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64화 (16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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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초(端初)

    '능구렁이 같군. 애초에 저 장로라는 자를 보낸 것도 그의 뜻이 아니었던가? 누이를 생각해서 어지간하면 좋게 넘기려고 했는데……'

    달라진 아삼의 분위기에 모두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숨겼던 기운이 드러나면서 주변을 싸늘하게 만들었고 암혈대의 대주인 임상표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교주님께서 긴히 전하라는……"

    - 닥쳐라.

    "……."

    싸늘한 아삼의 전심어서에 말을 잇지 못하는 임상표였다. 미간을 찌푸린 아삼이 주변을 둘러봤고 수가 줄어든 마태령의 수하들과 복면인의 모습을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그의 행동에 이목을 집중하는 그때, 돌연 아삼이 모습을 감췄다.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의 모습과 기척에 그를 바라보던 모두가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어…… 어떻게?"

    그 많은 고수들의 눈을 피해서 모습을 감춘 아삼이었다. 극성의 무영보법에 분뢰공의 묘를 섞은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놀란 듯 커다래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복면인의 뒤였다. 그리고 그의 손이 아직도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상대의 혈을 점했다.

    "피…… 피해라."

    순식간에 동료를 제압하는 아삼의 모습에 복면인들 중 한 명이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아삼이 보법을 밟아갔다. 다시 모습을 감춘 아삼의 신위에 암혈대의 몇 명이 움직이려 했지만, 임상표의 제지로 모두 움직임을 멈춘 채 그를 지켜봐야만 했다.

    순식간에 또 다른 한 명의 복면인이 혈을 제압당하면서 빳빳하게 몸을 굳힌 채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그 와중에 쓰러진 자들을 향해 암기를 날려대는 그들이었지만 전소평이 막아서는 것을 확인한 아삼은 뿌려진 암기를 무시한 채 그들의 뒤를 좇았다.

    '아직은 내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

    도망가는 그들을 쫓는 아삼이었고 뿌려진 암기를 걷어내는 전소평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공격을 모두 걷어낼 수는 없었다. 제압당한 두 명 중, 한 명은 뿌린 암기를 맞으며 피를 흘린 채 축 늘어졌다.

    '이런…… 망할 놈의 무공!'

    스스로를 자책하는 전소평이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들의 뒤를 쫓으면서 모습을 감춘 아삼이었고 그가 사라지자 남은 자들이 한숨을 내뱉었다. 마치 교주를 대하는 듯한 중압감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어려보이는 그가 그런 기운을 뿜어낸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앞으로 더욱 성장할 그의 모습을 생각하자 임상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형님…… 아니, 교주님께서 나를 살려오라고 하시더냐?"

    "그렇습니다. 교주님께서 장로님을 무사히 신교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

    "일부러 우리 암혈대를 보낸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아야 할 우리가 이렇게 다급히 뛰어든 것도 교주님의 명을……"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이미 패한 내가 아니더냐? 내 목숨은 오직 그 자만이 결정지을 수 있다."

    "지금 교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따라야지. 당연히 따라야지. 신교에 적을 둔 이상 그 누가 교주의 명에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 허나, 나는 신교의 교도이기 이전에…… 무인이다. 어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겠는가?"

    "…… 둘째 공자의 복수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

    "그동안 보인 장로님의 모습은……"

    "호영의 스승인 나다. 내 이런 모습을 그놈에게 보일 수는 없음이다.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꼴을 당했으니, 그 책임은 응당 내가 져야 맞는 말이다."

    "……."

    비장한 마태령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임상표였다. 복수라는 것으로 눈이 멀었던 그였지만 그 누구보다 남자답고 호쾌했던 무인이 바로 마태령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임상표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마태령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복면인들을 쫓던 아삼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그곳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비장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마태령의 주변에 시립해 있었고 그 앞에서 어색해하며 아삼의 손에 혈을 제압당한 두 사람을 살피는 전소평이었다.

    점혈 당한 그들의 입을 벌리며 독단을 꺼낸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새삼 자신이 아삼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무림이라는 곳에 나오니 스스로의 무공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아삼에게 폐만 끼친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응급처치를 끝낸 전소평이 그 둘을 살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서있는 마교의 무인들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다시 돌아온 아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쫓았던 이들 중 살아서 데리고 온 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 그들이었고 혈을 점해서 잡아놓으면 동료를 죽이면서 자결을 택하는 그놈들이었다.

    독단을 깨물며 죽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동료를 처리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놈들이었다.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는 것만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돌아온 아삼이 사뭇 비장한 그들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교주님께서 긴히 전하라는 말이 있었소. 마 장로를 모시는 대신에 당신의 누이를…… 크윽!"

    돌아온 아삼을 보며 교주의 전언을 전하는 임상표였지만 이어지는 아삼의 행동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우악스럽게 자신의 목을 틀어쥔 아삼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그였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젠장, 이런 무공이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자가 아닌가!'

    - 말하지 않았던가? 닥치라고. 내가 너희들 교주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더냐? 다시 한 번 누이를 가지고 협박을 한다면 그 마교라는 곳을 지워버릴 것이다.

    "……."

    싸늘한 아삼의 전심어서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임상표였다. 암혈대의 대주를 맡고 있는 그였기에 가진 무공이 낮지 않았다. 특히 경신과 은신은 마교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그였다. 그런 그가 아삼의 행동을 알아채고도 움직이지 못 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충격이었다.

    장로들에 비하면 본신의 무공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심 정파의 장로들과 능히 겨룰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하던 그였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인 아삼의 움직임은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다.

    '암혈대의 대주인 내가 이런 치욕을 겪어야 한다니……'

    목을 잡힌 대주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암혈대가 무기를 빼들었다. 그 모습에 힘겹게 손을 들어 올리며 그들을 막아서는 임상표였고 붉어진 얼굴로 아삼을 바라봤다. 교주의 명을 실행해야만 하는 그였기 때문에 함부로 그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잡힌 목을 풀릴 줄 몰랐고 결국,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태령이 입을 열었다.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던가? 결국 자네를 습격한 사람은 나네. 내 목숨을 거두고 그는 놓아주시게."

    "……."

    이전의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는 마태령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아삼이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 죽이기 위해서 싸웠지만 돌연 태도를 바꾸는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쩐지 힘이 없는 듯한 그 목소리는 모든 미련을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마태령은 아삼이 생각하는 대로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린 상태였다. 그만큼 어려 보이는 아삼의 무공에 충격을 받은 그였고, 자신을 만류하던 장위적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새삼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전의를 상실한 그는 내상을 입은 상태였고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제는 온전히 기운을 드러낸 아삼을 막을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화라도 제때 풀어야 신교의 전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그였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 하나로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임상표의 목을 놓은 아삼이 용아를 빼들며 마태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모습에 다급함을 느낀 임상표가 그를 만류하며 소리쳤다.

    "교주님의 전언이오! 마 장로를 살려준다면 더 이상 당신의 누이를 속박하지 않겠다고 하시었소. 당신의 누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약조하시었소."

    "……."

    임상표의 말에 아삼이 걸음을 멈췄지만 상황이 그렇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마태령은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그를 향해 말을 이어가는 임상표였다.

    "마 장로님. 장로님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둘째 공자가…… 둘째 공자가 그런 짓을 행한 연유를……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뭐라? 호영이 그런 짓을 행한 이유?"

    장호영을 언급하는 임상표의 말에 마태령의 눈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아삼이 마음을 다잡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귀찮아지기 전에 끝내려 함이었다.

    어느새 일어선 마태령이 살기를 흘리며 다가오는 아삼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멀쩡해 보이는 그 모습에 침음을 삼킨 그가 그를 향해 포권을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

    "이미 패한 이상, 노부의 목숨은 자네 것이네. 잠깐만 시간을 줄 수 있겠는가?"

    정중한 그 모습에 걸음을 멈춘 아삼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마태령이 임상표를 바라보며 조금 전에 건넨 말을 물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호영이 그런 짓을 한 이유라니?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 교주님께 들으십시오. 그것과 관련된 일이니…… 일부러 장로님을 모시라고 명을 내리신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장로님이 모르는 사실도 아직 많다는 것입니다."

    "……."

    임상표의 말에 미간을 꿈틀거리는 마태령이었다. 어둠 속에서 교의 모든 일을 알아내는 교주의 직속 단체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시 아삼을 바라보는 그였고 차가운 아삼의 눈빛에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련이 없었다. 제자의 복수를 할 수는 없었지만 죽은 장호영보다도 더 먼저 생각할 것은 바로 신교였다. 수십 년을 신교를 위해 힘써왔던 그였다. 그래서 일부러 신교와 멀어질 때까지 아삼을 기다렸고, 최대한 신교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가진 무공이 대단하고 명의 대군을 움직이는 아삼이었기에 그를 처리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고,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리느니 자신의 목숨으로 그 죄를 받으려 했었다.

    하지만 임상표의 말에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마태령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그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내 잠시 고심하던 그가 아삼을 향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이어갔다.

    "먼저 적의를 보이고 이미 패한 이상 응당 자네에게 목숨을 바치려 했네. 허나, 그동안 괴롭히던 것에 대한 단초를 잡은 듯하니, 사라졌던 미련이 다시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꼈네. 염치없는 말이지만 노부를 이대로 보내줄 수는 없겠나?"

    "……."

    "대신 이것을 바치겠네. 선처를 바라네."

    고개를 숙이며 무언가를 꺼내드는 마태령이었다. 그리고 그가 꺼내든 것을 확인한 아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비급이었다. 장호영을 위해서 만든 비급을 바치며 목숨을 구걸하는 마태령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무공의 정수가 담긴 비급이었고 그만큼 모든 것을 내놓는 그였다. 무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본인의 무공이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절실함에 그를 바라보던 아삼이 고심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꼬리를 드러낸 놈들은 이미 확보한 상황이다. 나를 죽이려 하던 놈들을 살려달라니…… 마교의 행태가 꽤 괘심하구나.'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심하는 아삼을 향해 다시 한 번 말을 건네는 마태령이었다.

    "자네에게 패했으니 깨끗하게 목숨을 내놓아야 하겠지. 나 또한 비급까지 바치면서 목숨을 구걸하느니 자네의 손에 마지막을 맡기는 것이 무인으로서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허나, 내 죽기 전에 꼭 알아봐야 할 것이 있네. 나에게 몇 달의 말미를 주겠는가? 자네가 허락해 준다면 내 그 일의 진상을 알아낸 후에…… 스스로 자네를 찾아가 내 목을 바치겠네."

    절실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마태령이었고 그런 마태령의 말에 다시 고심하는 아삼이었다.

    '흠…… 제법 강직한 모습을 보이는군. 우선은 맡은 일을 알아보는 것이 시급하니 마교와의 일은 여기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장로라는 자의 목숨을 취하면 저들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니…… 우선 이 자를 놔주고 누이의 자유를 찾는 것이 좋겠구나.'

    - 좋소. 지금은 이렇게 가겠소. 허나 이후 또 다시 나를 좇는 자가 있다면 그때는 군과 함께 직접 마교를 찾을 것이오.

    "……."

    아삼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마태령이었고 그런 마태령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임상표였다.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마태령의 비급을 취한 아삼이 임상표를 바라보며 경고의 말을 전했다.

    - 교주에게 전하시오. 약조는 꼭 지키라고. 그대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뒤처리는 그대들 몫이오.

    아삼의 전심어서에 떨떠름해하는 임상표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아꼈고 그런 임상표의 모습에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로 명을 내리는 아삼이었다.

    - 그 두 놈을 데리고 바로 움직인다.

    아삼의 하명에 제압당한 복면인 두 놈을 말 위에 태우는 전소평이었다. 이내 앞서가는 아삼의 뒤를 재빨리 따르는 그였고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에 침음을 삼키는 임상표였다. 이내 재빨리 마태령에게 다가간 임상표가 그를 부축하면서 암혈대의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어서 주변을 정리하지 않고."

    임상표의 하명에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는 그들이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사천으로 말을 모는 아삼과 전소평이었다. 이내 말 위에 올린 복면인을 바라보는 아삼의 두 눈이 빛났다. 잘하면 이 일의 배후를 밝힐 수 있을 거라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충분히 비밀을 토설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아삼과 전소평이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연휴에는 규칙적으로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올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만, 따로 공지를 못 올리고 글을 올리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설 명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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