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78화 (17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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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쌍조(一箭雙鵰)

    어둠 속에 반쯤 몸을 가린 사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왕진을 향해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사내의 보고를 듣는 왕진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이내 마뜩잖은 표정으로 의자를 내려치며 이를 가는 왕진이었다.

    "아삼이라니! 이놈들…… 잘도 우리 눈을 속였구나."

    사내의 보고에 뒤늦게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은 왕진이었고 그런 그의 두 눈에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정화 태감과 원정을 떠난 것처럼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은밀히 움직인 듯합니다. 전소평을 대동하고 그를 내세웠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내고도 전소평의 목을 취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그동안 전소평을 처리하려고 움직였던 자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던 이유가…… 결국 아삼이라는 놈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다른 일들은 어찌 되었느냐?"

    알고 있는 일들을 다시 말하는 사내의 보고에 짜증 섞인 투로 되묻는 왕진이었고 불편한 그의 심경을 눈치 챈 사내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것이 아무래도 모두 실패한 듯싶습니다. 사천에 보낸 인원들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실패했다는 연락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모두 죽었거나, 그들에게 잡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천성 근처에 파견되어 있던 몇몇 동창들이 명을 받고 은밀히 움직였다는 사실을 어렵게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흐음."

    "따로 그들이 불려갔다면 아무래도…… 그들이 사로잡혔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잡혔다면 관련된 사항들을 토설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토설이라니? 응당 자진해야 마땅하거늘! 설령 잡혔다고 해도 충성심이 가득했던 자들인데…… 쉽게 토설을 하겠느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왕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에 하나라도 잡힐 것 같으면 독단을 터뜨리며 자결을 하라는 것을 오랜 시간 세뇌 받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두가 제국의 부활을 염원했기 때문에 아무리 고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알고 있는 사실을 발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그였다.

    "그것이…… 은밀히 동창의 요원들이 불려간 것을 보면 무슨 일을 맡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이 바로 고문이기 때문에…… 허나 잡혔다고 하더라도 황궁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니 그리 크게 걱정하실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무림은 따로 맡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이어지는 사내의 대답에 인상을 구기는 왕진이었고 그 표정에 급히 입을 다무는 사내였다. 이내 한참 고심하던 왕진이 사내를 향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캐다보면 결국 우리 또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허니 그 전에 조치를 취해야겠구나. 공공가에 연통을 넣어라. 당분간 몸을 사리며 조용히 지내라고 하거라. 어떤 움직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전해라. 아니…… 아니다. 차라리 다른 곳으로 피하라 전하거라. 그놈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차라리 그곳을 버리고 몸을 숨기는 것이 낫겠다. 무조건 숨어라고 전하거라."

    왕진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사내였다. 이내 재빠른 걸음으로 전각을 나서는 사내였고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왕진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아삼! 네놈이 기어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입술을 깨물며 날선 눈빛으로 사천 쪽을 노려보는 왕진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앳된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는 필체를 가진 어린놈이 거슬렸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흉신 악살처럼 구겨진 그의 표정과 함께 어느새 그의 주변에 살기가 가득 어리기 시작했다.

    왕진의 처소를 빠져나온 사내가 재빠른 걸음으로 황궁의 외진 곳으로 향하였다. 이내 주변을 살피던 사내가 품속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꺼내서 하늘 위로 힘껏 날렸고, 푸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힘찬 날갯짓을 하며 창공을 날아가는 전서구였다.

    피웅. 피웅.

    하지만 귓속을 파고드는 낯선 소리와 함께 전서구를 날린 사내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른 화살들이 그가 날려 보낸 전서구를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황궁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날아드는 화살을 맞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전서구였다.

    자신의 눈앞을 벗어나기도 전에 떨어지는 전서구의 모습에 놀란 사내가 급히 걸음을 옮기며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화살에 가슴이 뚫린 채 죽어있는 비둘기를 바라보는 선덕제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다. 아삼이 보낸 전서구를 통해 그간의 일을 모두 보고받은 황제였다. 황실의 인사가 관련되어 있다는 그의 보고에 혹시 몰라서 황궁 곳곳에 궁수를 배치해 둔 그였다.

    아무도 황궁을 나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상황이었고 그 어떤 것도 궁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들라는 명을 내린 황제였다. 그리고 그런 황제의 생각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죽은 전서구와 함께 황제에게 즉시 보고가 올라갔고 진노한 황제가 보고하던 무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서구를 날린 자는 어찌 되었느냐?"

    "황공하옵니다. 폐하. 날아오른 전서구의 방향을 좇아서 급히 그곳을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사옵니다."

    "그래서, 놓쳤단 말이더냐?"

    "황공하옵니다. 폐하."

    무장의 말에 노기를 보이는 황제였다. 그 모습에 더욱 고개를 조아리는 무장이었고 그 모습에 용안을 찌푸린 황제가 다시 명을 내렸다.

    "그 서찰을 가져오너라."

    위엄 가득한 선덕제의 명에 환관 하나가 죽은 전서구의 다리에 메인 서찰을 풀어서 황제를 향해 공손히 올렸다. 그리고 서찰을 읽어내려가던 황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동창에 일러 이 전서구를 날린 놈을 찾아내라고 전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야 할 것이다."

    황제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환관이었다. 이내 종종걸음으로 물러서는 환관을 바라보는 황제의 두 눈이 빛났다.

    '이로써 황궁에 원의 잔당이 암약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해 졌다. 필히 그놈들을 찾아내서 발본색원해야 할 터인데…… 차라리 아삼에게 황궁의 일을 맡겼어야 했던가?'

    수십 년 동안 일을 맡았던 검교라는 조직보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낸 아삼을 기특하게 여기는 황제였다. 그런 아삼에게 황궁의 일을 맡기지 않았음을 아쉬워하는 그였다.

    한편, 자신의 처소로 다급히 뛰어드는 사내의 모습에 뭔가가 잘못 됐음을 직감하는 왕진이었다. 혼비백산해 있는 사내의 모습에 왕진이 그를 향해 그 연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그…… 그것이 아무래도 황제가 뭔가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말을 잇는 사내였고 그런 사내의 말에 왕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불안한 듯 두 눈을 굴리며 사내를 향해 묻는 그였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황제가 눈치를 채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방금 공공가를 향해 전서구를 날렸는데…… 채 황궁을 벗어나기도 전에 그 전서구가 화살을 맞고 떨어졌습니다. 곳곳에 궁수가 배치된 것이…… 아무래도 뭔가를 눈치 채고 미리 궁수를 준비해 둔 것 같습니다."

    "이런, 멍청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무슨 일을 도모한단 말이냐!"

    "송구합니다. 공공."

    다그치는 왕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답을 하는 사내였고 그런 사내의 말에 힘이 빠진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왕진이었다.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사내를 향해 다시 묻는 그였다.

    "허면…… 그 전서구는 어찌 되었느냐?"

    "그것이…… 화살에 맞아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아마도 황제의 수중에 들어간 듯합니다."

    "…… 이익."

    믿을 수 없다는 듯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던 왕진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이미 궁수까지 배치해 둔 마당에 바로 이곳으로 달려들었다는 놈의 행실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그놈이었고 그 모습에 인상을 구긴 왕진이 고심에 잠겼다.

    왕진의 이마에 내천 자가 깊게 새겨졌다. 그리고 그런 왕진의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을 모르는 사내였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에 급히 오체투지를 하며 몸을 낮추는 사내였지만 왕진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렇게 머리를 조아리는 그를 바라보던 왕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 대업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잡힐 수는 없지 않는가?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할 수밖에…… 어차피 일을 망친 놈이니 억울하지는 않을 터.'

    결심을 굳힌 듯 비장한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는 왕진이었고 그런 왕진의 눈빛에 왕진의 의중을 이해한 듯 낮은 한숨을 뱉어내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였다.

    다음날, 대들보에 목을 맨 상태로 죽어버린 환관이 발견되었다. 내서당에서 새로 들일 환관들의 교육을 도맡던 자로, 그의 방에서는 지필묵과 함께 몰래 전서구를 관리하는 듯한 새장까지 발견되었다.

    죽기 전에 쓴 글에는 원의 부흥을 꾀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고, 자신의 경솔함을 자책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왕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그 환관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아있던 의심의 싹을 없앤 것이었다. 황궁에 남아있던 검교와 동창이 그 일을 조사했지만 이미 모든 흔적을 감춘 이후였고 그것은 황제인 선덕제의 귀에 들어갔다.

    다시 그들의 흔적이 사라졌다는 말에 당연히 황제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고, 자금성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살짝 꼬리를 드러낸 원의 잔당들이 다시 수면 깊숙이 가라앉아 버렸다.

    ***

    사천을 뒤로 하고 감숙성을 향해 길을 재촉하는 아삼과 전소평이었다. 이미 자신의 위치가 드러났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자신이 감숙성에 당도하기 전에 공공세가가 눈치를 채고 모습을 감춘다면 그들을 찾는 일은 더욱 힘들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말이었지만 박차를 가하는 두 사람이었다. 사천에서 감숙성의 북서쪽에 이르기까지 역참에 들러 말만 바꿔가면서 쉬지 않고 달려온 끝에 감숙성에 당도한 그들이었다.

    서역으로 움직이는 길목에 위치하고 위로는 몽고와도 가까운 돈황이라 그런지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자들의 복장이 낯설었다. 오히려 평범하게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낯선 그 모습이 흥미로운 듯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을 향해 지친 듯 축 처져있던 전소평이 고개를 숙이며 그의 의중을 물었다.

    "바로 돈황에 있는 관부로 가시겠습니까?"

    - 아니다. 가까운 객잔으로 가자. 우선 이곳의 정황부터 살펴봐야겠다.

    아삼의 전심어서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고 이내 앞장 선 그가 객잔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전소평의 뒤를 따르며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아삼이었다.

    곳곳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물건들이 가득했고, 서로 다른 복장을 입고 있는 자들이 흥정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비록 맡은 임무 때문에 그곳에 도착한 그였지만 새삼 자신이 있는 곳의 위치를 자각할 수 있었다.

    돈황에 있는 한 객잔의 후미진 구석방을 잡은 두 사람이었다. 안에서 대충 짐을 내려놓는 아삼이었고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전소평이었다.

    "우선 쉬고 계십시오. 저는 이곳에 있는 하오문을 찾아서 공공가에 대해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 그래, 피곤할 터인데, 고생하는구나.

    "아닙니다. 첩형. 그럼 쉬고 계십시오."

    그렇게 방을 나서는 전소평의 모습에 쓰게 웃는 아삼이었다. 쉬지 않고 달려온 그 길에 자신도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운기를 통해서 피로를 풀어갔던 그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도 그렇게 피곤함을 느끼는 상황에서 전소평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삼이었다. 그런 전소평의 행동에 기특함을 느낀 그가 남은 시간동안 운기를 통해서 피로를 씻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상황에서 진기를 돌리던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점점 기감이 확대될수록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객잔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주변에서 느껴지던 무인들의 기운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지금 느껴지는 그 은밀하고도 거대한 기운들은 그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흐음. 말을 타고 움직이면서도 곳곳에 상당한 수준의 무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들보다 더한 고수들이 숨어있는 것인가?'

    피곤한 여정에 바로 객잔으로 움직였던 그였기 때문에 감각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고, 이상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감각을 끌어올리자 곳곳에서 커다란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는 아삼이었다.

    '이 지역만 유독 고수들이 많을 이유가 있을까? 공공가라는 곳에서 이렇게 많은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을 터. 그것도 여러 객잔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였지만 다시 돌아온 전소평의 보고에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요근래 이곳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갑자기 낯선 자들의 모습이 많이 늘었으며 다른 문파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합니다."

    - 다른 문파들?

    "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곳 감숙성으로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문파들이 속속히 모여들고 있다 합니다."

    전소평의 말에 그제야 낯선 기운들이 느껴졌던 게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 그들이 이곳으로 모이는 이유를 알아야겠구나.

    "예. 첩형. 하오문에 따로 일러두겠습니다. 우선은 공공가에 대한 내용을 추리라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삼의 전심어서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고 이내 방을 나서는 전소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일을 고심하는 아삼이었다.

    '원의 잔당이라고 추정되는 놈들과 무림의 유명한 문파들이라…… 이곳 분위기가 심상치 않구나.'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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