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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8화 (18/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1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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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가 길드 건물 안.

    평소와 달리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 속에서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모험가 집단이 이렇게 진중했던가? 오늘 모인 사람들은 어딘가 분위기가 달랐다.

    "무슨 일이지?"

    이스티는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아마, 마물의 대량 발생 때문일 거야."

    "마물 대량 발생?"

    언제, 흘러가듯이 들은 적 있는 말이었다.

    "마왕의 영향으로 마물이 대량 발생하는 시기가 있어. 그럴 때는 각지에 흩어져있던 모험가들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해."

    "평소에는 보기 힘든 모험가 정예들이 모이는 시기이기도 하겠네."

    이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도의 길드 본관에도, 발 디딜 틈 없었어. 이제 마른에도 영향이 온 거야."

    등급이 높은 모험가란 다 별종인가? 복장도 개성 있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그 중 징그러울 만큼 머리를 기른 남성이 이쪽에 다가왔다.

    "「고고한 사냥꾼」을 보다니, 오늘 운이 좋군요."

    ···내가 아니라 이스티한테 다가온 거였다.

    "···."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미노타우르스 토벌」 때에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와비드. 기억해요."

    와비드가 내민 손을, 이스티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 잡아주지 않았다.

    와비드는 머쓱하게 손을 되돌리고 말했다.

    "엘프는 숲의 수호자. 오크가 대량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을 거라 짐작이 됩니다."

    "오크가···?"

    "모르셨습니까?"

    "네."

    ···이 와비드라는 사람, 내가 눈에 안 보이나?

    꼭 투명 인간이 된 듯하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알아 온 정보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실까요?"

    "직접 알아볼게요."

    이스티는 와비드의 제안을 완곡한 어투로 거절하고, 내 손을 잡았다.

    와비드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혹시 일행입니까?"

    "내가 안 보이나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상상도 못 했던 일?

    그만큼 이스티가 특정 사람 곁에 있는 게 의외라는 뜻인가.

    "무슨 변심이 있으셔서 파티를 꾸리셨죠? 대단한 능력을 갖춘 분인가 봅니다."

    이스티는 내 손을 꼬옥 잡았다.

    "네, 대단해요. 반해버릴 만큼."

    이 정도면 띄워주는 게 아니라 우주로 날려 보내는 수준 아니냐.

    이스티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와비드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재능 있는 모험가들이 안 그래도 많은데··· 제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듯합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와비드, 한낱 모험가입니다."

    "데칼입니다."

    와비드와 악수를 한다.

    이스티가 기억하는 걸 보면 한낱 모험가 따위가 전혀 아닌 것 같지만.

    "데칼 씨군요. 이번 오크 토벌 임무에서도, 활약 기대합니다."

    사람들 시선이 느껴진다.

    이스티가 아닌 나에게? 허어. 이스티 덕에 내 평가가 어디까지 올랐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기초 공격 마법 하나밖에 다루지 못하는 내가 이 사이에 껴있어도 될지 모르겠네.

    "그럼 저는 이만."

    와비드가 물러났다.

    "너, 모험가들 사이에서 유명하구나."

    "잘 모르겠어. 파티하자고 말 거는 사람은 많지만, 매번 거절해."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지? 혹시 남들 앞에서 이름 말하면 싫은가?"

    "아무한테도 알려주고 싶지 않아. 인간은 믿을 수 없어. 신의를 간단하게 저버리니까."

    뜻밖에 이스티는 인간 혐오를 내비쳤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가 남들보다 경계심이 몇 배는 더 강한 엘프라는 것을.

    "나도 안 믿어?"

    이스티는 내 손가락에 깍지를 끼며 미소짓는다.

    "데칼은 예외. 사람이지만, 믿을 수 있어."

    방금 언행으로 알았지만 이스티가 나를 믿는다고 해서 그 영향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누그러진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엘프의 인간 불신은 꽤 뿌리 깊은 것으로 보인다.

    뭐, 나도 그걸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

    결국 이스티가 옳았으니까.

    나라는 인간이 그녀에게 한 짓을 떠올리면, 얼마나 죄가 깊은가?

    어제 그렇게 이스티를 안았는데 또 발기할 것 같다. 새삼 느끼지만 나는 참 뒤틀린 놈이다.

    "그럼 이름은 단둘이 있을 때 부를게.

    아, 내 이름은 상관없어."

    "데칼 이름도 알려주기 싫은데."

    이스티는 애교 섞인 어투로 말했다.

    "괜찮아. 나는 인간 다루는 법을 잘 알거든."

    나름대로 뼈 있는 말이 되었다.

    어쨌거나, 흐름으로는 오크 토벌 임무를 맡아야 할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는데.

    "오크 한 번 잡아볼까? 많이 센가?"

    "다른 사람의 기준은 모르겠어. 나는 쉬웠어."

    그야 쉽겠지. 다이아 등급이니까.

    "한 번 맡아볼까? 좀 겁나기는 하는데."

    "데칼은 내가 지킬게."

    생각해보니, 이스티를 데려가면 위험할 리가 없다.

    과감하게 맡아도 될 듯싶었다.

    나는 우선 임무 게시판 앞에 가서 오크 토벌 임무의 내용을 확인했다.

    「오크 토벌」

    랭크 C+

    권장 사항

    레벨 24 이상, 3인 이상의 파티, 전투 스킬, 수색 스킬 보유

    특이사항

    오크 대량 발생, 위험도 높음. 무리 지을 가능성 높음.

    내 레벨은 16.

    권장 사항이 내 레벨을 아득히 웃돌고 있었다.

    "이스티, 레벨 몇?"

    구석으로 빠져나와서 이스티에게 묻는다.

    이스티가 한 50에서 60 된다면, 믿고 맡겨도 될 듯싶은데.

    "1193."

    "뭐?"

    잘못 들었나?

    "천 백 구십 삼."

    이스티는 내가 정말 되물은 줄 알고 또박또박 말했다.

    "···너 얼마나 강한 거야?"

    "아마도 다이아 등급 모험가만큼?"

    레벨 놓고 보면 감히 오크 따위가 비빌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아셀린이 있는 접수대로 갔다.

    "아,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뭐야?

    최근엔 안 더듬고 잘하더니.

    아셀린의 얼굴이 묘하게 붉다. 그걸 보고 내가건 암시가 생각이 났다.

    「매일 밤, 날 생각하며 자위한다」···라는 암시였지. 날 보며 음란한 망상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나 보다.

    "얼굴이 붉은데. 괜찮아요?"

    "네! 무, 문제없습니다."

    "오크 토벌 임무를 받으려고 하는데···."

    "오크 토벌 임무 말씀인가요? 해당 임무는 브론즈 등급 이상의 라이센스를 소유하고 계셔야만 해요."

    "내 라이센스 아직 안 나왔죠?"

    "네, 좀 더 기다리셔야 해요."

    "그럼···."

    나는 이스티를 쓱 보았다.

    이스티는 금세 알아들은 듯 나 대신 접수대에 붙었다.

    "내가 수주할게요."

    "네, 넷!! 저, 저희 지부에는 특대급 영혼석이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대형 영혼석 5개 주세요."

    ···이게 다이아 등급의 위엄인가?

    나랑 받을 수 있는 영혼석이 다르네.

    "길드 마스터의 허가가 필요하니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셀린이 후다닥 자리를 비운 사이 이스티에게 물었다.

    "대형 영혼석이면 소형 영혼석 몇 개 용량이야?"

    "100개."

    "···."

    고블린 영혼 백 마리를 채울 수 있는 영혼석 백 개 분량이면.

    대형 하나에 고블린 만 마리···?

    대형 영혼석을 들고 고블린 잡을 사람은 없겠지만, 엄청난 용량이다.

    "중형이면 그럼 열 개 용량?"

    "응."

    다 채우면 대체 얼마나 줄까?

    마물 대량 발생은, 어쩌면 모험가들이 돈 벌기 좋은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지만 보수가 확실하니 그만큼 매력도 있다.

    "대형 영혼석 5개입니다. 임무 완료 후 길드에 반납해주세요. 그리고···."

    아셀린이 나를 흘낏 보았다.

    "파티 등록하시겠어요?"

    "파티 등록?"

    그게 뭐지? 이스티도 모르는 눈치다. 하긴, 이 녀석도 파티 만들어본 적 없지.

    "파티를 구성 할 때에는 리더가 멤버 구성원을 밝히고 등록해주셔야만 해요.

    임무를 완료 시에, 실적을 공평하게 배분하고, 기록하기 위해서요."

    "데칼이 리더, 나는 파티원."

    "라이센스도 없는 내가 리더에, 다이아 급이 파티원인 게 말이 되냐. 리더는 네가 해."

    "리더같은 거 해본 적 없어서···."

    엘프한테는 생소한 경험인가.

    나한테도 마찬가지다. 보스면 몰라도 리더는 좀.

    "뭐, 어차피 그냥 이름뿐인 거 아니겠어? 아셀린, 리더한테 특권이 있어요?"

    "임무 성과를 평가할 때 리더의 발언권이 커요."

    "네가 오크 백 마리 잡고, 내가 오십 마리는 잡았다고 거짓말하면 내가 잡은 게 되나?"

    바로 악용할 생각부터 떠올랐다.

    아셀린이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 그런 말씀 큰소리로 하시면 안돼요."

    이스티는 드물게 엄한 얼굴로 날 보며 말했다.

    "데칼, 그런 짓 하면안돼. 노력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해."

    ···참 성실한 아가씨들이네.

    "뭐 어때? 죽은 오크 수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리더 할래."

    이스티의 심경이 변한 듯하다.

    "데칼이 편법을 쓰지 않는지 꼼꼼하게 감시할 거야."

    "날 못 믿어서 그래?"

    이스티는 지그시 날 바라보았다.

    "믿어. 데칼은 처치 수를 조작하고도 남을 것 같아."

    나라는 인간을 이토록 예리하게 간파했을 줄이야.

    엘프의 눈썰미, 얕볼 수 없군.

    "그럼 헌터님을 리더로 등록하겠습니다."

    아셀린이 잽싸게 서류를 작성한다.

    나도 불만 없다. 가장 강한 사람이 리더를 맡아야지.

    그런데, 오크는 어디서 출몰하지?

    "오크는 어디서 나와요?"

    "지금은 마을 밖 숲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오크의 근거지를 부수고 상징물을 가져오신 경우에는, 달성 점수가 높아지니까 참고해주세요."

    이것저것 따져서 점수를 매긴다는 얘기로군.

    나는 이스티랑 길드 밖으로 나왔다.

    "밥 먹고 출발할까? 리더님?"

    "그, 그렇게 부르기 없기."

    맡기는 했는데 막상 불리니 부끄러운가 보다.

    나는 이스티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크 토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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