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38화 (13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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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제

    자신의 처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던 정화가 고심하는 듯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께 알리지 않은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질 않은가? 만약 낙양에 있는 한왕이 준동한다면 그때는 그들의 도움이 절실할 터. 흐음…… 아직은 때가 아닌 게지.'

    확신에 찬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정화였고 그때 밖에 있던 환관이 들어서면서 몰래 소식을 알려왔다.

    "공공, 동지 어르신 드셨습니다."

    "뫼시거라."

    은밀히 행하는 만남이었다. 최대한 은밀히 보자는 말을 전한 정화였고 그의 의중에 따라 몰래 들어선 팽문호가 정화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런 팽문호를 서서 맞으며 자리를 권하는 정화였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걸음을 하게 하여 송구합니다. 허나, 팽 동지(同知)와 긴히 논할 일이 있어서 이런 실례를 무릅쓰고 뵙기를 청했습니다."

    아무래도 팽문호를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 아삼을 통해 자리를 마련하라고 명한 그였다.

    "아닙니다. 헌데…… 이렇게 몰래 보자고 하신 연유가 있으십니까? 무슨 일이신지……"

    정화를 바라보는 팽문호의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 이리 긴히 자신을 부르는 것을 보면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흐음. …… 아무래도 팽인학 그 아이로 인해서 팽가에 다시 한 번 위기가 닥칠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입을 떼는 정화였고 그런 정화의 말에 팽문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린 팽문호를 향해 인학의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는 정화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화의 이야기에 팽문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그 일을 기점으로 내쳤어야 했던가? 괜한 세간의 이목 때문에 내치지 않은 것이 이렇게 일을 몰고 올 줄이야. 흠. …… 잘못 들인 아이 하나가 다시 우리 팽가를 흔들리게 만드는구나.'

    침음을 삼키며 고심하는 팽문호였다. 하지만 이미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일에 고심한들 딱히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내 한숨을 내쉰 팽문호가 앞에 있는 정화를 바라봤다. 자신을 몰래 부른 이유가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팽문호의 눈빛을 받은 정화가 그 뜻을 읽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숨을 쉴 것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

    직설적인 팽문호의 물음에 할 말을 잃은 정화였다. 그런 정화의 행동에 민망한 듯 헛기침을 내뱉던 팽문호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너무 급해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공공께서 저희 가문을 살릴 비책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팽문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정화가 나직이 대답했다.

    "아직 이 일을 폐하께서는 모르십니다. 아직 보고를 올리지 않았지요."

    "…… 어째서?"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팽문호였다. 확실히 정화의 행동은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것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그였지만 도무지 그 의중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팽 동지께서도 작금의 상황을 잘 아시겠지요? 한왕이 언제 준동할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 금의위를 맡고 계신 팽 동지를 내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폐하를 위해서도. 그리고 팽 동지를 위해서도 지금은 이 일을 묻어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 공공?"

    정화의 말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는 팽문호였다. 가문의 끝을 생각하고 있었던 그였던지라 지금의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언제까지 묻어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기회를 잡으세요. 만약 한왕의 준동을 막아 혁혁한 공을 세운다면 팽가는 존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팽가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뿐입니다."

    "고맙습니다. 공공. 팽가를 살려주신 공공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정화의 말에 고개를 숙이는 팽문호였고 어느새 고마움 가득한 눈길로 정화를 향해 포권을 올리는 그였다. 그리고 그런 팽문호를 바라보는 정화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 미소가 번졌다.

    확연히 달라진 자신의 몸에 놀라는 아삼이었다. 균형을 이룬 내기로 더 이상 음기가 마음대로 날뛰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그 위력은 더할 나위 없이 강해졌다.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달라진 몸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그였고, 익힌 무공을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내기가 안정화됐다는 점이었다. 유난히도 도드라졌던 음기가 한풀 꺾였고 인학이라는 놈의 몸에 있던 기운들이 아삼에게 넘어오면서 균형을 이루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불안전한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스스로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짧은 시간이 이루어질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렴풋이 잡히지 않는 무언가와 더 이상 쌓이지 않는, 단전을 가득 채운 기운에 답답해하는 아삼이었다.

    '분뢰공과 용유검의 경지도 더욱 높아졌다.'

    육체적으로 안정화 된 몸으로 인해서 익히고 있던 무공도 한 단계 성장했다. 낙화검이나 무영보법, 살수지무는 물론이고 분뢰공과 용유검의 운용도 더욱 매끄럽고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분뢰공의 경지가 도드라졌다. 정화의 말처럼 자신만의 분뢰공이 만들어져서 이제는 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아삼의 분뢰공이 가지는 특징은 쾌였다.

    다른 무공의 초식에 섞이는 분뢰공에 조잡하다고 평했던 낙화검은 상승절기 못지않았고 무영보법은 말 그대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형환위라는 고절한 수법조차 몇 번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빠른 몸놀림과 함께 파괴력 역시 한층 더 올라섰다.

    따로 용유검의 남은 초식을 사용하며 그 경지를 더욱 높이려던 아삼이 검을 갈무리하면서 호흡을 골랐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익숙한 누군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땀에 젖은 몸을 닦아내며 호흡을 고르던 그때, 건물 안으로 전소평이 들어섰다.

    "당두님, 말씀하신 대로 모두 모였습니다."

    "……."

    전소평의 말에 옷을 추스르며 전각을 나서는 아삼이었다. 이내 자신의 방에 들어서자 미리 언질을 받고 모여 있던 송상호와 고기현이 몸을 일으키면서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볍게 인사를 받은 아삼이 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자 눈치를 보던 세 사람도 의자에 앉으며 탁자에 둘러앉았다. 갑자기 자신들을 부르는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아삼의 눈치를 살폈고 그런 그들의 행동에 무언가를 꺼내드는 아삼이었다.

    이전에 정화의 부름으로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건네받았던 영약이었다. 팽가에 도움을 준 정화에게 팽문호가 고마운 마음으로 건넨 것으로 다섯 알의 소공단이었다. 그것을 모두 아삼에게 건네 준 정화였고 그것을 가지고 고심하던 아삼은 세 사람을 불렀다.

    더 이상 자신에게 영약은 필요 없다고 느낀 아삼이었다. 자신보다는 이제 그의 사람으로 굳혀진 세 명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꺼내든 것이었다.

    - 받아라. 소공단이라는 팽가의 비전이다.

    "다…… 당두!"

    건네는 소공단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이었다. 특히 고기현은 갑자기 들리는 전심어서에 놀란 눈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그 무공이 고강한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말로만 듣던 혜광심어를 구현하는 아삼의 모습에 놀랐기 때문이다.

    한 알씩 건네받은 소공단에 모두 감격한 표정으로 아삼을 바라보는 그들이었다. 특히 송상호와 고기현은 그 반응이 더욱 남달랐다.

    이미 끈이 떨어진 신세에서 어쩔 수 없이 잡은 아삼이라는 줄이었다. 그 뒤에 있는 정화를 노렸던 점도 적잖아 있었지만 이렇게 자신을 생각할 줄은 몰랐다. 그 마음에 절로 고개를 숙이는 송상호였다.

    별다른 연도 없고 특출 난 재능도 없었던 고기현이었다. 운이 좋아서 황궁에 남았지만 자신에게 접근하는 자도 없었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내키지 않았던 변변치 않은 인사들이었다.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을 처지였던지라 더욱 아삼의 행동에 감격하는 그였다. 특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고절한 수를 사용하는 아삼의 모습에 새삼 든든해하는 고기현이었다.

    '나도 영약이라는 것을 받아보다니…… 크흑.'

    감격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흐뭇해했다. 그런 그들을 돌려보내며 따로 전소평을 부른 아삼이 개인적인 일을 부탁했다.

    가슴을 흔들던 그 여인에 대한 내력을 알아보라고 전하는 아삼이었고 그 말에 놀란 모습을 보이는 전소평이었다. 마교라고 불리는 곳에 있는 인사에 대해서 알아오라는 말에 놀랐다고 생각하는 아삼이었고 그런 전소평의 반응을 대수럽지 않게 넘기는 그였다.

    ***

    갖가지 황금빛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방 안과는 대조적으로, 모여 있는 세 사람의 얼굴에는 잔뜩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이내 그 침묵을 깨뜨린 송숭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며 마주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거사를 치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송숭의 말에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듯 가평천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지금 거사를 치르자는 것은 좋은 의견이 아닌 듯 싶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이곳으로 쏠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적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이 우리에게 쏠려 있는 이때, 낙양이 아닌 인근의 병력을 움직이고 금의위까지 동원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않습니까?"

    "금의위를 모두 움직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근의 병력을 움직이는 것도 시일이 걸릴 터. 이미 대비를 하고 난 이후가 될 것입니다. 아직 확답을 받은 자들의 수도 그렇고 지금 우리의 병력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요. 준비되지 않는 거사는 치루지 않는 것만 못하지요. 우선은 능력 있는 무장들에게 전하의 친서를 보내서 그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제 막 황위를 물려받아 조정을 정비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수선할 때가 절호의 기회란 말입니다. 너무 늦어지면 그때는 힘들 것입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두 사람이었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심하는 한왕이었다.

    '지금이 적기라? 하지만……'

    그때, 고심하는 한왕을 향해 가평천이 조심스레 말했다.

    "허면 황궁에 자객을 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자객?"

    가평천의 말에 놀란 한왕이 되물었고 송숭 역시 놀란 듯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가평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객이라니요?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고작 자객 나부랭이들이 어찌 황궁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우리의 사람을 보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림의 살수집단을 이용한다면 혹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불문율 중 하나가 죽어도 의뢰인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요."

    가평천의 말에 구미가 당긴 듯 한왕이 그를 바라보며 재촉했다.

    "살수집단이라? 계속 말해 보게."

    "무림에 '살문'이라는 유명한 살수집단이 있습니다. 신출귀몰한 놈들이니 이놈들을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상대가 황궁인 만큼 적지 않은 액수의 금자가 들겠지만 그 일이 성공만 한다면 그깟 돈이 대수겠습니까?"

    "흐음. 아무리 무림에 적을 둔 살수집단이라고 하나, 그들이 그 일을 맡겠는가? 그리고 황궁이 쉽게 드나들 정도라면 선황께서도 그리 고생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네."

    "당연히 황궁은 쉽게 드나들기 어려운 곳입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하나 자금성을 넘는다면 금세 발각되겠지요. 하지만……그들을 황궁에 들여 보내준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할 것입니다. 혹여 황제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황제는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전장의 경험이 전혀 없는 황제가 아닙니까?"

    가평천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나직이 말하는 한왕이었다.

    "아니다. 그것은 자네가 잘못 알고 있네. 전장에 직접 뛰어든 경험은 없으나 어렸을 때부터 선황인 아버님을 따라 전장을 누볐던 황제네. 그러니 그걸로 겁을 먹지는 않을 것이네. 하지만 한 번쯤은 흔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 무엇보다도 그들의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그만큼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니…… 금자는 얼마나 들여도 상관없네. 그대로 실행해보게. 허나!"

    "……."

    "그나마 가능성이 많은 쪽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오시면……"

    "황제는 근처로 갈 수도 없을 것이네. 검교(检校)의 늙은이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태조(太祖)께서 만들었다던 그 조직이 아직도……"

    "나조차도 어렵게 알아낸 것이니, 당연히 비밀은 지켜져야 할 것이네."

    "송구하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한왕의 말에 급히 고개를 조아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기던 한왕이 마저 입을 열었다.

    "넷째의 목을 가지고 오게. 당연히 우리가 드러나서는 안 될 것이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비장한 눈빛으로 가평천을 바라보는 한왕이었고, 그런 한왕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가평천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황궁을 향해 칼을 뽑아드는 한왕이었다.

    "배 다른 동생의 희생으로 내가 황위에 오를 발판을 마련할 것이야. 이제는 내 것이 될 때도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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