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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55화 (55/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5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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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비드는 난처한 듯 웃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더군요. 다음에는 든든한 파티원을 구해서 올 생각입니다."

    둘러대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다.

    정말 리치를 잡으러 왔다면 실력이 뛰어나도 혼자서 오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오늘 나는 순수하게 추가 시험에 응하러 왔을 뿐.

    와비드의 존재가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럼, 서둘러야 하니 가보겠습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와 카렌은 금빛 문을 열었다.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새까맣고 침침하다. 들어가면 죽을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

    "오빠……."

    카렌도 똑같이 느낀 듯했다.

    "돌아갈까?"

    "레, 레벨 높은 오빠가 그런 말 하면 어떻게 해!"

    "아니. 여기는 꼭 레벨이 모자라면 입장할 수 없는 던전 입구 같지 않냐?"

    "그렇긴 한데……."

    계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악한 아우라가 외치는 것 같다.

    너희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후우."

    나는 깊이 심호흡하고 발을 뗐다.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계단은 끝도 없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고 겁이 나기 시작했을 때 통로가 나왔다.

    이번에는 정말 새까매서 빛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밑바닥부터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건가?

    "씬 울프가 차라리 쉬웠던 것 같은데…."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개인 보관함에서 랜턴을 꺼냈다.

    불을 붙이는 순간 뱀들이 마녀의 머리카락처럼 사사삭 구석으로 숨는 게 보였다.

    아, 싫다.

    "끔찍하군."

    이제부터는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랜턴 내가 들까?"

    "아니. 내가 갖고 있을게."

    여차할 때는 손이 자유로운 내가 랜턴을 들고 있는 편이 낫다.

    "마법 공격이 오면 잘 받아 줘."

    "응!"

    나는 이제 보호받아야 하는 마법사가 아니다.

    카렌과 함께 나란히 서서 걷는다. 지하 4층에는 마물이 별로 없었다.

    이미 선발대가 쓸고 간 뒤인가? 그렇다면 서둘러야 한다.

    "왜 아무것도 없을까?"

    카렌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이미 잡고 지나간 것 같은데."

    "세상에. 그럼 이게 다?"

    카렌은 바닥을 걸을 때마다 밟히는 뼛조각들을 보고 경악했다.

    "그래……. 지금까지 본 흔적만 해도 600마리는 되는 것 같은데."

    수색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뼛조각들을 보면 얼마나 치열하고 긴 전투가 있었는지 예상이 간다.

    점점 걸음이 빨라졌다.

    우리는 한참을 걸어 통로를 빠져나왔는데, 통로 끝에는 넓은 석실이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곳이 스켈레톤 워리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걸 알았다.

    병기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낡은 검들. 그보다 더 많은 뼈와 음습한 기운.

    하지만 리치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쓰러뜨렸다!"

    석실에 모인 열 두 명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 중앙에는 파티 리더로 보이는 금발의 소녀가 있었는데, 혼자 유독 눈에 띄었다.

    "끝났구나…."

    카렌이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는 늦었다.

    어쩌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검은 숲에서 우리가 씬 울프를 먼저 잡았듯이, 이번에는 다른 누군가가 선수를 칠지도 모른다고.

    드라마틱하게 리치를 잡았더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꽤 허무하다.

    "이미 잡혔으면 어쩔 수 없지. 돌아가서 보고하자."

    "응. 어쩔 수 없네…."

    카렌이 눈물을 흘렸다.

    당황스럽다. 어떻게 달래주지?

    모험가 파티가 해산하는 가운데, 금발 소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모험가가 아닌 것 같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금발, 붉은 눈. 하얀색 제복.

    가까이서 보면 어두컴컴한 석실에 태양처럼 군림하는 화려한 소녀였다.

    "한심하게 눈물 보이지 마."

    "아…?"

    카렌이 눈을 깜빡이며 금발 소녀와 마주 본다.

    "…기회는 언제나 있으니까."

    격려인지 더 울리려고 한 소리인지도 잘 모르겠다.

    소녀는 일방적으로 카렌한테 쏘아붙인 다음 휙 하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다시 돌아보더니,

    "너는 왜 남자가 돼서 곁에 있는 여자가 울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참 한심하네!"

    "……."

    남한테 한심하다고 말하는 게 특기인가?

    금발 소녀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걸어서 가버렸다.

    "뭐 하는 녀석이야."

    우리 사정도 모르고 멋대로 말하는군.

    다음 기회 같은 건 없다. 리치가 죽어버린 이상 시험에 합격할 방법이 없으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말이다.

    "맞아. 눈물 보이면 안 돼."

    카렌은 실망감을 이겨내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돌아가자. 오빠."

    "……."

    침울한 기분이다.

    가뜩이나 지하 던전이라서 더욱 가라앉는 것 같다.

    "어."

    나는 돌아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오빠?"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나."

    돌아가는 길에, 나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했다.

    이런 길이 몇 개 있기는 했지만 다 몇 걸음 안 가서 막다른 길이었던 걸로 아는데.

    이곳은 깊게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는데 수색 스킬을 써보니 확실해졌다.

    이건 아까까지 없었던 통로다.

    "가보자."

    나는 카렌과 함께 새로운 통로로 걸어갔다.

    끝에는 또 다른 석실이 있었다. 보물 상자도 뭣도 없었지만, 석실에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심사관님이 여기는 어쩐 일로?"

    노아는 말없이 벽을 짚은 손에 힘을 넣었다. 노아의 손이 쑥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조작한 것처럼

    배후에 있던 통로가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무슨 의도지?"

    기다리기 지루해서 빨리 심사하러 온 분위기는 아닌데?

    구석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몸을 숨기고 있어서 몰랐다.

    그 사람은 와비드였다.

    검은 눈가리개를 한 수녀, 철벽의 심사관 베일 노아가 입을 열었다.

    "이 방은 보르도 던전에 있는 비밀 방 중 하나입니다. 재미있는 장치가 있어서, 사용해봤습니다."

    "비밀 방 찾기라. 취미야?"

    "그런 건 아니지만, 마침 딱 알맞은 환경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딱 알맞은 환경?"

    "어느 정도 예상하셨겠지만, 와비드는 제 부하입니다. 성도의 이등 심사관이죠. 또는 집행관이라고도 불립니다."

    "집행관……. 너도 그래?"

    노아는 고개를 알아볼 듯 말 듯 하게 끄덕였다.

    "네. 이쪽이 제 본업입니다.

    마른 마을에 빨리 찾아온 것도, 사전 조사를 위해서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에요?"

    카렌이 답답한 듯 말했다.

    그러자 와비드가 석궁을 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 남자는 세뇌 마법을 사용한 혐의가 걸려있습니다. 물러서세요."

    "…네?"

    "데칼님과 접촉한 여자들이랑 모두 만나봤어요. 발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나한테 세뇌당했다고 말하던가?"

    "아니오. 하지만 피해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성적 착취가 이루어졌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위험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금세 알았어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군.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의심을 받은 건가?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노아는 이미 정답 맞히기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그때도 경탄했지만 정말 대단한 후각이다.

    "왜 나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았어?"

    "엘프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떼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추가 시험을 줄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온 건 우리에게 행운이었죠."

    "처음부터 추가 시험 얘기는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다?"

    "그건 아닙니다."

    노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심사는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보르도 던전의 보스가 먼저 잡힌 건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모든 게 끝났으니 남은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온 거죠."

    남은 일.

    바로 나에 대한 처분이다.

    "할 말 있습니까?"

    "내가 세뇌 마법을 썼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어?"

    "그건 지금부터 알게 될 겁니다. 와비드. 꺼내요."

    "예."

    와비드는 코트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범행 입증에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저 수정구에는 정신에 영향을 주는 마법을 해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걸, 당신의 동료에게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런 아이템도 있어? 놀라운데.

    나도 궁금했다. 저게 내 최면에 효과가 있을까?

    "카렌 양. 수정구를 보세요."

    "시, 싫어요. 오빠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당신을 보호하려는 겁니다."

    카렌이 뭘 두려워하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카렌. 심문에 협력해."

    "……."

    내가 말을 해서야, 카렌이 눈을 뜨고 수정구를 바라봤다.

    수정구가 빛을 발한다.

    "무언가 달라진 점 없습니까?"

    노아가 바로 카렌한테 물었다.

    "몰라요. 그대로인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해주의 영향으로 몸에 어떤 반동이 왔을 겁니다.

    옆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세요. 당신의 동료가 맞습니까?"

    카렌이 나를 쓱 올려다봤다.

    "……네."

    "솔직하게 말하세요.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

    "카렌. 솔직하게 말해줘. 저 심사관님한테는 둘러대는 게 통하지 않아."

    "……동료가 아니에요."

    카렌이 중얼거렸다.

    와비드와 노아가 숨을 삼킨다.

    "저, 저는 오빠의 좆집이에요. 제 의지로,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카렌은 머뭇거리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많이 민망했는지 귀까지 빨개진 모습이 귀여웠다.

    "……."

    노아는 기가 막힌 듯했다.

    "정말 자기 의지라고 생각합니까? 다른 피해자들도 이런 식의 주입을 받았던데. 위화감은 없습니까?"

    "없어요! 저는 떳떳한, 오빠의 좆집이에요."

    "음."

    나는 두 사람을 내다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어? ……그 수정구가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부끄러워……."

    나는 카렌의 손을 잡았다.

    "돌아가자. 카렌."

    "응."

    "누가 거기서 움직여도 된다고 했습니까?"

    노아의 몸에서 살벌한 기백이 뿜어져 나왔다.

    언제 무장했는지 노아의 손에는 묵 빛의 통파가 걸려있었다.

    팔꿈치까지 닿는 긴 쇠막대가 손목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회전한다.

    "심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심문의 결과에 따라서, 당신은 여기서 죽을 수도 있어요."

    "……."

    진심인가?

    여기에는 재판도 없어? 그냥 현장에서 범죄자를 심판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나도 대응을 달리해야겠군.

    "방금 봤잖아? 나한테 의심할 구석이 어디에 있어?"

    "「고고한 사냥꾼」이 인간에게 흠뻑 빠졌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중증의 인간 혐오예요. 예전부터 유명했죠."

    "그렇다면. 나한테 직접 물어봐."

    석실에 바람이 불었다.

    나와 카렌은 이스티가 나타날 지점을 빨리 알아챘다. 착지 지점이 그려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주 잠깐 스치듯이 느꼈을 뿐 이스티는 거의 바람처럼 나타났다.

    "……날 미행했습니까?"

    노아가 말했다.

    "그래. 미행했어. 달링한테 무슨 짓을 할까 봐. 그 예상이 맞았네."

    "당신이야말로 세뇌 마법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정신을 차리면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거예요."

    "아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노아야. 내가 달링을 사랑하는 건 엘프의 맹세로 맺어진 진실이야. 세뇌 같은 파렴치한 짓은 당하지 않았어."

    "당하지 않았다? 세뇌당한 사람이 그걸 알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하나도 없어요?"

    두 사람의 언성이 점차 높아졌다.

    이스티는 의구심 하나 없는 얼굴로, 시원하게 선언했다.

    "그래. 없어. 인간은 싫지만 나는 달링을 믿어. 세상에서 제일 믿어. 의심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이건……. 와비드."

    "이 수정구를 보십시오."

    "……."

    이스티는 수정구를 보고도 반응이 없었다.

    "이런 짓 그만하고, 달링한테 정중하게 사과해. 노아. 나는 네가 집행관으로서 행한 일은 인정하지 않겠어."

    "이런…."

    노아가 궁지에 몰려 나를 보았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서 보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노아의 표정에서 초조함을 읽은 것 같았다.

    "당신은… 생각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군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앞뒤 상황만 놓고 보면, 그냥 네가 나한테 사과해야 할 문제 아닐까?"

    "큿…. 뻔뻔하게…!!"

    노아는 심증으로는 거의 모든 정답을 맞춰놓았다.

    내가 세뇌 마법을 사용해서 이스티를 건드렸고 다른 여자들에게도 마수를 뻗쳤다는 걸.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다.

    증명조차 안 하고 덤벼들었으면 단순한 미친년이었겠지만. 노아는 그렇지 않다.

    나를 범죄자라고 생각하여 추적하면서도, 자기가 언급한 심사는 공정하게 진행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자신만의 법칙,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노아는 다시 이스티를 보았다.

    "정말로 사람을 조종하는 힘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습니까?"

    "……."

    이스티가 내 눈을 보았다.

    "말해도 돼? 달링."

    "그래."

    이스티는 미소 짓는 얼굴로 말했다.

    "맞아. 달링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어."

    "예?"

    노아와 와비드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걸 알면서도 자기가 그 힘으로 세뇌당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겁니까?"

    "내가 달링의 최면에 당했다고?"

    노아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정신 차려요! 저 사람을 맹목적으로 믿게끔 조종당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한다는 착각까지 심어놓고!"

    "달링이 나한테 최면을……. 그래도 상관없어. 난 달링을 사랑하니까."

    "후후후……."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노아는 창백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 대신 최종단계를 시험을 해줘서 고마워. 심사관."

    "최종 단계 시험?"

    "뭐, 쉽게 말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지."

    노아가 손목을 흔들어 통파를 회전시키면서 나한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스티는 그보다 빠르게 화살을 쏘아, 노아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노아. 그 이상 가면, 진심으로 머리를 맞힐 거야."

    "윽……!! 와비드!"

    "이, 이상합니다. 아까부터 노리려고는 하는데, 조준할 수가 없어…!"

    와비드는 석궁을 나한테 겨누려고 하지만 암시 때문에 차마 공격 행위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헤맨다.

    보이지 않는 힘에 가로막힌 것처럼.

    "하하하."

    나는 크게 웃었다.

    오장육부가 시원해지도록.

    "노아. 날 즐겁게 해줘서 고마워."

    "설마 와비드한테도…!"

    "걸어두었지."

    "윽, 흐으읏…!"

    와비드가 신음소리를 내며 석궁을 허공에 휘두른다.

    왜 뜻대로 안 되냐고 화내듯이.

    "오빠. 이게 다 무슨 말이야? 최면이라니? 나, 나는……."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겨, 석실에 있는 전원에게 트랜스 상태를 걸었다.

    "카렌. 방금, 이 석실에서 보거나 들은 일은 모두 잊어."

    "……."

    "와비드. 너는 내가 하려는 일에 간섭할 수 없다."

    간섭 불가와 공격 행위 불가.

    와비드에게는 두 가지 금제가 주어져 나를 방해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다음은 심사관님인데. 어떻게 해볼까?

    사실은 생각해둔 게 있었다. 이스티처럼 세 가지 암시를 걸어서 묶어주지.

    우선 첫째로는 전에 걸었던「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부할 수 없다」

    "노아. 너는 「내 체취를 기억하면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잊을 수 없…다."

    "「내 냄새를 강하게 맡을수록, 되새길수록, 아찔한 쾌감을 느낀다」"

    "……."

    "왜냐면, 그게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데칼님의, 냄새…."

    노아의 무의식 가장 깊은 곳에 나를 향한 열렬한 성벽─그것도 상당히 변태적인─을 때려 박는다.

    짝.

    나는 손뼉을 쳐서 모두를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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