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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26화 (26/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2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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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더 깊숙이 들어가 볼까 해."

    이스티가 숲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왜?"

    "데칼이 씬 울프를 상대하러 간다면, 지금 이대로는 불안해."

    "레벨을 더 올려야 한다?"

    "그것도 있고."

    이스티는 다가오는 오크들을 시원하게 쏘아죽이면서 말했다.

    "위험할 때 나를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이스티를 부르는 방법?"

    "정령한테 부탁하는 거야."

    그럼 부를 수 있나?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듯이?

    바람의 정령을 의식해서 이스티를 불러보았다.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변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데칼이 보낸 바람, 느껴졌어."

    "우리 둘만의 비밀 사인 같아서 좋네."

    "먼 거리일 때는 더 강하게 집중해야 해."

    말없이 서로를 부를 수 있다니, 무척 유용하다.

    "다음은 바람의 정령으로 몸을 지키는 법을 알려줄게."

    "들을 준비 됐어."

    나는 성실한 학생의 자세로 이스티의 말을 경청했다.

    "바람으로 몸을 감싸는 이미지를 그리는 거야. 공격을 당해도 몸을 지킬 수 있게."

    한 번 해보자.

    MP가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계속 유지하는 건 어렵겠는데?"

    "처음에는 짧게. 부분적으로 유지하는 것부터 시작해. 숙련되면 숨 쉬듯이 할 수 있어."

    "숨 쉬듯이?"

    "응. 나처럼 익숙해지면 위험할 때 정령이 지켜줘."

    정령이 자동으로 몸을 지켜준다니, 멋진데?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오늘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정령술은 어려워.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

    나는 바람의 정령을 얻는 데만 해도 오래 걸렸는걸."

    "이스티 덕에 빨리 배울 수 있었네."

    나는 이스티의 허리에 팔을 쓱 감아서 자연스럽게 끌어당겼다.

    볼이랑 목에 뽀뽀하고, 이마를 맞대고.

    이스티는 쑥스러운 듯 쿡쿡 웃었다.

    "고마워."

    "다치면 안 돼. 위험할 때는 바로 불러줘."

    "그거 말고 다른 이유로 불러도 돼?"

    뻔뻔하게 양손을 뻗어 이스티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조몰락거린다.

    "불러도 돼. 언제든지 달려갈게. 당신의 종처럼."

    이스티는 의심의 여지 없이 날 사랑하고 있다. 기꺼이 나한테 온몸을 맡긴다.

    그 사랑이 암시로 심어진 가짜 감정이라면 실망스러울까?

    아니, 그렇지 않아.

    「암시로 함락된 이스티」또한 통째로 진실이니까.

    이스티의 눈빛은 나한테 사랑받고 싶은 욕구로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

    그 모습은 무척 사랑스럽다.

    "움."

    이스티가 발돋움해서 먼저 입맞춤을 해온다.

    입을 살짝 벌리고 이스티랑 혀를 섞는다.

    내 발기한 자지를 의식했는지 이스티가 장난스럽게 미소지었다.

    "돌아가면 데칼이 좋아하는 허벅지로 꾹꾹 해줄게♥"

    "허벅지 꾹꾹, 기대할게."

    이스티가 사랑스럽게 웃는다.

    당장 하고 싶은 마음마저 치밀었지만, 간신히 억눌렀다.

    아쉬워도 마물이 대량 발생한 숲에서 자리 깔고 섹스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공포 영화에 나오는 멍청한 커플들이 그러다가 죽는다.

    "가자."

    이 욕구를, 오크들 패는데 발산해야겠다.

    물론 처치하는 건 내가 아니라 이스티였지만 보기만 해도 속은 시원했다.

    파이어 인챈트로 이스티의 화살에 불 속성을 부여하면, 이스티는 그 화살을 이용해 열 마리든 스무 마리든 한 방에 해치운다.

    옛날 건국 설화를 보면 화살 하나로 짐승 둘이나 셋을 꿰어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걸 본 사람들 마음도 이랬을까?

    정말 경이로운 궁술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계속 보다 보니 이스티가 바람의 정령을 참 잘 다룬다는 사실을 알았다.

    화살의 궤도를 바꾸는 건 정령과 완벽하게 합을 맞춰서 바람의 흐름을 바꾸기 때문이다.

    정령과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길래 이런 기술을 손에 넣은 것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스티. 오크 한 마리나 두 마리 정도, 죽이지 말고 이쪽으로 흘려줄래?"

    "…."

    이스티는 내 의도를 알아차린 듯했다.

    "알았어."

    바람의 정령으로 몸을 지키는 방법.

    말로만 듣기보다 직접 해내고 싶다. 이세계에 막 전이 왔을 때는 상상도 못 했을 모험이다.

    이스티가 오크 하나를 이쪽으로 흘렸다.

    이번에는 쓰러뜨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오크의 공격을 침착하게 받아내는 게 목표였다.

    부탁한다. 정령아!

    오크는 덩치만 컸지 나보다 키도 작고 몸동작도 둔했지만, 대면하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쩔 수 없다. 내가 겁이 많은 게 아니다.

    오크는 손에 낡은 도끼를 들고 있다.

    낡았지만 도끼는 도끼. 어딜 맞아도 치명적이다.

    비유하자면 대낮에 흉기를 든 괴한과 맞닥뜨린 상황.

    이스티가 없었으면 도망치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래서는 의미 없지.

    이세계는 마물과 맞서 싸우는 세계. 이 세계의 양식을 몸에 익혀나가는 도전이 조금씩 필요하다.

    나는 오크가 덤벼드는 걸 유심하게 지켜보고 움직였다.

    도끼 휘두르는 동작을 잘 보고 피한다.

    닿을 거리도 아닌데 힘껏 휘두르는 걸 보면, 확실히 오크는 사람보다 재주가 없다.

    하지만 사람 머리를 쪼갤만한 힘은 충분히 실려있었다.

    "후욱!"

    오크의 헛스윙을 유도하고, 힘이 빠졌을 때 접근한다.

    이번에는 휘두르면 틀림없이 맞는다. 정령의 힘으로 막아내지 못하면 큰 상처를 입을 게 분명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자신을 타이르고, 바람의 정령을 강하게 의식했다.

    "윽…!"

    도끼가 저렇게 컸던가?

    나는 위축돼서 뒤로 물러났다. 식은땀이 났다.

    흉기가 닥쳐오는데 보이지도 않는 바람의 힘을 믿으며 버티고 서있어야 한다니.

    이건 생각보다 훨씬 배짱이 필요한 일이었다.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도끼가 닥쳐오는 순간은 무서워서, 결국 발을 믿고 물러난다.

    오크도 지쳐서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

    나는 이스티를 흘낏 보았다.

    이스티는 이미 상황을 정리하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함부로 비웃거나 말참견하는 일 없이.

    그래. 바람이 못 미더우면 이스티를 믿자.

    도끼 맞고 쓰러져도 이스티가 도와줄 테니까.

    체력을 회복한 오크가 달려온다.

    휘두르는 팔 동작을 보고, 바람의 정령을 강하게 의식한다.

    실패했나? 도끼가 내 몸에 닿기 직전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장막이 오크의 도끼를 튕겨냈다.

    그 반동으로 오크는 도끼를 놓쳤다.

    "흡!"

    나는 바로 오크를 힘껏 가격해서 밀어내고,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애로우!"

    불꽃 화살이 오크의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휴."

    "어땠어?"

    "간신히 해낸 기분이야."

    갑자기 산들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내 몸을 훑으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뭐지?"

    "정령이 기뻐하고 있는 거야. 데칼이 믿어줬으니까."

    "…."

    생물도 아닌 게 사람 감동하게 하기는.

    정령과의 교감이 나를 벅차오르게 한다.

    허공에 손을 뻗자, 바람이 내 팔에 휘감겨 손바닥에 머무른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이제 바람의 정령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신체 일부처럼.

    "자신감이 생겼어. 계속해보자."

    이스티가 가볍게 뛰었다.

    수색 스킬을 켠 채로 흔적을 탐색하면서, 이스티의 뒤에 따라붙는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면, 힘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

    확실히 이스티는 발로 지면을 박차는 게 아니라 사뿐사뿐 바람 위를 걷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 정령을 믿고, 어설프게나마 따라 해 본다.

    이스티처럼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발밑에 바람을 깔고 박찬 순간 달리기 속도가 상당히 빨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때?"

    "그야말로 바람을 타고 뛰는 느낌이야."

    완전 순보 같은데?

    지금 나 좀 멋있지 않을까?

    "속도 좀 올려볼게."

    이스티가 갑자기 멀어졌다.

    "헉!"

    거리가 안 좁혀지잖아!

    이스티가 다시 속도를 줄인다.

    "방금 뭐였어?"

    "가속한 거야."

    대단하다.

    조금 빨리 달리게 된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하지만 남들보다는 빨리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내 MP는 사실상 무한이니까.

    여신의 물병을 마실 여유만 있다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

    "쏠게."

    이스티가 화살을 꺼내 들었다.

    나는 바람의 정령으로 빠르게 뛰면서 이스티의 화살에 불 속성을 부여했다.

    그러자, 이스티는 달리면서 나무 사이로 화살을 쏘아 보내 오크 한 무리를 처리했다.

    "와."

    이게 엘프의 사냥인가?

    나는 이스티가 멈출 때까지 계속 뛰었다.

    정령을 이용하면 힘을 들이지 않고 몸이 쭉 쭉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지치기는 하지만.

    "하악. 헉."

    이스티는 내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멈춰 섰다.

    "괜찮아?"

    "숨이 차서 그래."

    "쉴래?"

    숙인 채 헉헉대고 있었더니 이스티가 내 머리를 안았다.

    "으응."

    좋은 느낌이다.

    "이 훈련은 걸으면서도 할 수 있어. 발의 피로를 줄여줘."

    하긴, 바람이 쿠션 같은 역할을 하니까.

    어떤 신발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게 좋겠다. 이러다 땀으로 목욕하겠어."

    뛰는 대신 바람의 정령을 쿠션 삼아 빨리 걷는다.

    이건 숨도 안 차고 좋네.

    정령을 활용하지 않을 때 비해서 사냥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대체 이스티 혼자서 숲을 뛰어다녔으면 얼마나 빨리 대형 영혼석을 다 채웠을까?

    평소보다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일까.

    다른 모험가랑 맞닥뜨리는 일도 없이, 우리는 순조롭게 오크를 처리하며 나아갔다.

    점점 마물 대량 발생원의 중심으로 향하는 기분이다.

    오크 무리수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이스티가 있으니까.

    나는 이스티가 흘려주는 오크를 잡으면서 실력을 키웠다.

    이제 두터운 신뢰가 생긴 바람의 정령이랑 함께, 오크의 도끼 공격을 막아내고 공격한다.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볼을 습득했습니다.)

    엇. 새로운 스킬이다.

    나는 스테이터스를 열었다.

    레벨 : 87

    상태

    HP 3469/3469 MP 844/4577

    벨레이라의 가호(진) 「불 면역, 불 마법 위력 상승, 모든 스킬 숙련 값 ++」

    여신의 대리인「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

    바람의 정령「정령의 힘으로 바람을 불게 하거나 대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능력치

    힘 371 마력 588 체력 376 민첩 381

    스킬

    파이어 볼(☆) - 강한 위력을 지닌 중급 불 마법. 적을 불사른다.

    파이어 인챈트(★★★) - 온갖 물건에 화염 속성을 부여하는 마법.

    수색(★★) - 주의깊게 살피고 관찰하는 것으로 흔적을 발견하고 분석하는 스킬.

    파이어 볼은 숙련도가 꽉 찬 파이어 애로우를 대체하며 나타난 스킬이었다.

    어떤 스킬일까? 기대감이 앞섰다.

    "이스티! 다음에는 오크 두 마리 부탁해."

    "응."

    오크 둘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고 집중한다.

    (MP가 부족합니다.)

    으악! 뭐야, 이건? 하마도 아니고 내 잔여 MP를 미친 듯이 폭식한다.

    오버 차징이라도 했다간 난리 나겠는데?

    불타오르는 화염구를 보고 몸이 떨렸다.

    파이어 애로우 때랑은 다르다.

    불어닥치는 화염의 기류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크기로 치면 축구공만 하지만 오크들이 열기 때문에 접근도 못 한다.

    활활 타오르는 기세는 파이어 애로우의 그것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파이어 볼!!"

    나는 기세 좋게 파이어 볼을 쏘아냈다.

    화염구는 오크 하나를 맞히고 폭발했다. 소리 때문에 깜짝 놀랐다.

    분명 맞힌 건 한 놈인데 불길이 번지면서 가까이 있던 오크한테도 옮겨붙었다.

    지금까지 파이어 애로우는 어쩌다 잔불이 남아 피해를 주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파이어 볼은 달랐다.

    아예 상대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인 것처럼 매섭게 불타올랐다.

    "…."

    그러니 겁에 질릴 수밖에.

    이게 게임이었으면 엄청 통쾌했을 순간이지만, 사는 세계만 다를 뿐 엄연한 현실이다.

    누가 나한테 이런 마법을 날린다고 생각하면 오싹했다.

    "데칼. 새로운 마법이야?"

    이스티가 호기심을 보였다.

    "응. 깜짝 놀랐어. 다른 모험가들도 이런 마법을 쓰나?"

    "어엿한 골드 등급 마법사 수준이야.

    왕국 성도에 있는 길드에 가도 대접받을 수 있어."

    손이 떨리고 있다.

    전혀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에 내 몸이 동요하고 있다.

    오크 둘을 완전히 불살라버리는 화염 마법.

    그걸 직접 자기 손으로 쓰고나서야, 나는 이세계로 왔다는 실감을 느꼈다.

    "조금 쉴래?"

    이스티가 나를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아니, 계속하자."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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