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82화 (18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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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동주(吳越同舟)

    "우리 개방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공공가는 원의 잔당으로 원래 무림의 세가는 아니었소."

    - 무림의 세가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숙성의 돈황에서 제법 알려진 상가라는 것이 맞을 것이오. 그런 상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몇십 년 전 부터요."

    "상가를 호위하던 무인들과 함께 조금씩 무인을 모으면서 무가로 그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동안 주변의 여러 문파들과 대립을 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들을 물리친 공공가가 점점 무가로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아삼을 향해 말을 하던 송헌의 말을 끊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전하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의 모습이 인상을 찌푸리는 송헌이었다.

    개방인 그는 하오문에 적을 둔 전소평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전소평 또한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말을 하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의 시선에 헛기침을 내뱉은 송헌이 말을 이어갔다.

    "크흠. 그렇소. 그렇게 무가로 모습을 바꿨지만, 공공가는 무공을 수련하는 곳이 아니라 원에 의해 빼앗긴 각 문파의 비급들을 비교하며 그 초식을 정리하는 곳이라는 것이 우리 개방의 추측이오. 그동안 무림에 나타났던 자들은 공공가에서 정리한 타 문파들의 절기들을 익힌 자들로 일부러 무림에 혼란을 일으키려는 듯한 행동을 취한 것이오."

    개방 장로인 송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그들이었고 그런 개방의 정보력에 놀라워하는 그였다.

    그런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문초를 한 자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원체 입이 무거운 놈들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도 힘들고 오래 걸렸지만 개방 역시 자신들과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아삼이었다. 무림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개방의 정보력과 분석력이 새삼 대단하다고 여기는 그였다.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던 아삼이 다시 전소평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를 향해 전심어서로 나직이 물었다.

    - 병력들은 어찌 되었느냐?

    "명령하신대로 감숙의 도지휘사에게 준비하라 일러두었습니다. 명을 내리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전소평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고 이내 각 문파의 장로들을 향해 전심어서로 말을 잇는 그였다.

    - 명일 인시에 공공가를 칠 것이오. 다들 준비하시오. 그리고 다시 일러두지만 우리의 뜻에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말에 마뜩잖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감숙성에서의 일을 끝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마음먹는 아삼이었다.

    다수의 무인과 관인들이 빠르게 대로를 내달렸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수많은 관군들이 함께 했고 지축을 울리는 그들의 내달림에 밖을 내다보던 백성들 모두가 기겁을 하며 몸을 숨겼다.

    그 무리들 중 앞서 달리던 아삼이 바로 뒤따르는 문파들을 이끄는 자들에게 명을 내렸다. 전심어서로 은밀히 행해지는 명에 그들의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마지못해 답을 하며 함께 이끌던 문파의 무인들을 움직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산개한 그들이 커다란 공공가의 장원 주위를 은밀히 감쌌다.

    그와 동시에 아삼의 명이 모두의 귀에 꽂혀들었다.

    - 지금까지 있던 일들의 끝을 맺을 것이다. 안에 있는 자들을 모두 추포하라.

    그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변을 에워쌌던 무인과 관인들이 공공가의 장원을 향해 들이쳤다. 제법 무공이 높은 자들이 안으로 쳐들어갔고 남은 병력들은 무장을 한 채 공공가의 장원을 포위했다.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물샐 틈 없이 막아낸 장원 근처에는 수많은 병력이 배치되었다.

    들이치는 낯선 그들의 모습에 장원 곳곳에서 불이 켜졌다. 동시에 몇 마리의 전서구가 하늘을 날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장원을 포위하던 병력들이 활로 날아오르는 놈들을 잡아냈기 때문이다.

    공공가의 장원으로 쳐들어가는 고수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 그들을 맞이한 공공가의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쳤지만 그것도 잠시, 희끗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매섭게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내기를 가득 실은 그 소리에 들이치던 병력들이 주춤거렸고, 그런 그들을 대신해서 뒤따르던 문파들의 무인들이 나섰다.

    "네 놈들의 손에 들어간 귀한 것들을 다시 되찾으러 왔다."

    그런 노인을 향해 매섭게 소리치며 제일 먼저 달려드는 사람은 바로 허윤이었다. 바닥을 박찬 그가 제운종을 펼치며 순식간에 그를 향해 달려들었고 꺼내 검이 시린 궤적을 그렸다. 그런 허윤을 필두로 그곳에 있던 무인들이 공공가의 무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의 입에 진한 호선이 그려졌다.

    - 최대한 잡아들여라. 가급적이면 생포를 해야 할 것이다!

    아삼의 전심어서에 검을 뿌리던 그들의 미간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의 명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가급적 피하려는 그들이었다.

    많은 고수들이 공공가를 급습하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몇몇 무인들이 나서서 그들을 막아섰지만, 무당의 청명이나 화산의 조충, 점창과 곤륜의 장로와 다수의 무인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점창의 쾌검에 손이 잘린 무인이 고통스러워했고 그런 무인의 혈을 점한 점창의 장로가 차가운 시선을 뿌렸다. 그리고 무당과 화산의 검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들이었다.

    꽤 치열할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제압당하는 그들의 모습에 의아해 하는 아삼이었다. 가주로 보이는 자의 모습도 없었고, 변변찮은 무인들도 많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중소문파의 수준에 그친, 어쩌면 일반적인 중소문파보다 떨어지는 무력을 가진 그들의 모습이 꺼림칙한 아삼이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들을 제압한 관과 무림의 문파들이었다.

    별다른 희생 없이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습을 감행한 대부분의 얼굴은 밝았지만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바라보던 아삼을 비롯한 몇몇 인사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앉아있는 아삼의 모습에 감숙성의 도지휘첨사가 조심스럽게 나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첩형. 확실히 저 무림인들 덕분에 희생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

    지휘첨사의 말에도 얼굴이 펴지지 않는 아삼이었다. 그 모습에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읽은 그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고 그런 그의 자리를 전소평이 채웠다.

    "남은 공공가의 인사들을 모두 잡아들였습니다. 이제 저들을 문초하고 다른 증좌들과 문파들의 비급을 확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을 마친 것 같습니다. 혹, 도주한 자가 있는지 바로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따로 명을 내리실 것이 있으십니까?"

    아삼의 눈치를 살피며 묻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의 말에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삼이었다.

    - 수월했다. 그래? 너무 수월했지. 너무 수월했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삼을 향해 되묻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로 말을 잇는 아삼이었다.

    - 너무 수월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원의 부활을 꿈꾸며 지금껏 살아남았던 저들이다. 헌데 이리 쉽게 무너지는 것이 너무 이상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내로라하는 문파들이 합세를 해서 저렇게 무너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 도망친 자들이 있을지도……"

    - 아니. 저들 또한 그 내로라하는 문파들의 절기를 익혔던 자들이다. 그리고 공공가는 그 절기들을 비교하며 공부했다던 자들이 아니더냐? 헌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 절정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무공을 가지고 있더군. 사천에서 부딪쳤던 놈들보다 그 전력은 더욱 떨어졌다.

    "…….'

    - 타 문파의 비급을 다루는 그런 중한 일을 하는 곳인데 그 무력이 너무 약하다? 눈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뭔가 숨기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아삼의 전심어서에 전소평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혹시라도 공공가의 수뇌부들이 다른 곳으로 피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그들이었다. 이미 은밀히 그들을 살피고 있었던 관과 무림이었다.

    '하긴, 응당 보여야 했을 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애초에 돈황에 낯선 인사들이 모여들었을 때, 그들의 움직임이 있어야만 했다. 그들의 안방이라고 할 만한 곳에 수상한 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침묵하고 있던 그들의 행동이 새삼 이상하다고 여기는 전소평이었다.

    감숙성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내려진 아삼의 지시로 공공가의 동향을 살펴왔던 그였다. 하지만 공공가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움직임이 없었다. 은연중에 그들을 감시하고 감숙성의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공공가의 사람들을 막았다는 것이 괜한 짓을 한 것처럼 조용했던 그들이었다. 특히나 그들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너무나 쉽게 무너진 것 같았다.

    이내 심각한 얼굴로 아삼을 바라보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로 명을 내리는 아삼이었다.

    - 공공가에서 잡아들인 이들을 문초하거라.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토설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장원 곳곳에 숨은 장소가 있는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혹 그들이 그곳으로 도망쳤다면 금방 쫓을 수 있도록 병력을 대기시켜 놓거라.

    아삼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고 이내 빠르게 처소를 나서는 전소평을 바라보며 두 눈을 빛내는 아삼이었다.

    '분명히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흐음.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고심에 잠기는 아삼이었다.

    ***

    공공가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는 의심은 관만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무림 쪽 인사들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직접적으로 아삼을 대면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관과 같이 자리할수록 불편해지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동창의 문초 장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들의 심경이 편할 리가 없었다. 아삼의 명으로 동원된 동창의 요원들이 공공가에 남아있던 자들을 문초하는 장면은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볼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을 갖은 그들이었지만 그 시일이 길지는 않았다. 이전에 경험에 힘입어서 아삼의 내기가 큰 도움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고 있는 내용을 토설하는 그들이었다.

    아삼의 처소로 다급히 들어선 전소평의 두 뺨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내 아삼을 향해 예를 올린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첩형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저희들이 잡아들인 놈들은 그저 공공가를 지키는 무인들일 뿐이었고 그들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은 첩형께서 이곳 돈황에 오기 전에 빠져나갔다 합니다."

    - 빠져나갔다? 허면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이냐?

    전소평의 보고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묻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하는 전소평이었다.

    "아닙니다. 우리가 오는 것은 저들도 몰랐다고 합니다. 여러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미 그때는 물샐 틈 없이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달리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은밀히 돈황을 빠져나간 것은 다른 중한 일이 있어서 그랬다 합니다."

    - 다른 중한 일?

    "예. 그때 당호상단의 상단주와 마교에서 검마라고 불리던 하도강이 밀서를 주고받은 것을 기억하십니까?"

    - 마교? 계속 말해 보거라.

    "아무래도 마교의 하도강이라는 자가 일을 꾸민 것 같습니다. 하도강이 마교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 공공가에 있는 무인들이 그를 돕기 위해서 마교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

    전소평의 말에 아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란 그였다.

    '하도강이라면…… 원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다는 자가 아닌가? 어떻게 그런 자가 원의 잔당과 손을 잡을 수가 있지? 그리고 이놈들은 무슨 이유로 하도강을 도운단 말인가?'

    알 수 없는 그들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는 아삼이었다.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 아희의 얼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안전할 것이라고 여기던 누이였지만 그들의 싸움에 휘말린다면 그것 또한 걱정이었다. 이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고심에 잠기는 아삼이었고 뭔가 결심을 굳힌 듯 전소평을 바라보며 다급히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내가 가봐야겠다. 전소평! 너는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하거라. 이곳에 모인 문파들의 비급을 찾아주되, 타 문파들의 절기는 넘기면 아니 될 것이다. 도휘지첨사와 논의하여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현명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하…… 하오나. 첩형 혼자서 어찌……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삼이 걱정되는 듯 동행을 자처하며 나서는 전소평이었지만 그런 전소평을 만류하며 나직이 말을 잇는 아삼이었다.

    - 아니다. 황명을 받들어 수행하는 일을 허투루 할 수는 없다. 허니 너는 이곳에 남아서 남은 일을 정리하도록 하거라. 그만큼 중한 일이다. 네가 맡은 일이 가볍지 않으니 신중해야 할 것이다.

    "예. 첩형. 허면 일을 마무리 짓는 대로 합류하겠습니다."

    할 수 없다는 듯 읍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뒤로 한 채 채비를 서두르는 아삼이었다.

    마교의 존폐 따위는 관심 없는 아삼이었다. 하지만 마교에 있을 누이가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남은 가족들을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던 그였던지라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한 놈들과의 일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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