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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세계 최면물-3화 (3/414)
  • 대충 이세계 최면물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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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갑고 맑은 공기가 느껴진다.

    폐 깊숙이 들이쉬고 힘차게 내뱉어본다. 이세계 전이에 성공했다.

    설정한대로 나는 숲 한복판에 떨어졌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 왕국을 구할 용사로 소환, 수수께끼의 대현자한테 소환같은 다양한 시작 옵션이 있었지만 전부 내쳤다.

    막 전이할 때는 아무 사연도 연고도 없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대충 숲에서 시작했으나 필요한 건 받았다.

    "스테이터스 오픈"

    레벨 : 1

    상태 HP 50/50 MP 120/120

    벨레이라의 가호(진) 「불 면역, 불 마법 위력 상승, 모든 스킬 숙련값 ++」

    여신의 대리인「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

    능력치

    힘 5 마력 7 체력 7 민첩 5

    스킬

    파이어 애로우(☆) - 가장 기초적이지만 실용적인 불 마법. 불안정해서 금세 없어진다.

    레이라한테 받은 가호랑 대리인 자격을 확인한다.

    레이라가 말하길 이 세계에는 이미 다른 신의 대리인이 있어서 마주치면 위험하다고 한다.

    신들끼리 큰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나.

    레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내가 시켰지만─ 나를 다른 신의 세계에 난입시켰다.

    어차피 세계를 구할 용사랑 내가 마주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잘 피해서 다니자. 새로운 삶을 즐기자.

    이 세계에는 마물이라는 게 나온다고 한다.

    이 숲에서 나오는 마물은 기초 마법으로 물리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들었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모처럼 가호를 받았으니, 허무하게 칼 맞고 죽지 않을 정도로 힘을 기르고 싶다.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찾으며 가능한 마물을 쓰러뜨린다.

    이게 눈 앞의 목표였다.

    "인벤토리 오픈."

    오기 전에 간략하게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원래 세계에는 없던 기능이라 낯설었다.

    여신의 대리인이 부여받는 개인 보관함 기능과 스테이터스 가이드.

    몇 번 열었다 닫았다 해보니, 꼭 음성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우선 벨레이라에게 받은─뺏은─ 몇 가지 아이템들을 확인한다.

    [별빛 조개][집속 팔찌][팔색 대왕 조개][여신의 물병]

    분명히 여행하기에 좋은 물건으로 챙겨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척 봤을 때 쓰잘데기 없어보이는 물건이 둘이나 있다.

    조개를 대체 어디에 쓰라는 말이야?

    일부러 쓸데없는 걸 줬을리는 없고. 레이라가 갖고있는 물건 중 별 게 없었던 것 같다.

    하나씩 확인해보자.

    "여신의 물병"

    물병이 개인 보관함에서 손으로 이동한다.

    물병은 여우와 두루미 얘기에서 나올 법한 주둥이가 긴 호리호리한 물병이었는데, 흔들어보니 액체같은 게 들어있었다.

    바로 마셔볼까?

    "음."

    (피로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냥 물이었다.

    특이사항은 병에 든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험삼아 바닥에 부어봤는데 끝없이 쏟아져나왔다.

    "좋은데?"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레이라가 내 말 뜻을 잘 이해한 것 같았다.

    집속 팔찌는 장비품이니 일단 손목에 끼우고, 별빛 조개를 꺼내들었다.

    한 손에 잡힐정도로 작고 예쁜 조개다.

    레이라가 이걸 꺼낼 때, 「이것만은···.」하며 울먹였던 걸 생각하면 좋은 물건 같은데.

    무슨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감정 맡겨볼까? 수집품이라는 게 밝혀지면 확 팔아버려야지.

    대왕 조개는 이름처럼 너무 컸다.

    인벤토리에서 봐도 돗자리처럼 바닥에 깔고 앉아도 될만큼 큰 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중에 살피기로 했다.

    지금은 어서 움직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때, 수풀이 요란스럽게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바로 근처에 있던 큰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저게 마물인가?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이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생김새.

    난쟁이같은 키에 울퉁불퉁한 초록색 피부를 하고 긴 혀랑 노란 눈동자가 파충류의 특징을 섞어놓은 것 같기도 해서 무척 흉물스러웠다.

    우연의 일치인지 고블린이랑 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크륵. 크르륵."

    고블린은 두 마리. 서로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서성이고 있다.

    선제공격을 해볼까?

    레이라 말로는, 이 숲에는 위험할만한 요인이 없다고는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싸움을 걸기는 좀 그렇다.

    안전하게 최면으로 제압하고 경험치를 먹는 식으로 가자.

    바위에서 슥 걸어나오자 고블린 두 마리의 시선이 나한테 못박혔다.

    "크륵! 크륵!"

    "안녕?"

    나는 오른손을 내밀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크르륵!"

    뭐야? 최면이 안 걸리잖아.

    고블린이 몽둥이를 들고 이쪽으로 달려든다. 동작이 굼떠서 피할 수 있었지만, 나는 조바심이 났다.

    최면이 안먹힌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다.

    설마, 사람이 아니라서?

    "카악! 카악!"

    고블린이 위협적인 몸동작을 보이며 소리를 지른다.

    생각은 나중에하자. 동료를 불러모으면 골치아플 수도 있다.

    어떻게 새로운 세계로 왔는데 다시 싸늘한 주검이 될 순 없지.

    "파이어 애로우!"

    몸 안에서 무언가 빨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MP를 소모하는 느낌인 듯 하다.

    내가 손을 뻗은 쪽에서 팔뚝만한 불덩이가 생성되었다.

    쏜살같이 날아갈 줄 알았더니 불덩이는 느긋하게 몽긋거리며 화살의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느려터졌잖아!"

    그 사이에 고블린 한 놈이 벌써 돌격한다.

    에라이, 20년간 써온 주먹이 더 낫겠다! 어차피 체급 차이도 나는데.

    나는 그냥 고블린을 붙잡고 존나 팼다.

    "훅! 후욱!"

    "끄륵! 끄르륵!"

    무릎으로 찍고! 손으로 내려치고! 싸대기를 때리고!

    처음 겪는 전투라는 상황때문인지 숨이 급하게 차올랐다. 하지만 효과적이었다.

    "동네 강아지도 너희보단 잘싸우겠다!"

    한 놈은 완전히 뻗었다.

    내가 강하다는 걸 확인한 덕분인지 시야도 넓어지고 여유도 생겼다.

    다른 하나는 그냥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준비된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다.

    "오."

    별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파이어 애로우는 고블린의 가슴팍에 꽂히자마자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터졌다.

    불꽃놀이보다 소박한 느낌이었지만 고블린의 가슴팍이 검게 그을린 걸 보면 확실히 내 주먹보다 위력은 좋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파이어 애로우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고블린 두 마리를 쓰러뜨리고, 나는 한 차례 성장했다.

    어디, 얼마나 변했나 볼까.

    레벨 : 2

    상태 HP 63/63 MP 112/135

    벨레이라의 가호(진) 「불 면역, 불 마법 위력 상승, 모든 스킬 숙련값 ++」

    여신의 대리인「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

    능력치

    힘 9 마력 11 체력 8 민첩 6

    스킬

    파이어 애로우(☆) - 가장 기초적이지만 실용적인 불 마법. 불안정해서 금세 없어진다.

    무언가 변하기는 했다.

    아직 눈에 띌만한 차이는 없지만 요령을 터득한 기분이었다.

    물이나 한 모금 마시고 가자.

    (피로가 회복되었습니다.)

    (MP가 회복되었습니다.)

    뭐야, MP도 채워주네?

    즐거운 생각이 났다.

    나는 숲을 종횡무진 누비며, 고블린들을 닥치는대로 죽였다.

    "파이어 애로우!"

    한 손에는 물병을 들고, 왼손을 뻗어 마법을 즉시 시전한다.

    레벨이 오르고 숙련도가 오를수록 파이어 애로우의 위력과 시전 속도는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파이어 애로우!"

    내 안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증명하듯이, 눈에 마물 비슷한 것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죽이며 뛰어다녔다.

    그 결과.

    레벨 : 9

    상태

    HP 221/221 MP 259/394

    벨레이라의 가호(진) 「불 면역, 불 마법 위력 상승, 모든 스킬 숙련값 ++」

    여신의 대리인「모든 언어로 소통하고, 모든 문자를 독해한다. 세계를 넘나들 자격.」

    능력치

    힘 36 마력 55 체력 42 민첩 44

    스킬

    파이어 애로우(★) - 가장 기초적이지만 실용적인 불 마법. 잔불이 남아 추가피해를 주기도 한다.

    파이어 애로우의 시전 준비 시간은 약 3초.

    위력은 정통으로 맞히기만 하면 고블린을 한 방에 쓰러뜨릴 정도는 된다.

    이제 고블린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군.

    고블린보다 강하고 위험한 적들이 나타나면? 나한테 괴물이랑 몸으로 부대끼며 싸울 재주나 배짱은 없다.

    내 전투력은 지극히 한국 성인 남성 평균이다.

    가지고 있는 스킬도 마법이 전부.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지만, 당장 「마물에게 최면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내게 몹시 위협적이다.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다. 마을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피로가 회복되었습니다.)

    (MP가 회복되었습니다.)

    여신의 물병을 홀짝거리며 계속 걸었더니, 정비된 길이 보였다.

    혹시 약속처럼 위기에 처한 미녀를 구하는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헛된 망상이었다.

    아무리 연약해도 대낮에 저 고블린들에게 당할 사람이 있겠어?

    숲이라고는 해도 마을 근처에 떨어트려달라고 했으니, 마물이 약한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왜냐. 사람 사는 곳 근처에 널린 마물들이 터무니없이 강한 세계같은 건 내가 다 거절했으니까.

    멀찍이 마을이 보인다.

    원래 세계 도시에 비하면 코웃음이 날 규모지만, 널찍한 공간에 집들이 아기자기 모여있는 예쁜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는 철갑옷을 걸친 경비 둘이 지키고 있었다. 총도 아니고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귀엽다.

    물론 까불다가 찔리기라도 하면 총 맞은 것만큼 아프겠지만···.

    저들은 이세계의 주민이다. 진지하게 접근하자.

    여기가 마법이 있고 마물이 돌아다니는 세계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멈춰라. 신분 증명서를 보여라."

    "없습니다."

    "이름은? 모험가 길드에 등록되어 있나?"

    "아뇨."

    경비병은 내 말을 듣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엄한 태도로 말했다.

    "수상하군. 따라와라. 범죄 기록이 있는지 확인하겠다."

    "네."

    나는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경비병을 따라갔다.

    최면을 걸어서 지나쳐도 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끝맺을지 궁금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여유있게 경비병을 따라 걷는다.

    "이 방 안에서 기다려라."

    "네."

    취조실 같은 곳인가?

    바깥에서 봤을 때는 경비병들이 머무는 숙소처럼 보였다. 경비병들이 치안을 지키기 때문인지 방은 온통 차가운 회색빛이다.

    사적인 물건도 거의 없었다. 딱딱한 테이블에 딱딱한 의자 둘. 벽에는 의장용 무기가 걸려있고 물을 준 지 오래되어보이는 꽃병이 협탁에 하나 놓여있는 게 전부였다.

    기다리고 있었더니, 뜻밖에도 젊은 여자가 경비병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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