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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56화 (56/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5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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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잠시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모든 게 움직인다.

    "앗? 심사관님이 왜 여기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와비드와 노아는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안색이 점점 파래졌다.

    "아! 이스티까지! 무슨 일이에요?"

    그들 입장에서 카렌은 갑자기 모든 걸 잊고 무구한 상태가 된 것이다.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노아랑 와비드가 뻣뻣하게 굳어있는 동안, 카렌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카렌. 잘 들어."

    "응, 듣고 있어."

    "우리는 추가 시험을 보기 위해 이 던전에 왔어. 이제 심사관님의 공정한 심사만이 남은 상태야."

    "그래서 다들……. 앗. 와비드 님도 심사관이야?"

    "그래.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부정한 방법을 쓰지는 않는지.

    이제 심사관님이랑 얘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은데, 밖에서 좀 기다려줄래?"

    "알았어. 심사관님. 잘 부탁드립니다."

    카렌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노아는 움찔했다.

    "알겠습니다…."

    "카렌이 나갈 수 있게 비밀 방을 열어주겠어?"

    "……."

    "그편이 너한테도 좋을 텐데?"

    노아가 등을 돌려, 벽에 붙은 비밀 스위치를 조작했다.

    통로가 다시 열린다.

    "카렌. 밖에서 보자."

    "응, 오빠!"

    카렌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방을 나섰다.

    "이스티. 카렌을 데리고 여관에서 기다려줄래?"

    "내가 없으면 달링이 위험할지도 몰라."

    "괜찮아. 알고 있잖아? 내 특기."

    "아……."

    이스티가 방긋 미소 지었다.

    "알았어. 노아는 달링한테 무례한 행동을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까? 고결한 엘프가. 이 모든 걸 지켜보고도 그런 말을 한다니…!"

    "엘프한테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건 숭고한 일이야. 노아. 달링한테 성심성의껏 사죄하길 바라."

    "엘프의 도움 없이 나한테서 몸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노아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럼. 너는 내가 결백 증명하는 걸 도와줄 거잖아?"

    "결백? 이제 와서!"

    이스티가 등을 돌리자마자 노아가 달려들었다.

    나는 느긋하게 노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

    "이게 다이아몬드 등급의 실력이야?"

    "어째서, 몸이…!"

    "뜻대로 안 되지?"

    나는 노아의 귓가에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날 도와야 하기 때문이지."

    "나한테 무슨 짓을 했습니까. 다른 여자한테도 그랬듯이, 나를 노예로 만들었습니까?"

    "노예로? 그렇게 생각해?"

    최면에 대한 막연한 인상은 그렇지.

    무작정 노예로 만들어 원하는 대로 부린다고.

    그것도 재미있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최면을 다루는 게 더 재밌어진다고 생각하거든.

    너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똑똑한 여자는, 명령에 복종하라고 하면 어떻게든 사고에 빈틈을 만들어, 치밀하게 쌓아 올린 논리로, 내 의도와 다른 행동을 하려고 하지."

    "……."

    "하지만 그런 여자이기 때문에 나를 위하는 행동. 즉 도우라고 했을 때는 저항할 수 없게 돼.

    어떤 행동이 나한테 도움으로 미칠지 끊임없이 생각하기에 반대로 머리를 비울 수가 없는 거야."

    "윽, 으읏!"

    노아가 나한테 붙잡혀 몸부림친다.

    원래 능력 차이를 생각하면 손쉽게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그뿐이랴? 노아가 이스티와 동일한 힘을 갖고 있다면 나를 제압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날 도와줘. 결백함을 증명할 수 있게."

    노아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진다.

    그 모습을, 노아가 무력해지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웃는다.

    "지금 구해드리겠습니다!"

    그때 와비드가 손을 펼쳤다.

    "라이트닝 스퀘어!"

    "소용없을 텐데."

    와비드의 손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전류를 봤을 때 조금 겁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전류들은 엄한 곳을 훑고 지나갈 뿐 내 근처에도 스치지 못했다.

    "아아."

    나는 그걸 보고 알았다.

    "자기가 맞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비우고 마법을 썼군. 그렇지?"

    "……어, 어째서."

    "너는 나한테 간섭할 수 없어. 안전장치를 이중으로 걸어놓았지. 생각하는 걸 포기한다고 해도, 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겠지?

    내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된 상태가 아니라면 마법조차 쓸 수 없다는 걸."

    노아가 대뜸 외쳤다.

    "이스티! 이스티라고 했죠? 당신의 이름. 도와줘요! 이 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에요!

    길을 잘못 든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내 등 뒤에 있는 이스티한테.

    "노아는 눈치가 빠르네.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잘 알잖아."

    "이스티!"

    이스티는 노아의 절박한 호소를 무시하고 가버렸다.

    "노아. 비밀 방을 닫게 도와줄래?"

    "아…!"

    노아는 거역할 수 없다. 내가 시킨 대로 걸어가서, 비밀 스위치를 조작한다.

    비밀 방은 딱 알맞은 안락함을 느끼게 했다. 너무 넓지도 않고 너무 좁지도 않아.

    던전 안이라는 공간이 마치 지하실을 연상케 해서 좋다.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란, 제법 중요하다. 잡음이 없으면 더욱 좋다.

    하지만 와비드는 일부러 세워두었다. 관객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건 아니지만 무관계한 인물도 아니니까.

    "어차피 이스티가 널 돕지는 않았겠지만, 실수했네.

    이스티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 이름을 부르는 건 싫어해. 사실, 알려지는 것도 싫어하지.

    이름을 아는 사이끼리 생기는 친밀감을 기대했다면 너무 안일했어."

    "어차피 엘프의 이름도 최면으로 알아낸 것 아닙니까?"

    "정답. 그럼 나는 그 엘프의 이름을 왜 너희한테 알려줬을까?"

    "……."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한 명은 어차피 잊어버릴 예정이고, 다른 한 명은. 친해질 예정이거든."

    "친해져…? 나랑 당신이?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내 마음도 마음대로 조종하겠지만, 이게 내 진심입니다."

    「내 진심만은 더럽힐 수 없다」그런 로맨틱한 말도 할 줄 아는 타입이었어?

    냉혈한 심사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자다운 일면도 있잖아?

    "그럼 내기할까?"

    "내기?"

    "네 마음을 직접 움직이는 암시 없이, 너와 친해져서 이 방에서 나갈 거야.

    만약 끝까지 네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면 너희를 놓아주지."

    "당신이 자기 안위를 걸고 그런 말을 할 리는 없고. 놓아준다는 건 방금 그 빨간 머리 소녀에게 했듯이 우리 기억을 지우겠다는 의미입니까."

    "그래. 해볼 만하지? 나는 그냥 너희를 잊고 살면 되고, 너희는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는 거야."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떠보려고 할 것 없어. 이미 알고 있잖아?"

    노아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거짓말하는 중이 아니라는걸. 성적으로 흥분해서, 자지가 지금이라도 터질 것같이 발기했다는 걸.

    "……네. 괜히 물어봤네요. 당신이 여성한테 해온 비열한 짓들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은 아주 어울려요."

    "날 경멸했지? 데칼님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네.

    너는 이름을 부르는 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

    노아는 정곡을 찔린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선 친해지려면 이름을 불러야지. 이름으로 불러줄래?"

    "싫습니다."

    "봐. 너는 원하는 대로 의사 표현을 했어. 시작 조건이 공평하다는 건 알겠지? 그냥, 이 방을 나설 때까지 계속 그렇게 있으면 돼.

    나 같은 건 이름으로 부르기도 싫다고. 그게 기준이야."

    나는 느긋하게 노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씬 울프 사체를 놓고 당락을 정할 때 칼자루를 쥔 건 노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아를 궁지에 몰아넣는 건 바로 나.

    그 즐거움이, 올라간 입꼬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약속하십시오."

    "약속?"

    "당신의 그 더러운 놀이에 어울려주면, 그리고 내가 이긴다면. 와비드와 나한테 어떤 수작질도 하지 않고 놓아주겠다고."

    "기억을 지우고, 접근 금지 암시를 걸겠어. 향후 네가 또 나한테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

    "안 됩니다!"

    와비드가 소리쳤다.

    평소의 여유로운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와비드는 분노로 어깨를 떨고 있었다. 호흡도 무척 거칠었다.

    "노아 심사관! 상대가 바라는 바입니다. 이런 거에 놀아나면 심한 수치를 받고 버려질 뿐입니다! 아까 보지 않았습니까?

    이 남자는 이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지우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남자가 만족할 때까지 벗어날 수 없어요!"

    "그래요. 그러니까 달리 방법이 없는 겁니다."

    "윽…!"

    "최소한 이 남자를 상대하려면 국보급 아티팩트를 가지고 왔어야 했어요. 세뇌 마법은 왕국 기록에 의하면 상대를 술에 취한 것처럼 무방비한 상태로 만들어

    원하는 말을 듣게 하거나, 비밀을 자백하게 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편의상 세뇌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진짜 뜻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남자의 능력은… 정말로 신의 권능에 필적합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는 세뇌 마법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으면, 너희가 무슨 의도로 접근하는지 좀 더 빨리 알았을 것 같은데."

    "그럼!"

    와비드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이 남자가. 여자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이런 쓰레기가, 신이라고 말할 셈입니까. 당신은!"

    "그럴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놀이에 대해서는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죠?"

    "맞아. 와비드. 너는 잘 모르겠지만, 놀이를 즐기는 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

    너희들한테 손대지 않고 풀어줘야 한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상황을 몇 배로 즐길 수 있게 되거든."

    "광인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말했다고 생각하는데, 대뜸 미친놈 취급이라니.

    건실하게 자라온 사람이랑은 말이 안 통하네.

    하긴, 지금 상황에 나한테 동조하는 것 자체가 정신 나간 일이다.

    그런 정신 나간 사람이 있으면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여태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시간제한은 없습니까?"

    노아가 말을 덧붙였다.

    "시간제한?"

    "사흘 밤낮. 굶어 죽을 때까지 여기에 갇힌 채로 협박당하는 것도 곤란하니까요."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었다.

    "그 말은, 그 정도로 버텨낼 자신이 있다는 뜻이야? 오, 이런……."

    얼마나 가여운 착각인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집행관은 고문에 견디는 훈련도 받습니다. 장담컨대 참고 견디는 일이라면 생명 활동이 정지할 때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섯 시간 정도면 어때?"

    "좋습니다. 다시 되돌리기 없습니다."

    "좀 긴가?"

    세 시간 버텨도 대단한 건데.

    「아찔한 쾌락」같은 강렬한 암시를 받고 두 시간 이상 버틴 여자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장난치지 마시길. 섹스 정도로 몇 시간 만에 뱉은 말을 바꾼다니. 사춘기 남자애도 그런 생각은 안 합니다.

    최면으로 조종해서 지금까지 여자들의 마음을 돌려왔을 뿐 아닙니까?"

    "반은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걸 좋아해.

    그러니까 정말 네가 견딜 수 있다면 나는 풀어줄 의향이 있어."

    "노아 님!"

    "와비드. 별일 없을 겁니다. 우리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을 뿐. 지금은 살아서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세요.

    이 남자가 동성인 당신을 살려둘 가능성은 무척 낮습니다."

    "으윽…! 내가 이렇게 쓸모없지만 않았어도!"

    와비드가 자책하기 시작했다.

    "시작해도 됩니다."

    "좋아. 두 명의 심사관에게 내 결백을 증명하고 싶군."

    "결백? 아아. 그게 놀이의 콘셉트입니까. 어떻게 증명할 셈이죠? 여자들이 스스로 당신에게 반했다고 말할 셈입니까?"

    "응."

    눈가리개 때문에 어떤 눈빛으로 날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척 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여자들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나오는 것 같아."

    "……."

    "……."

    안 웃긴가?

    비밀 방에는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노아가 직접 확인해주면 내 결백이 증명되지 않겠어? 여자들이 푹 빠질 만 하다고."

    "……하아. 예. 그러면 벗습니까? 도와달라고 하셨으니 도와드리겠습니다."

    "가까이 와."

    노아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빨리하겠다는 것처럼 둘러대기는 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두렵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걸음걸이에서 불안함이 느껴진다.

    "긴장하지 마. 우선 포옹할까? 연인처럼 다정하게."

    "……예."

    노아는 참으로 내키지 않는 듯 퉁명스럽게 내뱉고, 나한테 폭 안겼다.

    아아. 좋다. 수녀복 위로도 그녀의 몸매를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았으나, 느꼈을 때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이스티처럼 잘 빠진 몸매다. 전부 가리고 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아니, 이 경우에는 가리고 있으니까 꼴리는 건가?

    노아는 목석처럼 나한테 안겨 가만히 있었다. 나는 노아를 꼬옥 끌어안고 그대로 있었고.

    이대로 시간을 끌면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갑자기, 노아의 몸이 반응했다.

    "읏…!"

    "왜 그래?"

    노아가 허둥지둥하길래 나는 꼬옥 팔에 힘을 주고 끌어안았다.

    "하윽!"

    노아의 입에서 사랑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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