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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4화 (14/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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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쩌지?"

"어쩌긴, 그냥 가자."

나한테 지목된 샐릭의 동료들은 샐릭을 외면하고 가버렸다.

"젠장, 젠장!"

샐릭은 몸을 웅크린 채 욕을 내뱉는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샐릭의 처량한 꼴을 놓고 수군거리다 곧 흥미를 잃고 하나 둘 멀어졌다.

이제 나랑 샐릭만 남았다.

"모험가는 관두고 다른 일이나 알아봐."

이것은 도발이 아닌,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모험가 샐릭은 끝장났다. 내가 건 암시때문에 가장 쉬운 임무를 맡는 것도 어렵겠지.

"아니면, 약초 찾기나 하던지."

"으윽···!"

나는 그대로 지나쳤지만, 샐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꾸라진 채로 있었다.

오늘 목적은 달성한 것 같은데, 돌아갈까?

이제 괜히 시비거는 사람도 없어졌으니, 던전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르도 던전 입구는 바닥에 있었다.

풀이 벗겨진 거무죽죽한 흙바닥에 큰 계단이 나 있다.

어두컴컴해서 바닥에 뭐가 있는지는 안 보이지만, 들어가고 싶은 느낌은 아니다.

나는 모험가 체질이 아닌 듯 하다.

이런 심령 스팟같은 곳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려면 얼마나 배짱이 좋아야할까?

거기다 들어가면 확실하게 공격받는다는 걸 알면서.

"아저씨."

누가 나를 톡톡 건드렸다.

돌아보니 큰 가방을 짊어진 꾀죄죄한 소년이 날 보고 있었다.

"안에 들어갈 생각이면 날 고용해요. 짐꾼 해드릴게요."

짐꾼···.

개인 보관함이 있어서, 나는 필요 없는데.

"혹시 횃불 있어?"

"있어요."

"그럼 불이나 밝혀봐. 보상은 후불로. 이 조건이면 같이 가자."

"그래요."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는 소년이랑 같이 지하로 내려갔다.

"그런데, 왜 혼자있는 나한테 말을 건 거야?"

"아저씨한테 왠지 돈 냄새가 났거든요."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돈 냄새라니, 원래 세계에서는 듣기도 힘든 말인데, 어린애가 하고 있는 걸 들으니 어처구니 없다.

하지만 제법 예리한 후각이다. 나는 돈이 없지만, 돈이 없어서 곤란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아저씨, 싸울 순 있어요? 무기도 없는데."

"보면 알 거야."

앞에서 소리가 났다.

익숙한 소리다. 고블린들이었다. 하지만 바깥에 있는 놈들이랑 달리 우리를 알아차리자마자 즉시 덤벼들었다.

나는 덤벼드는 고블린들을 차례대로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애로우!"

내 손에서 불꽃이 확 피어오르자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 마법사였어요?"

고블린들에게 각각 파이어 애로우를 날려서 터뜨린다.

"키에엑!"

"그래. 마법사야."

"굉장하다!"

"쓸 수 있는 마법은 이것밖에 없지만."

"아저씨처럼 젊은 나이에 공격 마법을 쓰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갑자기 없던 존경심이 솟아나기라도 했는지 태도가 확 변했다.

"이런 거, 아무나 배우는 기초 마법 아니야?"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슬쩍 떠본다.

"장난해요? 브론즈 등급 모험가 백 명이 있다고 치면, 마법 쓰는 사람은 열 명! 그 중에 공격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은 한 명이에요."

"그래?"

이건 그냥 여신의 가호 받을 때 겸사겸사 얻은 마법이었는데.

"직접 보는 건 두 번째예요. 신기하다."

"이제 계속 가도 될까?"

"···."

소년은 뒤늦게 창피해졌는지 입을 다물었다.

"내 이름은 데칼인데. 너는?"

"빈델이에요."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공격성이 강하다고 했던가? 정말 그 말대로다.

그렇게 만만했던 고블린들이 먼저 이쪽을 알아차리고 덤벼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긴장감이 열 배가 됐다.

장비도 좀 다르다. 거기다 던전 내부에 있는 더러운 날붙이같은 걸 들고 있어서, 공격당하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래, 파상풍에 걸릴지도 모른다···.

내가 예방 접종 주사를 언제 맞았더라? 주사 효력은 십 년은 간다고 들었는데. 후···. 정말 걱정된다.

"파이어 애로우!"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저씨, 저기!"

빈델은 내가 마법사라는 걸 알고 나서는, 몇 걸음 앞에 가서 마물을 먼저 발견하고 알려줄 때도 있었다.

나름 전사 기분이라도 내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꽤 든든했다.

보르도 지하 1층에는 무수하게 많은 고블린, 그보다 무수한 빈 방들이 겹겹이 이어져있는 지하 건축물이었다.

벽은 건축재 대신에 흙이 절반 이상 빠져나와있는 곳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는 엉뚱한 근심만 들었다. 설마 갑자기 무너지기라도 해서 매장당하지는 않겠지?

"파이어 애로우!"

고블린들은 정말 쉴 새 없이 쏟아져나왔다.

덕분에 마법을 다루는 실력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자신감이 붙어서 움직이는 상대로도 나름 잘 맞힐 수 있게 되었고, 몇 가지 특성도 파악했다.

우선 영창의 유무.

파이어 애로우는 화살을 불러낼 때, 혹은 날릴 때 한 번만 영창하면 된다.

영창을 실시하지 않고 시전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 경우 위력은 절반 이하로 감소한다.

동시에 불러낼 수 있는 화살은 두 개까지.

다만 이렇게 했을 경우 첫번째 화살은 영창으로 뽑아낼 수 있지만 두 번째 화살은 무영창으로 소환된다.

또한 마력 소모가 배로 늘어난다.

나는 MP가 떨어지는대로 물병에 든 물을 꿀꺽 꿀꺽 들이키면서 전진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저씨가 마법 쓰는 속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아요."

"나도 느끼고 있었어."

나는 스테이터스를 한 번 확인했다.

레벨 : 12

상태

HP 290/290 MP 354/463

벨레이라의 가호(진) 「불 면역, 불 마법 위력 상승, 모든 스킬 숙련값 ++」

여신의 대리인「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

능력치

힘 46 마력 59 체력 50 민첩 51

스킬

파이어 애로우(★☆) - 가장 기초적이지만 실용적인 불 마법. 잔불이 남아 추가피해를 주기도 한다.

스테이터스를 보니 파이어 애로우의 숙련도가 더욱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시전 시간은 1.5초 내외. 답답하던 처음이랑 비교하면 큰 발전이다.

물병 덕분에 MP가 마를 일도 없어서, 나는 느긋하게 전진하며 눈에 띄는 고블린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어, 지금 꽤 편하고 좋은 거 아냐?

뒤늦게 알았지만 이제 고블린들은 내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

거친 동작으로 고블린들을 때려눕힐 필요가 전혀 없어진 것이다.

단순하지만 강한 공격 마법과 MP를 무한하게 채워주는 물병. 이 조합은 내 상상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았다.

길이 좁다보니 쓰러진 고블린들 시체를 밟고 지나가기만 해도, 무수한 영혼들이 영혼석에 모여들었다.

"파이어 애로우!"

"키에엑!"

영혼이 후루룩 모여드는 이 충실감.

아주 짜릿하다.

"2층 갈까?"

"그래요. 아저씨 따라오길 잘했어요. 벌써 웬만한 파티만큼 잡은 것 같아요."

"이 정도 잡았으면 영혼석도 꽤 비싼가?"

"아저씨 모험가 처음이에요?"

"뭐, 그런 셈인데."

"방금 잡은 정도면 길드 시세로 1골드는 받을 수 있어요."

과연, 고블린 백 마리에 1골드란 말이지.

다음엔 뭐가 나올까?

2층에는 더 많은 고블린들이 나왔고, 간혹 스켈레톤이 섞여나왔다.

처음 봤을 때는 웬 사람 뼈가 멀뚱멀뚱 서있길래 겁에 질릴 뻔 했는데.

동작은 잽싼 편이 아니라서 쓰러뜨리기 어렵지는 않았다.

"파이어 애로우!"

고블린보다 몸이 커서 맞히기는 더 쉬운 것 같기도 했다.

한 방에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어떨 때는 한 방에 쓰러뜨렸다.

"음?"

나는 그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부위에 똑같은 마법을 맞혔는데 왜 차이가 생기는거지?

스켈레톤의 개체 차이인가?

나는 곧 이게 〈집속 팔찌〉의 기능이라는 걸 알았다.

"파이어 애로우!"

일부러 화살이 완성된 후에도 더 시간을 들여서 집중하면.

MP가 더욱 빨려들어가면서 화살의 크기가 비대해졌다.

스킬의 오버 차징. 그게 집속 팔찌의 기능인 듯 했다.

"빈델, 물러서."

나는 빈델이 다칠까봐 물러서게 한 다음, 오버 차징 된 파이어 애로우를 발사했다.

펑!

스켈레톤은 오버 차지 파이어 애로우를 맞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와···."

빈델은 소리 내어 경탄했다.

나도 속으로는 같은 마음이었다. 집속 팔찌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적어도 스킬의 위력을 3배, 아니 5배는 끌어올리는 것 같다.

장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단점에 비해 장점이 너무 컸다.

어쩌다 스켈레톤이 한 방에 죽을 때는, 내가 신중하게 노린다고 조금 더 MP를 투자해서 생긴 차이였던 것이다.

힘 조절을 해서 스켈레톤을 한 방에 죽일 수 있다면 무서울 건 없다.

"아저씨, 오늘 영혼석 다 채울 거예요?"

"그럴까?"

빈델은 입꼬리가 귀까지 걸렸다. 자기한테 돌아올 배분때문에 기쁜 듯 하다.

꽤 잡고나서 알았지만 스켈레톤의 영혼은 고블린 세 마리 분량이었다.

빈델은 불을 밝혀 마물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고, 내가 마법을 쏴서 죽인다.

우리는 이 작업을 성실하게 반복했다.

〈집속 팔찌〉를 활용해서 스켈레톤을 한 번에 쓰러뜨린다.

간혹 무장한 스켈레톤이 나올 때도 있었는데 이럴 때는 끝까지 오버 차징을 해서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소형 영혼석을 5개를 전부 채웠을 때, 나는 몰라보게 강해져 있었다.

레벨 : 16

상태

HP 440/440 MP 653/653

벨레이라의 가호(진) 「불 면역, 불 마법 위력 상승, 모든 스킬 숙련값 ++」

여신의 대리인「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

능력치

힘 71 마력 112 체력 61 민첩 55

스킬

파이어 애로우(★★) - 가장 기초적이지만 실용적인 불 마법. 적중 후에도 점화를 걸어 피해를 입힌다.

이세계 전이할 때 받았던 벨레이라의 가호 덕분인지,

내 성장 속도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비정상적이었다.

이제 시전 시간은 불과 1초.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도 비약적으로 빨라졌고, 위력은 무영창으로 고블린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보르도 던전에서 나오는 마물은 이제 내 적수가 되지 못했다.

나는 어렵지않게 최하층까지 정복했다.

"아저씨, 여기가 마지막 방인가봐요."

"저게 보스인가?"

보르도 던전 가장 밑에는, 해골 마법사가 있었다.

"파이어 애로우!"

나는 즉시 오버 차징한 파이어 애로우 두 발을 해골 마법사가 있는 자리에 갖다박았다.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확 피어오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걷힌다.

해골 마법사는 흔적도 없이 파괴 당한 상태였다.

"우와. 쓰러졌어요. 가서 확인해봐도 돼요?"

"그래."

빈델은 바로 가서 아이템을 확인했다.

"아저씨! 마법서가 나왔어요."

"어디?"

낡은 책 한 권이 해골 마법사의 머리맡에 떨어져 있었다.

책 제목은 〈사령술 입문서〉

"마법서는 굉장히 가치있는 물건이라 비싼 건 백 골드도 해요."

"득 봤군."

나는 마법서를 개인 보관함에 넣었다.

"이제 돌아갈까?"

최하층까지 정복했으니 볼 일 없다.

해골 마법사를 쓰러뜨린 영향인지 돌아오는 길에는 어딜 가나 있었던 마물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1층 중간 즈음에서 이변을 눈치챈 모험가들이랑 마주쳤는데,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혹시 끝까지 가셨어요?"

"예."

"아아!"

곳곳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마지막에 있던 마물은 얼마나 세던가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지팡이를 들고 있는 해골 마법사였는데."

"오오!"

다들 내 이야기를 경청하니 도리어 부담스럽다.

"뭘 하게 내버려두면 큰일날 것 같아서 서둘러 공격한 게 주효했어요."

"과연!"

"내 말 맞지? 해골 마법사일거라니까."

"아깝다. 어제 2층 끝까지는 갔었는데."

서로 얘기를 나누는 모험가들을 뒤로 하고, 던전 밖으로 나왔다.

밖은 벌써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잊었던 피로가 확 몰려온다.

한 시간 더 걸어서 마을로 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택시를 부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빈델, 너도 마을로 돌아갈거지?"

"그래야죠. 내가 오늘 하루종일 아저씨 옆에 착 붙어다니면서 도와드렸다는 거, 잊으면 안돼요."

"그래, 돌아가서 환금하는대로 네 몫을 줄게."

영혼석은 길드에 반납해야한다고 했으니 통째로 줄 수는 없다.

나는 빈델이랑 함께 마른으로 돌아왔다.

"오, 모험가가 돌아오는군."

경비병 둘이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뭐 수확은 좀 있었나?"

"그런대로요."

"하하하. 표정 보니 많이 피곤한가본데. 얼른 들어가라고."

마른 마을로 돌아왔다. 빨리 환금하고 쉬자. 이스티는 어디에 있지?

길드 앞에 묘하게 사람이 많이 몰려 있었다.

안에 구경거리라도 났나?

"무슨 일이에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본다. 남자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대답했다.

"안에 그 엘프가 있어."

"아직 안 돌아갔나봐."

"누굴 기다리는 것 같은데? 누구야?"

"······."

바로 상황 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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