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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8화 (8/414)

대충 이세계 최면물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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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부자연스러울지라도 그녀의 앞에 가서 손가락을 튕기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의 상황은 내가 지배한다. 어려울 것 없다.

나는 길드 밖에서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길드에 들어간 소녀가 나올 때 알아야하기 때문에 너무 멀리 갈 수는 없었지만.

나랑 목적은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지만 길드에서 나오는 다이아급 헌터를 한 번 보고싶다며 모여든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리는동안 마냥 지루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떠드는 말을 골라 들으며 대충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고고한 사냥꾼」 이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민망할 수도 있는 이 이명은, 그녀 스스로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극단적으로 꺼리고

혼자 위업을 달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건 중 하나였다.

왜냐. 아름다운 여성을 타깃으로 최면을 걸 때 자주 생기는 일이지만, 대상의 대인관계가 너무 좋아서 비상연락망이 너무 꼼꼼할 경우에는 정말 애를 먹는다.

특히 현대에서는, 한 사람이 많으면 천 명 이상을 알고 지낸다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고 기겁했던 적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대인관계는 여자 본인에게 암시를 걸어서 끊을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녀 스스로도 몰랐던 관계가 계속 튀어나와서 뜻밖의 문제가 벌어진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세계에 왔을 때 가능하면 연고가 없는 여자를 타깃으로 하고 싶었다.

또 들은 얘기는 처음 들은 얘기랑 어느정도 맞물리는건데, 그녀가 엘프족이라는 것이다.

엘프에 대해, 남들이 아는만큼밖에 모르기는 하지만 상당히 인간을 경계하는지 그녀는 스스로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알려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유명하다?

강하고 아름다운 궁사의 대명사라도 되나.

어차피 조만간 본인 입으로 다 말하게 될 것이다. 내 앞에서.

이름도, 살아온 기억도,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다.

길드에서 엘프 소녀가 나왔다.

이번에는 귀를 유심하게 봤는데 특별히 사람 귀랑 다르게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나는 일부러 뒤에서 좀 기다렸다.

한마디 나눠보려고 기다린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엘프 소녀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다가 사람들이 말이 없어지자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

"와, 진짜 예뻤다."

"아무 말도 안 해도 좋아."

"웃는 거 한 번 보고 싶은데."

남자들은 짧은 불평을 남기며 흩어진다.

나처럼 따라갈 생각을 하는 이는 없는 듯 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그녀를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면 우선 다이아 등급 헌터보다 강해야하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엘프 소녀를 따라 걸었다.

뒷태를 차분히 보니, 정말 갖고싶다. 특히 저 허벅다리의 절묘한 굵기는 범죄적이다.

사뿐사뿐 가볍게 걸으며 다리랑 엉덩이가 움직이는 걸 관찰하고 있으니, 점점 사람이 없는 골목길로 들어간다.

어쩌면 미행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야?"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할 말이 있어서 기다렸어요."

"가까이 오지 마."

음, 굉장히 날이 선 목소리였다.

돌아선 소녀는 맨손으로 활을 잡는 시늉을 하더니, 이쪽을 지그시 보며 말했다.

그것은 경고에 가까운 강한 어투였다.

"그대로 물러서서, 내 앞에 나타나지마."

"그냥 저는···."

"당신한테서, 위험한 냄새가 나."

"응?"

"지금까지 맡아본 적도 없는, 굉장히 위험한 냄새가 나."

촉으로 알았다는건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예리하네.

시늉만 하는 줄 알았는데 손을 다시 보니 어느샌가 활과 화살이 반투명하게 실체화하고 있었다.

마치 유리로 만든 무기같았다.

"수상한 동작을 하면 죽일 거야. 눈 깜빡임보다 빠르게."

"······."

나는 속으로 한탄했다.

너무 쉽게 보고 접근한 것 같다. 혼자 다닌다는 걸 장점으로만 생각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 소녀는 혼자서 남들은 못할 위업을 달성했다. 남보다 경계심이 몇 배는 더 강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죽이겠다는 소녀의 엄포가 진심으로 와닿아서, 한 발자국 물러난다.

"난 위험한 사람이 아냐. 이름은 데칼. 얼마 전에 마른에 왔어."

"듣기 싫어. 가."

···얼굴값 하는 경계심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물러나야할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손가락을 튕겨볼까.

상대는 마치 내 본질을 파악하기라도 한 것처럼 벌써 무기도 꺼냈는데 그런 짓을 한다고?

눈 깜빡임보다 빠르게 죽인다는 건 허세도 뭣도 아니다.

하는 수 없지.

여기서 여신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흥미를 끌어보는 수 밖에.

밝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얘기를 한다. 그만큼 나는 저 여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까 그 얼간이 아냐?"

"엇?!"

나는 갑자기 밀려 옆으로 넘어지는 꼴이 됐다.

고개를 들어보니 샐릭이 날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레이디, 이 머저리가 뭐라고 했건 신경쓰지 마세요. 브론즈 등급도 못 된 덜떨어진 놈이니까."

"···."

"너···."

"아까 손 봐줄 생각이었는데 그대로 도망갔지?"

샐릭이 그대로 날 걷어찼다.

어윽! 이 개 자식이. 난데없이 맞아서 엄청 아팠다.

"일어나.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줄테니까."

"그만해요."

그때, 엘프 소녀가 샐릭을 말렸다.

"그 사람은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레이디, 마른은 처음이신가요? 제가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엘프 소녀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흠···."

거절당한 샐릭은 못마땅한 듯 나를 쳐다보고, 바닥에 침을 뱉고 떠났다.

"으윽···."

제대로 맞은 게 얼마만이야.

주섬주섬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 소녀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손에는 무기도 없었다.

"자."

그녀는 선뜻 손을 내밀었다.

뭐지? 방금까지 그렇게 날을 세워놓고서는···.

"이상한 말로 겁줘서 미안해요. 오해한 것 같아서···."

아아.

소녀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처량하게 보였을지 상상이 되었다.

말도 못 붙이고 머뭇거리다가 난데없이 넘어져서 얻어맞기까지 했으니.

꾸며낼 생각이 전혀 없는, 정말 우연의 일치로 일어난 상황이었다. 그놈이 적절한 악역으로 난입해서, 의혹이 흐려졌다.

"나한테서 위험한 냄새가 난다느니 하는 거요?"

나는 팔을 들어 내 몸의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소녀는 드물게 표정다운 표정을 지으며 수줍어했다.

"···그, 그건."

"이상하다. 샤워 했는데."

"아무튼··· 갈게요."

소녀는 도망치듯 후다닥 떠나려 했다.

"아, 잠시만요."

"네?"

나는 소녀의 눈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방심한 순간을 노린,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와중에도 반응하기는 했는지 소녀의 손에서 화살이 생성되다가 점차 사라진다.

"이름은?"

"···말할 수 없어···."

대단한데? 트랜스 상태에서도 질문을 거부하다니.

트랜스 상태는 정신적으로 거의 완전히 무방비라서, 마치 명령을 듣게 한 것처럼 고분고분해지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간혹 경계심이 강한 처녀들은 거절하는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조바심 낼 것 없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뭐야?"

"엘프는··· 인간을 믿지 않아."

인간을 믿지 않는다라.

개인이 아니라 종족에게 가질 정도면 뿌리 깊은 불신인 듯 하다.

"그럼, 모든 인간을 믿지 않아?"

"···아니."

"눈 앞에 있는 나는?"

"믿지 않아."

눈을 열고 멍한 상태로, 소녀는 계속 대답한다.

"그건 잘못된 거야."

"잘못된 거···?"

"데칼은 네가 가장 믿는 사람들 중 한 명이야. 그의 말을 의심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당신은··· 내가 가장 믿는 사람··· 의심하다니··· 있을 수 없어···."

내가 하는 말을, 인형처럼 반복한다.

"알았어?"

"응."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미움 받으면 굉장히 아프고 싫은 기분이 들어."

"아프고 싫은···."

"그러니까 나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아."

"응···."

「그 사람에게 미움 받기 싫다」

이 키워드는 어떤 여자에게 걸어도 볼 거리가 많다. 쿨한 여자에게는 특히 치명적이다.

벽을 많이 쌓아놓아서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조차 어려운 여자한테 걸면, 굳이 「명령에 복종하라」고 해서 반발심을 사지 않아도

재밌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물론, 복종시키는 건 그것대로 재밌지만.

어쨌든 첫 번째 암시는 끝났다.

짝.

나는 손뼉을 쳐서 그녀를 깨웠다.

엘프 소녀는 곧장 물러나 나한테 보이지 않는 활을 겨냥한다.

"내 몸에 무슨 짓을 했어?"

"그러지 마. 우리, 만난지 얼마 안됐지만 서로 신뢰하는 사이잖아?"

"아?"

활을 겨냥한 소녀의 표정이 약간 얼빠진다.

감정에 혼란이 생겨서, 당황하는 듯 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할게."

다가간다. 천천히.

"아, 아니···. 데칼은···."

소녀는 멍하니, 자기 감정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 잘못도 안했어."

"다행이다.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데, 네 이름 가르쳐줄 수 있어?"

"갑자기?"

"안 되나?"

엘프 소녀는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본 그녀의 두려움이었다.

"데칼이라면 괜찮아···. 이스티라고 해."

"좋네."

"···."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스티가 든 활은 완전히 비실체화해서 사라진 뒤였다.

"밤 더 늦어지기 전에 숙소로 갈까?"

"나, 오늘 밤에 바로 출발하려고 했는데···."

"싫어?"

"으, 음···."

이스티의 무표정이 무너진다.

예쁜 얼굴에 미간을 구긴 것만 봐도, 내 말 몇 마디가 이스티의 마음에 얼마나 파문을 일으켰는지 알 수 있었다.

"알았어. 하루 쉬고 갈게."

"가자."

나는 이스티의 손을 잡고 걸었다.

순간 손을 빼려는 액션을 취하다가, 이스티는 차마 끝까지 빼지 못하고 당황하며 나를 따라왔다.

========== 작품 후기 ==========

외주를 맡겼던 〈대충 이세계 최면물〉의 표지가 완성되었습니다!! 짝짝짝! 표지에 나온 캐릭터는 조금 있다가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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