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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5화 (5/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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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가 길드 건물은 마을 회관만도 못한 크기라 실망스러웠지만 안에 들어갔을 때

    느낀 웅성거림과 활기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웃는 사람들, 게시판 앞에 모여 심사 숙고하며 동료들과 논의하는 모험가들.

    시끄러운 와중에도 친절한 미소로 응대하는 접수원들과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내부는 발딛을 틈도 없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오··· 굉장한데.

    겉으로만 봤을 때는 예상할 수 없었던 활기다.

    입구에서 멍청하게 서있었더니 아저씨들 몇몇이 이쪽을 보고 크게 웃었다.

    "저 녀석 얼마나 갈 것 같아?"

    "하루도 필요없지. 바로 오크 노리개 감이라고."

    "하하하. 놀리지들 말라고. 남자가 꿈은 크게 꿔야지."

    대놓고 남의 험담을 저렇게 하다니 재밌는 광경이다.

    신기하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마른에 오자마자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나는 웬만한 일은 관대한 마음으로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일단 설명을 듣기위해 줄이 가장 짧은 접수원 쪽으로 갔다.

    좀처럼 행렬이 줄어들지 않아서 왜인지 보니, 신입 접수원의 일처리가 미숙해서 손님 볼 때마다 사과하느라 바빴다.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 차례가 되었을 즈음 신입 접수원은 숨까지 거칠어져 있었다.

    기다리길 잘했다. 청순한 얼굴에, 제복 위로도 알수있는 큰 가슴. 어깨까지 오는 단정한 단발이 잘 어울리는 미인이었다.

    "모험가 등록을 하고싶은데요."

    "신부··· 시, 신규 모험가는 여기에 이름과 직업을 기입해주세요."

    ···혀 깨물은건가?

    종이를 받아서 지시한대로 써내려간다. 여신의 대리인 효과 덕분에 처음 보는 문자도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언어처럼 친숙하고 응용도 쉬웠다.

    여신의 대리인은 다양한 세계에 보내지는 것 같으니, 이런 능력이 필수겠지.

    "그런데 여기에 있는 직업이 뭐에요?"

    "마법사, 검사, 도적 같은 클래스 명칭을 뜻하는 말이에요. 어떤 스킬을 갖고 계신지 제가 봐도 될까요?"

    "네. 봐도 돼요."

    어차피 파이어 애로우밖에 없으니까.

    "와! 화염 마법을 다루시는군요. 마법사라고 적으시면 될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듯 한데 리액션이 살갑다. 싫지는 않았다. 앞으로 여길 이용해야지.

    무엇보다 접수원 가슴이 크다.

    "자격증같은 건 없어요? 신분 증명서 역할을 하는."

    "아, 모험가 냐이···라이센스 말씀이시군요! 모험가 라이센스는 첫 임무를 클리어한 후에 발급 됩니다.

    발급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이틀 정도이구요."

    "흠."

    어쩐지 등록은 쉽더라니.

    실적을 쌓아야 그 때부터 인정해주겠다는 뜻이다.

    "모험가로 오래 지내면 생기는 혜택은 없어요?"

    "완료한 임무의 난이도, 갯수에 따라 길드에 대한 뇽헌··· 공헌도가 올라서, 등급이 오르는 시스템입니다."

    ···이 아가씨, 말 더듬을 때마다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다.

    과열되서 터지는 거 아냐?

    "등급에 대해 설명해줘요."

    "네, 등급은 브론즈에서 시작해서 실적을 어느정도 쌓으면 실버, 골드, 다이아로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길드 대부분의 모험가 분들은 브론즈와 실버에서 머물고 계시구요. 골드 등급이 되면 주택 지원이 있고 매달 연금이 나옵니다."

    오···. 모험가로써 높은 등급을 목표로 하는 것도 괜찮겠다.

    떠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내 집이 있으면 마음 편하지.

    "다이아 등급이 되면 무슨 혜택이 있는데요? 설명 안해줘요?"

    갑자기 내 주변이 조용해졌다.

    뭐지? 이 열렬한 시선은. 잠시 뒤 다시 분위기가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다, 다이아 등급은··· 엄청난 재앙을 해결하신 분들에게 국왕 님께서 특별히 하사하는 등급이에요."

    접수원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연. 일개 모험가가 목표로 할 등급이 아니라는 뜻이구나.

    혜택은 굳이 안 들어봐도 될 것 같다. 내가 재앙이 되는 거면 몰라도 재앙과 싸우는 건 사절이다.

    그랬다가 이 세계에 또 있다는 여신의 대리인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걔는 둘째 치고 또 다른 신한테 미운털이 박힌다.

    적당한 판에서 대충 노는 게 핵심이다. 정색하고 세계에 영향이 갈만한 위업을 세우는 건 상상만해도 귀찮다.

    나는 다음으로 임무를 수주하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게시판에 여러가지 임무가 있어요. 임무 등급은 난이도에 따라서 D부터 S까지.

    원하는 임무를 말씀해주시면 수주 처리가 되고, 기한이 정해져요. 그 기한 안에 목표를 달성하시면 돼요."

    별로 복잡할 건 없군.

    약초를 캐오라고 하면 약초를 캐오면 되고, 뭘 잡아오라고 하면 잡아오면 되는 거다.

    마물이 있는 세상이니 당연히 뭘 잡아오는 게 주류일테고. 사람들의 생활도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겠지.

    설명은 충분히 들은 것 같다.

    "고마워요. 친절하게 알려줘서."

    "죄송합니다. 아직 미숙해서···."

    "마지막에는 더듬지 않고 똑바로 말했잖아요?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가, 감사합니다!"

    가슴 큰 접수원은 고개를 연신 숙이며 온 몸으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바로 임무나 받을까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잘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현대인이었던 내게 노숙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돈은 없지만 이럴 줄 알고 고블린의 이빨을 잔뜩 뽑아왔지!

    소재를 팔아서 돈을 번다. 기본 중 기본 아닌가?

    나는 눈에 채일대로 많은 잡화점 중 한 곳에 들어가서 고블린 이빨을 후두둑 털어놓았다.

    "이건 고블린의 이빨인데. 얼마나 쳐주실 수 있나요?"

    "으아악. 미친 놈이다! 경비병! 경비병!"

    나는 쫓겨났다. ···이게 아닌데?

    마물의 시체 일부를 모아오는 건 미친 짓인가보다.

    소란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서둘러 자리를 뜬다.

    어쩔 수 없지.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다.

    최면을 사용해야겠군.

    나는 가능한 허름하고 사람이 없는 여관을 찾아다녔다. 왜냐면, 최면을 한 번에 걸 수 있는 인원수는 제한되어있기 때문이다.

    내 시그니처 제스처이자 최면 스위치인 핑거 스냅과 손뼉 치기는 「상대의 의식을 집중시키는」 것을 트리거로 작동한다.

    조건은 손동작과 소리인데, 너무 제스처가 비슷하면 헷갈릴 수도 있으니 핑거 스냅을 최면을 걸 때, 손뼉 치기를 트랜스 상태에서 깨울 때로 통일하고 훈련해왔다.

    즉 아예 이쪽을 의식하지 않고 떠드는 사람이 많은 공간은 나한테 최악이다.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최면을 걸 수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행동이 전부 보이기 때문이다.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상황은 피해야한다.

    걸어다니다보니 골목 후미진 곳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관이 있었다.

    파리만 날린다는 말이 어쩜 이렇게 어울릴까?

    나무 바닥이랑 테이블도 제대로 안 닦았고, 이상한 냄새도 난다. 최면으로 무전취식해도 전혀 죄책감이 생길 것 같지 않은 곳이다.

    오히려 여기서 주는 거 먹었다가 배탈 나는 거 아냐?

    "뭐 해! 손님 왔잖아. 빨리 주문 받아 와!"

    "어, 어서오세요!"

    안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물빛 머리를 한 여자가 위축된 얼굴로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이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음···. 참, 바라지도 않았던 불편한 얘기다.

    하지만 이 여관에 오길 잘했다. 부인이 상당히 예쁘다. 펑퍼짐한 옷 위로도 알 수 있는 발달한 골반과 가슴에 눈이 간다.

    옷은 낡고 허름하지만 피부는 윤기있고 머리카락과 손톱 손질도 꼼꼼하다. 여관이 청결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남편의 행패가 문제인 듯 싶었다.

    "저··· 손님?"

    여성은 내가 말 없이 몸을 뚫어지게 보고있으니 겁을 먹은 듯 했다.

    "여기서 제일 맛있는 걸로 줘요. 2인분."

    오늘 들어간 게 물밖에 없는 내 배는 고형물을 원하며 꾸르륵 소리를 냈다.

    "네!"

    나는 인벤토리에서 별빛 조개를 꺼내서 들여다봤다.

    이건 대체 어디다 쓰는거지? 악세사리인가? 설마, 레이라가 이런 귀여운 악세사리를 머리에 단 모습은 상상이 안된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어디 볼까?

    메뉴는 흰살 생선으로 만든 스프인 듯 하다. 한 숟가락 떠서 냄새를 맡아봤지만 비린내도 없고 좋은 향이 났다.

    기대도 안했는데 꽤 맛있었다.

    "하루 묵고 싶은데 방 있어요?"

    식사를 마치고 접수대로 갔더니 얼굴에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아저씨가 접수대로 나와서 말했다.

    "2층 3번째 방 쓰시오. 방금 먹은 음식 값이랑 해서 35 실버요."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가게 주인. 나는 이미 돈을 지불했다. 너는 숙박하는 손님에게 아내와의 하룻밤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제공할··· 의무."

    "와이프는 항상 손님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접대를 한다. 그게 너의 기쁨이다."

    "···네."

    짝!

    손뼉을 쳐서 트랜스 상태를 해제하고, 나는 열쇠를 받아들었다.

    "손님, 원하신다면 제 아내를 올려보내겠습니다."

    "올려 보낸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괜히 모른 척 시치미를 뗀다.

    "제 아내의 명품 보지는 우리 물과풀 여관의 숙박 서비스입니다."

    물빛 머리 유부녀는 흠칫하며 수줍은 듯 우물쭈물 한다.

    "명품이라니 안 박아볼 수가 없네, 그 보지. 바로 보내줘요."

    "예, 알겠습니다. 손님."

    나는 2층으로 올라왔다. 바닥 곳곳이 삐걱거려서 별 기대도 안했지만 방은 나름 깨끗했다.

    푹신한 침대같은 건 없지만 촛불 하나로 간신히 밝히는 낡은 방에서 이세계 정취를 느낀다.

    항상 잘 정돈된 내 방만 보고 살았더니 이런 게 신선하기는 했다.

    하지만, 항상 이런데서 잘 수는 없지. 내일부터 어디서 잘지. 그 문제도 함께 생각해야할 것 같았다.

    침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저어, 모험가 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요."

    그녀는 방금 씻은 듯 물기 있는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남자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듯 속이 다 비쳐보이는 얇은 천을 두르고 은밀한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오늘 손님에게 보···보지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아나이스입니다."

    아나이스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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