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7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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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 조개 성 1층 메인 홀.
옥좌에는 벨라가 앉아 있었다.
"주인님. 오늘 왜 혼자야?"
"일행이랑 성에서 쉴 건데, 그동안 조개가 안전한지 물어보려고 왔어. ……근데, 매번 그렇게 옥좌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거야?"
벨라가 풋 웃었다.
"황당한 질문이네. 내 특기가 차원 마법이라는 거 잊었어? 주인님이 오는 걸 느끼고, 잽싸게 옥좌에 오는 거야. 주인님이 집에 오시는 걸 반겨야 보지 노예지."
벨라는 이스티처럼 갑자기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등 신출귀몰한 구석이 있었지.
이스티가 공간을 넘나드는 정령술의 소유자라면 벨라는 다른 세계, 다른 차원까지 간섭하는 신이다.
그런 신이 보지 노예가 돼서, 날 맞이하기 위해 후다닥 이동하는 모습은, 솔직히 상상할수록 귀엽다.
"조개가 안전하냐고? 참 잡스러운 고민이네. 그 조개를 누가 만들었는지 잊었어?"
"누가 만들었는데?"
"내가."
"조개 모으기가 취미라기에 이것도 어디서 구한 줄 알았지."
"구한 건 맞아. 이런저런 기능을 붙여서 편의에 맞춰 개조했을 뿐. 이쪽 세계에서도 주인님이 있는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
"알고 있어."
그 기능을 확실하게 깨달은 건 씬 울프의 사체를 옮길 때였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늑대의 사체를 옮기기 위해 먼저 팔색 조개 성으로 이동한 다음, 바깥에 있는 테이블을 보고 정확히 이동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대수롭지 않게 성공했었고.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허튼수작을 부리면 밖으로 나가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인가?"
"또한 손상 입힐 수도 없어. 내가 팔색 조개에 보호 마법을 걸어 두었으니까."
벨라의 마법이라. 그건 좀 안심이 되네.
방금 말로, 평범한 사람은 조개를 깰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 팔색 조개는 사용자 권한이 있어야 상호 작용이 가능한데. 지금 그 권한을 가진 건 나와 주인님뿐이야."
"사용자 인식까지 하냐? 그건 몰랐네."
편리하잖아?
"하지만 물건이니까 들고 옮길 수는 있어. 누가 옮겨 놓는다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나가게 될 수도 있지."
"맞아. 바다 같은 데 던지면 성에서 나갈 수가 없잖아."
"팔색 조개를 열어본 적 있어?"
"아니?"
"조개 안에 진주가 가득 들어있을 거야. 진주를 사용하면, 시야 범위를 넓힐 수도 있고 진주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어."
"오."
"그런 다음에 내가 준 보관함으로 팔색 조개를 불러들이면 조개가 어디에 있든 수거할 수 있어."
"대단한데?"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벨라는 가슴을 쭉 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진주를 여자 화장실, 여자 목욕탕, 혹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방에 놓으면 성에서 편히 누워 몰래 훔쳐볼 수 있다는 거잖아?"
"……."
엄청난데? 몰카 진주 아냐?
벨라가 차게 식은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주인님. 진짜 기분 나빠. 역겨워."
"신이 직접 만든 아티팩트라 격이 다르네! 사용 권한을 가진 나만 몰래 볼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어.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여자들에게 주고, 감상해야겠어."
"격이 다른 걸 알아봐 줘서 고맙기는 한데. 주인님은 정말 개변태구나?
최면도 변태 짓에만 써먹고."
"네가 뭘 모르는 거야. 최면은 꼴리는 일에 쓰는 것이 가장 적합한 사용법이다."
"……."
지금까지 팔색 조개 성의 기능에만 집중했지, 대왕 팔색 조개가 가진 기능 자체는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 조개의 가장 좋은 점은 사용자의 편의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진짜 매뉴얼 같은 거 없냐? 설명서 읽기 싫은 나도 한번 정독하고 싶어지는데."
"있겠어? 애초에 남 주려고 만든 게 아닌데.
몇백 년 동안 이것저것 실험하고 방치해둔 기능도 셀 수 없이 많아서, 나도 전부 알지는 못해.
〈팔색 진주〉에 관한 것만 해도 방금 기억났고……."
"흠. 그게 네 취미였구나."
"정확히는 조개 모으기가 취미지. 이 앞 해안가에 있는 조개들은 전부 내가 수집한 것들이야."
그랬군. 해안에 널린 조개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벨라가 챙긴 거였구나.
이 세계는 찢어져 떨어진 세계라고 했던가? 바다도 어딘가에서 뚝 끊겼을 테니, 생태계가 정상일 리도 없다.
처음에는 무슨 조개 따위를 주나 했는데 정말 벨라가 가진 보물이 맞았다.
"마음에 드는 것을 수집한다. 좋은 취미라고 생각해."
"주인님이 여자 모으는 거랑 똑같은 취급 하지 말아줄래?"
"비슷하잖아?"
"허, 주인님이 가장 아끼는 여자는 누군데. 그럼?"
"……."
음……. 딱 정하기는 어렵네.
"그때그때 다르지. 오늘 새로 만난 여자들도 좋았어."
틸리아와 디아나. 두 사람 다 예뻤다.
「용사 학교」가 기대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팔색 조개 성에 넣을지, 갖고 놀다 버릴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
나는 메뉴를 불러들였다.
"벨라. 저녁 준비해. 세 사람을 데리고 올게."
"알았어. 주인님."
"진주를 지니고 있으면 내가 훔쳐볼 수 있다는 거 비밀로 해야 해!"
"……."
벨라는 푹 한숨을 쉬었다.
"주인님의 개변태 성벽에 고생할 여자들이 불쌍하네."
나는 벨라에게 다가가 볼살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아흐, 흐아."
뭐하냐는 듯이 쳐다보기는 하지만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게 벨라의 귀여운 점이었다. 툭툭 험한 말을 뱉는 여신 스탠스에서, 언제든 굴복할 준비가 된 보지 노예라는 점이.
벨라의 턱을 열고, 입에 손가락을 넣어 혓바닥을 집었다.
"……하흐. 흐으……."
내가 혓바닥을 잡고 가만히 있자 벨라의 타액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그때 아끼는 여자가 다르다고 했지? 지금은 네가 제일 좋아."
"……."
나는 손을 놓은 다음, 벨라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주물렀다.
벨라는 홍조를 띤 얼굴로, 어딘가 분한 듯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요. 주인님. 비밀로 할게요."
"좋아."
굴복한 벨라와 입맞춤을 나누고,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카렌과 이스티가 붙어서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오빠!"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아, 혹시 조개를 지켜야 한다면 어떤 순서로 불침번을 할지 얘기하고 있었어."
"그럼 없던 얘기로 해야겠군. 여신의 보호 마법이 걸려있다는 걸 확인하고 오는 길이야."
"우와!"
카렌은 감탄했다.
"야숙하면서 경계를 안 해도 된다니. 거기에 따뜻한 목욕물에 편안한 침대까지……. 너무 좋아!"
"노아는 어디에 갔어?"
"데칼님. 오셨군요."
노아가 내 뒤에서 나타났다.
"깜짝이야."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 복장은 밤에는 눈에 띄지 않도록 설계된 옷이기 때문에……."
"마부들이랑 무슨 얘기 하고 왔어?"
"호기심에 우리 쪽 사람이 접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의하고 오는 길입니다."
밤중에 마차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고 한 것 같다.
마부는 꽤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너무 겁먹게 한 거 아냐?"
"아니오. 마부들이 겁에 질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따로 있어?"
"……."
노아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으니, 카렌이 대담하게 말했다.
"나라도 그랬어! 오빠, 결투할 때 마부 목숨 걸어버린 거 잊은 건 아니지?"
"아아……."
틸리아도 그런 말 했지.
마부들이랑 상의 안 해도 되냐고.
나는 씹고, 마부들이 도망가면 내 목이라도 주겠다고 했었다.
"오늘 일어난 일들이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사건이기는 하였습니다.
목이 걸린 일, 내로라하는 귀족 가문과 결투를 벌인 일, 거기에, 데칼님이 디아나 양을 응징하는 모습까지. 너무나 파격적인 사건이었죠."
이제야 노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마부가 무서워한 건 노아가 아니라 나였다.
정신 나간 모험가! 데칼. 하하하.
"너희 생각만 해서, 남들이 어떻게 볼지는 신경을 안 썼네. 이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결투도 화제인데 디아나 양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면, 성도 전체에 금방 소문이 퍼질 겁니다.
뱅가드는 이를 악물고 입단속을 하려고 하겠지만 부질없겠죠. 데칼님의 이름은, 이틀만 지나면 모두 알게 될 겁니다."
"하하하."
"오빠.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제 생각도 같습니다. 데칼님을 지키는 일이 배로 어려워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디아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생각하니까 즐겁지 뭐야."
창피해서 이불이라도 차고 있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곱씹으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씹고 있을까?
"노아. 이번 일에 마부들한테 주기로 한 보수 있지? 얼마나 돼?"
"세 사람에게 각각 25골드입니다."
나는 내가 가진 돈의 대부분, 백 골드를 금화 주머니에 담아서 노아한테 건넸다.
"데칼님. 이건?"
"마음고생 한 일에 대한 추가 보수. 적절하게 나눠서 드려."
"알겠습니다."
노아가 내 돈을 받아들고 마부들 쪽으로 갔다.
돈을 좀 발라주니, 마부들 표정이 훨씬 환해졌다.
역시 환심 사는 데는 돈이 최고 아니겠어?
"감사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마부 한 사람이 이쪽을 향해 소리치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 노아가 오기를 기다렸다.
"어땠어?"
"다들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이럴 때 최면은 사용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응. 귀찮아."
예쁜 여자도 아니고.
최면을 거는 것 자체가 신경을 쓴다는 말인데, 솔직히 저들의 이름도 얼굴도 관심 없다.
하지만 베푸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나는 돈이 모자란다고 곤란할 일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사람들이 마을에 가서 내 얘기를 좋게 해주면 일일이 최면을 걸 필요도 없이, 수백 명, 수천 명이 내 씀씀이에 대해 알게 되지 않겠어?
그러면 사람이 필요해서 모을 때 곤란할 일이 없지."
"오빠, 똑똑해!"
"……귀족 가문을 적으로 돌리지만 않았더라면 맞는 말씀입니다."
"꼴리는 일은 저지르고 보는 거야. 기억해 둬."
노아가 웃었다.
"어, 노아 님이 웃었다."
"데칼님을 모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점점 알 것 같습니다."
"아, 너희에게 선물이 있어."
나는 대왕 팔색 조개를 열었다.
그 안에는 팔색 진주가 징그러울 정도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달빛만 받고도 휘황찬란 눈부신 통에 자체 발광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 많은 진주 중 하나를 골라서, 마차 바닥에 떨구고.
세 사람에게 각각 한 개씩 건넸다.
"이게 뭐야? 달링."
"팔색 진주. 조개 성에서 돌아올 때 진주가 있는 위치로 이동할 수 있어.
우리가 성에 있는 동안 누군가가 조개를 옮겼을 때를 대비한 비상 대책이야. 다들 하나씩 갖고 있어."
"그런 기능이…… 편리하네요."
"많으니까 잃어버리면 하나 더 달라고 하고."
"반짝반짝 예쁘다."
카렌은 한참을 들여다보며 좋아했다.
나는 팔색 조개를 꾹 닫았다.
"노아. 한번 조개를 무기로 때려볼래? 깨부수겠다는 생각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여신의 보호 마법이 걸려있다는 말을 듣고 온 참이야.
간단한 확인 절차일 뿐이지."
"여신의 보호 마법……. 알겠습니다.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지, 직접 확인하면 저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손에 그림자가 맺힌다.
그림자는 팔꿈치까지 늘어나, 통파의 형상을 이루었다.
노아의 무기도 이스티처럼 들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강한 사람들 특징인가?
노아는 손목을 움직여 통파를 회전시켰다.
"잠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나는 카렌, 이스티와 함께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통파의 회전수가 계속 오른다. 노아는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 있다가, 조개 위를 통파로 강타했다.
동작 자체는 단순하다. 원심력이 최대로 실린 통파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을 뿐.
근데 그 동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개가 맞고 나서야 움직였다는 걸 알았다.
성벽을 공성추로 때리는 것처럼 둔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믿기지 않지만, 그 충격으로 약간의 풍압이 일었다.
피부가 가볍게 감전된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입으로 설명하면 별것 아닌 타격이나 직접 보면 엄청난 공격 스킬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박력이 느껴졌다.
대왕 팔색 조개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팼다.
그러나, 조개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음."
"어때? 노아."
"이 세상 물질이 아닌 것 같은 단단함입니다."
이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의 공격이라면 미스릴이라도 깨졌을 거야."
……미스릴이 뭔데? 게임에 나오는 그거?
어느 정도 단단함인지 나만 모르겠다. 대략 강철 정도인가? 그보다는 더 단단하겠지?
"벨라 말로는, 조개 자체는 평범하게 모은 것 같더라.
걸려있는 보호 마법 수준이 높은 걸 거야."
"격이 다르네요."
"……이게 여신의 힘."
강자들의 흥미를 잡아끄는 요소가 있는지, 노아와 이스티는 같이 조개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전 검사도 끝났겠다. 이제 쉬러 가자."
"응!"
카렌이 힘차게 대답했다.
우리는 다 함께 팔색 조개 성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