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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13화 (13/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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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을을 나서기 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에게 길을 물었다.

"보르도 던전? 여기서 가까워.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돼. 한 시간 걸으면 도착할 거야."

한 시간? 그게 가깝다고?

대중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세계라서 그런지 나랑 생각이 전혀 다르군.

"아! 당신 기억 나. 얼마전에 여길 지나갔지? 진짜 모험가가 되었나보군."

경비병 하나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예. 등급은 없지만요."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지. 이걸 가져가."

경비병은 나한테 이 근방 지리가 상세하게 그려져있는 지도를 건넸다.

현대의 지도에 비하면 볼품없지만 그런대로 도움 되는 정보들이 쓰여있었다.

예를 들면 출현 마물의 정보. 약점, 챙기면 좋은 도구들.

이걸 보니 모험가들의 준비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인가요?"

"잡화점에 가면 5실버에 파는 물건이지. 초보 모험가들에게는 필수 아이템이야. 몰랐지?"

"네, 처음 들었어요."

잡화점에 한 번 더 들러볼 걸 그랬나?

여신한테 사기 아이템을 워낙 많이 받아서 다른 아이템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용해보였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꼭 답례할게요."

"답례같은 건 됐어. 남는 거 하나 준 거니까. 다치지나 말라고."

생각지도 못한 배려를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

정작 같은 모험가들은 날 견제하기 바쁜데도 말이다.

"파이어 애로우!"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고블린들이 보였다.

이제는 그냥 방에서 바퀴벌레를 본 기분이다. 즉시 마법을 사용하여 죽인다.

붉은 화염은 화살 형태를 갖추고 고블린에게 날아가 터졌다.

파이어 애로우는 숙련도가 ★ 등급이 된 시점에서 고블린을 확정적으로 죽일 수 있었다.

무조건 즉사는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잔불이 남아서 고블린의 몸을 태웠기 때문이다.

"아, 영혼석."

깜빡할 뻔 했네.

인벤토리에서 영혼석을 꺼낸 다음 가까이 다가가자, 고블린의 몸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와 보석에 들어갔다.

이렇게 수집하는거군.

나는 영혼석을 되돌려놓다가,

아직 사용법을 모르는 아이템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았다.

〈집속 팔찌〉

가벼운 착용감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건 대체 무슨 기능이지?

나는 직접 실험해보기로 했다.

초원에 숨은 고블린들을 찾아다니며, 나는 집속 팔찌의 효능을 검증했다.

우선 빼고나서···.

"파이어 애로우!"

"케엑!"

시전 시간, 위력, 모두 변함 없었다.

착용하고 다시 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하나 밝혀진 점은, 지금까지 팔찌 덕을 본 상황은 없었다는 것.

〈집속〉이라는 건 무언가를 모은다는 의미인가?

나는 파이어 애로우를 연달아 두 번 사용했다.

이미 파이어 애로우가 시전되고 있을 때 다시 파이어 애로우를 시전하면, 마력 소모가 몇 배나 뛰어오른다.

이건 너무 비효율적인데.

그렇다고 이게 팔찌를 끼고 있어서 가능한 것도 아닌 듯 하다.

더 시험해보고 싶은데 초원에는 고블린이 얼마 없어서 금방 씨가 말랐다.

어쩔 수 없지. 나머지는 던전까지 가서 실험해보자.

(피로가 회복되었습니다.)

(MP가 회복되었습니다.)

여신의 물병에 든 물을 마시고, 다시 걷는다.

목적지가 가까운 듯 싶었다. 던전같은 건 안보였지만, 모험가같은 복색을 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보르도 던전을 탐사하려고 모인 파티같았다.

거기에 샐릭도 있었다.

도착하고 나니 던전 입구는 지하로 나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의도치않게 사람들 주목을 받았다.

"길드에 있던 신입 아냐?"

"혼자 들어가면 죽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샐릭이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역시 직접 와주는군.

"정신을 못차렸군."

샐릭은 날 보더니 한 마디 했다.

"글쎄, 이제 신경 꺼줄래?"

"말하는 걸 들어보니 약초 찾기 하다 헤맨 건 아니고. 그렇지?"

샐릭의 동료들이 킥킥대며 웃는다.

"그래, 나도 정식으로 임무를 수주받고 왔지."

"던전 탐사는 임무 랭크가 최소 입장 조건으로 잡힌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내려갈수록 높아지는 난이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모험가들의 책임이라는 뜻이지."

"비켜."

"싫다면? 엄마한테 이르러 갈려고?"

"오늘 한 일을 평생 후회할 거야."

"들었어? 후회할 거라는데! 하핫."

"오오우, 무서워라."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다른 파티는 멀찍이 지켜보고만 있었기 때문에, 트랜스 상태에 빠진 건 샐릭과 그 동료 둘 뿐이었다.

"샐릭 떨거지 둘. 너희는 내가 하려는 행동에 일체 간섭하지 못한다."

"···."

"샐릭, 너는 「작은 아픔에도 공포에 질린다」"

짝.

나는 손뼉을 쳐서 셋을 깨웠다.

그리고, 샐릭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샐릭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윽!?"

"오! 저 자식이 샐릭을 먼저 때렸어."

샐릭의 동료 하나가 요란을 떨며 소리를 지른다.

"죽도록 맞고싶은가본데?"

나는 대충 자세를 잡고 도발했다.

"그래, 싸우자. 맨손으로 상대해줄테니 덤벼."

응징의 시간이다.

나는 샐릭의 배를 때렸다.

"허억!"

샐릭은 과장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난다.

"왜 그래?"

나는 경직된 샐릭을 샌드백 패듯이 무자비하게 때렸다.

싸울 때는 상대를 눕히기위해 엄청 많은 힘을 줘야하지만, 나는 실제로 샌드백을 상대로 가볍게 연습하는 것처럼 산뜻한 마음으로 툭 툭 건드렸다.

"허억! 끅! 끄악!"

하지만 샐릭은 암시 때문에 공포에 질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았다.

"어, 어이! 샐릭. 왜 그래? 연기같은 거 하지말라고. 재미 없어!"

"그 자식 때려 눕히라고."

샐릭이 얻어맞기 시작하자 구경꾼들이 늘었다.

나는 자신감있게 샐릭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왜? 반격을 못할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합을 짠 액션처럼. 샐릭은 암시때문에 겁에 질려 찰지게도 맞았다.

얼굴을 맞으면 고개를 홱 돌리고, 배를 때리면 등을 굽히고,

아예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나한테 맞았다.

"샐릭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데?"

"상대도 안되네."

"좀 꼴사납다."

실제로 쓰러뜨릴 정도의 힘으로 때리는 게 아니라서, 나는 가벼운 줄넘기를 하는 것처럼 적당히 숨이 차고 즐거웠다.

샐릭은 나한테 맞을 때마다 정신적 대미지를 입는다.

나한테 얻어맞으면서 정신을 못차리는 것도 굴욕스러울텐데.

그것조차 억누르는 공포 때문에 몸도 가누지 못한다.

"허억! 허억! 그만해!"

나는 패닉 상태에 빠진 샐릭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거칠게 뺨을 때렸다.

"누구 마음대로? 네가 시작한 일이잖아."

샐릭은 겁에 질려 팔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왜 아무도 안 말릴까? 네가 자초한 일이라서."

"흐윽!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 때려줘!"

샐릭의 바지가 젖는다. 나한테 맞다가 오줌을 싼 것이다.

"으휴."

나는 샐릭을 내동댕이치고, 뒤에 있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뭐해? 너네 리더 안데려가고."

"······."

나는 그 한마디로, 샐릭의 파티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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