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1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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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침대가 역시 다르긴 다르다.
최근 움직이면 삐걱거리는 딱딱한 나무 침대만 써왔더니 비교 체험으로 더욱 체감되었다.
〈팔색 조개 성〉은 따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시트는 깨끗하고 먼지도 없다.
인간 문화의 기성품을 한 사람의 취향으로 수집한 것 같은 느낌.
벨레이라가 이 성의 주인이라면, 그녀는 우아한 성의 여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뭐, 지금은 그녀에게 감사해야지.
이스티의 잠든 얼굴은 낡은 여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엘프 소녀만은 이 성과 완벽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이 평화롭게 자는 얼굴이, 어떻게 흐트러졌는지 나만 기억한다.
좋아. 그런 게 아주 좋다.
나는 최면을 좋아한다.
싫어할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이스티가 좀 더 자도록 조심스레 떨어뜨린 후, 일어나서 창밖을 보았다.
여기에 사는 생물도 있을까?
해안가에 대뜸 떨어져 있는 성. 널찍한 공간에 숲이랑 까마득한 산맥도 보인다.
완전한 별세계.
문득 궁금해졌다. 이 성은 대체 어떤 곳인지.
"달링···?"
이스티가 일어났다.
이스티랑 같이 목욕이나 할까?
나는 개인 보관함을 열어 팔색 조개를 상호작용했다.
펼쳐진 몇 가지 메뉴 중에서, 간단한 맵 데이터가 있었다.
"대목욕탕. 여기로 가볼까?"
"응? 응."
나는 비몽사몽한 이스티를 데리고 3층에 있는 대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휘황찬란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규모 탈의실이 나왔다.
남녀 구분은 따로 없는 듯하다.
욕탕은 일단 무지하게 넓었다.
놀랍게도 깨끗한 물이 이미 받아져 있었는데, 적당히 뜨겁기까지 했다.
뭐지? 이 편리한 성은? 신이 만들었나?
"···."
신들은 별장 만드는 스케일도 남다르네.
"물은 그대로 써도 좋은 것 같네. 같이 들어가자."
"데칼이랑 같이?"
"왜, 싫어?"
"음, 부끄러우니까."
뭐 서로 볼 것 다 본 사이에.
너무 아저씨 같은 말이라 소리 내서 말하지는 않았다.
여자의, 스스로 창피해하는 감성은 꽤 중요한 것이다.
이럴 때는···.
"나도 다른 커플들처럼, 같이 씻고 싶었는데···."
"···."
"후, 안타깝다. 안타까워."
"···알았어!"
이스티는 나를 따라 옷을 벗고, 욕탕에 들어왔다.
아, 좋다.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어?"
이스티도 신기한 듯하다.
"신이랑 아는 사이라서 받았어."
"신 님이랑?"
"응, 빨간 머리에 기만 센 여신이 있거든."
"여신님이 데칼을 좋아해?"
난 이스티를 쓱 보았다.
"그렇다면 어떨 것 같은데?"
"싫어."
이스티가 내 몸 위로 올라탔다.
눈으로도 부드러움이 전해지는 가슴과 가냘픈 어깨가 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내가 데칼을 독점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데칼이 날 싫어할지도 모르잖아."
"흠."
나는 자연스럽게 이스티를 끌어안고,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손으로 쓸었다.
"앗···."
내 손을 스펀지 삼듯이 이스티의 매끄러운 피부 위를 미끄러진다.
"부드럽네."
"얼버무리기 있어···?"
"응. 싫어?"
"이건··· 싫지 않아···."
정색하고 무수한 첩들을 거느릴 거라고 말해봐야 무엇하리.
그렇게 선을 그으면 이스티는 슬픈 얼굴로 알았다고 할 테고, 별로 원하는 그림은 아니다.
지금은 이스티랑 톡톡 튀는 유사 연애 체험을 만끽하고 싶다.
"정액이 계속 나오네."
나는 이스티의 보지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데칼이 그만큼 내 안에 쌌으니까···."
"네가 그만큼 좋았어."
"······."
이스티는 날 꼭 안았다.
"데칼의 아이라면 몇 명이라도 낳을 수 있어."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
놀랍다. 사랑의 힘.
욕탕에서는 이스티랑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에는 몸을 깨끗이 씻고 나왔다.
"같이 성 좀 둘러볼래?"
"데칼이 원한다면, 어디든 좋아."
"드레스 룸? 바로 옆 방이네."
나는 맵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이스티랑 손을 잡고 복도를 걸었다.
드레스 룸은 객실보다 넓은 방 하나를 통째로 할애해서 옷장처럼 쓰는 곳이었다.
화려한 여성용 옷들이 눈을 어지럽게 한다.
다양한 색깔에 다양한 방법으로 열려있는 야한 속옷들도 엄청 많았다.
이게 벨레이라의 취향인가.
"한번 입어볼래?"
"나? 나한테 이런 예쁜 옷은 안 어울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 많은 옷 중에서 이스티한테 어울리는 옷보다 안 어울리는 옷 찾는 쪽이 훨씬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모두 벨레이라의 취향인지, 야한 드레스가 많았다.
이런 걸 입고 밖을 돌아다니는 건 힘들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익숙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엘프가 주제 파악은 하고 있으니 다행이네."
맞은편에서 붉은 머리 여신이 나타났다.
이스티는 날 등지고 서서 투명 활을 손에 불러들였다.
"데칼. 공격해?"
"아니. 이 성을 나한테 준 여신이야."
이스티는 내 말을 듣고 활을 내렸다.
"줬다니! 네가 억지로 가져간 거잖아."
하여간, 볼 때마다 활활 불타고 있네.
"뭐 옷 이렇게 많은데 좀 가져가면 어때? 이 속옷은 뭐야. 대체 뭘 가리고 있는 거야? 이런 걸 입고 다니냐?"
"신경 쓰지 마! 예뻐서 모았을 뿐··· 가끔은 입고 다녀. 거울로 내 몸매를 볼 때 뿌듯하기도 하고."
"하하하."
"큭, 크으윽!!"
여신은 내 질문에 진실하게 대답하라는 키워드에 걸려, 본인 의지랑 상관없이 솔직히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솔직하지 않은 여신에게는 최고의 키워드 아닌가.
"이스티, 잠깐 옷 구경하고 있을래?"
"나···?"
이스티는 떨어지기 싫은 듯 처량한 눈동자로 나를 보았다.
"금방 갈게. 여신이랑 얘기할 게 있어서 그래."
"응···."
우린 볼뽀뽀를 교환했다.
그걸 팔짱 끼고 못마땅한 듯이 지켜보고 있던 벨레이라가 기어코 한마디 했다.
"흥. 벌써 노예 하나 구했네. 어차피 그 능력으로 세뇌한 거지?"
"그렇다면?"
"쓸데없이 눈은 높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저 아이, 인간 시절의 나랑 맞먹네. 지금은 뭐, 내가 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인간? 너도 원래 인간이었어?"
"그래. 이미 먼 옛날 일이지만."
그랬군.
어쩐지 인간 문화에 발을 담근 티가 나더라니.
그녀가 걸친 슬릿 드레스도 어딘가의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물건이겠지.
"그건 그렇고."
벨레이라가 노골적으로 화제를 돌린다.
옷 구경을 하는 이스티의 등을 먼 치에서 보며.
"저 엘프한테 감정 이입하고 있지? 널 공격할 순 없지만, 엘프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닌데."
오호. 배짱 있는데.
나를 협박하시겠다?
"내 원한을 사겠다고? 자신 있어?"
"자신? 후훗. 날 뭐로 보는 거야? ···당연히 없지."
"하하하."
"큭!! 이러니까 싫어!"
내 암시 때문에 허세를 부리지 못하게 된 벨레이라는, 분노랑 수치심까지 겹쳐서 언성을 높였다.
"이 웃기지도 않은 세뇌를 풀어!
안 그러면, 네가 소중히 여기는 엘프 여자앨 죽여버릴 거야."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 장담컨대 넌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조금도 상상할 수 없을걸."
"······."
"나는 네가 생각해본 그 어떤 것보다 널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어."
"약점을 찔려서 뜨끔했어?"
여신이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군.
아주 조금이라도 이스티에게 위협이 끼치는 건 사양이다.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