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67화 (16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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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얽힌 인연

    새빨간 노을이 하늘 끝에 걸린 어스름한 초저녁, 아삼의 처소를 찾은 전소평이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안으로 들어섰다. 이내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린 그가 아삼의 앞에 앉으며 나직이 말했다.

    "첩형의 분부대로 상단주인 현지향에 대해서 조사했습니다. 그 시간이 부족해서 대략적인 것들로만 확인을 했는데 조금 더 깊게 알아봐달라고 하오문에 말을 해 놨습니다."

    전소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하라는 눈빛을 보내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다시 말을 잇는 전소평이었다.

    "수십 년 전에 다 망해가는 수리상단을 헐값에 사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단을 사천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큰 상단으로 만들어놓은 이가 바로 현지향이라고 합니다. 머리도 뛰어나고 이재에도 밝으며 인정 또한 넘쳐서 이 거대한 사천성에서 그의 덕을 입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하여 당가의 눈 밖에 난 지금에도 당가의 눈을 피해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소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소평의 말을 경청하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잇는 전소평이었다.

    "상당히 탄탄한 상단인 것 같았습니다. 현지향이라는 자가 상단을 맡은 이후로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런 수리상단이 이렇게 곤란을 겪게 된 것은 저 중심가에 자리 잡은 당호상단 때문이라고 합니다."

    - 당호상단?

    "네. 사천 당가와 관의 비호를 받은 당호상단이 사천에서의 거래를 독점하다시피하여 다른 많은 상단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수리상단 역시 다른 상단과 같은 어려움을 처했지만 그 인망이 두터워서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듯싶었습니다."

    - 버티고 있는 듯싶었다?

    "근래에 터무니없는 소문으로 당가의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 전부터 은연중에 그들의 경계를 받았지만 지금은 당가에서 노골적으로 직접 제제를 가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가의 직계를 죽인 자가…… 이곳의 상단주라는 소문이 은밀히 퍼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과 함께 조금씩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사천 땅에서 당가의 영향력이 큰 지라……"

    현지향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는 전소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두 단체에 흥미를 가진 그가 전소평에게 물었다.

    - 당호상단이라…… 당가의 비호를 받고 있다면 그들이 운영하는 상단인 것이냐?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상단이 사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당가와는 이렇다 할 연관이 없어보였습니다."

    - 당가의 상단이 아니라면 어떻게 당가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아직 시간이 부족하여 많은 것을 알아내지는 못 했습니다. 사천 당가뿐만 아니라 관의 비호도 받고 있는 것이 수상하여 그에 대해서 알아내라고 따로 명을 내려놨으니 조만간 당호상단에 대한 정보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 알았다. 그건 그렇고 그들의 치료는 어떻게 되었지?

    "문초를 받던 자는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습니다. 내일쯤이면 다시 문초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암기에 당한 자는 여전히 그 독을 해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 당가라…… 알았다. 내일 다시 회복됐다던 그를 문초할 것이니 단단히 준비해 두거라.

    아삼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다. 이내 처소를 나서려던 전소평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삼을 돌아봤다. 그러자 아삼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바깥을 살폈고, 들려오는 소란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전소평이 따랐다.

    상단의 앞마당은 낯선 사내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런 그들을 막아서며 대치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긴장한 듯 몸을 움츠린 채로 그들을 경계했고 그 앞에 현지향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길을 비켜서시오. 확인할 것이 있다 하지 않았소?"

    정중앙에 선 사내 하나가 현지향을 향해 날선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그 말을 들은 현지향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수 없소. 무엇을 확인하려 하는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늦었으니 날이 밝거든 다시 오도록 하시오. 남의 상단을 함부로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은 이 무슨 경우란 말이오!"

    "행패? 행패라…… 좋소. 그렇다면 우리가 아니라 관이 나선다면 그 길을 비켜주겠소?"

    비릿한 미소를 지은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관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짐짓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차가 들어섰단 정보가 있었다. 하여 그 마차를 수색하려 하니 길을 비키거라."

    "비록 지금 우리 상단이 많이 쇠락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상단이오. 상단이라는 곳에 마차가 드나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오? 새삼 수상한 마차라니? 제 아무리 당호상단을 비호하는 관이라고는 하나 이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니오?"

    "뭐라? 비호하다니! 그 무슨 망발이냐? 그리고 너무한 처사? 허면 지금 내가 아니 대 명이 임명한 관리가 억지를 쓰고 있다는 말이냐?"

    "억지를 쓰고 있다 말한 적은 없소. 다만, 상단에 마차가 드나드는 것은 비일비재하거늘 갑자기 이런 식으로 관이 나서는 까닭이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을 뿐이오."

    현지향의 말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관인이었다. 이내 붉어진 얼굴로 현지향을 노려보는 관인이었고 그런 관인을 대신하여 예의 그 사내가 현지향을 노려보며 다시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를 막아서는 낯선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어깨를 잡는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찌푸리던 사내가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렸다.

    "다…… 단주님."

    "물러서거라. 그래도 사천성이 좁다하던 거대 상단을 이끄셨던 단주이시다. 그런 분을 향해 어찌 그런 불경한 태도를 보이느냐?"

    "송구합니다."

    바짝 엎드리듯 머리를 숙인 사내가 단주라는 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그런 그의 태도를 당연하다고 여기며 앞으로 나선 단주라는 자가 만면에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굳은 표정을 보이는 현지향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현 단주, 잘 생각하시오. 이렇게 나오면 당신에게 더 불리해짐을 왜 모르시오? 그렇지 않아도 당가의 무인을 죽였다 의심받고 있는 당신이 아니오? 그런 당신이 마차의 존재를 숨긴다면 그 의심이 더 커질 것이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현지향을 바라보는 단주라는 사내였고 그런 사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덤덤히 말하는 현지향이었다.

    "그 마차가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하 단주까지 행차하셨소? 그 말 그대로 의심이오. 내가 죽였다는 증좌도 없지 않소?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이니 나 또한 걸리는 것이 없소. 그러니 그만 우리 상단에서 나가 주시오."

    "그리 떳떳하다면 못 보여줄 이유가 없지 않겠소?"

    "떳떳하기에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오."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팽팽히 맞서는 두 사람이었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하지만 이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하 단주'라는 자가 뒤에 있는 관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눈짓을 보냈고 그 시선을 받은 관인이 현지향을 향해 소리치며 매섭게 몰아붙였다.

    "지금 관을 무시하는 것이냐! 무엇하느냐? 어서 이 상단을 뒤져서 그 증좌를 확보하거라."

    노기 섞인 그 말에 뒤에 시립해있던 관인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들을 막아서는 수리상단의 사람들이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관인들을 부리던 관복을 입은 사내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그들을 위협하듯 외쳤기 때문이다.

    "대 명의 관인이 나서는 일을 일개 상단의 나부랭이들이 막겠다는 것이냐! 경거망동하는 자는 국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

    침을 튀기며 외치는 그 목소리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현지향이 손을 들어서 관인들을 막아선 상단의 사람들을 물렸고 그 모습에 비릿한 웃음을 짓던 관인이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선 관인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전소평이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막아섰다.

    "멈춰라!"

    "…… 네놈은 무엇이냐! 감히 관의 일을 막아서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아직 이립도 되어 보이지 않는 평범한 복장의 전소평이었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관인이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지만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는 전소평이 들려오는 전심어서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노려봤다.

    당당히 맞서는 그 눈빛에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는지 마른침을 삼킨 관인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다시 그를 향해 소리쳤다.

    "크흠. 묻질 않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나서는 것이냐!"

    "흐음. 관인이라…… 네 소속이 어디냐?"

    "……."

    "무엄한 놈! 어디서 함부로 그 입을 놀리는 것이냐!"

    전소평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못하는 그였지만 그를 대신해서 뒤에 시립해 있던 관인 중 한 명이 나서며 전소평을 꾸짖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전소평이 그를 노려봤고 날카로운 눈빛에 흠칫 떤 관인이 앞에 나선 상관의 직위를 밝히며 그를 누르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분은 종 7품의 도사(都事)이시다."

    "도사(都事)? …… 도사라면, 사천성의 승선포정사사(丞宣布正使司)에 속해 있을 터. 그런 자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냐?"

    "무…… 무엄하다! 그 신분을 알고도 그런 불경한 모습을 보이다니! 네놈이 실성한 것이냐?"

    "승선포정사사에 속한 놈들이 이렇게 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더냐?"

    "……."

    "네놈은 백호소(百戶所)에 있는 소기(小旗)의 복장인데…… 도지휘사사의 통제를 받을 놈들이 승선포정사사의 통제를 받는다?"

    "…… 누군데 이렇게 끼어드는 것이냐? 함부로 관의 일에 끼어들면 경을 칠 것이……"

    "닥쳐라."

    전소평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위협하는 소기였지만 이어지는 일갈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이는 전소평이었고 그 모습에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깨닫는 그들이었다.

    "도사라는 놈이 함부로 대 명의 병력을 움직이다니! 그 죄가 작지 않다!"

    "……."

    "뉘…… 뉘시오?"

    "나는 정 5품의 예역(隸役)으로 동창의 당두인 전소평이다."

    "도…… 동창!"

    동창이라는 말에 그곳에 있던 모든 관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만큼 위상이 높은 동창이었다. 잔인하고 괴팍한 그들의 성정을 전해들은 적이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갑자기 이상하게 돌아가는 그 기류에 당호상단으로 보이는 자들까지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 역시 동창의 소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나섰던 당호상단의 상단주는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며 얼굴을 감췄다. 최대한 고개를 숙이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아삼의 눈이 빛났다.

    '저자는 뭐지? 도사까지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는 더 윗선에 줄이 닿아있음이 분명한데…… 상단의 단주라는 놈이 유독 자세를 낮추는 이유는…… 흐음.'

    수리상단 안으로 들어온 낯선 자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당당히 동창의 명패를 꺼내들은 전소평이 머뭇거리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앞으로 나서라는 명을 받고 행동한 그였기 때문에 이 이상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정해놓은 것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아삼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였지만 이미 몸을 숨겼는지 아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휑하게 비어있는 그 자리를 확인하고 씁쓸하게 웃던 전소평이었고 그런 그의 귀에 아삼의 전심어서가 흘러들어왔다.

    - 따로 이자들을 부려서 이 상단을 지키도록 하고,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로 가서 그들의 우두머리격인 안찰사(按察司)를 은밀히 불러와라. 그리고 인근에 있는 동창의 요원도 몇 불러와라. 단, 그 요원들이 나를 알아서는 안 될 것이다.

    "……."

    아삼의 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전소평이었다. 이미 모습을 숨긴 아삼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고, 이내 전소평이 머리를 조아린 관리들을 매섭게 노려보며 아삼이 내린 명을 그대로 수행하게 만들었다. 상단으로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전소평이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이 다시 돌아가는 '하 단주'라는 자의 얼굴을 확인하며 자신의 방으로 모습을 감췄다.

    "송구합니다. 괜히 저희 때문에……"

    - 우리가 끌고 온 마차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나선 것뿐이니 개의치 마시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주군의 힘으로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말하는 현지향이었고 그 모습과 호칭에 미간을 찌푸리는 아삼이었다.

    '주군이라…… 괜히 전소평을 내세워서 힘을 보인 것인가?'

    이전보다 더욱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지향의 모습에 쓰게 웃는 아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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