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5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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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층에는 더 많은 스켈레톤 워리어들이 있었다.
우리는 내려오자마자 숙련된 모험가 파티가 사냥하는 걸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정확히 역할을 분담해서
다섯 마리나 되는 스켈레톤 워리어들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길드에서 본 적 없는 얼굴들이다. 와비드 말처럼 리치를 노리고 각지에서 모여든 모험가들인가?
힘을 합쳐서 어려운 던전을 답파한다. 정석 중의 정석이다.
"오빠. 지지 말자!"
"그래."
나와 카렌은 드디어 비좁은 실내에서도 힘을 합쳐 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카렌 혼자서 일방적으로 스켈레톤 워리어를 막아서야만 했고, 내 공격 지원은 비효율적이었다.
다음에는 불을 끄고 은폐의 장막을 이용함으로써 나 혼자 스켈레톤 워리어를 쓰러뜨렸고, 이것도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깨달은 것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방금 파티처럼 다섯 마리의 스켈레톤 무리와 조우하게 됐을 때도.
"이쪽에서 둘 맡을게."
카렌이 먼저 말하고 자세를 잡는다.
"나는 반대편 셋."
우리의 정령핵은 마치 강하게 집중하는 의식을 반영하는 것처럼 활발하게 몸 주변을 맴돌았다.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서로가 가진 힘을 드높인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구도다.
아티팩트로 〈은폐의 장막〉을 사용하고, 스켈레톤 워리어가 우리들을 정확하게 포착하기 어렵게 한다.
몸싸움이 익숙한 카렌은 이렇게만 해줘도 잘 싸웠다. 급박한 상황일 때는 정령의 보호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겁먹을 게 없다.
나는 근거리에서 스켈레톤 워리어의 공격을 받아넘기다가 오버 차징한 파이어 애로우를 꽂았다.
카렌은 상대가 헛스윙하면 약한 관절 부분을 검으로 강하게 후려쳐서 무력화시켰다.
(친밀도가 올랐습니다)
"해냈어!"
"빨리 배웠는데?"
"오빠가 하는 걸 보고 배웠지!"
카렌은 정령술로 몸을 지키는 법을 빠르게 익혔다.
스킬 숙련도는 모르겠는데 감은 나보다 좋다. 이렇게 보면 카렌은 용사 후보생으로 부족함 없는, 재능이 넘치는 소녀였다.
나는 어땠더라? 현대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정령이 몸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오크랑 한참을 노려보고 있었지.
뭐, 지금은 다 지난 얘기다.
"정령 좀 쉬게 하고, 은폐의 장막 리필하고. 그런 다음에 전진하자."
"응!"
우리 정령들은 공간 도약 훈련을 하면서 처음 받았을 때보다 크게 성장했지만, 바람의 정령 자체가 가지는 약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실내에서는 힘도 약해지고 우리보다 빨리 지치기 때문에 휴식 배려를 반드시 해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위급할 때에 공간 도약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마물을 잡으면서 정령도 성장한다고 했던가?
정령에게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전투를 해낸 즉시, 정령과의 친밀도가 상승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넷이서 싸우는 셈이네."
내 실없는 소리에 카렌이 소리 내 웃었다.
"그러네. 성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했는 데도 함께 싸운다는 생각조차 못 했어."
"살아있을 때 알았으면 됐지."
"오빠, 생각보다 낙천적이구나."
"너만큼 어리면 뭘 배워도 가능성이 돼. 나중에는 나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거야."
"정말 그럴까?"
"아니, 지금도 나보다 강하긴 한데. 네가 덮쳐들면 내가 지지 않을까?"
"사람을 곰처럼 표현하지 말아 줄래?"
카렌이 삐친 듯 툴툴댔다.
"오빠는 그냥, 근접 전투 계열의 스킬이 없을 뿐이야. 스킬을 다루는 센스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잖아.
함께 용사 후보생이 된다면……. 아."
"나는 모르겠어."
"입학시험은 치러보는 게 어때? 오빠라면 분명히 최고 성적으로 입학할 거야."
"설마."
아무리 가호를 받은 대리인이라지만, 노아나 이스티만 봐도 왕국에는 날고 기는 인물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거기에 이 정도 난도의 시험을 통과한 학생만을 받는 곳인데, 괴물 천지겠지.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우선 추가 시험을 해낸 다음에 생각해보자고. 우리 둘 다 나란히 실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그런데 김칫국을 마신다는 게 뭐야?"
"……."
"오빠. 김칫국이 뭐냐니까?"
"그런 게 있어……. 뉘앙스로 이해해 줘."
나는 괜히 창피해졌다.
우리는 중간중간 쉬어주면서 보르도 던전 지하 2층을 탐사했다.
무수한 스켈레톤 워리어들의 환영 인사가 있었지만 이제 나와 카렌은 둘이서 숙련된 모험가 파티를 능가하고 있었다.
마물이랑 직접 부대끼며 싸울 일이 없었던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수치로는 가늠할 수 없는 몸놀림, 판단력, 순발력 같은 것들이 좋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했을 뿐 현대에 있을 때보다 신체 능력이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레벨이 오르면 더 좋아지겠지?
「여신의 대리인」자격은 독해와 통역만을 돕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치 적용 효율을 훨씬 높여준다.
가장 단순하게는 힘이 세질 테고, 좀 더 나아가면 체력이 좋아지고, 공격을 맞았을 때 버티는 정도, 몸을 움직일 때 빠르게 반응하는 정도도 좋아질 것이다.
……정력도 좋아지지 않았을까?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여자를 손에 넣는다.
내 불알에 있는 정액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가는 매력적인 여자들을 안으면서도 지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기준에 맞는 신체 능력으로 문제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카렌이나 이스티, 벨라는 수컷의 고양감을 너무 끌어올린다.
한 번 사정해도 정말 넋이 나갈 것만 같이, 다 빼앗겨버리고 만다.
정말, 서큐버스같은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레벨을 올리다가, 급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온 건 카렌이랑 보르도 던전 지하 3층에 진입했을 때였다.
(힘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마력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체력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뭐지? 몸에서 굉장한 활기가 솟구쳤다.
위에서 스켈레톤 워리어를 셀 수 없이 죽이고 레벨을 올리기는 했지만…….
한 번 확인해볼까?
"카렌. 잠깐 정령 쉬게 하고 가자."
"응!"
나는 내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이름 : 데칼
Lv : 151
상태
[HP] 10757/10999
[MP] 3441/12381
능력치
힘 1 마력 1 체력 1 민첩 1
벨레이라의 가호《진》
「원소 속성 중에서도 불을 지배하는 권능을 내리는 가호. 여신의 진정한 이해자만이 이 가호를 받을 수 있다」
(화염 피해 면역, 불 마법의 위력 상승, 모든 스킬의 숙련치 상승.)
여신의 대리인
「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이며, 신의 간택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스킬 습득률 상승, 경험치 상승, 능력치 적용 배율 5배 상승)
바람의 정령(+3)
「가장 자유로운 정령이라 불리며 대기의 흐름을 바꾸고 바람을 따르게 하는 정령」
스킬
파이어 볼(★★) - 강한 위력을 지닌 중급 불 마법. 대상을 뼛속 깊이 불태운다.
파이어 인챈트(★★★) - 온갖 물건에 화염 속성을 부여하는 마법.
수색(★★☆) - 주의 깊게 살피고 관찰하는 것으로 흔적을 발견하고 분석하는 기술.
공간 도약(★) - 엘프의 유니크 스킬. 바람의 정령과 충분한 교감을 이룬 상태에서만 발휘할 수 있는 최상급 이동기이다.
은폐의 장막 -[죄 없는 자의 반지]를 착용했을 때만 사용 가능한 은폐 마법. 몸을 가리는 은폐의 장막을 뽑아내서 숨을 수 있다.
뭐야. 내 능력치가 이상하다.
오히려 낮아지지 않았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일이 확인한 건 아니지만, 팔백에서 구백 언저리라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이 느끼기에는, 던전에 막 들어왔을 때보다 지금 내 몸 상태가 훨씬 강인해졌다고 느낀다.
어두컴컴한 던전인데도 집중력이 예리하게 벼른 칼날처럼 번뜩인다.
지금이라면 다른 생각에 잠긴 와중에도 마물을 놓친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고민을 하다가 확신했다.
이건 단위가 바뀐 거야.
능력치가 모두 1000을 넘어가면서 1이 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다.
마치 파이어 애로우의 숙련도가 최대치로 오르자 다른 스킬로 대체됐던 것처럼.
기존의 1천 스탯이 1로 표시된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도 이럴까?
"카렌. 스탯 수치가 1000을 넘어가면 측정 단위가 바뀌기도 해?"
"단위? 어떻게?"
"1000으로 보이던 게 1로 보이기 시작한다든지."
"……?"
카렌은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어. 그렇게 되면 의미가 없잖아? 다들 스탯이 1, 2, 3 이런 식으로 표시되니까 전혀 변별력이 없어지고……."
"그렇지."
힘 스탯이 1900인 사람과 1001인 사람은 똑같이 1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스테이터스라는 게 애초에 나한테 친숙한 개념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건 신을 기준으로 한 스탯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겨우 한 걸음 뗀 셈이라는 건가?
인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떨까?
카렌의 태도로 보아서는 스탯 일천에 달했다고 단계가 올라가고, 향상되는 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건 여신의 대리인만이 갖는 특별한 성장…….
큰일 났다. 빨리 시험해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스켈레톤 워리어 많이 딱딱하냐?"
"……아까부터 오빠의 질문이 무슨 의도인지 잘 모르겠어."
"주먹으로 한번 때려보고 싶어서."
"푸핫!"
카렌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래? 갑자기 격투가가 되고 싶어졌어? 그러다가 손 다칠걸?"
"마침 저기 하나 떨어진 놈 있네. 해볼까?"
나는 바닥에 있던 돌멩이 하나를 들어서 스켈레톤 워리어의 머리에 툭 맞혔다.
"진짜로 주먹으로 쳐보게? 엄청나게 아플 거야. 보기보다 딱딱해."
그러겠지.
굳이 되살아 난 괴물 해골이 아니어도, 그냥 뼈도 딱딱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알기 쉬운 테스트 방법도 없다. 내 힘이 세졌는지 약해졌는지, 그것만 명확하게 가려내면 된다.
나는 마법도 시전하지 않고, 스켈레톤 워리어의 칼날을 정령술로 받아낸 다음.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스켈레톤 워리어는 살짝 뜨는 듯싶더니 뒤로 밀려났다.
"……손 안 아파?"
카렌은 입을 벌리고 지켜봤다.
"괜찮은데? 맷집도 올랐나."
피부가 조금 빨개지기는 했지만 견딜 만 했다.
하지만 파이어 애로우도 버티는 놈이라 그런지 주먹 한 방으로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연이어 스켈레톤 워리어가 달려든다.
나는 카렌처럼 어깨치기로 워리어를 밀어내거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직접 힘 싸움을 해봤다.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간단하다.
"흐읍!"
나는 스켈레톤 워리어를 힘으로 던져 내동댕이쳤다.
주먹으로는 한 여덟 대는 때렸나?
스켈레톤 워리어는 움직이지 않고 흙으로 되돌아갔다.
"확실해졌네."
내 신체능력은 더욱 향상되었다.
스켈레톤 워리어 정도라면 이제 몸싸움을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돼버렸을 정도로.
"……내가 오빠보다 강해질 수 있다고?"
카렌은 어이없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해?"
"당연히 이상하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 훈련을 받았단 말이야.
오빠는 신들이 선택한다는 용사 같아……."
"……."
카렌이 멈칫했다.
사실 내가 용사나 마찬가지기는 한데. 어라? 그럼 카렌의 꿈 이루어졌어?
어린 카렌을 도와준 그 용사는 아니니까 그냥 말장난일 뿐이지만.
"…아니지? 용사가 둘이나 나타난다는 건 말이 안 되고."
"무슨 망상을 그렇게 해? 내가 용사? 그렇게 보여?"
"오빠처럼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잘난 사람 처음 봐서 그래."
그렇게 봐주니 기분 좋네.
재능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아니, 이 경우에는 재능이 아니라 인맥인가? 여신의 대리인 자격이라는 기반이 있기 때문에 능력치빨을 이렇게 잘 받는 건데.
인맥도 아니고 신맥……. 흠. 재미없으니까 소리 내서 말하지는 말자.
"휴식 이쯤 하고. 더 내려갈까?"
"응."
우리는 각자 정령핵을 곁에 두고 더 밑으로, 깊숙이 나아갔다.
그리고 내가 끝으로 알았던 3층의 마지막 방.
그곳에는 본 적 없는 거대한 황금빛 문이 있었다. 마치 이곳이 중간 지점이라는 걸 알리는 것처럼 문 앞에는 모험가 파티가 모여 있었다.
다들 4인 이상 뭉쳐있다 보니까 혼자 있는 와비드가 눈에 띄었다.
모험가 무리는 와비드 근처를 지나칠 때 인사하기는 하는데 내가 보기엔 경원시하는 것 같았다.
와비드가 모험가를 감시하는 측에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죄 안 지어도 머리가 굵어질수록 경찰서에 가는 게 꺼려지는 거랑 비슷하다.
와비드는 이쪽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왔다.
"데칼님이라면 금방 오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시행착오가 좀 있기는 했죠."
"……뭔가."
와비드는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말했다.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지셨군요."
"칭찬이면 좋겠는데요."
"네. 좋은 뜻으로 한 말입니다."
꽤 정확한 눈썰미라 놀랐다.
관찰력이 상당한데?
"이 앞에는 리치의 제단이 있습니다. 리치를 노리고 계신다면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꽤 많은 인원이 들어갔거든요."
나는 문을 보았다.
"와비드님은 안 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