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58화 (15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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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

    "흠…… 오랑캐를 토벌한다는 이유로 군을 주둔시켰다?"

    보고를 받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장위적이었다. 그런 교주의 불편한 마음을 아는지 주위에 모인 그들의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어느새 그곳에 적막이 내려앉았고,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험상궂은 얼굴을 한 마태령이 앞으로 나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군이고 나발이고 신교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것이 영 거슬립니다. 이번에 싹 쓸어버려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에게 염왕대를 내어주시면……"

    "상대는 명군입니다. 주둔한 자들만 처리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지요. 그들의 수도 만만치 않으니 희생은 불가피하고, 만에 하나라도 나중에 더 큰 군을 상대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아직 우리 교의 위치도 발각되었다고 단정하기 힘듭니다. 괜히 나서서 위치만 발각될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태령의 말에 반하며 군사 제명현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제명현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마뜩잖은 표정으로 퉁명스레 말하는 마태령이었다.

    "언제부터 우리 신교가 황궁의 눈치를 봤소? 어차피 황궁과 신교는 함께 할 수 없는 사이가 아닙니까?"

    "마 장로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자고로 주변에서 윙윙대는 모기는 귀찮더라도 바로 잡아야지 시일을 놓치면 피만 빨릴 뿐입니다. 혹 저들의 목적이 오랑캐가 아니라 우리라면 그때는 늦을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우리의 힘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검마 하도강이 마태령의 말을 거들며 나섰지만 여전히 불가하다는 듯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젓는 제명현이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듯싶습니다. 상대는 군이고, 명나라 그 자체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런 명을 상대로 싸워야 할 수도 있어요. 황궁과 우리 신교가 반목하는 사이인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일을 벌일 필요는 없지요. 정말로 오랑캐를 토벌하러 움직인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건 군사의 말이 맞아요. 확실치 않은 일에 나서 괜한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어요."

    새침한 얼굴의 천요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명현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고 그런 두 사람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는 마태령이었다. 이내 마태령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껏 이죽거렸다.

    "흥, 그렇게 몸을 사려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군이 그리 무서우면 두 사람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이곳에 틀어박혀 있으시오! 나머지는 이 마태령이가 알아서 처리 할 터이니."

    한심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마태령이었고 그런 마태령의 모습에 아미를 찌푸린 천요희가 차갑게 말했다.

    "머리는 장식인가요? 교를 위해서라도 이제 그 머리 좀 쓰는 건 어때요?"

    "뭐라? 장식? 천요희! 네 년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는구나. 하긴 네년에게 배웠으니 제자라는 년이 천지분간 하지 못하고 그런 처죽일 짓을 한 것이지! 교주님 그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능히 죽음으로 그 죄를 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흥, 누가 할 소리! 마태령 네 놈이 잘못 가르친 탓에 일이 이지경이 된 것이 아니더냐? 제 분수도 모르고 소교주의 자리를 노린 것이 일을 이렇게 키운 것이다. 그 누가 부모의 원수를 방관하고 참겠는가? 애초에 그런 일을 벌이고도 주제넘은 짓을 한 놈이 잘못 한 것이다. 힘이 우선시 되는 우리 교가 아니더냐? 응당 죄를 물으려면 그를 잘못 가르친 사부라는 놈에게 물어야 함이지."

    "뭐…… 뭐라? 이년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죽고 싶은 것이냐?"

    "죽고 싶다? 네놈이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이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마태령과 천요희였다.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대전 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고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살기에 앉아있던 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장위적이 기세를 끌어올리며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들 하게. 일을 의논하자고 불렀지 이렇게 싸우라고 부른 것이 아니네."

    "하지만 교주님…… 아니 형님! 둘째 공자를 죽인 그년과 그년의 사부라는 년이……"

    "그만 하라고 하지 않나? 그만 기세를 거두게."

    "형님! 형님의 자식입니다. 죽은 호영은……"

    콰앙.

    교주를 향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치는 마태령이었지만 이어지는 장위적의 행동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는 그가 앉아있던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섰고 그 힘에 자단목으로 만든 단단한 탁자가 그대로 부서져 나갔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기세를 흘리는 장위적의 행동에 모두가 숨죽여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태령도 급히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던 장위적이 이내 기운을 갈무리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우선은 지켜보도록 하지. 다음부터는 예를 차리는 것이 좋을 것이네."

    "……."

    "다들, 이만 나가보게."

    차갑게 돌아서는 장위적의 모습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그들이었다. 이내 장위적을 향해 예를 올린 그들이 하나 둘씩 교주전을 나섰고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긴 한숨을 뱉어내는 장위적이었다.

    그날 밤, 어둑해진 교주전에 굳은 얼굴의 장위적과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는 천요희와 군사인 제명현이 함께 했다.

    뭔가를 고심하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던 장위적이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두 사람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자를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

    뜬금없는 장위적의 말에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천요희와 제명현이었고 그런 그들을 향해 장위적이 다시 확고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군을 움직인 놈은 바로 그놈이겠지? 어린놈이 대단한 힘을 가졌군. 군이라…… 아삼이라는 자를 만나겠다. 천 장로! 그대가 자리를 마련해 보거라."

    장위적의 하명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천요희였고 그런 천요희를 대신해 앞으로 나선 제명현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교주님, 다시 생각해 주시지요. 그 자는 관인입니다. 하물며 이미 군까지 동원한 자가 아닙니까? 아무래도 위험할 듯싶습니다."

    이미 천요희를 통해 아삼에 대해 전해 들은 제명현이었고 아삼을 이용하면 지금 세가 많이 꺾인 장무영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심하던 그였다. 하지만 교주인 장위적이 직접 아삼이라는 자를 만나려고 나설 줄을 생각지도 못 했다.

    "맞아요. 교주께서 직접 나서시는 것은 위험할 것 같아요. 혹시 그 자에게 전할 말씀이 있다면 제가 움직이겠어요."

    제명현의 말에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거드는 천요희였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실소를 터뜨린 장위적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들의 말을 읊조렸다.

    "위험하다? 신교의 교주인 내가 위험하다?"

    "송구합니다. 소인의 말은 그 뜻이 아니옵고……"

    "되었네. 내가 꼭 그 자를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그대로 진행해주게."

    단호한 장위적의 말에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두 사람이었다. 이내 두 눈을 빛내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장위적의 얼굴에 묘한 설렘이 깃들어 있었다.

    며칠 뒤, 장위적의 명을 받은 제명현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내 모든 일을 마친 그가 장위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올렸다.

    "교주의 명대로 모든 준비를 맞췄습니다. 우선은 청해성에 있는 상단을 시켜서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비워놨으니 그곳으로 그 자를 부르면 될 듯싶습니다."

    "수고했네. 허면 그 자에게 내 뜻을 전하도록 하게."

    "하오나…… 그 자가 움직이겠습니까?"

    상대는 마교의 교주 장위적이다. 제 아무리 동창의 요직에 있다고 하나 그래도 마교의 교주를 만나는 일인데 섣불리 움직일 것 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제명현이었다. 그쪽 또한 감수해야 할 위험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알고 있는 제명현이 장위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장위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 말고 전하게. 그자는 필히 움직일 것이네."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제명현이었다.

    며칠 뒤, 다급한 표정으로 객잔으로 들어선 전소평이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첩형, 마교의 교주 장위적이 만남을 청해왔습니다."

    - 교주가?

    전소평의 말에 놀란 듯 되묻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 전소평이었다.

    "예. 아무래도 군을 움직여서 그들을 압박한 것이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남에 응하시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전소평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 내심 바라던 일이었다. 이곳으로 온다고 하더냐? 아니면……

    "며칠 뒤에 청해 객잔이라는 곳에서 보자는 연통이 왔습니다. 어떻게 할지 몰라서 아직 답을 주지 않은 상황인데…… 진정 그곳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 어차피 청해성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더냐? 관군도 있으니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상대는 마교의 교주입니다. 가진 무공이 전 무림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출중한 자이온데……"

    - 그런 자가 만나자고 연통을 넣지 않았더냐? 이 일은 빨리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외적으로는 네가 지휘첨사 우겸을 대동하고 움직여야 할 것이다.

    "저와 지휘첨사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아삼의 말에 놀란 듯 되묻는 전소평이었다. 그만큼 마교의 교주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하오문을 통해서 무림에 대한 소식을 손쉽게 접했던 그였기 때문에 장위적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런 전소평의 반응에 쓰게 웃는 아삼이 마저 말을 이어나갔다.

    - 은밀히 네 뒤를 따를 것이다. 대놓고 움직여봐야 좋을 것은 없으니…… 너는 지위첨사와 함께 호위를 위해서 장수 몇을 데리고 그곳으로 움직여라.

    "예. 첩형."

    ***

    쥐 죽은 듯 조용한 객잔 안에 장위적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군사인 제명현이 함께 자리해 있었고 그런 그들의 앞에는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우겸과 전소평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마교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장위적의 앞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꽤나 건방진 놈이군. 본좌를 이렇게 기다리게 만들다니."

    앞에 앉은 우겸과 전소평에게 차가운 웃음을 보이며 말하는 장위적이었고 그 안에 담긴 불쾌함을 읽은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겸 역시 청해성의 도지휘첨사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마교라는 단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마교의 수괴라고 알려진 자와 대동한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은 그였고 몸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에 땀을 흘려댔지만 힘겹게 입을 열었다.

    "기다려 보시오. 오신다고 했으니 곧 오실 것이오."

    "기다리라? 감히 교주님을 기다리게 만든단 말이더냐?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기껏해야 환관 나부랭이 일지언데……"

    "흥, 마교가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기다리라면 기다리면 될 것을……"

    교주를 기다리게 하는 아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소리치는 제명현이었고 그런 제명헌을 향해 나직이 읊조리는 전소평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소평의 읊조림에 얼굴을 구긴 제명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뭐라? 네 놈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내 네놈의 입을……"

    전소평의 말에 발끈하며 소리치는 제명현이었다. 비록 군사라고는 하나 그 역시 교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였다. 살기를 뿜어내며 전소평을 노려보는 제명현이었지만 그런 그를 제지하며 밖을 향해 나직이 말하는 장위적이었다.

    "왔는가? 허면 빨리 들어오시게."

    갑작스런 장위적의 말에 당황한 세 사람이었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밖을 향해서 뜬금없이 말을 꺼내는 장위적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비웃듯 조용히 방으로 들어서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모습에 세 사람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기척을 드러내지 않은 아삼도 놀라웠지만 그런 아삼의 기척을 잡아낸 장위적의 실력 또한 대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명현의 놀람은 더욱 컸다. 다른 장로들에게는 미치지 못 하지만 이미 자신이 이룩한 경지도 낮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선 아삼이라는 자의 모습은 이제 약관을 벗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타난 어린놈의 무공이 자신의 윗줄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절로 인상을 구겼다.

    자신을 바라보는 긴 백발의 모습을 한 장위적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건네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장위적이었다.

    '이미 와 있었던가?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기척을 숨길 수 있다니……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 규화보전을 익힌 것이 거짓은 아닌 것 같군.'

    '살수지무의 공능으로 기척을 숨겼건만 나를 알아내다니…… 역시 마교의 교주는 다르다 이것인가!'

    장위적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아삼 역시 앞에 있는 백발의 사내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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