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37화 (13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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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제

    안찰사로 홀로 돌아온 아삼의 모습에 놀란 전소평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전신에 피칠을 하고 나타난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고, 아무런 말도 없이 안으로 들어선 아삼이 조용히 전소평을 불러들였다.

    - 내가 움직였던 곳으로 병력을 보내라. 그곳의 시신들을 수습하고 낯선 자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아내는데 주력해라.

    "네. 알겠습니다. 헌데 몸은 괜찮으신지……"

    - 우선 그곳을 수습하는 것이 먼저다. 우선 병력을 보내고 다시 돌아와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예? 예. 알겠습니다.

    급히 나서는 전소평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인학이라는 놈이 흡혈공을 익힌 주범이었고 그 놈의 행적을 중심으로 파고들어가다 보면 어느 정도 정황이 밝혀질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도망간 두 사람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여인과 고강한 무공을 가진 그 남자.

    그대로 그 뒤를 쫓아야 했지만 우선은 안찰사로 돌아오는 것이 먼저였다. 맡은 일을 마저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그들의 뒤에 어떤 자들이 더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혼자서는 힘들겠다고 생각한 아삼은 안찰사로 돌아왔고, 그곳을 수습하는 대로 군을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는 그때, 전소평이 다시 들어서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다시 그를 향해 전심어서를 날리는 아삼이었다.

    - 흡혈공을 익힌 놈은 인학이었다. 그놈의 계략으로 같이 갔던 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아니, 마교라고 불리는 자들도 끌어들인 것 같다군.

    "마…… 마교! 아, 그 임성화에게 원한을 품은 자들 중에서 전각대학사를 지냈던 이인후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

    "말씀하신 이인학이 바로…… 이인후의 손자였고 그 사실을 알리려고 움직이려는 찰나에…… 다시 돌아오신 겁니다."

    "……."

    전소평의 말에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조금만 더 그 사실을 빨리 알았다면 함께 갔던 자들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제는 도망간 그들을 잡아들여야 할 차례였다.

    - 도지휘사사의 위(衛)에 요청한 병력은 어떻게 됐지? 도착을 한 것인가?

    "움직이신 이후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인근에서 대기하며 머물고 있습니다."

    - 지금 당장 그들을 움직여서 도주한 마교의……

    마저 전소평에게 명을 내리려던 아삼의 행동은 갑자기 들어오는 자에 의해서 멈춰질 수 밖에 없었다. 다급히 들어오는 관인이 아삼을 향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온 서찰을 전해 받은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황제의 가붕(駕崩).

    홍희제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급히 황궁으로 들어오라는 정화의 명이었다.

    한순간 아삼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고 그 중함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한왕이 황위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때, 공교롭게도 죽은 홍희제의 소식은 다시 한왕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한왕이 움직인다면 내전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움직이려던 병력을 그대로 둔 채 급히 황궁을 향해 움직여야하는 아삼이었다. 혹시라도 작은 군의 움직임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일들은 전소평에게 지시를 내린 아삼이 급히 말을 타고 북경을 향해 출발했다.

    급하게 청해성의 안찰사를 빠져나온 아삼이 말을 몰았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최대한 빨리 황궁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그렇게 홀로 움직이는 그를 주시한 자의 눈이 빛났다. 청해성의 관문을 빠져나가는 아삼을 보고 낯선 자가 전서구를 띄웠다. 다급히 날아가던 전서구가 아삼을 앞질렀고 며칠 뒤, 말을 몰던 아삼의 앞을 일련의 무리들이 막아섰다.

    관도의 가운데를 막아선 일련의 무리들이 말을 몰고 오는 아삼을 확인하고 눈을 빛냈다. 그리고 낯선 자들이 관도를 막아선 모습에 아삼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산적은…… 아니다. 어디선가 봤던 복장인데?'

    붉은 면포를 입은 채 아삼을 막아선 그들은 예전에 봤던 자들이었다. 특히 무표정한 사내의 옆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자는 예전에 황궁의 근처에서 한 번 부딪쳤던 자였다.

    '사황련인가?'

    은무강의 명으로 아삼을 주시하던 그들이 홀로 움직인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완전히 차단된 그 길에 아삼이 말을 멈춰 세웠고 그 모습에 환한 웃음을 짓는 연소흠이었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군. 그 동안 잘도 우리를 피해 다녔어."

    "……."

    연소흠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삼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린 채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아직 갈 길이 멀었기 때문에 말이 상하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정확히 자신이 갈 길을 막아선 그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갈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앞으로 나서는 아삼의 모습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위명천이 연소흠을 뒤로하고 아삼의 앞에 섰다.

    "물어 볼 말이 있다. 이렇게 너를 기다린 것도 몇 가지 사안을 알아내기 위함이다."

    "……."

    "순순히 따른다면 몸이 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대로……"

    비교적 정중하게 말을 이어가던 위명천의 시선이 아삼의 허리로 향했다. 익숙한 요대가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고 천천히 그것을 살피던 위명천의 기운이 요동쳤다. 그 요대의 주인은 그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살기어린 눈으로 아삼을 노려보던 위명천이 딱딱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 요대를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

    위명천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삼이었다.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었지만 그 시기가 공교로웠다. 빨리 황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였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앞에 있는 자들이 사황련에서 나온 자들이었고 이미 그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드러난 용아의 정체를 알고 살기를 쏘아내는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여기는 아삼이었다.

    '언젠가는 들통 날 일이었다. 사황련이라는 곳과…… 척을 지겠지만, 어쩔 수 없지.'

    마음을 다잡은 아삼이 숨겨둔 용아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그곳에 모인 지월대들의 눈빛이 변했고 모두가 살기어린 눈으로 아삼을 노려봤다. 그동안 함께 했던 대주인 위명도의 애검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이었다.

    빼든 연검을 늘어뜨린 아삼이 위명천을 바라봤고 그 시선에 미간을 꿈틀거린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무공을 익힌 것인가?"

    "……."

    "형님은…… 형님을 죽인 흉수가…… 너인가?"

    형님이라는 말에 반응을 보이는 아삼이었다. 그 안에 섞인 그리움과 안타까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읽은 아삼의 무표정한 얼굴에 얼핏 동요의 빛이 비췄고 그 표정을 포착한 위명천이 죽일 듯 아삼을 노려봤다.

    - 먼저 적대하고 공격한 자는…… 당신의 형이었다.

    "……."

    아삼의 전심어서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위명천이었다. 어린 상대의 무공이 이 전음 하나로 드러났고 상대가 고수라는 생각이 들자, 용아를 빼든 아삼의 모습이 새삼 비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분노하던 그의 머리가 차갑게 식기 시작했고 아삼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위명천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그가 아삼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 독고 장로는 어떻게 된 거지? 너와 관련이 있나?

    - 나에게 그런 사실을 묻는 연유는?

    - …… 련주의 명이다. 너를 주시하라고 하시더군.

    - 역시 나를 먼저 공격한 것은 그 노인이었다.

    아삼의 전심어서에 커다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위명천이었다. 설마하니 독고패까지 만났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독고패까지 처리한 듯한 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앳된 자가 그 정도로 고수일지 의아했고 뒤늦게 기운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위명천이 침음을 삼켰다.

    - 독고 장로도 죽은 것인가? …… 나에게 그런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 귀…… 귀찮은 일?

    아삼의 광오한 말에 얼굴을 구기는 위명천이었고 이내 그의 위치를 자각한 그가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바라보던 아삼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딱히 사황련과 적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 …… 이제 와서 오해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 당신의 말은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에게 목을 내놔야 했다는 뜻인가?

    "……."

    - 련주라는 자에게 전해라. 더 이상 귀찮은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더 이상은 나도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겠다. 군을 움직여서라도 사황련을 없앨 수도 있음이다.

    "……."

    - 황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움직이던 동창을 공격하던 자가 바로 네 형이었다. 그 사실을 밝히면 사황련은 역심을 품었다는 죄로 관군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진정 그리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아삼의 말에 온 몸을 떠는 위명천이었다. 앞선 자의 신상은 어느 정도 파악해 둔 상황이었다. 실제로 그가 그런 위치에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정화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무공을 생각하면 사황련을 그렇게 엮는 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지는 않았다.

    '냉철하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앞에 있는 놈은…… 우리 련에 큰 해를 입힌 자다. 그리고 형님까지 저놈의 손에……'

    은무강의 마지막 당부를 떠올리는 위명천이었지만 쉽사리 포기하기도 힘들었다. 형님의 복수를 위해서도 지금 저자를 단죄하는 것이 맞지만, 그를 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행여라도 이 일이 알려진다면 사황련은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위천명이 고심하는 그때, 아무런 말도 없이 노려보는 두 사람이 답답했는지 검을 빼들며 아삼을 향해 달려드는 연소흠이었다. 지난번에 있었던 과오를 씻으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검을 빼든 그가 아삼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연검까지 빼든 아삼이었다. 달려든 연소흠의 검을 쳐낸 그가 진기를 주입한 용아를 찔러 넣었다. 순간 섬광이 번뜩였고 연소흠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달려들던 그대로 한참을 뛰쳐나가던 몸이 이내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바닥을 구르는 연소흠의 표정은 아삼을 향해 뛰어들던 모습 그대로였다.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를 정도로 엄청난 쾌검이었다.

    아삼과 연소흠의 싸움을 바라보던 위명천이 침음을 삼키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삼 역시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더 이상 음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욱 발전한 것인가?'

    스스로의 무공에 놀란 아삼이었다. 이전부터 계속 자신을 괴롭히던 음기는 어느덧 자신의 의지를 따랐고, 익숙하게 펼친 '낙화검'의 초식이 연소흠이라는 고수조차 받아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진정시킨 아삼이 싸늘한 눈으로 앞에 있는 자들을 노려봤다. 사황련이라는 곳과의 부딪침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 어쩔 수 없었다. 막아서는 자들을 치우리라 마음먹은 그가 기운을 끌어 올리려고 할 때, 위명천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 물러나겠다."

    "……."

    "우선은 련주께 이 사실을 알리고 차후 너를 찾아오겠다. 련의 의중이 어떤지는 내가 결정한 사항은 아니다. 다만, 형님의 복수는…… 사황련이 아닌 나 위명천이 할 것이다. 언젠가 개인적으로 다시 너를 찾을 것이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는 위명천이었고 그런 위명천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이내 연소흠의 시신을 수습하고 돌아서는 지월대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이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미 은원관계에 얽힌 것인가? 후우.'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해하던 아삼이었다. 새삼 달라진 자신의 경지와 위치에 쉽게 움직이지 않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씁쓸해 하던 그가 다시 말을 찾아서 올라탄 후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명천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내 목이 잘린 연소흠의 시신을 바라보던 그가 침음을 삼켰다. 이번 한 수로 새삼 아삼이라는 자의 경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조차도 정확히 인지할 수 없는 쾌검이라니…… 복수를 위해서 더욱 절치부심해야 함인가?'

    급한 아삼의 마음과 달리 황궁으로 향하는 길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투레질을 해대며 연신 굵은 땀방울을 흘려대는 말을 바꾸기 위해서 역참에 들려보는 그였지만 지친 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동창의 명패를 들이밀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그들이었다. 상부의 명으로 역참의 말을 내어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을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국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움직임이는 성마다 경계가 더 강화되었고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결국 홍희제가 붕어하고 한 달이 넘어서야 북경에 당도할 수 있게 된 아삼이었다.

    궁에 도착하자마자 정화의 처소부터 찾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정화였다.

    "그래, 급히 돌아오느라 힘들었겠구나. 갔던 일은 어찌 되었느냐?"

    정화의 하문에 청해성에서의 일을 간략이 밝히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이야기를 듣던 정화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팽가의 양자라던 그놈이 다시 사고를 쳤구나. 이인후의 손이라…… 임성화의 일은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지만, 그런 무공을 사용한 그놈의 행동도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흐음…… 또 한 번 팽가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인가? 쯧쯧."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 정화였다. 그리고 그런 정화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전심어서를 전하는 아삼이었다.

    - 선황께서 붕어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청해성을 나섰으나 시기가 시기인지라…… 많이 늦어졌습니다. 청해성의 일들은 따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아삼의 전심어서에 고개를 끄덕인 정화가 어느새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보고는 차차하기로 하고…… 너에게 맡길 일이 있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구나. 아마도 네가 적임자인 듯 싶다."

    - …… 하명하시지요.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화였다. 그 모습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삼이 고개를 숙였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던 정화가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 모두의 시선이 한왕에게 쏠려있다. 혹여 한왕이 준동하지 않을까 모두들 노심초사하고 있지 않더냐? 만약 한왕이 움직인다면 그때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정화였고 이내 따라놓은 차로 입을 축인 그가 마저 말을 늘어놓았다.

    "지금 한왕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그와 동조하는 자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금의위와 동창이 주요 성마다 파견을 나가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별 움직임은 없으나 그래도 조심해야 하지 않겠느냐? 허니 너는 당분간 폐하의 주변을 지키도록 하거라."

    - 황제 폐하의 주변을 말입니까?

    "황제 폐하의 안위는 그 무엇보다 중한 일이다. 이미 검교(检校)의 고수…… 크흠. 고수들이 지키고 있으니 폐하를 직접 해할 자들은 없을 것이야. 허나 신중을 기해서 나쁠 것은 없지. 황실과 관련이 있는 분들을 지켜줬으면 좋겠구나. 다른 어떤 자들보다 네가 적합할 것이다. 폐하의 황숙이신 주고희 마마를 당분간 모셔라."

    정화의 하명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삼이었다. 뜬금없이 주고희를 모시라는 말이 의아해 했지만 이어지는 정화의 말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명필이라고 불리는 네가 아니더냐? 주고희 마마께서도 글에 조예가 깊고 너와 친분이 있으니 오히려 더 좋아하실 수도 있겠구나."

    - 알겠습니다.

    정화의 명에 고개를 숙이는 아삼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명이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숨은 뜻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북경으로 왔던 그인지라 그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는 정화의 얼굴에 신뢰의 빛이 어렸다.

    아직까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은 아이였다. 처음부터 호감이 갔던 아이였고 사마택이라는 친우와 관련이 깊은 그 사실만으로도 함께하고 싶은 인사였다.

    이내 방을 나서는 아삼의 모습을 바라보던 정화의 입에서 큰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직은 조용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한왕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정화인지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아삼을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몇몇 인사들의 행동에 얼굴이 굳어져만 갔다.

    '권력이라는 마물에 빠진 것인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건만……'

    이미 뒤로 물러난 그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았고 그 사실에 씁쓸해하는 정화였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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