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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53화 (53/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5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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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렌한테 최면술에 관해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기 때문에 즉시 두 사람을 트랜스 상태에 빠뜨린다.

    와비드의 속내를 밝히는 건 어렵지 않으나, 서둘러야 한다.

    스켈레톤 워리어가 배회하는 던전 한복판. 기습이라도 당하면 나보다는 트랜스 상태에 빠진 둘이 위험하다.

    다행히 스켈레톤 워리어는 소리보다는 빛에 민감하다는 걸 검증한 상태였기 때문에 과감하게 최면을 걸 수 있었다.

    "와비드. 내 질문에 숨김없이 답해라. 여기에 온 목적은?"

    "모험가 출신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

    "범죄자를? 왜지?"

    "그게, 나의 일이니까…."

    와비드는 일반적인 모험가가 아니었군. 현상금 사냥꾼 같은 종류인가?

    "그 모험가 출신 범죄자라는 게 나인가?"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의심은 하고 있다."

    그랬군. 우연히 맞닥뜨린 게 아니라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 뜻이다.

    최면을 걸어서 확인할 만큼 의심스러운 인물은 아니었으나 무슨 속내로 접근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걸어보기를 잘했군.

    이세계는 현대보다 주의가 필요하다는 걸 아주 잘 알았다.

    공권력을 통하지 않고 알게 모르게 나한테 접근하는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나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옆방에서 발소리가 났다. 다른 모험가인가?

    "와비드. 나와 카렌을 타깃으로 한 모든 공격 행위를 일절 금한다."

    나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를 걸어놓고, 손뼉을 쳐서 깨웠다.

    "음?"

    와비드는 기시감을 느낀 듯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와비드가 모험가 출신 범죄자를 추적하는 중이라면, 우리 목적을 감추는 건 부자연스럽다.

    나와 카렌이 용사 후보 선출을 위한 추가 시험을 받는다는 건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다.

    "리치를 사냥하러 온 이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우리 목적은 금이 아닙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여쭙겠습니다. 금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무엇이죠?"

    "용사 후보 선출. 심사관님이 낸 추가 시험 과제가 리치를 처리하는 것이라서 왔습니다."

    "아아! 그런 소문이 있었죠."

    시치미 떼기는. 다 알고서 물어봤다는 건 굳이 최면을 걸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옆에 계신 여성분도 마찬가지인가요?"

    "네? 네! 사실은 제가 오빠를 끌고 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두 분이 뜻이 맞아서 움직인 게 아니었습니까?"

    와비드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지금은 카렌이 말하게 내버려 두자. 왠지 좋은 느낌으로 일이 풀릴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제가 부탁하러 갔었어요. 긴급 임무를 할건데 힘을 보태 달라고……."

    "……그랬군요. 이런, 시험으로 바쁜 두 분을 붙들고 제가 시간을 너무 빼앗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두 분에게 일레시아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나에 대한 의심이 풀렸을까?

    어쩌면 와비드는 카렌이나 이스티가 어떠한 종류의 협박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거의 같은 시기에 마을에서 손꼽는 미인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다른 남자라면 부럽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같은 모험가를 의심하는 게 일인 와비드라면 수상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오빠. 아는 사람이야?"

    와비드가 떠난 후 카렌이 말했다.

    "길드에서 몇 번인가 마주쳐서 통성명도 했어. 이스티와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그런데, 마지막에 그…… 「일레시아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은 뭐였지?

    "카렌. 일레시아의 축복이 뭐야?"

    "오빠는 상식이 부족하네. 성도에서 가장 유명한 빛의 여신이잖아. 데이툰 왕국은 빛의 여신을 섬기고 있어."

    "처음 들었어."

    "아마 저분은 성도 출신일 거야. 성도 출신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거든."

    "이스티는 아무 말도 안 하던데."

    "음, 이스티는 엘프니까……. 섬기는 신이 다르지 않을까?"

    일레시아…….

    이 세계를 관장하는 여신일까?

    적법한 용사를 이 세계에 보낸 여신. 날 눈엣가시로 볼 게 틀림없다.

    "오빠는 벨레이라 님의 가호를 받고 있지?"

    "어떻게 알았어?"

    "오빠는 내가 바보인 줄 알지? 그분이 불의 여신이라는 거 알아. 벨레이라 님이시잖아.

    불 마법을 자기 몸에 가까이 붙여서 쏘는 것도 그렇고. 벨레이라 님의 가호를 받은 것 같았어."

    "벨라도 꽤 유명한 신이었구나."

    "……왜 그런 분이 오빠의 노예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오빠도 신이거나 해?"

    "그런 것 같아?"

    쓰윽 손을 뻗어 카렌의 젖탱이를 움켜쥔다.

    카렌은 움찔하며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읏. 전혀……."

    "내 좆집으로 있다 보면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꼭 알고 싶어서 꺼낸 말은 아니야. 나는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랬지. 카렌은 꽤 적당한 성격이다.

    검은 숲에서도 온갖 일들이 있었는데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치면 그 심사관님은 너랑 정반대 아니냐? 우리가 스켈레톤 워리어 몇 마리 잡았는지도 알아맞힐 것 같던데.

    강박도 그 정도면 예술이야."

    "푸핫…! 오빠. 심사관님 흉보면 안 돼. 어디서 지켜볼지 모르잖아."

    어두컴컴한 던전에서 소리 내 웃었더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계속 갈까?"

    "응. 리치 꼭 잡자!"

    "랜턴은 줘. 손을 비운 편이 여차할 때 싸우기 편할 거야."

    나는 카렌의 랜턴을 개인 보관함에 넣고, 〈은폐의 장막〉을 사용해서 우리 둘의 몸을 가렸다.

    방금 와비드랑 만났는데도 던전 안에서 다른 사람이랑 만나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석실은 쓸쓸하고, 고독하고, 어딘가 차가운 인상이었다.

    우리는 스켈레톤 워리어의 위치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작은 소리로 작전을 논의했다.

    "정면에 하나, 우측에 둘. 오빠. 어떻게 할까?"

    "내가 두 마리 맡을게. 너는 정면에 있는 놈을 막아."

    "응."

    카렌은 뭉툭하고 짧은 검 손잡이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불꽃이 피어오르기를 기다렸다.

    "파이어 볼!"

    스켈레톤 워리어가 반응한다. 소리가 아닌 불빛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워리어 둘을 향해 파이어 볼을 쏜다.

    예상대로다. 파이어 볼은 피해 범위가 넓기 때문에 붙어있던 둘은 내 마법을 동시에 맞고 분쇄 당했다.

    "카렌!"

    카렌은 나머지 하나를 맡고 분투 중이었다. 워리어의 거센 공격을 받아내고, 검으로 반격해서 밀친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는 숙련도가 최대치라서 비교적 훨씬 빠른 속도로 시전 된다.

    덕분에 딱 맞춰서 스켈레톤 워리어의 동작을 봉쇄할 수 있었다.

    "흐읍!"

    카렌은 워리어의 동작이 멈춘 사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러 스켈레톤의 두개골 뼈를 깨부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아!"

    모든 게 작전대로 흘러가서 성공했을 때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 손바닥을 마주쳐 성공의 기쁨을 나누었다.

    "레벨이 엄청나게 올랐어. 오빠도 그래?"

    "어. 계속 오르는 중이야."

    카렌의 레벨은 나보다 삼십에서 사십가량 낮았었지? 그렇다면 상승세가 대단할 것이다.

    "이대로 레벨 쭉쭉 올려서 엄청나게 강해지고 싶어."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모험가로서 계속 위험을 추구하며 쭉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오빠!"

    아주 잠깐 다른 생각에 잠겼는데 그게 실수였다.

    스켈레톤 워리어가 생각보다 근처에 있었고 놈은 빛없이 우리가 가까워지자 진동이라도 감지한 것처럼 뛰어들었다.

    카렌은 즉시 눈치채고 내 앞을 막아섰지만, 우리는 어두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대응이 느렸다.

    "윽!"

    카렌이 밀려 넘어진다.

    "파이어 애로우!"

    카렌을 구하기 위해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는데, 스켈레톤 워리어는 견디고 들어와 카렌한테 검을 휘둘렀다.

    "카렌!"

    "괘, 괜찮아. 오빠!"

    스켈레톤 워리어는 마치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허공에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카렌이 쓰러져 있는데도…… 아!

    〈은폐의 장막〉 때문이다.

    애초에 눈알도 없는 놈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은 〈은폐의 장막〉 덕분에 쓰러진 카렌이 추가 공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일어나서 균형을 잡은 카렌은 즉시 스켈레톤 워리어를 밀쳤다.

    "파이어 애로우!"

    나는 오버차징 파이어 애로우를 날려, 스켈레톤 워리어를 분쇄했다.

    "흐, 흐아……."

    "다친 데 없어?"

    "응. 조금 놀랐어. 칼에 베이는 줄 알고……."

    "한눈팔아서 미안하다."

    나는 솔직하게, 카렌한테 사과했다.

    "오빠가 위험할 때 지키는 게 내 일인걸. 신경 쓰지 마."

    카렌의 배려에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화도 치밀었다.

    "역시 이 정도 레벨대의 마물은 위험하네. 레벨 올리다가 다쳐서 그대로 은퇴……하는 일도 적지 않을 것 같아."

    "이대로는 안 되겠어."

    "오빠?"

    이정도 적은 쉽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해.

    지금이 바로 내가 그어놓은 일선(一線)을 넘어야 할 때다.

    언제나 여력을 아끼고, 거리를 둔 상태로는 발전할 수 있을 리 없다.

    "가자."

    나는 다시 은폐의 장막을 사용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카렌이 나를 뒤따른다.

    다음 방에는 스켈레톤 워리어가 네 마리 있었다. 딱 좋다.

    "오빠. 이번에는?"

    "이 방은 나한테 맡겨 줘."

    "오빠 혼자서? 그건 위험해."

    "우리는 마법까지 사용하는 강적을 처리하러 가는 거잖아. 지금 해두고 싶은 게 있어. 여차할 때는 〈공간 도약〉을 사용할게."

    "……알았어. 맡길게.

    하지만 오빠의 목숨이 위험하면, 누가 뭐래도 뛰어들 거야."

    "좋아. 뜨거울 테니까 좀 더 뒤로 가 있어."

    나는 은폐의 장막을 유지한 채로 호흡을 가다듬고 방 중앙으로 걸어가서, 선영창을 시도했다.

    "파이어 볼."

    짤막하게 읊조린 직후, 화려한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진다.

    워리어 네 마리의 관심을 동시에 끌었다. 놈들은 주저 없이 사방에서 나를 향해 뛰쳐 든다.

    둘러싸이면 끝장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말이다.

    나는 네 마리를 확실하게 불태우기 위해 MP를 모조리 쏟아 넣어 파이어 볼을 오버 차징했다.

    "오빠.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위험해…!"

    카렌이 소리쳤지만, 나는 워리어가 충분히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몇 걸음 물러나, 워리어의 공격을 피했다.

    집중하면 어렵지 않았다. 놈들은 〈은폐의 장막〉때문에 내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없다. 환하게 밝은 환경에서도.

    스켈레톤 워리어는 공격적이기는 했으나 사람만큼 생각하며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내가 파이어 볼을 시전하면서 움직이자 그대로 따라오며 헛스윙을 해댔고, 서로 같은 목적을 보고 직선으로 달려올 생각만 하다 보니 엉켜서 날 제대로 추격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흉기를 쥔 마물 넷이 위협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뒷걸음질만으론 완전히 떨쳐낼 수 없어서, 결국 둘러싸인다. 헛스윙에 가까운 공격은 피할 수 있지만, 약속한 것처럼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다.

    괜찮아. 이미 연습했잖아? 실내로 꽉 막힌 상황이지만, 밖에서는 씬 울프의 공격조차 막았던 내 정령이다.

    나는 바람의 정령으로 방어막을 쳐 스켈레톤 워리어의 공격 궤도를 흘려보냈다.

    피할 수 없는 위험한 공격은 정령이 대신 막아주고, 대응할 수 있는 공격은 집중해서 피한다.

    이렇게 시간을 벌며 충분한 수준까지 오버 차징을 한다.

    "읏……!"

    카렌은 숨 막히는 열기를 느낀 듯 팔로 얼굴을 가리고 한 걸음 물러섰다.

    파이어 볼의 크기는 내가 시간을 끄는 사이에 몰라보게 팽창했다. 아마 마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도망칠 생각부터 했을 정도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력이 올라간 〈오버 차징 파이어 볼〉이 준비된 즉시, 스켈레톤 워리어의 몸체에 꽂았다.

    쾅!

    던전을 뒤흔드는 충격음과 함께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여신의 가호가 당신을 지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화염이 걷히자 서 있는 건 나뿐이었다.

    바닥에는 잘게 쪼개진 뼛조각들이 파이어 볼의 힘으로 불타고 있다.

    직격 세 방으로 씬 울프를 즉사에 이르게 만들었던 〈오버 차징 파이어 볼〉의 위력은 건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여파를 온몸으로 맞아도 무사했다. 의복에 붙은 불꽃은 바람의 정령이 만든 방어막으로 긁어서 먼지 털듯이 손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가호로 인해 열기에 면역이고 화염 피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파이어 애로우를 쓸 때부터 진작에 생각했던 활용법이다.

    하지만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는 게 바보 같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쓴 적은 없었다.

    "오빠…!!"

    카렌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괘, 괜찮아? 그런 폭발이 있었는데……."

    "가호 덕에 괜찮았어."

    카렌도 내가 가호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감출 것도 없다.

    "방금 오빠, 지금까지 봤던 오빠랑 전혀 달랐어."

    "좀 멋있었어?"

    "……음. 조마조마하기는 했지만, 굉장했어."

    카렌은 깊이 안도하며 말했다.

    그냥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허세를 부린 건 아니다.

    이세계에서는 위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전이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안전거리를 유지하고─고블린과 격투전을 벌인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멀리서 하나씩 정리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을 고수했다간 여차할 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마법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정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적의 근접 공격을 흘려내고, 기꺼이 내 마법을 터뜨려 광역 공격도 불사하기로 해봤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레벨만 오르면 뭐 하겠어?

    '스켈레톤 워리어 정도는 별거 아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바람의 정령을 다루어내고, 마법을 100% 이상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하 2층 계단이다."

    내가 클리어한 방 바로 앞에, 계단이 있었다.

    "나도 오빠처럼 할 수 있을까? 적의 공격을 막는 정령술… 나도 써보고 싶어!"

    아, 카렌은 정령으로 방어를 해본 적이 없었지?

    내가 보여준 싸움이 카렌한테 좋은 영감을 준 것 같았다.

    "왜 못 하겠어? 밖이었으면 더 쉬웠을걸. 함께 해보자."

    "응!"

    우리는 함께 지하 2층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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