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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35화 (35/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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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차징한 〈파이어 볼〉을 맞고 산산조각 난 시신을 지나쳐, 씬 울프에게 다가간다.

"비교적 멀쩡하네."

확 불붙는 건 봤는데 가죽만 약간 그을렸을 뿐 거의 멀쩡한 상태였다.

머리에 직격으로 맞았는데도 두개골이 무너진 것 같지도 않다.

숨만 안쉴 뿐 마치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

애매하게 두 발만 차징했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마물이 지닌, 생각 이상의 강인함에 놀랐다.

이 시신을 가져가야 합격으로 인정받을텐데. 어떻게 옮기지? 인벤토리에 넣어볼까?

보관함에 넣으려고 해봤지만, 상호 작용에 의한 반응이 없다.

왜지? 가죽이나 눈, 이빨 등은 희소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인데.

혹시 가공하지 않은 단순한 시체라서 그런건가?

나는 고민을 좀 하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대왕 팔색 조개〉를 꺼낸다.

아이템으로 인식되지 않아서 보관함에 넣을 수는 없어도 잠깐 조개 성에 두고 오는 건 되겠지.

나는 씬 울프의 시신과 함께 팔색 조개 성의 창고로 이동한 다음, 다시 돌아왔다.

임무는 끝났다. 나는 이스티가 있는 절벽 밑으로 갔다.

"이스티. 카렌은 좀 어때?"

"아직 의식을 되찾지는 못했어. 하지만 호흡은 안정된 상태야."

"지켜줘서 고마워. 물과 풀 여관에서 기다려줄래? 이 녀석 데리고 돌아갈게."

"응."

이스티는 사뿐히 다가와 내게 입맞춤 했다.

"데칼을 지킬 수 있어서 기뻤어. 돌아오는 거, 기다리고 있을게."

"아, 힘들지는 않아? 팔색 조개 성에서 기다릴래?"

"그건 데칼이랑 가는 게 아니면 싫어."

생각보다 단호하네.

"왜? 침대도 푹신하고 좋잖아."

"여차할 때 데칼을 지키러 나갈 수 없으니까."

"아."

그랬지. 생각이 짧았다.

팔색 조개 성은 격리된 세계. 바람도 닿지 않을 뿐더러 내 허락 없이는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언제 이스티의 도움이 필요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움직일 때는 함께 움직이는 게 맞았다.

"맞는 말이야. 위험해지면 또 부를게."

나는 이스티랑 입맞춤을 했다.

"조심해서 돌아와."

이스티는 숲쪽으로 걸어가더니 휙하고 모습을 감췄다.

방금까지는 전혀 안 보였던 이스티의 움직임이 잠깐이지만 눈에 비쳤다.

씬 울프를 잡고 성장했기 때문인가? 조금이지만 세상이 달라보였다.

"응…."

카렌이 눈을 떴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몸을 일으키도록 돕는다.

"괜찮아?"

"나…!"

카렌은 창백한 얼굴로 황급히 자기 몸을 더듬었다.

"괜찮아. 네 몸에는 아무 일 없었어."

나는 카렌을 위로하면서 자연스럽게 보듬었다.

카렌은 내 말을 듣고 안심이 됐는지, 나한테 몸을 맡긴다.

"그 사람들은? 씬 울프는 어떻게 됐어?"

"씬 울프는 내가 죽였어. 용사 후보생이 되고 싶다고 했지? 축하해."

"어? 어?"

카렌은 믿기지 않는 듯이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

"대체 어떻게?"

"네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파이어 볼을 맞혀서 죽일 수 있었어."

"나는 한 게 없는데 용사 후보생 자격 같은 걸 얻어도…."

"한 게 없다니? 우리는 작전대로 잘 했어. 네가 내 몸을 지키고, 나는 마물을 쓰러뜨린다. 그렇지?"

"……."

그래도 납득하기 어려운지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긴, 기절한 사이에 모든 게 끝나있으니 의심을 가질 만도 하다.

나는 품에 있는 카렌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빠?"

"이렇게 생각해 봐. 내가 널 지키기로 한 검사였고, 네가 마법사였다면. 우리의 입장이 반대였다면….

너는 지금 나더러 자격이 없다고 했을 것 같아?"

카렌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거야. 너는 목숨 걸고 날 지켜냈고, 네 할 일을 해낸 거야. 이제 가슴 펴도 되겠지?"

"그렇구나, 나…."

카렌은 뚝뚝 눈물을 흘렸다.

"오빠가 없었으면 못 했을거야. 오빠, 오빠…!"

카렌이 적극적으로 나한테 매달렸다.

가슴이 꾹꾹 맞닿아서 기분 좋다.

"길드로 돌아가자. 씬 울프는 보관함에 넣어뒀어. 임무를 완료했다는 증거가 필요할테니까, 길드에 가서 함께 보여주자."

"응!"

카렌이 기운차게 일어났다.

"어? 근데 나, 상처 입지 않았어? 엄청나게 심한 상처였던 것 같은데. 막, 배가 뜯겨나가는 줄…."

뜯겨나간 게 맞지만… 말하지 말자.

"내가 치료했어. 잘 듣는 약이 있었거든."

"으음~?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오빠가 다 한 것 같은데."

"자꾸 그럴래?"

카렌이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나도 도움 된거지?"

"그래."

나는 솔직히 감동까지 했었다.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나를 지켜주는 경험을 언제 해보겠어?

이세계에 와서 이런 일도 겪어보고, 떨리면서도 즐거웠다.

"가장 도움된 건 이 가슴이었지만."

장난기가 솟아, 카렌의 밑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받쳤더니 카렌은 움찔하며 어깨를 웅크렸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 듯 몸을 피하지는 않는다.

"어휴. 내 가슴이 그렇게 좋아? …그래, 오빠 가슴 해. 만지고 싶을 때 만져."

"진짜냐?"

"나, 남들이 보고 있을 때 말고."

나는 카렌의 젖가슴을 주물렀다.

언제 만져도 감격스럽다.

"언제까지 만지고 있을 거야!?"

"돌아가는 동안 계속 만져도 돼?"

"안 돼."

"내 가슴이라면서…. 만지고 싶을 때 만져도 된다면서…."

"우, 우리는 따로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역시 이런 건 안 돼. 내가 잠깐 어떻게 됐었나 봐. 취소!"

카렌은 느긋한 애무에 약한 듯하다.

잠깐 걸었다가 푼 암시의 영향인지 함께 싸우며 친밀해졌기 때문인지 스킨십에 대한 저항감이 무척 엷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에는 어떤 암시를 걸어볼까.

"돌아갈까?"

"응! 이상하게 몸 상태도 좋네. 가는 길, 마물이 나타나면 내가 오빠를 지켜줄게."

"약이 잘 들었나 봐."

카렌이 별다른 의심을 안 해서 다행이다.

자세한 경위를 추궁하려고 들었으면 불편했을 것이다.

방금 있었던 일은 조용히 내 가슴에 묻어두자.

후회는 없다해도 살인은 살인. 떠벌리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최면으로 온갖 기만과 조종을 일삼아온 나라도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해왔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해친 건 이세계에 와서 처음이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든 것도 처음이다.

모든 게 새롭다. 새롭다는 건 좋은 의미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세계에 와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걸, 나는 겨우 깨달았다.

"시간이 너무 늦었네. 오늘 보고하기는 어렵겠는데."

마른 마을과 검은 숲은 편도 4시간 거리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숲에서부터 계속 걸어서 바람의 정령 없었으면 진작에 뻗었을 거리다.

카렌도 꽤 피곤해보였다.

"그럼 내일 아침에 오빠가 있는 여관으로 갈게."

"그래. 내일 보자."

"잠깐만."

카렌이 돌아서는 나를 붙잡았다.

"응?"

"아까 가슴 얘기. 사, 사귀면 원하는 대로 해도…."

"데칼?"

어, 이스티다.

이스티는 이쪽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왜 밖에서 그러고 있어?"

"달링이 바람을 보내면 느낄 수 있게."

설마 온종일 서 있었나?

생각해보니 이스티는 편도 네 시간 거리를 단숨에 주파했구나. 대체 어떻게 그랬을까?

그녀가 하루 시간을 내서 갔다온 왕국 성도도 사실 엄청 먼 거리에 있는 게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달링…."

카렌이 이스티가 한 말을 곱씹으며 풀이 죽은 얼굴을 했다.

…방금 하려던 게 아마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둘은 벌써 구면이지? 카렌한테 널 소개시켜줘도 돼?"

"……."

이스티는 진지한 얼굴로 카렌을 바라보았다.

카렌은 드물게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기다린다.

"데칼이 그러고 싶다면."

"그러면 꼭 너는 그러기 싫다는 것 같잖아…."

그때 카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오크 대량 발생 때 숲에서 뵀었죠. 그땐 실례했습니다! 용사 지망생 카렌입니다."

이스티가 대놓고 벽을 치는데, 카렌은 앞으로 나서서 시원스럽게 인사했다.

"어때?"

"…알았어."

"이쪽은 이스티. 다이아몬드 등급의 헌터에 엘프, 그리고 내 연인."

"…연인."

이스티는 슬쩍 내 옆으로 다가와서 밀착했다.

이럴 때 질투심 발휘하기는.

카렌이 쓸쓸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데, 이스티의 반응도 즐겁다.

"이스티는 함부로 이름을 밝히는 걸 싫어 해. 그것만 조심해 줘."

"조심할게요. 이스티 씨…라고 불러도 돼요?"

"그냥 이스티라고 해. 나는 카렌이라고 할게."

카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스티."

"나랑 이스티는 물과 풀 여관에 있을테니까 아침이 되면 찾아와."

"응, 오빠."

늦은 밤, 카렌은 혼자 숙소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스티를 만나기 전에는 당연히 데려다 줄 생각이었는데 조금 상황이 바뀌었다.

이스티는 내 연인, 카렌은 임무를 함께한 동료. 우선 순위는 명확하다.

"가자, 이스티."

"응."

나는 짓궂게 일부러 이스티와 필요 이상으로 밀착하며 카렌을 자극했다.

카렌은 전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방금 내지 못한 결론때문에 싱숭생숭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났다.

내일이 정말 기대 된다.

지금은 얼른 뻗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우리는 여관에 방을 잡고 〈팔색 조개 성〉으로 이동했다.

홀에 도착하자마자 벨라가 날 반겼다.

"주인님, 어서 와."

옥좌에 앉아서 건들거리며.

"네가 왜 거기에 있냐?"

"주인님이 말했잖아. 성에 오면 마중 나오라고."

"잘난 듯이 앉아서?"

"뭐 문제라도 있어?"

"벨라. 스쾃 백 회."

"앗!?"

벨라는 옥좌에서 일어나 스쾃을 실시했다.

예전에 받은 지시까지 꼼꼼하게 기억하고 겨드랑이를 드러낸 모습이 보기 좋다.

이스티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데칼, 어떻게 된 거야?"

"재차 소개할게. 벨라야. 전에는 여신이었지만 지금은 내 노예지."

"노예…."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엘프!"

벨라는 나름대로 근엄하게 쏘아붙이지만, 양팔을 든 채로 엉덩이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하고 있어서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사이좋게 지내. 이제 너희는 팔색 조개 성의 구성원이니까."

"알았으니까 이것 좀 멈춰주고 말하면 안 돼?"

"백 번 다 할 때까지는 안 돼."

"읏! 주인님, 짓궂어…!"

"이스티라고 해요. 여신님."

뜻밖에도 이스티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격식 차리지 마. 주인님 말처럼 나는 노예니까. 편하게 레이라라고 불러."

이스티는 나를 흘낏 보았다.

"그렇게 해도 돼. 말했잖아? 내 노예라고."

"알았어. 레이라. 그런데, 저기…. 왜 운동하고 있는 거야?"

"하하하!"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이스티는 벨라가 명령 복종 암시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때문에 내지른 순수한 질문이 벨라의 수치심을 엄청나게 자극했다.

"~~~! 우, 우으윽…!"

그럼에도 벨라는 스쾃을 멈출 수 없어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엉덩이를 흔들흔들 했다.

"데칼? 왜 웃어?"

"노예는 주인님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는 법이거든. 벨라도 이걸 무척 좋아해. 그렇지?"

"그런 거야? 레이라?"

"그, 그래…. 좋아해."

나는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다.

벨라가 스쾃을 하며 나를 째릿 노려본다.

"전에 드레스 룸에서 벨라가 당하는 걸 본 적 있지? 그것도 벨라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제일 좋아하는 거?"

"그래, 나한테 짓밟히거나 욕 듣는 게 너무 좋아서 노예가 된 거야."

"……."

벨라는 차라리 이스티가 자기를 경멸했으면 할 것이다.

이스티는 시원한 무표정으로 벨라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이스티. 피로하지? 같이 씻으러 갈까?"

"응. 레이라는?"

"얘는 벌 받는 게 좋대. 여기 세워놓고 가자."

"~~!! 큿!"

"아, 벨라. 내일 아침에 나 깨워줘. 알았지?"

"내가 알람 시계야? 고작 그런 사소한 일로 이 나를 부려먹다니. 있을 수 없는 굴욕이야!"

벨라의 항변을 무시하고 대목욕탕으로 간다.

"…정말 이래도 돼?"

"세상에는 다양한 변태가 있는 거야."

"…레이라, 변태구나."

"두고 봐. 내일 꼭 깨우러 올 걸?"

대목욕탕의 물은 여전히 깨끗하고, 딱 알맞는 온도로 데워져 있었다.

몸을 담그자마자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아, 죽인다. 얼마 만에 입욕하는 거야? 이스티까지 품에 있으니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다.

"츄웁. 하음. 웅."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내 앞에 앉아서 고개를 돌린 이스티랑 키스한다.

"달링이라면 해낼 거라고 믿었어."

"이스티 덕분이지."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나는 그 숲에서 마물만 경계했지 사람까지는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방심이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다.

"하움, 쪼옥. 츄웁."

이스티는 몸을 반쯤 돌려, 내가 내민 혀를 빨았다.

"달링. 다른 모험가들을 믿으면 안 돼. 신의를 지키는 사람은 매우 드무니까."

"카렌은 어떤 것 같아?"

"좋은 사람 같아. 무엇보다도, 달링을 온몸으로 지켜줬으니까. 감사하고 있어."

나를 지켜준 사람이라서 믿을 수 있다니.

이스티가 스치듯 한 말이 꽤 기뻤다.

벌써 암시는 이스티의 마음 깊숙한 곳에 침투해 사고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아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최면이 강해지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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