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71화 (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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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얽힌 인연

    하오문의 사천성을 관리하는 지부장을 만나는 아삼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를 통해서 확인한 내용들은 이미 전소평을 통해서 들었던 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잡혀온 자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전소평이었지만 버티는 놈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에 참기 힘든 고통을 가해도 사천에 숨은 동료들을 밝히지 않는 그 모습에 어쩔 수 없이 하오문의 지부장을 만나러 온 아삼이었다. 더불어 근래에 사천의 분위기도 살피기 위해서 일부러 밖으로 나온 그였다.

    "최근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최대한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이상한 구석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찾는 자들의 정체를 소상히 말씀해 주신다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아삼의 전심어서에 지부장을 향해 대신 묻는 전소평이었지만 이전과 달라질 것이 없는 정보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 소리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지부장의 말을 듣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눈치를 살피는 전소평의 얼굴도 굳어져만 갔다.

    이미 이전에 개방이 알아냈던 정보에 관심을 보인 아삼이었다. 한낱 거지들보다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하오문의 능력에 스스로 민망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민망함도 잠시, 갑자기 객잔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만히 지부장의 말을 듣던 아삼이 전소평을 바라봤다.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허억."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의 시선에 이상함을 느낀 전소평이었지만 이어지는 아삼의 행동에 헛바람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기운과 함께 품안에 갈무리해 뒀던 비도가 아삼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허…… 허공섭물!'

    그 모습에 놀란 지부장도 놀란 눈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아삼이었다. 이내 날카로운 비도의 끝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아삼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쉬이익.

    아삼의 손에서 빠져나온 비도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전소평에게 아삼의 전심어서가 날아들었다.

    - 아래에 있는 일을 해결하고 따로 그를 불러오너라.

    "…… 네? 네."

    뜬금없는 아삼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전소평이었다. 가볍게 떨리는 객잔을 느끼면서 아래를 바라본 전소평이 그대로 몸을 던졌다.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선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놀란 듯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금의위? 저 사람은…… 첩형과 안면이 있던 자가 아닌가?'

    황세웅의 얼굴을 확인한 전소평이 그제야 자신을 내보낸 이유를 알았다는 듯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바닥에 박힌 비도를 빼내며 주변을 둘러본 그가 대치하는 그들을 향해 일갈하며 말했다.

    "백주대낮에 이 무슨 행패란 말인가!"

    "……."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가 꾸짖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그가 보인 무공도 무공이거니와 그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 선 황세웅도, 당가의 직계라던 사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보가의 자제인 황보완은 인상을 구기며 전소평을 노려봤다. 그는 전소평의 정체를 알지 못 했기 때문이다.

    "네 놈은 무엇이냐! 알량한 무공으로 나서는 것을 보니 공명심만 대단한 놈인 것 같구나! 허나, 낄 곳 안 낄 곳 구분을 하지 못하는 반푼이가 아닌가?"

    "……."

    싸늘한 목소리로 전소평을 비웃는 황보완이었고 그런 그의 말에 전소평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황보완이 그를 노려보며 살기를 흘려댔다.

    "이곳에는 네놈이 상상하지도 못할 가문의 자제들이 있다. 황보가와 함께 사천을 주름잡고 있는 당가의 형님도 계시니 썩 물러나거라."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 하는 놈이로군.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은 명문 정파라 불리는 놈들의 특권인가?"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전소평을 향해 호통치는 황보완이었고 뒤늦게 녹색 장삼을 입은 자가 그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채 그를 막아설 겨를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황보완이었다. 이미 황세웅에게 밀렸던 그였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위엄을 세우고 싶었고, 그 대상은 바로 앞에 있는 전소평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황보완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전소평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나를 내보내신 거라면…… 이들에 비해서 내가 가진 무공이 낮지 않다는 뜻이겠지? 그동안 익힌 형강권을 사용하는 것도…… 설마, 그래서 일부러 나를 보내신 건가?'

    새삼 아삼의 뜻이 고맙게 느껴지는 전소평이었다. 이전에 수리상단에서 있었던 싸움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그였다. 그만큼 들이친 놈들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전소평이었다. 그리고 그가 느낀 감정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침울해 있던 그였고 그 모습을 지켜봤던 아삼이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황세웅을 따로 부르고, 전소평의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 그를 배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뜻을 알게 된 전소평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이놈! 언제까지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더냐!"

    노성을 터뜨린 황보완이 커다란 주먹을 찔러 넣었다. 전소평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드는 주먹이었지만 허리를 비틀어서 그 주먹을 피한 전소평이 진각을 밟듯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그 모습에 뻗었던 주먹을 거두며 팔꿈치로 전소평의 머리를 후려치는 황보완이었고 절묘한 그 공격에 바라보던 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팔꿈치를 막아낸 전소평의 몸이 휘청거렸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그였기 때문에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에 다른 주먹을 뻗어내는 황보완이었다.

    이어지는 그의 공격에 미간을 찌푸린 전소평이 기운을 끌어올리며 형강권을 펼쳤다. 빠르게 뻗어진 그의 주먹이 마주 오는 황보완의 주먹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불리한 상황에서 마주친 주먹이었지만 그 결과는 보는 이들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퍼엉.

    주변의 공기가 터져나가며 큰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권법으로 이름 높은 황보세가의 주먹을 맞받아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황보완을 물리치는 전소평의 모습에 모두가 놀랐지만 정작 가장 놀란 사람은 황보완이었다.

    '이 무슨……'

    가전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그였다. 황보세가라면 산동성에서 알아주는 가문이었고 그 위명을 잘 아는 그인지라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지만 이어지는 전소평의 행동에 생각을 이을 수도 없었다.

    밀린 황보완에게 다시 달려드는 전소평이었다. 빠른 보법으로 그와의 거리를 좁힌 전소평의 주먹이 짧은 직선을 그렸고 그 공격을 막아선 황보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빠르면서도 그 안에 거대한 힘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먹을 막아설 때마다 엄청난 충격이 내부로 전해졌고 결국 참지 못한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힘든 기색을 보이는 황보완이었지만 차마 물러설 수도 없었다. 그런 똥고집에 더욱 힘을 끌어올리는 전소평이 다시 형강권의 초식을 펼쳤다.

    날아드는 주먹을 보며 인상을 구긴 황보완이 악에 바쳐서 기운을 끌어올렸다. 흐릿하게 맺힌 권기에 내심 안도를 하는 그였지만 전소평의 주먹은 그대로 그의 주먹을 피하면서 스쳐지나갔고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동시에 무릎을 들어 올리는 전소평이었다.

    뻐억.

    무릎에 가슴을 부딪친 황보완이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고 그 모습에 전소평이 미미한 미소를 보였다. 권으로 이름 높은 황보가를 같은 권으로 이긴 자신의 무공이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했기 때문이다.

    황보완이 그렇게 쓰러지자 그곳에 함께 자리했던 다른 자들이 일어섰다. 황보완이 패했지만 그곳에 같이 있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소문에 그들이 엮일 수도 있었다. 명망있는 세가의 자제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인에게 패했다는 소문이 부풀려지는 것을 우려했지만 당가의 차남인 당운정에 의해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동창이 무림의 일까지 관여하는 것이오?"

    "같은 황궁의 무인이 핍박을 받기에 중재하러 나선 것뿐이오. 먼저 내 말을 무시하고 달려든 자는 저자가 아니오?"

    "…… 좋소. 완 아우의 불찰도 있으니 이대로 넘어가겠소. 허나, 사천에서 우리 당가를 무시하는 모습들…… 자중하시오. 지금은 이렇게 좋게 말로 넘기나, 계속 그런 우를 범할 시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오."

    "……."

    당운정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전소평이었다. 비록 동창의 당두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사천에서 당가에게 밉보여서 좋을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가의 위명을 잘 아는 그였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고,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삼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내 쓰러진 황보완을 데리고 객잔을 벗어나는 그들이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전소평이 황세웅을 바라봤다.

    서로가 안면이 있는 두 사람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고 싸움을 중재한 이유를 밝히며 황세웅을 이끄는 전소평이었다.

    전소평의 뒤를 따라서 계단을 오르는 황세웅이었다. 남은 금의위들에게 명을 내린 그가 불안한 눈빛으로 전소평의 뒤를 따랐다.

    '나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이 자를 부리는 자라면…… 아삼 밖에 없을 텐데. 하지만 그는 대원정을 떠나지 않았는가?'

    떠오르는 의문을 뒤로하며 전소평을 뒤쫓는 황세웅이었고 이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을 확인하며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봐야만 했다.

    "아…… 아삼?"

    - 오랜만이군.

    "아삼, 자네가 여기에는 어떻게? 정화태감을 따라서 대원정을 떠났다고 알고 있는데? 자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반가우면서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삼의 모습이 믿기지 않은 듯 연신 질문을 쏟아내는 황세웅이었다. 그리고 그런 황세웅을 향해 전심어서로 나직이 말하는 아삼이었다.

    - 그렇게 됐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

    아삼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황세웅이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쓰게 웃는 아삼이었다. 이제는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의 이득을 좇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속내를 터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적막이 어색했는지 주저하며 뒤늦게 입을 여는 황세웅이었다.

    "흐음. 그것이…… 아참, 내 정신 좀 봐. 조금 전에는 고마웠어. 큰 싸움이 날 뻔했는데 자네 도움으로 잘 넘길 수 있게 된 것 같군. 자네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아."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하는 황세웅이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아삼이 냉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만큼 지금 사천에서 행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 말을 돌리는군.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그래 이 사천까지는 어인 일인가?

    "……."

    - 금의위가 여기까지 올 일이 있던가?

    "지금 그 질문은…… 친우로서 묻는 것인가? 아니면 동창의 첩형으로 묻는 것인가?"

    "……."

    "자네도 알다시피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해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하기에는 난처하다네. 사정을 헤아려 주시게."

    - 따로 명을 받은 일이 있네. 그만큼 중한 일이지. 그 일에 누군가 끼어든다는 것은 함부로 넘길 사안이 아니네. 동창의 첩형으로, 황명을 받은 사자의 자격으로 묻겠네. 여기까지 금의위가 무슨 일인가?

    "……."

    아삼의 물음에 입을 다무는 황세웅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맡은 일도 기밀을 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의 명을 받았다는 그 말에 답을 안 할 수도 없었다. 금의위가 살아날 방도를 찾기 위해서 황명을 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폐주의 잔당을 좇아서 이곳까지 왔네."

    - 폐주의 잔당?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 황세웅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금의위의 위세가 많이 꺾이지 않았는가? 하여 팽가의 가주가 금의위의 위세를 높이고자, 고안한 것이 바로 폐주의 잔당이네. 일전에 놓쳤던 폐주의 잔당의 흔적을 좇았지. '삼청회'라고 불리던 그들이 거의 와해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뒤를 잇는 자들이 있더군."

    "……."

    "이미 동창에 손을 뗀 팽가네. 금의위라도 추스르려 했지만, 예전에 비해서 그 위세가 많이 꺾인 것도 사실이지.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폐주의 잔당이라고 불리던 삼청회였네. 그리고 그들을 좇다가 그들이 사천에 있는 상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 하여 나와 금의위가 은밀히 사천에 오게 된 것이네."

    - 사천에 있는 상단이라면 어느 상단을 말하는 것인가?

    "당호상단이네."

    황세웅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 사안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황세웅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답을 기다렸다.

    '당호상단이라…… 그들이 삼청회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해서 사천까지 움직인 금의위라…… 잘못하면 타초경사(打草惊蛇)의 우를 범할 수 있겠구나.'

    어쩔 수 없이 품에 손을 가져가는 아삼이었다. 이내 황금빛 패를 꺼내든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황세웅을 향해 그것을 내밀었다.

    - 황세웅은 황명을 받들라.

    갑작스런 아삼의 행동에 놀란 황세웅이 그의 손을 바라봤다. 황금빛 패를 확인한 그가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부족하다고 여긴 인원은 황세웅과 금의위로 채워 넣어야겠구나.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 이참에 금의위에 내 사람을 넣는다면? 흐음.'

    머리를 조아린 황세웅을 바라보는 아삼의 눈이 빛났다. 서로 다른 임무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이었지만 그 연이 얕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오래전부터 봐왔던 황세웅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아삼이었다.

    '한번 믿음을 주면 쉽게 저버릴 인사는 아니지. 다만, 내 사람으로 만들기가 어려울 테지만……'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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