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5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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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드. 오늘 일은 전부 잊는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데칼과 베일 노아에게 더는 관여하지 않는다."
"예."
와비드는 깨어나면 모든 걸 잊겠지.
이후에 나와 관련된 어떤 단서를 얻어도─서면에 기록한 나에 대한 정보라든지─ 생각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
최면을 이용하면 처음 보는 이와 가까워지는 것도 반대로 대인 관계를 완전히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간단하다.
나와 관련된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기 때문에 이 보안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
물론 이런 일을 하기 전에 와비드한테 궁금한 게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집행관의 보고 체계는 어떻게 되는지, 나를 조사하기로 한 건 베일 노아의 독단이었는지.
그런 심사관에게 할 법한 질문들이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필요한 정보는 노아에게 들으면 된다.
솔직히, 와비드는 이제 관심 밖이었다.
나는 비밀 스위치를 조작해서 통로를 다시 열고, 노아를 짐짝처럼 어깨에 들쳐멨다.
그리고 통로를 나서기 전에 손뼉을 친다.
짝!
"음?"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와비드를 뒤로한 채, 던전을 빠져나왔다.
밖은 이미 늦은 밤이었다.
"……저거 봐."
몇 없는 모험가들이 날 보며 수군거린다.
노아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맨살이 드러나지 않게 배려하기는 했지만 실신한 여자를 어깨에 짊어진 남자가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특히 도둑한테 노려지기도 하고 같은 모험가들한테 공격까지 당하는 이세계라면 더더욱.
다행히 시비가 걸리지는 않았는데 마른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좀 달랐다.
어딜 봐도 범죄자 같은 행색으로 나타났기 때문인지 경비병이 눈에 불을 켜고 다가왔다.
"뭘 하고 계신겁니까? 함께 계신 여성분은 왜 정신을 잃었죠?"
"던전에서 실신했습니다."
"던전? 모험가시군요. 라이센스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나는 내 모험가 라이센스를 경비병에게 건넸다.
그러자 경비병은 화들짝 놀라며 투구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데칼님이셨군요. 바쁜 길 막아 죄송합니다."
나는 뜻밖의 대응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경비병은 친절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도둑놈들을 일망타진할 때 도움을 주셨죠. 이후에, 데칼님이 관문을 지날 때 어떠한 불편함이 없도록 협조하라는
살리나 대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살리나가?"
그거 고맙군.
"그럼 지나갈게요."
"편안한 밤 보내시길."
처음 보는 경비병이 내 이름을 알다니. 처음으로 유명세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나도 이 마을에서 이름을 알린 모험가가 된 것이다.
"응…."
노아가 뒤척였다. 광장 한복판에서 정신이 든 것 같다.
"이제 걸을 수 있지?"
"아… 네."
나는 노아를 내려주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힘들지 않았으니까. 나때문에 그렇게 된 거기도 하고."
"……."
노아는 우물쭈물했다.
"와비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우리와 무관계한 사람이야."
이 이상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지.
노아는 모든 걸 이해한 듯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섬세한 배려, 감사합니다."
"다른 둘에게 널 소개하러 가야지? 이제부터 내 암캐가 되었는데."
"……."
"아니야?"
노아는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부터 저는…… 데칼님의 충직한 암캐입니다."
"좋아. 아, 눈가리개도 챙겨왔는데. 내가 씌워줄까?"
"부탁드립니다."
나는 노아에게 검은 눈가리개를 씌워주었다.
"됐다."
"……감사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너랑 얘기해둘 게 있어. 추가 시험에 관해서 말이야."
"추가 시험 말씀입니까?"
"나는 떨어져도 상관없지만, 카렌을 합격시켜줄 수는 없을까."
노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원래는 노아를 조종해서라도 합격시킬까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의외로 나는 진지하게 추가 시험에 응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두 분은 이미 합격하셨으니까요. 그 얘기를 아직 전해드리지 않았군요."
"어? 무슨 말이야?"
"카렌 양이 있는 곳에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게 좋을 것 같네. 그러면……."
"물과 풀 여관이죠? 갑시다."
마치 내 행선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노아가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어갔다.
깜빡했네. 노아는 날 추적한 집행관이었지? 팔색 조개 성에서 머물렀던 기간을 제외하면, 평소에는 뭘 먹고 어디서 지내는지 전부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적일 때는 무섭지만 아군일 때는 노아의 능력이 무척 든든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풀 여관에 도착했다.
아나이스한테 물어보니 두 사람은 몇 시간 전에 내 이름으로 방을 잡아둔 채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난 바로 2층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오빠 왔다!"
안에서 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달링. 지금 열게."
문을 연 이스티는 내 옆에 서 있는 노아를 보고 눈빛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노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스티가 내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나를 보았다.
"그래도 돼. 노아는 이제 한 식구니까."
"알았어."
나는 들어가자마자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셋까지는 어떻게 참을 수 있는데 이 좁다란 방에 넷이나 들어오니까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이런 방에서 지내오셨습니까? ……마른 마을에는 좋은 여관이 많은데도."
"그러게. 장소를 좀 옮겨야겠어. 다들 팔색 조개 성으로 이동하자."
나는 개인 보관함에서 대왕 팔색 조개를 꺼냈다.
"팔색 조개 성?"
"데칼. 기다려 줘. 함께 가기 전에, 노아가 달링을 해칠 생각을 접었는지, 그걸 확인하고 싶어."
이스티가 노아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잠깐 잊고 있었다. 이스티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카렌은 솔직하고 활기찬 인품에 나를 도왔다는 사건까지 적절하게 겹쳐 이스티와 좋은 우정을 구축했지만 노아는 아예 배경이 다르다.
우리 행적을 몰래 추적하며 나를 직접적으로 해칠 의도를 있었던 노아를, 이스티가 간단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리 없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카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사관님이 오빠를 해쳐? 왜?"
……의도하고 꺼낸 발언은 아니겠지만, 카렌 덕분에 날 선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그 석실에서 있었던 일은, 카렌에게는 없었던 일.
즉, 사실 노아가 나를 요주의 인물로 보고 즉결 심판까지 하려 했다는 사실을 카렌은 모른다.
이스티가 입을 다물자 노아가 자연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저는 심사관이면서, 동시에 범죄자를 추적하고 심판하는 집행관입니다."
"그, 그러면…! 오빠를 잡으러 온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카렌의 반응이 귀엽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본 정황도 있었고요."
"다른 분은 모르겠지만 저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저는 오빠의 좆집이기 때문에, 성폭행같은 건 당하지 않았어요. 제가 원해서……."
카렌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지리멸렬한 말들을 마구 늘어놓았다.
"알고 있습니다. 카렌 양. 진정하세요."
"……네."
구경하는 재미가 있네. 노아가 집행관이라는 거 알고 깜짝 놀랐나 보다.
자기를 좆집이라고 말하며 변호하는 모습까지 걸작이었다.
"계속 얘기해.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이스티가 노아를 추궁했다.
"네. 저는 데칼님의 충직한 암캐가 되어 섬기기로 했습니다."
"……네!?"
카렌은 혼자 세 사람 몫만큼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그런 말 해도 믿을 수 없는데."
이스티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노아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이 둘은 상극이군.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
벨라의 경우는 애초에 여신님이라 이스티를 발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까지 대충 넘겨온 문제가 터진 느낌이다. 이스티는 나 말고는 믿지 않는다. 믿는다고 해도 나를 통한 계기가 없으면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그녀가 지금까지 「고고한 사냥꾼」이라 불리게 된 이유겠지.
"심사관님? 무슨 얘기예요? 오빠의 암캐라니…. 오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카렌이 갑자기 나한테 화살을 돌렸다.
오, 드디어 내가 말할 차례인가? 좋아. 이 복잡한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주지.
"섹스했어."
"섹…."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남자와 여자가 친해지는데 섹스만 한 게 없지."
"……."
"집요한 17연속 질내사정 섹ㅅ……."
"드, 들었으니까 섹스, 섹스 반복하지 않아도 돼!"
"지금부터 노아가 어떻게 내 암캐가 됐는지를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그런 설명 들어도 잘 모르겠어. 집행관님이 갑자기 오빠의 암캐라니…."
"이스티는?"
"……."
적개심을 숨기지 않던 이스티는, 갑자기 시원한 표정으로 말했다.
"달링과의 섹스라면… 이해했어. 어쩔 수 없네."
"이, 이스티는 이해가 되는 거야!?"
"응. 카렌도 이해하지 않았어?"
"나는…… 그게, 나만 오빠랑 섹스할 때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느끼는 줄 알았어."
카렌은 묘한 고백을 하면서, 수줍음에 목소리가 점점 바닥으로 기어들어갔다.
"17연속이라니…. 어땠어? 노아."
이스티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묻는다.
"굉장했습니다. 중간중간 실신해서, 시간 감각이 이상해지기도 하고……."
카렌이 꿀꺽 군침을 삼켰다.
상극이라고 생각했던 엘프랑 집행관님이 내 이야기로 의기투합하는 걸 보고 있으니 멋쩍다.
"자세한 얘기는 안에서 나눌까? 여기는 너무 좁으니까. 이스티, 이제 괜찮지?"
"응. 적어도 달링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생겼어."
이스티가 고집불통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쩌면 내가 카렌에게 눈독 들였던 그 사건 이후로, 자기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 사람을 데리고 팔색 조개 성의 1층 홀로 이동했다.
벨라가 옥좌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다.
"한 사람 늘었네?"
벨라가 옥좌에서 일어나자 노아는 긴장하며 말했다.
"이 신성한 기운. 어느 나라의 여왕, 혹은 여신에 필적하는 우아함……. 고명한 분을 몰라뵙는 무지를 용서하시길."
벨라는 킥킥 웃었다.
"조금 식견이 제대로 된 애를 데려왔네? 주인님, 사람 고르는 눈은 제법이야."
"주인님?"
노아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벨라의 옆으로 가서, 모두를 보며 소개했다.
"소개하지. 내 노예인 벨라. 전 여신이다."
새로 식구가 늘 때마다 반응 보는 것도 재미있네.
"난 벨라. 주인님의 보지 노예야. 여신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잠시 접어두었어."
"여신님이……."
노아는 돌이 된 것처럼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아무리 감이 좋아도 어떻게 짐작하겠어?
옥좌에 잘난 듯 앉아있는 품위 있고 우아한 자태를 한 여자가, 전에는 여신이었고 지금은 내 보지 노예라는 걸.
"이제 네 소개를 해야지. 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할 말을 잃었어? 자, 이름을 말해 보아라."
첫눈에 자신을 여신이라고 알아본 노아가 마음에 드는지, 벨라는 여신처럼 잘난 듯 말을 건넨다.
"혹시 주인님의 새로운 좆집이야? 전에 있던 애는 후보로 밀려났고?"
"아, 아니에요!"
카렌이 소리를 내어 부정한다.
"제가 오빠의 좆집이에요. ……그렇지. 오빠?"
"응. 좆집은 카렌이지."
카렌은 내 좆집 확인을 받고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노아는 암캐야."
암캐, 좆집, 애인, 노예…….
구성이 참으로 다양해졌다.
"잘 듣는 코를 가진 게 유일한 장점인 비루한 암캐입니다."
노아는 배꼽에 손을 올리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고개 들어도 돼. 예의 바른 아이는 좋아해. 이름은?"
"베일 노아입니다."
"그래. 노아, 주인님의 암캐로 있는 동안 행복하길 바라."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나는 벨라의 둔부를 찰싹 때렸다.
"아응!"
"주인을 옆에 두고 잘난 듯 굴기는. 얘기할 장소가 필요한데, 적절한 장소로 안내해 줘."
"네, 주인님♥"
우리는 벨라의 안내를 따라 2층에 있는 접대실로 이동했다.
맵 데이터로 보기는 했지만 직접 들르는 건 처음이다. 휑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데도 따뜻한 느낌이 나는 방이었다.
성 주인의 방처럼 검붉은 색채의 장식이 많이 쓰였고 주홍빛 조명이 은은하게 방 중앙을 비추고 있었다.
새삼 느끼지만 주거하기에 참 좋은 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든 세심하게 청소한 것처럼 깨끗하니까.
"다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일 먼저 상석에 앉았다.
바로 내 옆에는 당연한 듯이 이스티와 벨라가, 이스티 옆에는 카렌이, 벨라의 옆에는 노아가 앉았다.
……너무 본격적인 공간이 갖춰지니까 이제부터 국운이 걸린 회의라도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노아. 추가 시험 얘기부터 해볼까? 내용은, 그래. 보르도 던전 최하층에 있는 리치를 잡는 거였지?
우리는 리치를 잡지 못했어. 먼저 선수를 친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유감이라고 말했었잖아?"
"네."
"그런데 카렌이랑 내가 합격이라는 건 무슨 말이야?"
카렌이 눈을 크게 떴다.
노아한테 이목이 쏠린다.
"보스를 잡지 못해서 유감이라는 말은,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였습니다.
보르도 던전의 보스는 리치가 아니었어요."
엥? 리치가 아니었다고?
"결론은 제 실수입니다.
추가 시험이라는 게 예정에 없었던 일이라 조사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리치 얘기를 꺼낼 때는 「제 예상으로는」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제 책임이 큽니다."
아, 맞아.
분명히 그런 식으로 말했었지.
갑작스러운 얘기로 혼란스러웠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라서, 혹시 던전에 리치가 없었으면 어떻게 하냐는, 당연한 의문을 떠올리지 못했다.
"던전에 있는 보스는 리치가 아닌 「스켈레톤 엠페러」오크 대량 발생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 영혼석을 지닌 스켈레톤 하나가 폭주하여 일어난 소란이었습니다."
"어쩐지 지겹게 많더라니. 어디서 그렇게 뼈다귀가 솟나 했어."
카렌은 합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말만 안 꺼냈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꼼지락거렸다.
너무 기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그게 주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추가 시험은 응시자가 긴급 임무를 달성하기는 하였으나 그 과정이 의심스러울 때 치르는 시험. 긴급 임무를 달성할만한 능력이 있다고 심사관이 판단했을 때 합격으로 합니다.
임무 내용의 미비는 제 실수입니다. 하지만 두 분은 리치가 있다고 추정되는 석실을 향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실력을 선보였기 때문에
이미 합격으로 인정된 상황이었습니다. 단……."
"단?"
"그때의 저는, 카렌 양을 합격으로 치고 데칼님은 죄인으로 구속하거나 혹은 그 자리에서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자기 심경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때 상황이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지난 일이니까. 앞으로는 내 신변에 위험이 미치지 않도록 배려해주길 바라."
"네, 그 역할.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달링을 지켜온 건…… 나인데."
이스티가 서운한 듯 풀이 죽었다.
"이스티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 아냐. 위험이라는 건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지. 솔직히 나 혼자 신경 곤두세우고 있어 봐야
한계가 있어. 위험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때는 이스티의 도움을, 그전에는 노아의 도움이 필요한 거지."
"위험의 싹을 미리 잘라내는 게 제 역할이라는 뜻이군요."
"그래……. 잘라낸다고 하면 좀 흉흉한데. 제거하기보다는 나한테 알려줘. 어떻게 할지는 같이 생각해보자. 할 수 있지?"
"네."
"정리해볼까? 사실 보르도 던전에 리치는 없었고, 카렌과 나는 정당하게 능력을 입증했기 때문에 씬 울프 사냥을 성공했다고 인정받은 거야. 맞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는데?"
"오빠!!"
카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한테 달려와 안겼다.
다 큰 어린애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기세가 좋아서 의자가 뒤로 넘어갈 뻔했다.
"흐아앙."
"그래, 그래. 축하해."
나는 카렌을 끌어안고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자, 카렌이 용사 후보생이 되는 흐름인데. 나는 어쩌지?
마침 벨라도 있으니, 이 자리에서 모든 정보를 모아서 정리한 다음에 내 입장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결과에 따라서, 나의 다음 행선지는「용사 학교」가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