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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전과 비슷한 무공을 보일 수 있게 된 아삼이었다. 예전에 당새아와의 싸움에서 필사적으로 빠르게 차오르는 음기를 떨쳐내려고 내기를 쏟아냈던 그 모습을 다시 재현해 낼 수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차오르는 내기의 속도가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만 못 하구나.'
그 당시와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차오르는 내기의 속도가 느리다고 느끼는 아삼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무인들이 봤을 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차오르는 그의 내기였지만 이미 그것보다 더한 경험을 했던 아삼인지라 그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당새아와의 일전에서처럼 내기가 바로바로 차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걸리긴 했지만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된 무공에 나름 만족하는 아삼이었다.
'이번 해에 이 무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전에 이미 규화보전을 입문한 상태였던 것인가?'
이미 자신이 그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아삼이었다. 60년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규화보전을 온전히 익힐 수 있을 날만을 손꼽아서 기다렸던 그였다. 하지만 아직 입문조차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서 그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화를 따라서 대원정에 참여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떨쳐낼 수 있게 된 아삼이었고 수적과의 싸움에서 온전히 드러낸 무공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삼의 무공을 처음 확인한 전소평도 놀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새삼 자신이 모시고 있는 이의 대단함을 느낀 그가 더욱 존경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적과의 싸움을 뒤로 하고 중경에 도착한 아삼과 전소평이었다. 이내 옷을 갈아입은 그들은 쉬지 않고 청해성으로 말을 몰았다. 연신 투레질을 해대는 말을 재촉하며 달려온 끝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청해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미진 객잔으로 들어선 아삼과 전소평은 그제야 짧은 휴식을 취했다.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에 여독을 떨쳐내고 다시 모인 그들이었다. 진지한 눈빛을 보인 아삼이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로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 바로 누이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방법이 있겠느냐?
"우선 청해성에 있는 하오문의 지부를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쉬시고 계시면 관련된 사항들을 알아오겠습니다."
- 제법 시일이 많이 지났다. 찾고 있는 자들도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으니 그것이 걱정이다.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내 잘 알고 있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다오.
"송구합니다. 최대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읍을 하며 방을 나서는 전소평의 모습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아삼이었다.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읍을 하는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강행군과 배에서의 멀미로 고생하던 전소평이었다. 그 옆에서 가까이 봤던 아삼인지라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누이를 만나는 것이었다.
씁쓸하게 웃던 그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감나무에서 떨어지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중한 상처를 입은 몸이었다. 이전에 있었던 깨달음으로 몸이 다시 재구성되는 것을 상기시킨 아삼이 천천히 그 상처가 있는 곳으로 손을 가져갔고 조심스럽게 그곳을 매만졌다.
매끈했다. 이전에 있었던 그 흉터는 사라진 것 같았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에 다급히 동경을 찾는 아삼이었다. 조잡한 동경으로 보이는 목은 아무런 흔적도 없었고 그 사실에 조심스럽게 입을 벌리는 아삼이었다.
"아…… 아! 아아!"
이질적인 소리가 그의 목에서 울려 퍼졌다. 처음 들어보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란 듯 입을 벌린 채로 뚫어져라 동경을 바라보는 아삼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무언가를 발음하려고 했다.
"아아…… 아아아."
"……."
이전까지 전심어서로 소통하면서 했던, 들으면서 알게 된 것들을 말하려고 노력하는 아삼이었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거칠고 쇳소리가 나는 듯한 목소리와 달리 적당히 맑은 소리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환골탈태라…… 말로만 듣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인가?'
계속해서 노력을 한다면 충분히 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이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 아삼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대로 목소리를 가지고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황궁으로 돌아갔을 때는 환관 특유의 가는 소리를 내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자들에게는 큰 구애를 받지 않을 테지만, 정화나 황제, 황실의 어른들을 찾을 때는 목소리를 가늘게 만들어야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제대로 발음을 하기 힘든 말을 드러내는 것도 조금은 어색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대로 묻어두기로 결정했다.
다시 다른 상처들을 살피는 아삼이었다. 확실히 몸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였지만 남성을 찾지는 못했다. 이미 흉터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의아해하는 아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떠오른 생각에 씁쓸해 할 수 밖에 없었다.
환관만이 익힐 수 있다던 규화보전이었다. 그 음기가 그것을 막아서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그였고 그 사실에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흐음. 기구하구나. 내 인생도…… 이 규화보전을 대성한다면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확실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을 직접 체험한 아삼이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그 사실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황궁에서는 특히, 동창이라는 신분을 가진 환관으로는 불편한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이전 생과 함께 지금의 생에서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규화보전을 대성한다라……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인가? 우선은 누이의 일과 황명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시 돌아온 전소평은 혼자가 아니었다. 값나가는 비단 옷을 입은 노인을 대동하고 들어서는 전소평이었고 그 옆에 함께 한 노인이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청해성의 하오문 지부를 맡고 있는 구상의라고 합니다."
"마교와 관련된 사항은 함부로 내줄 수 없다하여, 직접 데리고 왔습니다."
"……."
- 우리의 손을 잡고 있는 자입니다. 믿을 수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소평의 전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의 손짓에 자리에 앉는 두 사람이었고 빤히 바라보는 그 눈빛에 고개를 숙인 구상의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그 위치는 기밀 중에서도 기밀인지라 제가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궁금해 하신 것은 쉬이 알아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쪽으로 간자를 잠입시키기도 힘들 뿐더러, 정기적으로 건네는 정보들도 그리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
"……."
"하지만 여러 가지 정보를 조합해보면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끝을 흐리는 구상의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끼는 아삼이었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하라는 듯 눈치를 주는 그였고 그 모습에 전소평이 구상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빙마후의 애제자로 알려진…… 그분은 근래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갑작스런 아삼의 전심어서에 놀란 듯 눈을 부릅 뜬 구상의가 앞에 앉아있는 아삼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 약관으로 보이는 그 모습에 가지고 있는 무공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는 그였고 그를 빤히 바라보는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어갔다.
"최…… 최근 들어 마교의 소교주라고 하는 첫째 공자의 세가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이전과 같은 위치는 아닌 것 같고, 둘째는 몇 해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셋째 공자가 급격하게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문제는 찾고 계시는…… 그분인데, 그 위치가 어떻게 보면 아슬아슬합니다."
- 아슬아슬하다?
"계속해서 중립을 취하던 빙마후 천요희가 소교주라는 첫째 공자의 편에 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중립을 취하던 그녀가 확실하게 뜻을 밝힌 것이 매우 이상합니다. 동시에 둘째 공자의 사부라고 알려졌던 권마 마태령이 셋째 공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
"그리고 남은 마두와 제자들이 두문분출하면서 두 세력에 줄을 대고 있는데…… 유독 빙마후의 애제자라고 불리는 그분의 행방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은밀히 나도는 소문으로는……"
아삼의 눈치를 살피며 주저하는 구상의였고 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는 아삼이었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삼이었고 그 표정을 확인한 전소평이 구상의를 바라보면서 눈짓을 보냈다. 아삼의 심기가 편하지 않았기에 빨리 말을 하라는 눈짓이었다.
"둘째 공자의 죽음과 그분이 관련되어 있어서…… 죽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 아무래도 누이의 스승이라는 빙마후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구상의의 말을 자르며 전소평을 향해 자신의 의중을 밝히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놀란 듯 전소평이 되물었다.
"……빙마후, 천요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금 전에 구 지부장의 말은 확실하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저 그런 풍문이 떠돌고 있다는 듯 한데, 조금만 더 알아보면……"
- 빙마후를 만나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따로 연락할 방법이 있는 것이냐?
"…… 직접 만나려 하십니까?"
-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듯 싶다.
아삼의 말에 고심하는 전소평이었다. 이내 구상의를 향해 의사를 밝히는 그였고 그 소리에 놀란 듯 곤란해 하는 구상의였다.
"그것이…… 쉽게 연락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 쪽 비선이 드러날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 그녀가 있는 곳의 위치를 말해라. 내가 직접 찾아가 보겠다.
"첩형! 진정하십시오. 혈혈단신으로 어찌 그곳을…… 그곳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 되었다. 굳이 내 일에 다른 사람의 위험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아닙니다. 첩형. 제가 따로 빙마후 천요희에게 연락을 취할 방도를 찾아 내겠습니다. 곧 만남을 주선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다른 동생분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말미를 주신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게 만들겠습니다."
전소평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내키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우선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보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전소평과 구상의였다. 얼굴을 굳힌 채 앉아있는 아삼을 바라본 그가 고개를 숙이며 읍을 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전소평이 구상의와 함께 객잔을 나섰다. 그런 전소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심에 잠기는 아삼이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니겠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참 얄궂은 운명이 아닌가?'
예전 장무영과의 일전을 떠올린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혹시나 그 일로 아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그 설명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아삼이었다.
이제는 온전히 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떠나간 그 존재가 남긴 것들이 온전히 아삼에게 남겨진 상황이었다. 그 애틋한 감정과 함께 되도록이면 누이가 안전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아삼이었다. 우선 그녀와 가장 가까웠을 빙마후라는 누이의 스승을 만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아삼이었다.
***
교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전각에서 날아든 한 마리의 전서구를 확인한 천요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교 밖으로 나가있는 자신의 수하들이 다급할 때, 날리는 전서구였다. 갑작스런 그 전서구의 도착에 굳은 얼굴로 그 내용을 확인하는 그녀였지만 의외의 내용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아미를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제법 수완이 대단한 놈인가? 관인이라고 하던데…… 그렇다고 수하들을 찾았다는 사실이 대단하지 않은가?'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쪽지를 확인한 천요희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누이를 찾는다는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도 있겠다고 여기는 그녀였고 그 쪽지에 적힌 시일과 장소를 보면서 고심을 거듭했다.
'그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전서구를 함부로 내줄 수는 없을 것이고, 아희와 그 동생의 관계를 이용했으리라고는…… 흐음.'
잠깐 고심하던 그녀였지만 밑져봐야 본전이었다. 만약 그것이 함정이라고 할지라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이겠지. 명분이 없어서 참고 있었을 뿐이다. 네놈들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하더라고 내 기꺼이 응해주마.'
날선 눈빛으로 한곳을 노려보는 천요희였다. 그녀의 몸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세가 일었고 순간 주변의 기온이 빠르게 내려갔다.
소수마공을 익힌 그녀였지만 자신의 제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못마땅해 했다. 아무리 신공절학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교주와 장로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갇힌 그녀의 제자를 떠올리면서 이내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천요희였다.
'아희……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 사부가 곧 너를 그곳에서 빼낼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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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