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세계 최면물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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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스가 있으니 당분간 물과 풀 여관을 이용하기로 하고.
이제부터 뭘 하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임무를 맡아서 모험가로써 견식을 쌓는 것도 좋아보인다.
그쪽으로 마음이 가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이세계는 레벨이란 개념이 있어서 마물을 잡으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내 주제 파악은 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죽을 위기랑 마주하는 건 너무 겁나는 일이다.
따라서 위험한 전투를 맡아줄 믿음직한 동료가 필요한데, 이게 두 번째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믿음직한 동료란 꽤 조건이 까다롭다.
몇 번 만나고 말 상대에게는 간단한 키워드로 용건이 끝나지만, 항상 곁에 두고 다니는 사람은 다르다.
잦은 최면과 섬세한 교정이 필요하다.
「내 노예가 되라」 같은, 상대의 자유 의지를 완전히 박탈해버리는 키워드는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말 한 번에 그 사람의 개성이나 매력을 없애버릴 가능성이 크다.
배신은 절대로 못하겠지만 인형이랑 다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한테 있어서 최면은 즐거운 것이다.
즐거운 생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이유로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여자를 찾는 건 꽤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운명처럼 내 앞에 나타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어떨까.
우선 광장에 나가보면 생물학적 여자는 발에 채일정도로 많이 보인다.
한 시간정도 머물며 지나다니는 여자들의 면면을 뜯어보았지만, 기준 미달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
"마물이 얼마나 불어나겠어?"
"글쎄, 마른도 위험해지는 거 아닐까?"
그러다 우연히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하는 2인조 남성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요즘 토벌 임무가 늘기는 했지."
"우리까지 나가서 싸워야할지도 몰라."
"아니, 용사 님이 있는데 그럴 일은 없지."
용사라, 레이라한테 들었었지.
구제가 필요한 세계에 대리인을 보낸다고. 그렇다면 용사같은 거창한 칭호를 달고 있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다른 신의 대리인이다. 나 역시 시작 옵션에 따라서는 용사라는 식으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용사가 신의 대리인이 맞다면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피해다녀야 할 존재다.
하지만, 방해가 되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이 세계의 위기는 그 용사가 알아서 해결하고, 나는 즐거운 일에 집중한다.
이게 가장 이상적이야.
나는 여자들을 관찰하는 걸 그만두고 모험가 길드로 갔다.
어제랑 마찬가지로 사람이 꽤 많았다.
오늘은 나도 임무를 수주하는 모험가로써 이 곳을 찾았다.
임무 게시판 앞에는 유독 사람이 많이 몰려있었다.
"보르도 던전 탐사 파티 보조 구합니다."
"3인 짐 들어주실 분 찾아요. 배분 있어요."
"고블린 잡으러 가실 분? 한 사람 찾아요."
여기는 무슨 임무를 받을지 정하는 곳이기도 하면서, 파티에 필요한 사람을 구하는 곳이기도 한 것 같다.
파티 리더가 소리내어 필요한 인원을 말하면, 같이 할 생각이 있는 모험가들이 나선다.
그런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게시판에 가까이 붙어서 여러 임무들을 살폈다.
「약초 수집」
랭크 D-
권장사항
레벨 제한 없음, 탐색 스킬 보유
「보르도 던전 탐사」
랭크 C-
권장사항
레벨 8 이상, 전투 스킬 보유 2인 이상
「고양이 찾기」
랭크 D
권장사항
레벨 제한 없음 수색 스킬 보유
임무 갯수는 꽤 되는데 정말 시시한 임무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을이 작아서 그런가?
가장 인기있는 건 고블린 퇴치같은데, 그건 어제 실컷 했잖아. 또 하고싶지는 않다.
던전 탐사라···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마침 내 레벨은 9, 전투 스킬도 갖고 있으니 파티에 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보르도 던전 최하층에 갈 겁니다. 전투원 한 명, 자신 있으신 분은 이쪽으로 오세요!"
마침 누가 파티를 모집하고 있었다.
다들 그 잘생긴 청년을 보고 떠들었다.
"오, 샐릭 아냐?'
"끝장 낼 셈인가본데."
"보르도 던전, 아직 아무도 끝까지 못갔던가?"
"최근에 발견됐으니. 끝까지 탐사한 사람이 나오면 실버 승격은 확정이나 마찬가지야."
분위기 좋은데. 샐릭은 이미 숙련된 파트너를 몇 명 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한 번 끼어볼까?
"나, 참가하고 싶은데요."
한 손을 자연스럽게 들고 다가간다.
"못 보던 얼굴인데."
샐릭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날 적대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모험가 등록을 어제 했거든요."
"풋, 하하하!"
뭐야. 다들 웃기 시작한다.
"어디서 얼빠진 놈이 와서···."
샐릭은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냈다.
"대충 입고 와서, 소도구도 갖고있지 않고, 장비품도 없고, 모험가 등록은 어제 했다고?
그런 팔푼이가 있을 자리는 없어. 약초 찾기나 더 하고 오라고."
"어이! 샐릭. 그 정도 해, 신입이 울겠다."
"제 몫만 해내면 되는 거 아냐?"
샐릭은 내 멱살을 확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당기며 말했다.
"딱 봐도 어린 철부지같은데, 이 바닥 우습게 보지마라. 1년은 약초부터 캐고, 그 전까진 눈 깔고 다녀."
어이가 없군. 뭐 한 번 싸워보자는건가?
처음에는 어차피 거절당하면 거절당하는대로 이놈 손해지.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불쾌하다.
"손 놔."
샐릭은 코웃음을 쳤다.
"뭣하면 니가 풀어보던지?"
"오, 싸운다!"
"샐릭이랑 신입이 한판 붙겠는데!"
이렇게 자기 인생을 망치고 싶다는데 안 해줄 수가 없지.
몇몇에게 보이는 걸 감수하고 핑거 스냅을 하려던 찰나였다.
모험가 길드 문이 열렸고 다들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그쪽을 보았다.
"헉···."
"세상에."
모두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겠다 싶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길드 문을 열고 걸어들어온 여성은 뜬금없이 예쁜 얼굴 하나로 사람들을 다 입다물게 만들었다.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도 오밀조밀하고 아직 소녀 티가 나는 앳된 얼굴이지만 눈매는 도발적이고 턱선이 갸름한 고양이 상.
묶어서 한쪽 옆으로 내린 우아한 백금발 머리카락에 날씬한 몸매.
그러면서도 유달리 통통한 허벅다리랑 잘 발달한 골반이 눈을 확 잡아끈다.
방금까지 있었던 불쾌한 경험이 머리 어딘가로 날아갔다. 조건에 맞는 여자를 찾았다.
오히려 외모는 내 상상을 넘었다. 여성적으로 완벽한 미인이라고 했던 벨레이라랑 동급이다.
그런 여자를 설마 또 만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 사람 설마···."
"아냐, 틀림 없어."
소녀를 가리켜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다이아급 헌터야."
"고고한 사냥꾼이 왜 마른 같은 마을에 와 있는거야?"
"실물 본 거 처음이야."
나는 얼굴만 보고 놀랐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 반응을 보니 더 놀라운 건 소녀의 정체인 듯 싶었다.
다이아급 헌터.
본래 여기에 있어선 안될 사람.
그런 얘기들이 막 오가는 가운데, 소녀는 주목이 익숙한 듯 신경도 안 쓰고 접수원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당황하는 접수원을 앞에 두고, 소녀는 말했다.
"국왕 폐하 명으로 왔습니다. 긴급 임무 지시입니다."
"긴급 임무···!"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뭔데 그게? 나도 같이 좀 놀라자.
소녀가 입을 열 때면 모험가 길드가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차기 용사 후보 선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임무 내용, 여기서 말씀 드릴까요?"
"자, 잠시만요! 길드마스터님!"
접수원이 뛰어서 간 것만큼 빠르게, 길드마스터도 뛰어서 나왔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길드마스터가 소녀를 데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소녀가 간 이후에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었다.
전혀 모르겠군. 이제부터 대해적 시대라도 열리나?
샐릭도 뒤돌아서 자기 동료들이랑 막 떠들고 있었다.
"긴급 임무라고! 이건 기회야. 바로 골드 승격까지 노릴 수 있어!"
이미 나는 안중에도 없구만.
뭐 됐다. 지금 중요한 건 얘랑 싸우는 게 아니니까.
일 년동안 약초나 찾으라고? 모험가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고?
나한텐 다 의미 없는 얘기다. 근면성실하게 실적을 쌓는 건 이놈들 시키면 된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이 마을에 우연히 찾아온 다이아 등급의 소녀를 종속시킨다.
나는 사람들이 떠드는 사이에 조용히 길드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