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75화 (17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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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쌍조(一箭雙鵰)

    쓰러진 당인평의 앞을 막아선 당진악이 미련 없이 물러서는 아삼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낀 아삼도 살수지무로 그의 기운을 가늠하며 눈을 마주쳤다.

    '가진 기운은 마교의 장로라던 자와 엇비슷한데…… 암기와 독이라는 변수가 있는 것인가?'

    '흐음. 최절정에 근접한 자와 비슷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자가 당가의 장로를 이겼다? 다른 기운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나와 장로의 눈을 속일 정도로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반박귀진의 경지를 넘어선 것인가?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

    당인평과의 싸움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에 멀리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의아함을 느끼던 당진악이었다. 그리고 아무 미련 없이 물러서는 아삼의 모습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굳은 얼굴로 그들의 싸움에 끼어든 것이었다.

    앞에 선 자가 장로인 당인평을 처리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하는 당진악이었다. 가진 무공도 그렇고, 가공할 위력을 뿜어내는 아삼의 내공은 그로서도 쉽사리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의도적으로 당인평을 놓아줬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잠시, 바닥을 박찬 아삼이 당인평의 앞을 가로막은 당진악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아삼의 움직임에 뒤로 물러서며 암기를 뿌리는 당진악이었고 정확히 자신이 피할 방위까지 점하며 날아드는 그의 암기에 감탄하던 아삼이 용아를 빼들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티디딩. 티디딩.

    쏟아지던 암기가 모조리 용아의 검신에 부딪치며 튕겨나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진악의 눈이 빛났다. 너무나 수월하게 막아내는 그 모습에 다시 암기를 꺼내든 그가 기운을 더하며 아삼을 향해 손을 뿌렸다.

    다시 아삼을 향해 다수의 암기가 꽂혀들었다. 이번에는 제법 큰 기운을 머금은 그 암기들이 순식간에 날아들었고 수준 높은 그의 무공에 미소를 보인 아삼이 분뢰공을 끌어올리며 낙화검의 초식을 펼쳤다.

    쾌검술이라고 일컬어지는 낙화검에 분뢰공의 묘와 규화보전의 기운이 더해지자 은빛 검광이 그의 전신을 가렸다. 그리고 쏟아지던 암기가 검광에 부딪치며 튕겨져 나갔다.

    마치 커다란 막을 두른 듯한 그 모습에 지켜보던 자들이 놀라며 침음을 삼켰다. 그저 빠른 쾌검만으로 검막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무인들이 실제로 처음 접하는 무공이었다. 말로만 듣던 무공을 펼쳐내는 아삼의 신위에 그가 당인평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이 어느새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작정하고 뿌린 자신의 암기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막혔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당진악이었다.

    당가의 가주이자, 당가를 상징하는 최고수가 바로 당진악이었다. 묘한 호승심과 함께 그를 향해 다시 몇 개의 암기를 뿌리는 그였고, 이전보다 더 빠르게 날아드는 암기에 기운을 끌어올리는 아삼이었다.

    파바밧.

    아삼을 향해 쏟아져 내린 암기가 그의 몸을 관통하며 바닥에 꽂혀들었다. 아삼의 몸을 꿰뚫는 당진악의 공격이었지만 흐려지는 아삼의 모습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을 했다.

    "이형환위!"

    놀란 외침과 함께 흐릿해진 아삼이 이전에 있던 자리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고 그가 쥔 용아가 크게 휘어진 상태로 강기를 머금고 있었다.

    용화효토(龍火歊吐).

    용이 불의 숨결을 토해낸다는 이 초식은 용유검의 후반부 초식으로 아삼도 실전에서 처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수련했던 강력한 초식을 사용하는 그였다. 어느새 크게 휘어진 용아의 검신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며 시퍼런 강기가 당진악을 향해 날아갔다.

    쐐에엑.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강기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 공격을 바라보던 당진악이 단전에 있는 힘들을 끌어냈다.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사라졌던 아삼의 기척을 비교적 빠른 시간에 눈치챈 그였다. 그 상태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뒤에 있는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생각보다 영악한 자가 아닌가? 이대로 피한다면…… 당가의 무인들이 모두 죽는다.'

    날아드는 강기의 위력에 기운을 끌어올린 그가 다시 암기를 뿌렸다.

    마치 비가 내리듯 쏟아지는 암기들이 날아오는 강기를 두드렸다. 하나하나에 담긴 거력이 날아드는 아삼의 강기를 향해 쏟아져 내렸고 연신 두들겨대는 암기의 위력에 결국 공중에서 소멸되는 아삼의 강기였다.

    그리고 아직 남은 암기들이 뒤에서 지켜보던 아삼을 향해 꽂혀들었다.

    만천화우(滿天花雨)라는 유명한 초식을 응용해서 아삼의 공격을 막아내는 당진악이었다. 그리고 위력이 줄어든 그 암기들을 다시 무영보법을 밟아가며 피해내는 아삼이었다.

    그 공격으로 조금 지친 듯 어깨가 들썩거리는 당진악이었지만 다시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처음 마주했던 곳으로 자리를 옮긴 아삼이 용아를 납검하며 앞에 선 당진악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당가의 가주라……'

    그의 얼굴을 확인한 아삼이 뒤를 돌아봤다. 입 주변에 피를 묻힌 채, 당가의 무인들을 노려보는 황세웅의 모습이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고 그 모습에 쓰게 웃은 아삼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두 세력의 수장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마주하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도 오래가지 못했다. 당진악의 뒤로 침묵을 깨며 뛰어든 절정의 무인들이 날카로운 기도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당가의 무인으로 보이는 그들이 당진악의 뒤에 시립하며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병력들이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독과 암기로 이름 높은 당가였다. 이미 장로라고 불리는 이름 높은 무인이 아삼의 손에 쓰러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혈족애가 남다른 당가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천에 주둔해 있으면서 그 지역을 지키고 있었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있을 일들을 걱정해야만 하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불안한 눈빛으로 당가의 무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긴장해 있는 그때, 정작 그 앞에 서서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던 아삼은 별다른 동요 없이 담담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확인한 당진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여유 있는 아삼의 모습에 의아해 하는 당진악이었다. 그런 그의 귀로 당인평의 전음이 흘러들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의 경과를 상세히 알리는 그였고, 그의 전음을 들으면서 당진악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당인평의 전음과 함께 아삼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들었던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갔기 때문이다.

    어느새 호흡을 고른 당진악이 뒤에 시립한 당가의 정예를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 그의 눈짓에 그들이 기운을 끌어올리며 아삼과 마주한 병력들을 노려봤고 흉흉하게 뿜어내는 그 기세를 느낀 당진악이 다시 아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싸늘한 눈빛이 그들의 앞에 있는 아삼을 향해 꽂혀들었다. 그리고 그 시선과 당가의 무인들이 뿜어내는 기세를 느낀 아삼도 그들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굳어지는 아삼의 표정을 확인한 당진악이 이내 표정을 지우면서 앞으로 나섰다. 자신이 의도한 대로 절정의 무인들을 대동한 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관군의 기세를 꺾었다고 판단한 그가 앞으로 나서며 아삼을 향해 중후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연유로 우리 당가를 끌어들인 것이오?"

    - 끌어들였다? 먼저 우리들의 일에 끼어든 것은 당가가 아닌가? 끌어들였다니?

    "…… 우리가 끼어들었다는 것이오? 사천에서 일어난 중한 일이기에 응당 확인하려 나선 것뿐이오. 비록 그 과정에서 원치 않은 충돌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렇게 서로를 대할 연유가 있는 것이오? 의도적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것이 분명한데…… 말을 돌리지 말고 용건을 말하는 게 어떻겠소?"

    "……."

    자신의 의중을 읽은 당진악의 말에 그를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을 압박이라도 하려는 생각이었는지 뒤에 있던 당가의 정예들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이 조소를 흘리며 당진악을 바라봤다.

    - 저들을 대동하고 온 이유는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대적하기 위함인가?

    "……."

    그의 물음에도 별다른 답을 하지 않는 당진악이었다. 아삼의 물음처럼 그들을 압박하기 위해서 당가의 고수들을 대동했기 때문이다.

    절정의 고수들로 구성된 그들이라면 지금 이곳에 모인 인원들은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 물론 아삼을 자신이 묶어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단지 그의 발을 묶는 것 정도는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당진악이었다.

    하지만 그런 당진악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뒤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신호를 주는 아삼이었고 그 손짓을 확인한 전소평이 호각을 불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삐이익.

    내공을 머금은 날카로운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장을 한 병력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그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을 하러 나가는 듯 중무장을 갖춘 병력들이었다. 전신을 가릴 만큼 커다란 방패로 앞을 막아선 방패수와 그 뒤에 도수와 창수가 늘어섰다. 그리고 그들 뒤로 활을 든 궁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들을 겨눴다.

    갑작스런 등장이었다. 족히 몇 천은 될 법한 병력들이 당가의 무인들을 압박했고 그 사실을 확인한 당진악의 눈빛이 흔들렸다.

    숨어있던 병력들의 기척을 어느 정도 감지해 냈던 그였다. 하지만 다짜고짜 자신을 향해 달려든 아삼을 상대하느라 온전히 그에게만 정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근처로 모여든 병력을 다시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이전에 눈치챘었던, 숨어있던 소수의 병력 정도는 더 있으나 마나 한 병력이라고 생각했던 그였기 때문에 이렇게 등장한 대 병력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런 병력을 숨겨뒀다니…… 모든 것이 의도된 것이구나.'

    새삼 이들의 계략에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은 당진악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아삼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를 향해 전음을 날리며 의중을 물었다.

    - 원하는 게 무엇인가?

    - 원하는 것이라니?

    - 사천에서 우리 당가를 몰아내려 함인가? 아니면……

    - 우선 기다려라. 급한 일 먼저 마무리 짓고 너희 가문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

    오만한 아삼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인상을 구기는 당진악이었다.

    당가의 가주가 된 이후로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이도 어린놈이 평대를 하며 가문의 목줄을 쥐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살기를 흘릴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앞에선 아삼은 담담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 우선 당호상단을 정리한다. 전소평!

    "예. 첩형!"

    - 포위한 병력을 이끌고 당호상단에 관련된 자들을 모두 추포하라. 증좌를 확보하고 반항하는 자는 참하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수뇌부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여야 할 것이다. 남은 고수들을 이끌고 신속히 시행토록 하라.

    "예. 첩형."

    아삼의 명령에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다. 그가 주변의 고수들을 이끌고 당호상단으로 쳐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겁에 질린 비명과 함께 둔탁한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그 요란한 소리에 마주하던 당가의 무인들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채 한 식경(食頃)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지만, 아삼의 명을 수행한 전소평이 다시 그를 향해 다가오며 고개를 조아렸다. 모두 추포했다는 말과 함께 그 인사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삼이 당가의 가주인 당진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크흠.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아삼의 시선에 한껏 누그러진 말투로 은밀히 묻는 그였고 당진악의 전음에 차가운 미소를 짓던 아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돌아서며 전심어서를 날렸다.

    - 기다려라. 너희 가문에 볼 일이 있는 자는 내가 아니다.

    "……."

    돌아서는 아삼의 모습에 당진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로써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딱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외통수에 걸린 것인가?'

    씁쓸해 하던 당진악이 아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연유를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불안한 그였다. 마치 끈끈한 거미줄에 얽힌 나방처럼 도무지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 막막함에 한숨을 내쉬는 그였고, 그런 그를 독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황세웅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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