수 있는 애가 아니다.

    진짜 큰일이 났다 싶으면 얼어붙어 버리는, 철부지 소녀에 불과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결투를 취소하고 얌전히 물러날 기회를 줄게."

    핏기가 가신 얼굴로 있던 디아나의 표정에 희망의 빛이 들었다.

    "단. 나를 귀찮게 했으니 제대로 사과한다면."

    "시, 싫어! 또 그런 짓을 시킬 셈이야?"

    "아니. 흠……. 엉덩이 몇 대 맞고 끝내자."

    "엉덩이…?"

    "몰라? 어린애가 잘못하면, 부모님 무릎에 엎드려서 엉덩이 팡팡 맞는 그거."

    "윽……!!"

    디이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사병들이 들이민 창칼도 무시하고 뚜벅뚜벅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기, 기다려!!"

    그리고, 멜브릿 정문 앞에 있는 벤치 하나를 골라서 앉는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나와 디아나를 번갈아 봤다.

    "여기로 와. 디아나."

    나는 무릎을 툭툭 쳤다.

    "누, 누가 그런 짓을…!"

    "그럼 결투할까?"

    "읏…!"

    "동전 앞뒷면에. 내 목숨, 너의 끔찍한 미래. 어때?"

    "…흐윽. 흐읏… 얕보지 마!! 할 거야. 네 목을, 떨궈버릴 거야. 동전 튕기기 따위로 정하지 않고, 당장 싸워서……."

    "질 텐데……."

    디아나는 궁지에 몰렸다.

    첫인상이 그렇게 박혔기 때문인지, 건방지게 굴다가 참교육 당하고 오들오들 겁먹는 모습이 너무 귀엽잖아?

    "자. 튕긴다? 앞면? 뒷면?"

    "아, 아, 뒤, 뒷면…!"

    "좋아."

    내가 동전을 튕길 준비를 하자, 디아나가 갑자기 다가와 동전을 쥔 내 손을 꽉 맞잡았다.

    "뭐야?"

    디아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결투…… 취소로 해…."

    "뭐? 잘 안 들리는데?"

    "잘못했으니까…… 결투 취소로 해주세요……. 흐윽……."

    "들었지? 너희들은 돌아가."

    "디아나 님……."

    "벼, 별거 아냐! 너희들 도움 필요 없어. 얼른 돌아가."

    "하지만……."

    "가라니까! 날 창피하게 할 셈이야?"

    뱅가드 가문의 사병들은 주인의 강경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리고 떠났다.

    "값을 치를까? 디아나."

    "……."

    디아나가 내 다리 위에 엎드렸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흘낏거리며 구경한다.

    "맞을 때마다 시비 걸어서 죄송합니다. 하는 거야. 알았지?"

    "누, 누가 그런 것까지 약속했어."

    나는 디아나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프게 때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애한테 훈육하듯이 살살 치는 게 그녀의 수치심을 극도로 부추길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착!

    "흑…! 시비 걸어서, 죄송합…니다."

    "누구한테 죄송해?"

    착! 다시 디아나의 귀여운 엉덩이를 때린다.

    "당신한테, 데칼한테 시비 걸어서 죄송합니다…!"

    차악!

    "흐윽……. 흑…. 시비 걸어서 제송함니다……."

    디아나는 울먹이면서, 엉덩이를 열 대 맞았다.

    "잘했어."

    일어난 디아나는 스커트를 꾸깃 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아?"

    "닥쳐…!"

    "후후……."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스커트를 꾸깃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내려온다.

    트랜스 상태가 된 디아나를 두고, 짧게 고민했다.

    벨라처럼 건방지고 자존심이 센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벨라는 실제로 이스티의 목숨까지 걸고 나를 협박하려고 했던 전적까지 있을 정도로 기가 셌기 때문에

    굴복 암시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지.

    하지만 똑같은 굴복 암시는 디아나한테 적합하지 않다.

    왜냐, 디아나의 본질은 철부지 소녀이기 때문이다.

    잘나고 강한 언니와 귀족 가문의 위광을 등에 업고 그런 것들만 보고 자라서인지, 목숨을 건다고 말은 했으면서 정작 그런 각오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 비뚤어진 아이를 교정해주는 데는 뭐가 좋을까?

    베풀어주는 사랑. 베푼다고 하면 상인가?

    "디아나. 칭찬받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당연한 일이야. 뱅가드 가문의 영애니까……. 잘하는 건 당연한 일. 못하는 건… 있을 수 없어."

    상상한 대로 자기 자신을 옭아매고 있군.

    "그런데 너는 지금까지 나한테 벌을 꽤 많이 받았지."

    "……."

    "나는 너한테 있어서 어떤 존재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데칼 때문에 모든 게 꼬였어…."

    좋아. 여기서 시작하자.

    "디아나. 이제 너는 이런 수치스러운 벌을 받는 데 진저리가 났어. 그렇지?"

    "그래…."

    "나처럼 미운 사람은 네 인생에 없을 정도야."

    "…맞아."

    "그러니까, 뱅가드 가문의 영애라면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해.

    「내 인정을 받는 것이 너에게 가장 기쁜 일이다」"

    이것은 굴복 암시보다 약한 것 같지만 정말로 소름 끼치는, 무서운 암시 중 하나다.

    지금까지 디아나가 나한테 갖고 있던 혐오스러운 감정을 반전시킬 수 있는 암시로 꼽았다.

    인간의 인정 욕구는 정말로 강하다.

    암시가 무르익어 내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디아나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나는 한 개 더 치명적인 암시를 부여했다.

    "「내가 주는 상을 받으면 네 모든 고통이 보상받는다.」"

    "보상……."

    인정과 더불어 내가 주는 상, 사소하게는 칭찬의 말 한마디. 머리를 쓰다듬는 스킨십.

    거창하게는 내가 직접 마련한 선물. 내가 포상이라고 말하는 그 모든 것이 디아나에게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이 정도면 철부지 소녀에게는 과하다 싶지만.

    죄책감은 당연히 없었다.

    짝.

    손뼉치기로 디아나를 깨운다.

    "다음에 두고 봐…. 이렇게는 끝나지 않을 거야."

    사병도 물리고, 내 다리 위에 엎드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말하면서 엉덩이도 맞은 주제에.

    끝끝내 말로는 지기 싫은지 철 지난 악당 같은 대사를 남기고, 디아나는 떠났다.

    트리거는 걸어 놓았다.

    작은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 발동할 것이다.

    나는 내 몫의 빵을 입에 앙 물었다.

    "맛있네."

    "오빠!"

    카렌이 날 알아보고 뛰어왔다.

    "어땠어?"

    밝은 얼굴을 보니, 잘 해낸 것 같다.

    "응! 잘 봤어. 면접 느낌도 좋았어!"

    "면접관들이 가슴만 쳐다보지는 않고?"

    "아이참. 오빠는……."

    나는 카렌에게 포장해온 빵을 건넸다.

    "먹어. 사 왔어."

    "나한테 주려고?"

    카렌은 눈을 깜빡거리고 있다가, 내 옆에 잽싸게 앉아서 몸을 밀착했다.

    "잘 먹을게. 오빠!"

    "다 먹고 가자."

    "응!"

    시험을 잘 치른 덕분인지 카렌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맛있다."

    오물오물 빵을 먹던 카렌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쾅 하는 소리, 오빠였지! 오빠의 마법이라고 생각했어."

    "맞아. 내 오버 차징 파이어 볼이었어."

    "굉장하네! 역시 오빠야. 씬 울프를 잡은 마법사는 뭐가 달라."

    "너도 같이 잡았잖아?"

    "나는 거들었을 뿐이지. 아, 오빠. 가만히 있어."

    뭐야?

    카렌은 내 입에 묻은 빵조각을 가져가더니 입에 넣었다.

    "오빠 입에 묻어 있었어."

    "윽……!"

    제, 젠장. 이런 건 전혀 익숙하지 않다.

    오그라들어서 죽을 것 같다.

    면접실에서 인식 불가를 걸어놓고 뻔뻔하게 섹스하는 건 괜찮은데, 이런 종류의 감성은 나한테 너무 낯선 것이었다.

    낡은 로맨스 영화도 아니고. 아아, 젠장. 몸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티가 났는지 카렌이 씨익 웃었다.

    "어? 오빠 혹시 부끄러워?"

    "시, 시끄러."

    "오빠는 이런 닭살 돋는 거에 약하구나? 흐흥~. 순진하네."

    세상에.

    여자한테 순진하다는 말을 들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오빠의 새로운 일면을, 이스티보다 먼저 알아버렸다."

    "좆집 주제에……."

    "쑥스러운 거 숨기려고 그러는 거지? 다 알아. 평소 같았으면 젖가슴부터 만졌을 건데. 풋♥"

    "큭……!!"

    졌다……!

    이번만큼은 말을 하면 할수록 진다는 걸 깨달은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빵을 먹었다.

    "결과 발표는 내일이라고 하던데. 그 뒤에 바로 입학인가?"

    "물어봤는데, 사흘 준비 기간이 있대. 그냥 입학해도 되고.

    그러면 예비반에 편성 돼서 우선은 기초 교육을 받는 것 같아. 거기서 랭크가 정해진대."

    "랭크라……. 좀 더 자세히 아는 거 없어?"

    "멜브릿의 평가 기준은 크게 두 가지래. 무력과 지력. 잡다하게는 모험에 도움 되는 다양한 잡기들.

    예를 들면 수색, 요리, 진지 공사, 짐꾼 같은 일."

    "그래서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 지망생도 있었군."

    "응. 다들 싸우는 걸 즐기지는 않는대. 무력에 신경 쓰는 건 멜브릿 전체 학생의 삼 분의 일 정도라고 하더라."

    카렌은 지망생들이나 시험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렇게나 다르다. 나는 뭘 했지?

    펠라치오 한 번 받고, 질내사정 한 번 하고…….

    ……그것도 충분히 알찬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암.

    "그 삼 분의 일이 몇 명이나 되는데?"

    "음……. 한 500명?"

    뭐야.

    이 정도 시설이 있는데 총인원 수가 천몇백 명 남짓이야?

    만성적인 인원 부족을 겪고 있다는 게 사실이었군.

    "그래서 멜브릿의 랭킹은 1위부터 500위까지. 일정 주기로 계속 갱신 돼서,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은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나 봐."

    "숫자 경쟁은 무력 측만 해?"

    "오늘 했던 것처럼 필기시험도 있지 않을까? 성적순 랭킹! 하지만, 언제나 화제가 되는 건 무력 랭킹인가 봐.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용사 후보생을 뽑는 시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일리 있네.

    똑똑한 것도 분명히 도움은 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최전선에 있는 용사를 보좌할 실력이 되는가 어떤가.

    멜브릿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재는 잡기도 기본적으로 하면서 성적도 우수하고 무력도 특출난 그런 인간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선별 경쟁률이 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위나 하려나?

    5위가 어떻게 싸우는지 봤으니 그 이상은 기대 안 한다. 백 위 안에는 들었으면 좋겠는걸.

    "이제 돌아갈까?"

    이스티는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응."

    우리는 한발 앞서 엘린의 여관, 엘프의 쉼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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