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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9화 (19/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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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물이 대량 발생했다는 말이 와닿은 건 마을 입구를 통과할 때였다.

    순찰 인원, 경비 인원이 모두 늘어난 게 한눈에 보였고 경비대장도 직접 나와 지시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알았다. 고블린밖에 안 보이던 마을 근처에서 오크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방심하지 마!"

    "둘러싸서 확실하게 찌르는 거야."

    경비병들이 오크를 상대하고 있다.

    오크는 고블린에 비하면 훨씬 덩치가 컸다. 인간에 비하면 평균적으로 단신에 뚱뚱한 모습이었지만, 몸을 지키기 위해

    조잡한 방어구도 둘렀고 무기도 익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거기 두 분, 멈추십시오."

    그때 못 보던 경비병 하나가 우리를 붙들었다.

    "이 앞은 위험합니다. 마물이 대량 발생해서 어딜 가나 오크 천지입니다."

    "우린 오크 토벌 임무를 맡은 모험가입니다."

    "라이센스 확인하겠습니다."

    다들 표정을 보니 날이 서있는 게 느껴진다.

    라이센스가 없는 날 대신해, 이스티가 나섰다.

    "여기."

    그녀는 신분증처럼 보이는 네모난 카드를 건네고, 경비병은 받아서 꼼꼼히 확인한다.

    "실례했습니다. 다이아 등급 모험가님께서 참가해주신다니, 마른 주민들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스티 덕에, 나는 프리 패스였다.

    이스티가 내 보호자 같은걸.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

    "응, 대량 발생 때는 죽는 사람도 많이 나와. 조심해야 해. 이때다 싶어 모험가를 공격해서 영혼석을 훔치는 도적도 있어."

    "도적? 마물이 아니라 사람을 공격해?"

    "도적은 그런 부류야. 성실하게 마물을 잡아서 영혼을 모으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그러니까, 데칼도 만나는 사람이 모험가라고 해서 다 믿으면 안 돼."

    이스티가 어떤 마음으로 모험가 생활을 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이 사람을 등쳐먹는 일은 내가 있던 세계에서도 언제나 있었지만.

    이렇게 피비린내 나도록 가까이했던 적이 있었나?

    나도 조금 긴장이 되었다.

    숲 초입부에서는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오크를 처치하려는 모험가들이 많이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크의 수가 압도적으로 불어났다.

    아니, 이렇게 많은 놈이 어디서 밥도 먹고 똥도 싸고 하는지 심히 의심이 갈 정도였다.

    무리 지은 오크들은 아직 이쪽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냥 돌아갈까···."

    숫자가 너무 많다.

    무장한 오크들이 열에서 열넷.

    "해치울게."

    이스티가 자세를 잡았다. 또 언제 나타났는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반투명한 활이 나타난다.

    이럴 땐 리더 말에 따라야지. 싸울 준비를 한다. 이스티가 활시위를 놓자마자 공기를 상쾌하게 가르는 소리가 나고,

    열 마리가 넘는 오크 무리의 머리가 한순간에 터졌다.

    헉, 나는 숨을 삼켰다.

    "처리했어."

    방금 뭐가 일어난 거지?

    오크들이 일렬로 서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화살 하나가 말도 안 되는 궤적을 그리면서 오크들의 급소를 관통했다.

    터졌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데칼?"

    이스티는 나를 돌아보았다.

    "놀랐어···."

    해치운다는 말이 먼저 공격할 테니 싸우자는 말이 아니고,

    자기가 순식간에 처리하겠다는 소리였구나.

    "오크는 나한테 쉬운 상대야."

    이스티는 시원스럽게 내뱉었다.

    아니, 모든 엘프가 이 녀석처럼 강하진 않겠지?

    그랬다면 인간이 멸종했을 것이다.

    그때, 이스티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그때. 조금만 수틀렸으면 나는 대체 어떻게 되어있었을까?

    새삼스럽게 내가 어떤 인물에게 최면을 걸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 영혼 수집해야지."

    나는 개인 보관함에서 대형 영혼석을 꺼내서 오크의 영혼을 수집했다.

    "가자. 이쪽에 오크가 있어."

    오크가 있다고?

    이스티는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오크를 모조리 쏴 죽이기 시작했다.

    대단했다. 너무 엄청난 실력이라 할 말이 없었다.

    우아한 자세로 활을 쏘고, 화살은 정확히 표적을 제거한다.

    나무가 있든 수풀이 있든 그런 건 그녀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했다.

    너무나 압도적인 전투력 차이에, 나는 그냥 영혼이나 빨아주는 짐꾼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뭐,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집중하고 있는 이스티의 예쁜 옆얼굴, 긴장한 자세를 보고 있기만 해도 그런대로 즐거웠다.

    아마도 마물을 사냥하는 엘프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겠지.

    그러다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 보이는 거야?"

    이스티는 오크를 찾아내는 솜씨가 기가 막혔다.

    아무리 대량 발생했다지만 가는 곳마다 정확히 무리를 찾아내는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스티는 자신을 뽐내는 일 없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골드 이상의 헌터라면 전부 할 수 있어. 이건 수색 스킬이야."

    "수색 스킬?"

    "마물의 흔적이나 기척을 읽고 위치를 알아내는 스킬."

    확실히 헌터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스킬처럼 보였다.

    이스티를 따라다니며 오크가 죽는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긴장감이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이스티는 오크가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기 전에 없애버린다.

    "후우."

    한 시간도 안 돼서 이 백 마리 넘게 해치운 이스티가 처음 한 일은 짧은 한숨이었다.

    땀도 안 흘리고.

    "이거 마실래?"

    나는 여신의 물병을 건넸다.

    "고마워."

    "다음엔 내가 잡아볼래. 심심해."

    이스티는 물을 다 마신 후,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알았어. 위험하면 내가 봐줄게."

    참으로 든든하다.

    "그러면···. 한 마리만 있는 곳이···."

    이스티는 오크의 위치만이 아니라 수까지 파악할 수 있는 듯하다.

    "이 쪽."

    따라가 보니 정말 오크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좋아."

    나는 즉시 마법을 시전했다.

    이쪽을 눈치채지 못했으니, 집속 팔찌로 오버 차징한다.

    "파이어 애로우!"

    최대 위력의 파이어 애로우를 오크의 등에 꽂아 넣었다.

    오크는 강한 충격을 받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움직이지 않는가 싶더니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터프하네."

    보르도 던전에 있는 해골 정도는 산산조각 내버리는 위력이었는데.

    한 번 더 오버 차징해서···!

    "파이어 애로우!"

    오크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버 차징한 파이어 애로우로 두 발이라. 나는 세 마리만 모여도 위험하겠네.

    "잡았어, 이스티."

    이스티는 미소지은 채 말했다.

    "멋있었어."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다.

    "데칼이 마법 쓴다니, 몰랐어."

    "그 여신한테 받았어. 호신용 기초 마법이라고."

    "내가 본 다른 사람의 파이어 애로우보다는 훨씬 강한 것 같아."

    좋은 눈썰미다.

    "나는 마법을 오버 차징 할 수 있어. 이 팔찌 덕에."

    "데칼이 더 강해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무슨 새로운 마법이라도 가르쳐주나 기대했는데, 이스티는 갑자기 화살을 하나 꺼냈다.

    그녀가 사용하는, 반투명한 유리 화살이다.

    "마법을 써서 화살촉에 불을 붙여 봐."

    이스티가 시키는대로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해서, 화살촉에 불이 붙도록 유인했다.

    하지만,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이라서 그런지 불은 쉽게 옮겨붙지 않았다.

    "잘 안되네."

    "괜찮아. 인내심을 갖고."

    이스티의 유도에 따라서, 화살촉에 계속 불을 붙이는 시도를 했다.

    그러자,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이어 인챈트를 습득했습니다.)

    "이건···."

    "가장 기초적인 화염 속성 부여 마법이야. 물건에 원소 속성을 부여하려고 할 때 익힐 수 있어."

    "오."

    이 불타는 화살은 나와 이스티의 합작이라는 뜻인가?

    멋진데.

    "그리고···."

    이스티는 마침 지나치는 오크를 쏘아 맞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러자 내 레벨이 올랐다.

    "이렇게 하면, 데칼도 성장할 수 있어."

    "최곤데?"

    내가 화살에 마법을 부여했기 때문에 오크를 처치하는 데 기여한 셈이 된 것 같았다.

    원래 이스티 홀로 쓰러뜨린 마물에, 내가 경험치를 얻는 건 안 되지만 이 방법이라면 가능하다.

    "어깨너머로 본 방법이라 잘 될 줄은 몰랐어."

    "아예 스승님이라고 부를까?"

    "···."

    이스티는 갑자기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응? 왜 그래?"

    "더 좋은 거 해줘."

    이스티가 애교섞인 목소리로 졸라온다.

    나는 이스티에게 키스했다. 자연스럽게 팔을 허리 뒤로 감아 엉덩이를 내 물건처럼 주무른다.

    이스티는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나랑 혀를 섞었다.

    "이게 좋아?"

    "데칼의 입술이 물보다 맛있어."

    숲이 아니라면 넘어뜨리고도 남았는데.

    아니, 날붙이 든 뚱뚱한 괴물이 돌아다니는 숲이 아니었으면 숲이었어도 넘어뜨렸을 것 같다.

    "어차피 이스티에게 오크는 손쉬운 상대지.

    그럼 나한테 쓸만한 스킬을 가르쳐 줄 수 있어?"

    "쓸만한 스킬?"

    "아까 말한 수색 스킬이라든지."

    "좋아. 가르쳐줄게."

    다이아 등급 헌터가 직접 가르쳐주는 스킬 수업이라니, 완전 이득 아닌가?

    거기다 그녀가 오크를 잡을 때마다 나한테 경험치까지 들어온다.

    이건 엄청난 거였다.

    이스티가 오크를 처리하는 속도는 과장 없이 나보다 열 배 이상 빠르기 때문이다.

    "수색 스킬은 먼저, 마물이 남긴 발자국이나 흔적, 기척에 집중해야 해."

    "발자국. 이건가?"

    "응. 이 근처에는 마물들이 많으니까, 계속 보다 보면 요령을 터득할 거야. 계속 가자."

    우리 사냥에 약속이 하나 생겼다.

    이스티가 화살을 꺼내면, 내가 화염 속성을 부여한다.

    MP가 금세 닳았지만 그건 물 마시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이스티는, 화살 하나를 이용해서 오크를 열 마리 이상 꿰어 죽일 수 있는 실력자였다.

    나는 2초, 아니 1초 내외로 오크 무리가 가진 모든 경험치를 미친 듯이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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