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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31화 (31/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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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가들은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언가를 논의 중이었다.

    주워들은 바로는 이 숲에 사는 마물, 씬 울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고블린 하나를 잡을 때도 격투를 벌였던 내가 이제는 레벨 팔십 후반, 오크 정도는 가볍게 불사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런데도 이 세계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마왕의 영혼석을 갖고 있던 보스 오크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번에 만날 상대도 충분히 긴장하고 맞서야 할 적이다.

    "여기 오니까 좀 시원해졌어."

    카렌은 양팔을 벌리고 산들바람을 만끽한다.

    "낮인데 꼭 밤인 것처럼 으스스하네."

    오크가 살던 숲이랑은 다르다.

    검은 숲이라는 이름처럼 토양도 어딘가 칙칙하고 나무도 쓸데없이 높고 가늘었다.

    불길한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숲 안에 울려 퍼져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릉!

    카렌이 등허리에 찬 숏 소드를 빼 들었다.

    "지금부터는 마물 나오니까. 조심해서 가자."

    "그래."

    내가 해야 할 말을, 그녀가 해주는군. 좀 듬직하게 보이는데?

    우리는 검은 숲으로 들어섰다.

    숲에서 만난 건 덩치가 크고 기분 나쁘게 생긴 고블린들이었다.

    "홉 고블린이야."

    등을 굽히고 있는데도 나랑 키가 비슷하고, 기묘하게 비쩍 말라서 몹시 기괴하다.

    단지 고블린이랑 비슷한 점은 파충류를 닮은 못생긴 얼굴뿐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들었다.

    "핫!"

    나도 기겁하며 한 걸음 물러났는데, 카렌은 용감하게 달려가서 어깨치기로 고블린을 밀어낸 다음 숏 소드로 베어버렸다.

    나는 바로 마법을 시전한다.

    "비켜!"

    카렌이 이쪽을 눈치채고 옆으로 구른다.

    "파이어 볼!"

    내가 뿜어낸 마법이 홉 고블린을 불살랐다.

    "키에에엑!"

    고블린은 제자리에서 절규하며 사망했다.

    혹시 불붙은 채로 달려오면 어쩌나 했는데….

    "오빠의 마법, 엄청나게 강력하네."

    "재주가 이것뿐이야."

    "이 정도 파괴력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계속 가자!"

    홉 고블린은 확실히 오크보다는 위협적인 상대였다.

    공격적이고 빠르다.

    도구를 다루지는 않지만, 상당히 힘이 좋다는 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파이어 볼!"

    하지만 내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 마법, 아군한테 맞으면 어쩌지?

    게임처럼 아군이 내 마법에는 피해를 받지 않는. 그런 기능이 갖추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항상 조심해서.

    카렌이 피하는 걸 확인한 후에 쏜다. 평소보다 훨씬 섬세한 조정에 집중하게 됐다.

    쏘는 나도 무서운데 카렌은 등 뒤에서 불덩이가 날아오는 상황에도 침착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

    "파이어 볼!"

    "응! 앗…!?"

    홉 고블린이 긴 팔을 뻗어 카렌을 붙들었다!

    안돼! 나는 오싹했다. 카렌이 새까맣게 불타는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졌다.

    "으읏~! 이게!"

    카렌은 홉 고블린과 몸싸움을 벌여서 파이어 볼을 대신 맞게 한 다음, 후다닥 빠져나왔다.

    "후아. 위험했다."

    "괜찮아?"

    나는 카렌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들었다.

    "어디 다친 데 없어?"

    "오빠? 왜 그래? 나 안 다쳤어."

    "다행이다."

    내 손으로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태울 뻔했다.

    그런 건 경험하고 싶지 않다.

    동료로서 당연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카렌은 진한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

    "나는 오빠 대신 맞서 싸우는 검사야. 다소 다치기도 하고, 위험해지기도 해. …당연한 거잖아?"

    "그건 그거지. 어쨌든 위험했잖아?"

    "응…."

    전략을 좀 바꿔야겠어.

    "홉 고블린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어? 네가 떨어지는 걸 확인한 다음에 마법을 쏠게."

    "그러면 마법이 빗나갈 수도 있잖아."

    "빗나가면 다시 맞히면 되지. 네가 어쩌다 맞을 확률이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어."

    "…으, 응."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는 카렌과 함께 합을 맞춰, 홉 고블린을 처리하면서 나아갔다.

    마물 대량 발생 때처럼 마물이 넘쳐나는 건 아니었지만,

    홉 고블린은 오크보다는 어려운 상대로 인식되는지 경험치는 훨씬 많았다.

    "데칼 오빠. 씬 울프의 흔적 같은 거 보여?"

    "아니. 수색 스킬로 찾고는 있지만, 아직 그런 건 없어."

    대신 홉 고블린 흔적은 꽤 있다.

    "슬슬 어두워지니까. 야영 준비를 하자."

    "좋아. 이쪽은 홉 고블린 흔적이 많으니까. 저 방향으로 가자."

    "그런 것도 알아? 오빠 믿음직하네!"

    나는 카렌이랑 함께 괜찮은 공터를 찾았다.

    "텐트 설치하고 있어. 나는 방범용 부비트랩을 만들어 놓고 올게."

    "부비트랩?"

    "간단한 거지만. 실에다가 방울을 달아놓을 거야."

    잘 때 습격당하면 위험하지. 좋은 생각이다.

    "그래. 갔다 와.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소리 내고."

    "걱정하지 마. 내 실력 봤잖아?"

    그렇다. 맡기라는 말은 허세가 아니었지.

    카렌은 단 한 번도 몸싸움으로 홉고블린에게 밀린 적이 없다.

    그냥 음란한 젖가슴이랑 허벅지를 한 꼴리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단련되어 있다.

    저 가냘픈 팔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나는 카렌이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사이 지지대를 박고 텐트를 설치했다.

    개인 보관함에서 쑥쑥 물건들을 꺼내서 세팅한다.

    접이식 매트리스를 깔고, 마법 랜턴도 꺼내고.

    그리고 마른 장작도 꺼내서 파이어 인챈트로 불을 붙였다.

    파이어 인챈트를 사용한 이유는 파이어 볼이 최소 화력으로도 장작을 숯덩이로 만들고 남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이스티와 사냥한 성과로 나는 어떤 물체에도 화염을 부여할 수 있게 되어서 굳이 공격 마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아.

    혹시 이걸 카렌의 검에다가 부여해주면 어떨까? 뜨거워서 못 쓰려나?

    장작불 지펴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카렌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후아. 오늘 많이 걸었더니 졸리다."

    "먼저 들어갈래?"

    그런데, 그녀는 텐트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오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응?"

    "내 텐트는?"

    "하나뿐인데?"

    "바, 바보! 남자랑 여자 둘이서 같이 잘 수 있을 리 없잖아!"

    예상대로 신선한 반응이었다.

    "아…. 같이 자는 편이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도 좋지 않을까?"

    "그 이전의 문제야. 오빠랑 어떻게 같이 자!"

    "상처받았어."

    "그, 그러니까! 오빠는 남자. 나는 여자니까. 당연히 따로 자야 하잖아. 오빠도 알고 있는 줄 알았지."

    "난 카렌이랑 자는 거 좋은데?"

    "으윽…!"

    카렌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가 밖에서…. 아니. 히잉. 벌레한테 물릴 것 같은데."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는 듯하다.

    "뭐 어때? 며칠 같이 잘 건데. 사소한 문제는 접어두자."

    "사소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자는 사이에 오빠가 나한테 무슨 짓 할지 어떻게 알아?"

    "무슨 짓 할 것 같으면 깨워서 해달라고 할게. 당당하게."

    "~~~!!"

    카렌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체념한 듯하다.

    "바보 오빠. 이렇게 상식 없는 사람인 줄 몰랐어!"

    "잘 생각해봐. 별다른 일 없을 거야. 네가 쌓이지 않게 잘 처리해줄 거잖아?"

    "그건 내 의무니까 당연한 거지만…. 하아, 알았어. 그럼 자기 전에! 오빠의 불알에 쌓인 정액, 나한테 싸고 자야 해.

    안 그럼 절대 안심 못 하니까."

    "새하얀 양으로 만들어 줘. 곤히 잠만 자게."

    "또 가슴으로 싸게 하면 돼?"

    "그럼 그럼."

    카렌은 쭉 기지개를 켜고 말했다.

    "배고프니까 밥 먹고 들어가자."

    "뭐 먹을까? 말린 고기?"

    "응. 말린 고기."

    나는 모닥불을 앞에 두고, 카렌이랑 말린 고기를 뜯어 먹었다.

    …정말 맛없었다. 하지만 배가 고팠기 때문에 계속 씹게 된다. 벌써 불판에 구운 따뜻한 고기가 그리워졌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 이렇게 숲에 나와서 야영 같은 걸 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마물이 나오는 숲에서 여자랑 같이.

    곱씹을수록 진귀한 경험이다.

    언제 마물이 습격해올지 모르는,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 여자랑 단둘이 있는 데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쓰러뜨려야 할 마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날 설레게 한다.

    그리고 그런 숲 한복판에서 카렌을 희롱하는 건 최고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선을 넘는 건 고민해볼 문제다.

    섹스하다가 마물의 습격을 당하면, 그대로 끝이니까.

    오늘 밤은 마물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가늠해보자.

    "나 보면서 무슨 생각 해?"

    "호흡 맞추는 동안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싶어서."

    "나 걱정해줄 때도 느꼈는데, 오빠는 자상하네. 내가 동생처럼 보여서?"

    "응. 동생처럼 보여서. 아껴주고 싶어."

    뻔뻔하게, 있지도 않은 얘기가 술술 나온다.

    최면술 쓰면서 쓸데없이 좋아진 연기력이다.

    "나도 오빠가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어. 내 가슴에 쩔쩔맬 때는 조금 한심해 보였지만."

    "한심하다니…."

    그 가슴에 쩔쩔매지 않는 남자가 있을 것 같아?

    실물이 가지는 박력 앞에서 무릎 꿇을 텐데.

    "좋아 죽는 소리 냈으면서. 쿡쿡."

    "너도 애무 당하면 좋아 죽는소리 낼 텐데."

    "에이. 무슨 소설도 아니고. 그냥 간지럽기만 할 것 같은데."

    "시험해볼까?"

    "그건… 오빠의 정액 싸게 해주는 거랑 상관 없는 거잖아. 평범하게 야한 짓이야. 안돼."

    "아쉽네."

    카렌은 혀를 삐죽 내밀었다.

    "얼렁뚱땅 야한 짓 하려고? 텐트도 사실 일부러 하나 산 거 아니야?"

    "…."

    "왜, 왜 거기서 말을 안 해. 갑자기! 무섭게!"

    "크큭…."

    "확 텐트 밖으로 쫓아내 버린다?"

    "장난이야."

    홉 고블린이랑 맞서 싸울 용기도 있으면서, 이런 거에 겁을 내네.

    밤이 깊어졌다.

    "나, 머, 먼저 들어갈게…. 아. 졸리다. 졸려."

    카렌이 어색하게 혼잣말을 하며 텐트로 들어간다.

    나는 정령을 불러서, 주변을 맴돌게 했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불러줄래?

    바람의 흐름이 내 말에 호응하듯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부비트랩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보험을 들어두었다.

    텐트에 들어간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열심히 연참 분량 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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