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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입호혈언득호자(不入虎穴焉得虎子)
대원정에서 돌아온 정화를 치하하기 위해서 보화전에 연회를 준비한 황제였다. 보화전은 도서관과 비슷한 역할을 했지만, 가끔 연회를 벌이는 장소나 과거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그런 보화전에 어느덧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바로 황제와 정화였다. 황제의 명으로 정화 혼자 남아서 독대를 하게 되었고, 연회에 참석한 다른 자들은 자리를 옮기라는 황제의 명과 함께 모두 보화전을 빠져나갔다.
언제 연회가 있었냐는 듯 깨끗하게 치워진 보화전에는 황제와 정화가 마주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호위까지 모두를 물린 황제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정화를 바라봤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와 주름진 정화의 얼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황제였다. 그리고 그런 황제의 눈빛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짓는 정화였다.
'그분의 모습과 닮았구나. 역시 피는 속이지 못 하는 것인가?'
자신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이는 선덕제의 얼굴에서 그의 조부인 영락제의 모습을 확인한 정화였다. 종종 이런 식으로 독대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던 그가 이내 자신의 모습을 깨달으며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번 원정이 그대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던 것 같소. 내 욕심으로 그대를 먼 원정길에 보냈지만, 이렇게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되니…… 마음이 아프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무공을 익힌 그대가 이렇게 달라진 연유가 무엇이오? 혹, 몹쓸 병이라도 걸린 것이오?"
"아니옵니다. 폐하. 그저 때가 된 것이옵니다."
"…… 때라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신도 이제 천수를 다해간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되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그 때를 준비해야 함이 당연한 줄 압니다. 폐하."
"……."
정화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황제였다. 그렇게 대원정을 떠나기 직전까지 정정하던 모습을 보였던 정화였기 때문에 더 안타까워하는 그였다. 마치 하얗게 새어버린, 깊게 파인 주름이 모두 자신이 내린 명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황제였다.
그런 황제의 모습에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가는 정화였다.
"괘념치 마시옵소서. 폐하.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뿐이옵니다."
"흐음. 허나…… 내 마음이 무겁구려."
침음을 삼키는 황제의 모습이 송구한 듯 더욱 고개를 숙이는 정화였다. 편치 않는 그 모습에 정화를 배려한 황제가 화제를 돌렸다.
"크흠. 이렇게 그대를 따로 부른 연유 중 하나가 바로 동창 때문이오."
"동창…… 말씀이시옵니까?"
"맞소. 짐의 손과 발이 된 그 동창이오. 이번에 행한 대원정과 무림에서의 짐이 명했던 일은 대단히 흡족한 결과를 내었소. 모두 그대와 동창의 첩형인 아삼의 공이라고 할 수 있겠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소신보다는 아삼이라는 아이가 힘을 쓴 결과이옵니다."
"하하하. 그 아삼을 이끈 것이 그대가 아니오."
"황공하옵니다."
"그래서 그 공을 세운 그대와 아삼에게 상을 내릴 생각이오. 어떤 것을 원하는지 묻기 위해서 이렇게 따로 부른 것이오. 어떤 상을 내리는 것이 좋겠소?"
황제의 물음에 선뜻 답을 하지 않는 정화였다. 그런 정화의 모습에 미소를 보인 황제였고 그의 고심을 덜어줄 요량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삼에게는 동창의 제독 자리를 내릴 생각이오. 그 자리가 비었으니 응당 아삼이 그 자리에 앉아야 하지 않겠소? 그대에게는 무엇이 좋을지 고심하던 중이오. 원하는 것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을 해 보시오."
"……."
제독이라는 말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화였다. 그 역시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듣고 아삼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번에 세운 공과 그 과를 상쇄시킬 수 있을까? 괜히 언급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
한참을 고심하는 정화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심각한 그의 표정에 이상함을 느낀 황제가 충분한 시간을 주려는 듯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반식경이 되지 않는 시간동안 고심하던 정화가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황제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개의치 말고 말을 해 보시오. 설령 그대가 역심을 품었더라도 그대의 과오를 용서해 주리다."
"소인이 어찌……"
"하하하. 농이오. 천하의 정화가 어찌 역심을 품을 수 있단 말이오? 그대의 그 어떤 청도 들어줄 것이니 개의치 말고 말을 하라는 뜻이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실은…… 실은 한 가지 죄를 청하고 그 죄를 면책을 받고 싶사옵니다."
"죄? 죄라…… 흐음. 말해 보시오."
사뭇 진지한 정화의 태도에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황제였다. 그리고 그런 황제를 향해 조심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정화였다.
"첩형의 자리에 있는 아삼이 익힌…… 아삼이 익힌 무공에 관한 내용이옵니다."
"무공? 그가 익힌 무공이 죄가 된단 말이오?"
"그것이…… 규화보전을 익혔사옵니다. 황궁무고에 있을 당시에 몰래 익힌 무공으로, 그 무공을 익힌 아삼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
"폐하에게 충심을 다 하는 아이옵니다. 혹, 그것이 그 아이의 치부가 될까 두렵사옵니다. 그 아이의 죄를 사하고 중히 쓰시옵소서."
자신의 공으로 아삼의 죄를 사하려는 정화였다. 이미 아삼이 규화보전을 익힌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삼이 보인 행보와 함께 앞으로도 여실히 드러날 무공의 특성을 보면 누군가는 규화보전이라는 무공과 연관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차라리 지금 황제에게 그 죄를 용서받고, 윤허를 받는다면 앞으로 아삼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기는 정화였다.
그렇게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는 정화였지만 정화의 걱정과 달리 너무나도 쉽게 답을 내놓는 황제였다. 정화의 청을 흔쾌히 수락하는 황제는 오히려 그 사실에 흥미를 가지는 듯 만면에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아삼이 익힌 무공이 규화보전이란 말이오? 흐음. 대단한 재능이오. 내 알기로 그 무공을 익힌 자는 거의 없다고 하던데……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니오?"
"하오시면……"
"짐에게 충성을 바치는 수하의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좋은 일이 아니오? 이는 짐의 복과 함께 우리 명의 복이오. 응당 짐이 보듬어야할 일이니 그것은 죄가 될 수 없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것이 죄가 아니니, 다른 것을 말하시오. 짐은 아직 그대의 청을 듣지 못 했소."
황제의 말에 고개를 숙이는 정화였다. 그런 정화를 채근하는 황제였고 다시 고심하던 정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오시면…… 소신에게 황궁무고를 열람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황궁무고? 다시 무공을 익힐 생각이오?"
"아니옵니다. 폐하. 필요한 것이 그곳에 있는지 찾아보고 싶사옵니다."
"좋소. 그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소. 단, 내 그대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소."
"하명하시옵소서."
"그대는…… 건강을 돌보시오. 내 마음이 편치 않소. 기력을 되찾아서 다시 예전의 그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오."
"황은이 망극하오이다. 폐하."
황제의 말에 몸을 낮추는 정화였다. 그리고 그런 정화를 바라보며 미소를 보이던 황제가 크게 외쳤다.
"게 누구 있느냐?"
"부르셨습니까? 폐하."
황제의 부름에 종종걸음을 하며 달려온 환관이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 환관을 향해 황제가 명을 내렸다.
"가서 어의를 불러오너라. 정화 태감에게 약을 내릴 것이다. 기력을 보충하고 활력을 띠게 만들 보약을 내릴 것이다. 약제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 폐하."
환관을 내보낸 황제가 아직까지 엎드려있는 정화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자신을 위해 힘을 썼던 자들에게 상을 내리는 황제였고 정화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비쳤다.
***
정화와의 독대를 마친 황제는 따로 아삼을 불렀다. 늦은 밤, 은밀히 자신을 부르는 황제의 명에 그 의중을 헤아리려던 아삼이었지만 쉽게 짐작할 수는 없었다.
'공공원후에 대해서 질책을 하려 하심인가? 아니면……'
어느새 보화전에 다다른 아삼이 주변을 훑어봤다.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검교의 고수를 떠올린 그가 문 앞에 섰고 그 모습을 확인한 환관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내 그가 안에 들어서며 은밀히 황제에게 고했다.
"동창 첩형. 문아삼이 들었사옵니다. 폐하."
"들라하라."
중후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용상 위에 앉아서 내려보는 황제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며 들어서는 아삼이었다. 어느덧 궁중의 예법이 몸에 베어버린 듯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그였고 숙인 고개 사이로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생활에 적응한 자신의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다하는 아삼의 모습에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황제가 말을 이어갔다.
"고개를 들라."
"……."
"흐음. 짐을 끝까지 속이려 함이더냐?"
황제의 말에 아삼의 몸이 움찔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놀란 그가 황제를 바라봤고 아삼의 시선을 접한 황제가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미 다 들어서 알고 있다. 굳이 나에게까지 그 전심어서라는 것을 숨길 필요가 있겠더냐?"
- …… 황공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그래. 좋구나. 좋아. 무공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구나. 네 불편한 점을 없앨 수 있다니. 그래, 이번에 내린 명을 잘 수행했더구나.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고생이 많았다."
- 황공하옵니다. 폐하.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정화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아삼의 태도에 흡족해 하는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미소를 보이며 아삼을 바라봤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황제의 태도에 긴장한 듯 고개를 조아리는 아삼이었다.
"너를 이리 따로 부른 것은 이번에 네 공을 치하하기 위함이다. 비어있는 동창의 제독 자리를 네가 맡아야 할 것이다.
- …… 황공하옵니다. 폐하.
황제의 명에 고개를 숙이는 아삼이었지만 딱히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유를 갈망하는 그였다. 동창의 제독이라는 자리에 앉는다면 권력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었지만 그만큼 자신을 견제하는 인사들이 늘어날 것이었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가까운 곳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황제의 눈치까지 살펴야만 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바로 목이 떨어질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자리였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무덤덤한 아삼의 모습에 웃음을 보였던 황제가 의아해 했다. 크게 좋아하지 않는 그 모습에 그의 의중을 어느 정도 눈치 챈 황제가 아삼을 향해 물었다.
"썩 내키지 않는 것이냐?"
- 아니옵니다. 폐하.
"흐음. 따로 원하는 것이 있느냐? 아니면 다른 연유라도 있는 것이냐?"
딱딱하게 변한 황제의 물음에 눈치를 살피던 아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소신이 그런 중임을 맡는 것이 염려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반발하는 자들도 적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소신이 맡기에는……
"되었다. 내 뜻이 거기에 있는데 누가 왈가왈부한다는 것이냐?"
"……."
"그와 더불어서 네 죄를 사하고 한 가지 무공을 내릴 것이다."
황제의 말과 함께 아삼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죄를 사한다는 말과 무공이라는 말에 한 가지 일이 번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규화보전이다. 내가 규화보전을 익혔다는 사실을 안 것인가? 어떻게……'
생각을 이어가던 아삼의 머릿속에 정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황궁으로 복귀하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황제를 만났을 법한 사람은 정화뿐이었다.
그리고 그 죄를 사한다는 말에 놀란 아삼이 다시 황제를 바라봤고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그가 급히 머리를 숙였다.
"규화보전을 익혔다지? 대단하구나. 그동안 누구도 익히지 못한 그 무공을 익혔다니."
- 황공하옵니다. 폐하.
"너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화의 청으로 몰래 그 무공을 익힌 네 죄를 없앨 것이다. 그리고 그 비급을 내려, 네가 익힌 무공은 온전히 내 윤허로 익힌 것으로 될 것이다. 하여, 네가 가지고 있는 죄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너에게 치부는 없을 것이란 말이다."
"……."
"너를 질시하고 음해하려는 자들도 그 일로 선뜻 나서기 힘들 것이다. 동창 제독의 자리에 앉아서 앞으로도 짐을 잘 보필하라."
-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더불어……"
"……."
"황실의 안녕을 위해 일해야 할 것이다. 선황께서 그랬듯이 내 너에게도 당부할 말이 있다."
- 하명하시옵소서.
"이건 명이 아니다. 짐 역시 한 아이를 둔 아비의 입장에서 바라는 마음이다. 태자인 기진(祁鎭)을 잘 보필해 줬으면 좋겠구나. 언젠가 내가 내린 무공으로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어떠하냐? 내 청을 들어주겠느냐?"
- 예. 폐하.
"하하하하. 좋구나. 좋아. 이제 황궁에 몰래 숨어있는 놈들만 뿌리 뽑는다면 더 이상 황실을 위협하는 자들은 없겠구나. 동창의 제독이 되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황공하옵니다. 폐하.
"그래. 이만 물러가 보라. 조만간 교지를 내릴 것이다. 그동안 여독을 풀고 휴식을 취하라."
황제의 말에 읍을 하는 아삼이었다.
다시 한 번 정화의 도움을 받은 그였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동창의 제독이라…… 결국에는 그 자리에 올라선 것인가?'
보화전에서 나온 아삼의 시선이 어두운 하늘로 향했다. 유독 시리게 빛나는 별에 정신을 빼앗긴 듯 그렇게 한참을 하늘만 올려다보는 아삼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그 얼굴에는 어느새 미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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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