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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20화 (20/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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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르는 건 레벨만이 아니었다.

    파이어 인챈트의 숙련도까지 오른다! 처음에는 끙끙댔던 파이어 인챈트도 한 시간 만에 스티커 붙이듯이 달아줄 수 있게 되었다.

    전투를 이스티에게 일임하고 인챈트만 하면서 열심히 흔적들을 찾아본 결과.

    (수색을 습득했습니다.)

    오···! 신기해!

    수색 스킬을 배우고 나니 흔적을 볼 때 가시성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를테면 오크가 남긴 발자국에 빛무리 같은 게 보이는 식이었다.

    그 빛무리에 집중하면 오크가 향한 방향이, 나한테도 느껴졌다.

    이스티처럼 위치나 거리, 수까지 전부 파악하는 건 무리였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았다.

    "배웠는데? 수색 스킬!"

    "정말?"

    이스티는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우리는 숲에 사는 오크들의 씨를 말릴 기세로 죽이고 다녔다.

    정확히는 이스티가.

    그러면서 오크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한 모험가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스티는 화살 하나로 그들을 구해버렸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도 못 한 모험가 무리는, 이스티를 보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방금 봤어?"

    "하얀 머리, 엘프, 신들린 활 솜씨. 「고고한 사냥꾼」이야."

    "우와."

    그들이 이스티를 보고 감동하는 이유를 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스티는 언제나 사람을 보면 더 서둘러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혹여나 그들이 말이라도 걸까 봐 질색하는 것처럼.

    "너한테 고마운가 본데."

    "관심 없어. 데칼 말고는 다 어찌 되든 좋아."

    이 실력에, 누구와도 관계되지 않는 신비스러움.

    과연 유명할 만도 하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니 이스티가 걷다가 말했다.

    "데칼은 내가 사람들한테 친절했으면 좋겠어?"

    "아니, 나는 지금 그대로 이스티가 좋아. 무리하게 바꿀 필요 없어. 너랑 이렇게 다니는 것도 즐겁고. 아, 저기 오크 온다."

    파이어 인챈트!

    이스티는 능숙하게 활을 다루어내서, 오크를 처리한다.

    이제 소리만 듣고 몇 마리 쓰러졌는지 알겠다. 한 일곱 마리 죽었나.

    "나도 즐거워. 예전에는, 누군가랑 같이 사냥 나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랬겠지.

    그때는 최면에 걸리기 전이니까.

    "조금만 더 잡고 쉴까?"

    "응."

    이스티를 데리고 총 네 시간.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오크를 처리했다. 나 혼자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마물 대량 발생이라는 시의적절한 이벤트에, 이스티가 사냥하는 마물의 경험치를 내가 나누어 먹는다는 환상적인 조건까지 합쳐져.

    나는 정말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레벨 : 81

    상태

    HP 3145/3145 MP 3449/4217

    벨레이라의 가호(진) 「불 면역, 불 마법 위력 상승, 모든 스킬 숙련 값 ++」

    여신의 대리인「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

    능력치

    힘 341 마력 558 체력 322 민첩 343

    스킬

    파이어 애로우(★★☆) - 가장 기초적이지만 실용적인 불 마법. 적중 후에도 점화를 걸어 피해를 준다.

    파이어 인챈트(★★★) - 온갖 물건에 화염 속성을 부여하는 마법.

    수색(★★) - 주의 깊게 살피고 관찰하는 것으로 흔적을 발견하고 분석하는 스킬.

    엄청나게 레벨을 올린 후 나는 신체적 변화를 느꼈다.

    온몸에 힘이랑 활기가 넘쳐흘렀다. 신체 중심으로 모든 게 꽉 끌어당겨 지는 충실감이 느껴지고, 체력도 상당히 늘었다는 걸 느꼈다.

    능력치가 단순히 수치만 오르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머리도 맑아지고 몸놀림도 민첩해졌다는 걸 체감했다.

    처음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레벨이 확 오른 지금은 알았다.

    나는 강인해진 것이다.

    우리는 편편한 바윗돌을 의자 삼아 휴식했다.

    물병에 든 물을 나누어 마시고, 한숨 돌린다.

    "이스티, 도움받아서 고맙기는 한데. 왜 나를 이렇게 키워주겠다고 생각한 거야?"

    "아까 모험가 길드에서, 그 장발 인간이 얘기할 때."

    "응."

    "데칼을 무시하는 걸 보고 화가 났어. 난, 다른 인간들이 날 어떻게 보든 상관없지만, 데칼이 무시당하는 건 싫어."

    "그래서 내 등급을 어떻게 올려줄지 고심하고 있었다? 리더 실격 아냐?"

    괜히 심술궂게 말하니 이스티가 당황한다.

    "그, 그건."

    "장난이야. 기뻐."

    "···."

    이스티는 안심한 듯 내 어깨에 기댔다.

    그러고 있다가, 나는 문득 생각났다.

    "쓸만한 방어 스킬은 없어? 그런 것도 있으면 하나 배우고 싶은데."

    "방어 스킬? 음···. 나는 정령술로 몸을 지키는데, 정령들은 깐깐해서 바로 친해지기가 힘들어."

    정령이 있어?

    "기다려."

    이스티가 손을 모으자, 갑자기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이스티는 손 위를 뚫어지게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쉿."

    ···무언가 방해받으면 안 되는 일을 하는 듯하다.

    그렇게 십 여분이 지나, 이스티가 나한테 말했다.

    "됐어. 정령 하나가 데칼을 도와주겠대. 하나 분양해줄게."

    ···분양이라니···.

    강아지 한 마리 받는 기분이었다.

    "고맙긴 한데··· 정령이란 거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쑥쓰럼 타서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아."

    "그런 거야?"

    "응."

    이스티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다는 건 아는데, 기분 좋은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바람의 정령을 익혔습니다.)

    "오, 뭔가 배웠어."

    "정령한테 말을 전하고 싶을 때··· 생각으로 전하면 돼. 데칼 곁을 언제나 따라다닐 거야."

    흠···.

    "이스티, 일어나봐."

    이스티는 의아한 표정으로 슥 일어났다.

    이스티의 스커트를 걷어 올려!

    ···.

    정말 작위적인 바람이 불어 이스티의 스커트가 팔랑팔랑 흔들리고, 속옷이 살짝 보였다.

    "···데칼."

    "장난이야."

    차갑게 식은 이스티의 눈을 보고 식겁했다.

    "정령과의 교감을 자주 하면, 그만큼 강한 바람도 다룰 수 있어."

    "응용하면 방어에도 쓸 수 있다?"

    "그런 거야."

    이건 생각보다 유용할 듯싶었다.

    말이 아닌 의식으로 명령을 내리기 때문에 허점을 찔릴 일도 없고.

    오늘 이스티 덕에 유용한 스킬을 정말 많이 배웠다.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들이었다.

    이스티가 돌연 등을 돌렸다. 뭐가 있나 보니까 오크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꼭 우리는 안중에 없고 힘들어하는 것 같은.

    하지만 나는 굳이 생각하지 않고 이스티의 화살에 파이어 인챈트를 했다.

    두꺼운 몸통에 화살을 박힌 오크가 달리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사망한 오크 뒤로, 황당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여자가 있었다.

    "어!? 내가 잡던 거!"

    뜻밖에 그 여자가 잡던 오크를 빼앗았다는 당혹감보다 놀라움이 앞섰다.

    벨레이라를 연상시키는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에 노란 리본. 포니테일이 잘 어울리는 예쁜 여검사는 체구는 아담했지만, 머리통만 한 젖가슴이랑 허벅지가 옷 밖으로 흘러넘치는, 반칙, 규정 위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손에 들고 있는 숏 소드가 아니었으면 검사라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히 폭력적이라고 해도 좋을 음란한 몸이다. 그 매력은 이스티랑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출된 것이었다.

    "어이없네! 둘 다 입 꼭 다물고. 모험가들은 다 그래?"

    나는 여자 감상하느라 말할 타이밍을 놓쳤고, 이스티는 딱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이쪽에서는 네가 안 보여서 미처 몰랐어. 사과할게."

    새침한 얼굴로 있는 이스티랑 여자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

    "흐응."

    여자는 가슴 밑으로 팔짱을 낀 채 나를 쓰윽 훑어보았다.

    "내가 사과받고 싶은 건 당신이 아니야. 잘못한 사람이 사과해야 하는 거잖아?"

    그건 맞는 말인데.

    이스티는 아마 절대 사과 안 하겠지.

    예상대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화를 부추기려고 그런다기보다는 그냥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할듯싶었다.

    당장 이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이스티가 어떻게 했을까? 그냥 뒤돌아서 갔을 것이다.

    "듣고 있어? 그 정도 실력이 있는데 남자 뒤에 숨어서 말도 안하고! 꼴불견이야!"

    여자는 자기 머리카락 색깔처럼 불같은 성격이었다.

    붉은 머리 여자들은 다 이런가? 내 어깨 너머로 이스티에게 말을 걸고 있다.

    "듣고 있어? 엘프!"

    "데칼. 안 갈 거야?"

    "좋게 해결하자고. 우리가 실수한 건 사실이니까."

    이런 일에 최면 쓸 것까지는 없다.

    오히려 다른 이유로 쓰고 싶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끌어안고 싶은 몸이었다.

    최면 없이 그랬다간, 저 숏 소드가 내 배에 푹 하고 꽂히겠지만.

    "미안해요."

    이스티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뭐야. 말할 줄 아네. 다음엔 조심하라구."

    여자는 시원스럽게 돌아섰다.

    "기다려. 넌 모험가가 아닌데 여기서 오크들을 잡고 있는 거야?"

    "그런데? 모험가만 잡으라는 법 있어?"

    저런 몸으로 혼자서?

    오크한테 잡혀서 엄한 일 당하는 그림밖에 안 그려지는데.

    "그런 법은 없지. 하지만 모험가들은 마땅한 보상이 있으니까 위험을 무릅쓰는 건데, 너는 왜 그런가 해서."

    "궁금한 게 참 많네. 오빠 나한테 관심 있어?"

    있어. 많이.

    "나는 용사 지망이야. 이 숲에는 모험가 말고도, 긴급 임무를 준비하는 용사 지망생들이 있어.

    그중 하나가 나!"

    여자 입에서는 내가 머리 한쪽에 치워놓고 생각도 못 했던 화두가 튀어나왔다.

    이제 알겠다. 모험가로 보면 어색한데 용사 후보라고 하면 이 여자는 무척 잘 어울렸다.

    어리지만 자신감 넘치는 태도, 혼자 마물을 상대하러 오는 무모함.

    용사 후보라고 나설 정도면 이 정도 재기발랄함은 있어야지.

    더욱 마음에 들었다.

    "긴급 임무라면 그건가?"

    긴가민가해서 이스티를 보니, 이스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머리 여검사가 우리 둘의 반응을 보고 말했다.

    "모험가들 사이에도 소문이 퍼졌나 보네."

    "소문 같은 걸 떠나서 그 긴급 임무 지시를 마른에 갖고 온 게 여기 있는 이스··· 헌터 님이신데?"

    "···."

    여자는 딱 굳어버렸다.

    "다, 당신이 심사관?"

    "심사관?"

    이스티가 심사라도 하나?

    "나는 심사관이 아니지만, 심사할 때 임무 평가를 놓고 발언하기는 해."

    ···어떤 의미로는 심사관이라고 볼 수도 있군.

    "그럼 모든 용사 후보생들의 합격 여부가 최종적으로 네 결정에 걸려있다는 소리야?"

    "마른 지역의 긴급 임무만. 또 다른 다이아 급 모험가들이 낸 긴급 임무도 있어."

    "···."

    여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앞에 있었다.

    "반말했다고 감점 처리라던가··· 하는 건 아니죠?"

    갑자기 공손해졌다.

    "···."

    이스티는 붉은 머리 검사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짓 안 해."

    "휴. 인생 망할 뻔했다."

    생각보다 이스티의 대외적인 입지는 엄청 높은 편인 것 같다.

    용사 후보생 선출에도 입김을 넣을 수 있구나.

    긴급 임무 과제를 이스티가 선정했다면, B 랭크가 넘어가는 임무 난이도에도 납득이 간다.

    이스티가 내는 과제···.

    목숨이 위험하지 않을까?

    "궁금한 거 없지? 난 간다! 바이!"

    여자는 쾌활하게 손을 흔들며 떠난다.

    그 전에.

    "이쪽을 봐."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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