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42화 (14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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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

    갑자기 열린 성문과 함께 기골이 장대한 장수 한 명이 나오면서 호기롭게 외치는 소리에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제의 눈이 빛났다.

    "꽤 대범한 자로구나. 저 자의 목을 가져올 자가 있는가?"

    황제의 말과 함께 그 물음에 어린 호기심을 확인한 장수가 선덕제의 앞으로 나서며 몸을 숙였다. 희끗한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장수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 소신의 휘하에 있는 장수가 그 무용이 드높습니다. 용맹함이 범에 못지않으니 기회를 주시겠사옵니까?"

    "좋다. 가서 저 자의 목을 가지고 오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황제의 수락에 몸을 일으킨 장수가 읍을 하며 단이 쌓여진 그곳을 내려갔고 곧이어 한 장수가 먼지를 뿜으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기다란 장창을 비켜 든 그가 다가서자 기다리던 가염포가 박아둔 언월도를 빼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말을 세운 무장이 창을 겨누며 소리쳤다.

    "나는 부천호(富千戶) 송연이다. 네놈의 목을 거두러 왔다."

    "흥! 누구 목이 떨어질 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호기롭게 외친 가염포가 말의 옆구리를 박찼고 전마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모습에 송연이라고 밝힌 자도 맞서서 말을 몰았고 이내 서로 스치듯 지나가는 그들이 들고 있던 언월도와 창을 휘둘렀다.

    채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창을 내지른 송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창을 쥔 손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던 그는 안에 잠들어있는 기운을 끌어올리면서 고삐를 낚아챘다.

    다시 뒤를 돌아보는 두 사람이 빠르게 가까워졌고 다시 둘의 병기가 부딪쳤다.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힘에 인상을 찌푸리던 둘이 더욱 힘을 주며 창과 언월도를 휘둘렀고 그 흉흉한 기세가 황제가 있는 곳까지 느껴지는 듯 했다.

    "이만 죽어라!"

    계속해서 병기를 부딪치던 둘 중, 말의 고삐를 잡아챈 가염포의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잡아챈 고삐에 전마의 울음소리가 그 뒤를 울렸고 앞발을 들어 올린 전마의 힘을 더해서 가염포의 언월도가 내리 꽂혔다.

    "어림도 없다!"

    그에 대앙하듯 창을 뉘이며 막아서는 송연이었고 곧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터엉. 히이이잉.

    언월도를 막아낸 쇠로 된 창대가 부르르 떨렸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타고 있던 말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틈을 노리고 가염포의 언월도가 시린 궤적을 그렸다.

    투욱.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송연의 머리와 함께 크게 숨을 내쉰 가염포가 그의 머리를 노려보며 시선을 돌렸다.

    "흥!"

    크게 콧방귀를 낀 그가 언월도를 휘두르며 묻은 피를 털어냈고 다시 언월도를 바닥에 꽂으며 황제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마치 자신을 향해 코웃음을 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낱 진무(鎭撫)가 황제를 향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참을 수 없었는지 붉어진 얼굴로 노성을 터뜨리는 황제였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고작 진무(鎭撫)직을 가진 무장 하나 잡지 못하다니!"

    "폐하, 다른 무장을 내보내겠사옵니다."

    "제대로 된 자를 내보내거라. 그 능력이 출중한 자로! 어서 저 놈의 목을 가지고 오라."

    "예. 폐하."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은 노무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번에는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제법 이름나고 관록이 있는 무장을 보냈지만 그 결과는 이전과 동일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염포라는 무장의 투구를 떨어뜨렸다는 것이었지만 그마저도 떨어진 투구를 다시 고쳐매는 그였다.

    "황군도 별 볼일이 없구나!"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가염포의 외침에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그 모습을 노려보는 황제였다. 다시 그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휘하 장수들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황제였고 그런 그를 향해 다시 나서려는 장수가 쏘아진 황제의 날카로운 눈빛에 고개를 조아렸다.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좁힌 황제의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황제의 눈에 흰색 목면을 입은 자의 얼굴이 가득 들어왔다. 황금빛 목면의 금의위보다 유독 눈에 띄는 그 모습에 얼굴을 확인한 황제의 용안에 미소가 번졌다.

    이내 그를 바라본 황제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삼아, 네가 나서보겠느냐?"

    "……."

    갑작스런 황제의 호명에 머리를 조아리는 아삼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 모습에 벙어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다른 무장들이 무엄하다며 소리를 지르며 그를 질책 했지만 이미 그가 벙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황제는 개의치 않고 다시 말을 전했다.

    "어떠하냐? 저 오만방자한 놈을 산 채로 끌고 올 수 있겠느냐? 내 직접 저놈의 죄를 물을 것이다."

    은근히 종용을 하는 황제의 태도에 고개를 숙이는 아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하는 그의 표정이 굳었지만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황제에게 예를 올리며 단을 내려가는 아삼의 모습에 어느새 웃음을 지어보이는 황제였다.

    일전에 황궁을 침입했던 자객들을 처리한 아삼의 무공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삼의 무공이라면 저 놈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황제의 기대에 힘입어 말에 올라탄 아삼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화가 따로 황제를 보호하라며 자신을 내보냈지만 이미 황제의 옆에는 은밀한 기운이 숨어있었다. 검교의 고수로 여겨지는 자였고, 그런 자가 지키는 황제의 명에 내키지 않는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아삼이었다.

    말에 타서 멀리 있는 무장의 모습을 바라본 아삼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따로 챙겨온 검을 빼들려던 그에게 누군가가 기다란 무언가를 건넸다. 아래를 내려 보니 황세웅이 아삼을 향해 기다란 창을 주며 웃고 있었다.

    - 가서 공을 세워라. 황제의 심기를 편히 해서 확실히 눈도장을 찍는 거야. 하하하.

    "……."

    황세웅의 전음에 인상을 찌푸리는 아삼이었고 뒤를 돌아보자 황제가 아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숙으며 창을 건네받은 아삼이었고 앞으로 달려나가며 말의 고삐를 잡았다.

    실로 오랜만에 잡는 장창이었다. 동창이 되기 전에 받았던 교육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말을 달리면서 그것을 휘둘러보는 아삼이었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염포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내 아삼이 근처로 다가오며 말의 속도를 줄였고 천천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염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흥! 이제는 하다못해 사내가 아닌 놈을 내보내는 것이냐? 황제의 군에 그렇게 인재가 없단 말인가!"

    "……."

    커다란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 아삼이었다. 그저 창을 길게 늘어뜨리며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삼의 그 모습이 못마땅한 듯 가염포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환관 놈아! 어디 이런 신성한 전장에 너 같은 놈이……"

    - 닥치고 기운이나 다스려라.

    "……."

    고저 없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놀란 가염포가 입을 다물었다. 마음속에 울리는 듯한 그 소리에 그가 커다래진 눈으로 아삼을 바라봤고 그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에 탄 채로 미동도 않는 아삼이었다.

    성벽 위에서 달려오는 인사를 확인한 가평천의 얼굴이 굳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을 잘 끌어주고 있는 아들이었지만, 그를 상대하러 나온 다음 상대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동창의 고수인가? …… 다른 무장을 두고 저자를 보냈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뜻이겠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아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였지만 이제 와서 달리해줄 방법이 없었다. 다만 마음속으로 아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삼의 고개가 성벽 위로 향했다.

    애틋한 가평천의 눈빛이 가염포에게 향해있었고 그 눈빛을 읽은 아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그가 성벽을 바라보는 순간 가염포가 말의 옆구리를 박차며 언월도를 빼들었다. 스스로도 앞에 선 이의 무공을 경시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아압!"

    이전보다 더욱 우렁찬 기합과 함께 기운을 더한 그의 언월도가 아삼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드는 그 공격에 뒤로 물러서며 피하려는 아삼이었지만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싸움은 익숙하지 않은데……'

    매번 평지에서 싸웠던 그였다. 뒤로 물러서려는 움직임과 함께 전마를 움직였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창을 들어서 그 공격에 맞서는 아삼이었고 휘두른 언월도의 끝을 향해 창이 꽂혀들었다.

    채애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삼이 타고 있는 말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기마술에서는 앞선 놈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가염포가 이내 주춤거리는 말을 추스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다시 아삼을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그 공격에 허리를 꺾으며 공격을 피하는 아삼이었고, 다시 가염포의 언월도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아삼을 향해 계속 날아들었다.

    '말과의 호흡이 맞지 않는다. 이전의 한수로 엄청난 고수인 줄 알았는데…… 그저 허장성세였단 말인가?'

    피하기만 하는 아삼의 행동에 가염포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레 놀라서 겁을 집어먹었다는 생각이 분노로 나타났고 언월도에 더욱 힘을 더하는 그였다.

    점점 기세등등해지는 그 공격에 주변을 살피던 아삼이 이내 마음을 굳혔다. 처음에는 자신도 전마의 움직임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앞에 있는 자에게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앞의 무장을 산 채로 잡아오라는 황제의 명에 잠시 고민을 한 그였다. 성벽에서 애틋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에 황제의 명을 수행하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부터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게 만드는 묘한 느낌에 이상함을 느끼는 아삼이었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이 거부감은 뭐지?'

    미간을 찌푸린 아삼이 이전에 느껴본 그 느낌이 다시 전해진다는 사실에 침음을 삼켰다. 마교의 소교주를 데리고 도망을 갔던 그 여자를 본 이후로 내적으로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얼핏 느꼈고 그것이 다시 준동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날아오는 언월도를 피한 아삼이 장창을 다잡았다. 이정도면 꽤 고전한 듯 보이리라 여겨졌기 때문에 앞선 자를 죽여도 상관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졌다. 정화와의 대화 이후에 너무 자신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자각한 그였고, 조금씩 그 모습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일부러 그의 공격을 받아주면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중이었다.

    '산 채로 살려간다고 하더라도 좋은 꼴은 보지 못할 터. 그냥 죽는 것이…… 더 편할 테지.'

    그렇게 생각을 굳힌 아삼이었고 계속해서 공격을 피해대는 그 모습에 노기를 터뜨리는 가염포였다.

    "이 놈! 이 쥐새끼 같은 놈!"

    다시 휘둘러지는 가염포의 언월도와 함께 아삼의 손이 뻗어졌다.

    '분뢰공.'

    섬전같이 쏟아지는 창에 기겁한 그가 휘두르던 언월도로 날아드는 장창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이미 뻗어진 장창은 그의 심장을 찌른 이후였다. 한줄기 빛이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고 그 공격을 당한 가염포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상대하는 자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굳은 얼굴로 가슴을 찌른 장창을 붙잡았다.

    남은 한 손으로 언월도를 들어올리는 그 모습에 처음으로 표정을 드러낸 아삼이 기운을 더해서 그대로 장창의 끝을 밀었다.

    쿠웅.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지는 가염포였고 그대로 말머리를 돌리는 아삼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했던 자인 것 같군.'

    마지막에 보였던 그 투지를 떠올린 아삼이 그렇게 다시 돌아왔고 밀리는 모습을 보이다가 한 수에 상대를 꼬꾸라뜨리는 모습에 흡족해하던 황제가 그를 치하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팽문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인가? 무슨 연유로……'

    마지막에 보인 그 한수로 봐서는 아삼이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었던 상대였다. 이전에 보였던 모습이 어색할 정도로 깔끔하고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초반에 고전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 아삼이었고 그 사실을 눈치 챈 팽문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의도적으로 그 모습을 보였다면…… 생각보다 더 대단 놈이 아닌가?'

    자신을 주시하는 팽문호의 시선을 느낀 아삼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한껏 사기가 드높았던 낙양성은 아삼이 쓰러뜨린 가염포의 모습과 함께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황제가 이끄는 황군은 반대로 그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오히려 자충수를 뒀다는 생각과 함께 죽은 아들의 모습에 가평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지인 줄 알고 내보낸 아들이었지만 막상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그였고 목숨을 바치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 가평천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황군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낙양성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그 동요를 막아낼 수 없었고 한쪽에서는 한왕을 잡아서 바치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한왕이었고 황제의 명과 함께 황군이 낙양성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며칠 사이에 모여드는 대군에 견고했던 낙양성도 금세 함락당할 위기에 처했다. 한왕인 주고후는 어쩔 수 없이 투항을 하기로 작정하고 항복의 의사를 밝혀왔다.

    작별의 시간을 위해 시간을 달라고 청하는 한왕이었다. 비록 그를 벌하기 위해 직접 친정을 택한 황제였지만 차마 그 요구를 저버릴 수 없던 황제였다.

    한왕의 요구에 황제인 선덕제는 그것을 들어줬고 그 사이, 무기와 반란 문서들을 불태운 한왕은 도망치려다가 관군에 의해서 붙잡혔다.

    그렇게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반란은 황제의 친정으로 진압이 되었다. 잡힌 한왕을 데리고 북경으로 움직이는 황제였고 더 이상 그에게 위협이 될 존재는 없었다.

    그리고 아삼 역시 불안했던 한 축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만족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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