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77화 (177/204)
  • 0177 / 0204 ----------------------------------------------

    일전쌍조(一箭雙鵰)

    아삼의 처소에 든 전소평이 앉아있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이내 아삼이 내어준 자리에 앉은 전소평이 그를 향해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당호상단에 대한 조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당호상단과 삼청회, 그 둘이 연관되어 있다는 증좌 또한 충분히 확보해 두었고, 문초를 통해서 이미 자백까지 받아낸 상황입니다."

    - 그래. 수고했다.

    "그리고…… 당호상단에서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삼을 향해 뭔가를 내밀며 조심스럽게 건네는 전소평이었고 그가 내민 것을 받아든 아삼이 천천히 그것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서찰을 읽어가던 아삼의 두 눈이 커졌다. 옆에서 아삼의 표정을 바라보던 전소평이 그런 아삼을 향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당호상단의 상단주 하대령, 아니 하은호와 마교의 하도강 사이에 오고 간 밀서입니다. 마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그와의 하은호와의 관계가 생각보다 밀접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사천에서 있었던 일들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자가 다른 마음을 품은 것 같습니다."

    '흐음. 마교의 검마라……'

    전소평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하는 아삼이었다. 마교의 일을 맡게 되면서 이들과 엮이게 되었지만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여러 가지 일이 맞물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삼이었다. 굳이 이런저런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내 다시 전소평에게 시선을 돌린 아삼이 전심어서로 명을 내렸다.

    - 가서 현지향을 불러 오거라.

    아삼의 명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지향을 불러온 전소평이었다. 그런 현지향이 처소로 들어서며 아삼을 향해 예를 올렸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 마교의 일로 물어볼 것이 있소. 그래도 우리들 중에서 마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대가 아니겠소?

    "이제는 연이 끊긴 곳입니다. 저희 상단의 주인은…… 주군이십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마음을 굳힌 그였다. 개인적으로는 그에게 충성하리라고 다짐을 했지만 상단의 식구들까지 그의 편에 서게 만드는 것은 고민이 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있었던 일을 처리하는 아삼의 모습으로 확신을 가지게 된 그였다.

    현지향의 말에 침묵을 고수하는 아삼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려는 현지향이었지만 그 사실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래에 두는 인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황궁에서 몇 번의 달갑지 않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염려하는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의 불편한 심경을 읽었는지 화제를 돌리며 말을 이어가는 현지향이었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그의 행동은 확실히 상계에서 잔뼈가 굵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능청스럽게 넘어가는 그의 행동에 엷은 미소를 보이는 아삼이었다.

    "교에 대해서 물을 것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검마 하도강이라는 자에 대해서 알고 있소?

    "하도강 말씀이십니까? 무슨 연유로 그에 대해서 묻는 것이신지……"

    - 아는 사람이요?

    "…… 예. 선친께서 작고하신 이후에도 저희 상단이 교를 도운 이유가 바로…… 하 사형 때문입니다."

    - 사형? 사형이라니? 그와 사형제 지간이오?

    "예. 주군. 선친께서 원과 대적하시면서 대동했던 한 명의 제자가 바로 하 사형입니다. 검마라고 불리는 하도강이…… 저와 사형제 지간입니다."

    "……."

    현지향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는 두 사람이었다. 이미 서신의 내용을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현지향이 밝힌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돕던 사제를 처리하려 했다니…… 상당히 고약한 인사가 아닌가?'

    어느새 침묵이 내려앉은 그곳에 현지향이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안색을 굳혔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에서 좋은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사형과…… 관련된 일이 있는 것입니까?"

    하도강에 대해서 묻는 이유를 알 수 없던 현지향이었기 때문에 침묵하는 아삼을 향해 조심스럽게 묻는 그였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이내 현지향을 향해 그 밀서를 내민 아삼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 당호상단 상단주와 하도강 사이에 오고 간 밀서요. 아무래도 당가의 직계를 죽이고 당신에게 그 죄를 덮어씌워서 수리상단을 위험에 빠트리게 일을 꾸민 자들이 바로…… 그들인 것 같소.

    "그…… 그럴 리가!"

    아삼의 전심어서에 급히 밀서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현지향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놀란 듯 커다래진 눈으로 아삼을 바라보는 현지향이었고 그런 현지향을 향해 전심어서로 말을 잇는 아삼이었다.

    - 밀서의 내용으로 보아하니 마교 내에서도 이 둘의 결탁을 모르고 있는 것 같소. 자신을 도운 사제를 없애려 하다니……

    "…… 송구합니다."

    - 이 일은 그대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소.

    "감사합니다. 주군."

    아삼이 건네는 밀서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숙이는 현지향이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씁쓸해 하는 아삼이었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현지향의 얼굴이 펴질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평생을 자신의 선친과 사형을 도왔던 그였다. 그 헌신의 대가가 이런 배신이라는 사실에 절로 몸이 떨려왔지만 애써 몸을 추스르며 주군으로 모시겠다던 아삼의 앞에서 추태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윽고 아삼의 처소를 나선 현지향이 자신이 머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 번 밀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것에 대한 보상이 이거요? 하 사형!'

    뒤늦게 분을 터뜨리는 그였다. 깊은 배신감이 그의 몸을 감쌌고 터져 나오는 분을 삭이던 그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이내 지필묵을 집어든 그가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생각한 것들을 적어낸 그가 그것을 갈무리하며 방을 나섰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딘가로 향하는 현지향이었다. 이내 상단을 지키고 있던 사내들 중 한명을 손짓으로 부르는 그였다.

    - 이것을 은밀히 교에 보내거라. 급한 것이니 서둘러야 한다. 교주에게 보내는 친전이라고 단단히 일러야 한다.

    현지향의 명을 받은 사내가 그를 향해 읍을 하며 그대로 모습을 감췄고 그의 기감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씁쓸해 하는 현지향이었다.

    '이것으로 교와의 연은 끝이구나. 사형과의 인연도…… 끝이다.'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현지향의 얼굴에 섭섭하면서도 시원한 듯한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반백을 넘긴 지금까지 질기게 이어졌던 교와의 연이 드디어 끊어지게 된 것이었다.

    ***

    일렁이는 횃불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조그마한 방 안, 고통스러운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고, 비릿한 혈향이 풍겼다. 그리고 그렇게 흉흉한 곳 정중앙에 두 눈을 빛내며 아삼이 서 있었다. 그런 아삼의 앞에 선 전소평이 결박당한 사내들을 향해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묻겠다. 네 놈들의 동료가 숨은 곳이 어디냐?"

    전소평의 추궁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서로의 눈치만 보는 사내들이었다. 그런 사내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얼굴로 전심어서를 날리는 아삼이었다.

    - 버텨봤자 네놈들의 고통만 더해질 뿐이다. 허니 순순히 토설하거라. 순순히 밝히는 자에게는 고통 없는 안식을 주겠다.

    방 안을 울리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몸을 움찔거리는 사내들이었다. 하지만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며 담담히 말하는 그들이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아는 것이 없다고."

    "우리는 단지 살수일 뿐이다. 네놈들이 찾아낸 자들이 전부였다."

    그런 그들의 대꾸에 비릿한 미소를 짓는 아삼이었다. 이내 전소평을 향해 매섭게 다그치는 그였고, 귓속을 파고드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사내들의 눈에 두려움이 어리기 시작했다.

    -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아직까지 이놈들의 기가 살아있지 않느냐? 이놈들의 입이 열릴 때까지 네 손에 사정을 두지 말거라. 저 입들을 찢어서라도 토설하게 만들라는 말이다.

    "송구합니다. 곧 다른 고문기구들이 도착할 것이니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혹 이들이 죽을까봐 걱정되는 것이라면 염려하지 마라. 내 절대 저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유능한 의원들을 불러들여라. 토설하기 전까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절실히 깨닫게 해 주거라.

    "예. 첩형."

    날선 아삼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뒤로 하며 방을 나서려던 아삼이 걸음을 멈췄다. 고통을 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내 결박된 채로 앉아있는 자들 중 한 명을 향해 다가간 그가 두려운 눈으로 올려보는 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물러서려는 상대였지만 이미 묶인 몸은 그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내 아삼의 손바닥이 겁에 질린 상대의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그의 장심에서 시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규화보전의 음기를 상대의 몸에 심는 아삼이었고, 그 시린 한기가 파고들자 순식간에 안색이 하얗게 변한 자가 덜덜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따다닥. 따다닥.

    절로 떨려오는 몸에 그나마 몇 개 안 남은 이가 부딪치면서 그의 상태를 알려왔고, 고통스러운지 신음을 흘리는 시작했다. 계속 이어지는 한기에 참기 힘든지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그였지만 쉽사리 죽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고통스러워하는 그 모습에 주변에서 문초를 받던 그의 동료들도 두려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덜덜 떠는 그의 움직임은 계속되었고 그 떨림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아삼이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경과를 지켜보고 남은 놈들의 처우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군. 영혼까지 얼려버릴 듯한 그 한기를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는 것도…… 재미있겠구나.

    비릿한 미소를 보이는 아삼의 얼굴에 결박된 자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계속해서 추위에 떨고 있는 동료의 모습에 자신들의 얼굴이 겹치는 듯 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 하고 전소평의 인사를 받으며 밖으로 나서는 아삼이었다.

    그로부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아삼의 처소를 찾은 전소평이었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인 그가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첩형, 그 놈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 그래, 알아낸 것이 있느냐?"

    전소평의 반응에 기대를 가지며 그를 향해 묻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전소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당가의 직계를 해한 자들은 역시나 그놈들이었습니다. 당호상단의 상단주이자, 삼청회의 회주인 하은호에게서 사주를 받아 그런 짓을 자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하은호는 하도강이라는 자와의 밀서를 통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 모든 원인은 하도강이라는 자로군. 그자와 우리가 좇던 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그들이 그것까지는 알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의 입에서 새로운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 새로운 정보?

    전소평의 보고에 되묻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두 눈을 빛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전소평이었다.

    "예. 몽고와 가까운 감숙성의 끝자락에 돈황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한 무가가 바로 그들의 본거지라고 합니다. 공공(共工)가라고 정파에 속한 자들로 감숙성에서 명망있는 중소문파입니다. 아무래도 접경지역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원의 잔당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 거짓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명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공공가라……'

    전소평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하는 아삼이었고 전소평이 그 모습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황궁의 인사와도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 뭐라? 황궁의 인사?

    "첩형의 제약을 받은 자가…… 토설을 했사온데, 그 또한 확실히 그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공공가의 뒤를 봐주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은밀히 몇 번의 만남을 가질 때, 수행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움직임이 어색한 것이 일반적인 사내는 아닌 것 같다고 했습니다."

    "……."

    이어지는 전소평의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심에 빠진 아삼이었다.

    '황궁에 적을 둔 이라? 도대체 누굴까? 일반적인 사내가 아닌 것 같다고 한 것을 보면…… 환관이라는 말인가?'

    캐면 캘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딸려 나왔다. 연관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일에 절로 머리가 아파지는 아삼이었다. 이제 그 전모가 완전히 드러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얽힌 것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내가 맡은 일은 무림에 있는 자들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내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아삼이었고 전소평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의중을 물었다.

    "첩형,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 얽힌 것들을 풀어내려면 별 수 있겠느냐? 감숙성에 있는 그 공공가라는 곳을 찾아간다. 준비를 하는 동안, 이 사실들은 철저히 함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문초를 해서 그들이 말한 것들의 진위를 확인해 보거라.

    "예. 첩형."

    아삼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뒤로하고 무언가를 적어내는 아삼이었다. 이내 먹이 마르는 것을 확인하며 그것을 접어서 봉투에 넣은 아삼이 전소평에게 그것을 내밀며 명했다.

    - 이 서찰을 황궁에 전해라. 황제 폐하께 바로 보낼 것이다.

    "예. 첩형. 최대한 은밀하고도 빠르게 전하겠습니다."

    아삼이 내민 서찰을 갈무리하며 고개 숙여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다. 이내 처소를 나서는 전소평의 뒷모습을 확인한 아삼이 조용히 침음을 삼켰다.

    '황궁에 숨은 놈들이라……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황궁의 일들은 따로 맡은 자들이 있을 터. 우선은 그 공공가라는 놈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