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36화 (13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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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라는 이름으로

    복부를 파고드는 인학의 손에 얼굴을 찌푸리는 아삼이었다. 차가운 웃음을 보이는 그 모습에 모든 일의 흉수가 앞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애초에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놈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아삼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그는 쉽게 반응할 수 없었다. 그저 인학의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뿌려지는 독을 참아내려 호흡을 멈추는 것이 전부였다.

    "크크큭.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환한 미소를 보이며 웃는 인학이 아삼을 보며 이죽거렸다. 아무런 말도 없는 아삼의 모습이 더욱 기쁜 듯 웃음을 흘리는 인학이었다.

    "벙어리 자식이 감히 나를 능가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내 손에 죽는 건 바로 너다. 네놈이 찾아 헤매던 그 흡혈공이라는 무공에 결국 너는 내 기운으로 흡수되는 거지."

    "……."

    "네가 가진 기운은 내가 잘 써주마. 죄다 동남동녀라 그동안 몸을 사리는 것도 참 힘든 짓이었지. 바로 눈앞에 영약들이 가득 있었거든! 지천으로 깔린 그것들을 먹지 못한 그 심정을 너는 알지 못할 거야. 크크큭."

    싸늘하게 웃는 인학이었지만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의 눈빛에 인상을 찌푸렸다. 고통스러움에 소리를 지를 법도 하건만 그저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태평한 모습을 보일지 두고 보자. 이것이 바로 네놈이 간절하게 찾던 그 흡혈공이다!"

    흡혈공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내뱉은 인학이 구결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딸려오는 아삼의 피와 그 안에 녹아든 기운이 그의 손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확실히 무공이 고강한 놈이라 그런지 딸려오는 피는 많지 않았지만 조금씩 충만해지는 그 기운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려는 인학이었다. 하지만 그때, 기운을 흡수하던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 뭐지?'

    흡혈공을 운용하는 인학의 행동을 지켜봐야만 하는 아삼이었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고 이미 파고든 손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불현듯 이전에 봤던 그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거라는 생각과 함께 저절로 규화보전의 구결을 떠올리는 아삼이었다.

    이미 고갈된 듯 텅빈 단전이었지만 소량의 기운이 남아있었다. 한 곳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피와 기운에 남아있던 규화보전의 음기도 그곳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어진 인학 손을 통해서 그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그 기운이 들어가자마자 인학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윽."

    시릴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뼛속까지 얼릴 듯한 그 차가움에 절로 몸이 떨려왔고 조금이라도 추위를 가시게 하고자 양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인학이었다. 그와 동시에 몸 안을 파고든 이질적인 차가운 기운이 전신을 향해 내달렸다. 작지만 차가운 기운에 인학의 몸에 깃든 거대한 양기가 대항하듯 그 기운을 막아섰지만 서로가 가진 기운은 질적으로 달랐다.

    이미 흡혈공으로 흡수한 정제되지 않는 기운들도 남아있었던 터라 그 통제가 쉽지도 않았다. 막아선 그 기운 중 일부분을 흡수한 규화보전의 음기가 인학의 양기를 갉아먹으며 몸집을 불렸고 그 기운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학의 고통도 커져만 갔다.

    "끄으으윽!"

    계속해서 느껴지는 차가운 한기를 버티려 노력하는 인학이었지만 그것은 도저히 버틸만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몸 안에 자리 잡은 두 마리의 고독이 고통스러워하면서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 고통과 한기에 끌어올린 기운을 쉽사리 제어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장호영의 곁을 맴돌던 그였다. 그가 가지고 있을 고독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돌아갔던 인학이었고 다행히 그의 품에 보관되어 있던 고독을 찾아냈지만 안전을 위해서 마저 삼킨 고독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푸르게 변해가며 죽어버린 피부와 함께 바깥에 어리는 차가운 성애에 이대로는 오히려 당할 거라고 판단한 인학이 살기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다시 돌려주는 것이었다.

    한 번도 시도한 적은 없었다. 아니 시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그였다. 외우고 있던 흡혈공의 구결을 역으로 돌리는 인학이었고 그의 간절하고 절실한 바람이 통했는지 흡수해가던 아삼의 기운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몸 안으로 들어온 이질적인 기운을 손끝을 향해 뿜어내려 노력하는 인학이었다. 그 노력에 힘입어 오히려 다시 들어오는 기운에 아삼의 혈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괴물 같은 놈. 이런 기운을…… 잘도 숨긴 채. 끄으윽!'

    여전히 느껴지는 영혼을 얼릴 듯한 한기에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온 음한 기운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인학이었다. 하지만 집요한 그 기운은 계속해서 그의 몸에 남아있었다. 아직까지 많은 양기가 인학의 몸에 있었고 그 기운에 끌리듯 남아있는 규화보전의 음기였다.

    "끄으아아악!"

    결국 차가운 기운을 참지 못한 인학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역으로 운용하던 흡혈공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진기와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서로 충돌한 그 기운에 피를 한사발 토해내는 인학이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아삼은 들어오는 양기와 운용되는 음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단전에 쌓여지는 것을 보고 씁쓸해 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화가 오히려 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전에 입었던 내상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하면서 혈색을 되찾았고 허하게 텅 빈 단전이 충만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날뛰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인학은 충돌하는 두 기운을 잠재우려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는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였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가진 기운을 아삼을 향해 쏟아내기 시작했고 역으로 돌린 흡혈공의 기운에 그가 가지고 있던 양기가 계속해서 아삼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아삼의 몸에 들어온 그 기운을 감지한 규화보전의 음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기운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음기가 들어오는 양기를 가로막기 시작했고 서로의 힘을 겨루던 두 기운이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인학의 거대한 양기에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음기의 움직임이 굼떠졌고 그 사이 인학의 기운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어왔다.

    이미 충만해진 단전과 밀려들어오는 양기에 혈맥에서 미미한 고통이 전해지자 고심하던 아삼이 의도적으로 밀리는 음의 기운에 힘을 실어줬다. 아삼의 의지와 함께 몸 안에 있던 음기가 규화보전의 구결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들어오는 양기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음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놈은 뭐지? 어떻게 이런 음한 기운이…… 설마!'

    처참하게 구겨진 얼굴로 평온한 아삼의 얼굴을 바라보던 인학의 머릿속에 한 무공의 이름이 떠올랐다.

    '규…… 규화보전? 이놈이 익힌 무공이 송화가 익혔다던…… 끄윽. 규화보전인가!'

    마침내 아삼이 익힌 무공을 확인한 인학의 얼굴에 진한 패배감이 어렸다.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놈이었다. 다가갔다 싶으면 멀어지는 이놈의 능력에 좌절한 그가 역으로 돌리던 흡혈공의 운공을 멈췄고 그와 동시에 아삼을 향해 움직이던 기운들이 멈춰 섰다.

    '이대로……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음이다.'

    몸에 남아있던 기운도 이제는 미미했지만 폭주하기 시작한 그 기운이 인학의 몸을 갉아먹었고 그곳에서 버티던 규화보전의 음기가 구결대로 움직이는 아삼의 몸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그리고 갈 길을 잃은 양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흡혈공으로 흡수한 그 기운들이 이제는 안에서 날뛰며 인학의 몸을 찢어댔다. 마치 정혈을 빼앗기고 죽은 자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듯 인학의 몸에서 날뛰던 기운들로 멀쩡했던 몸이 꿀렁거리면서 울퉁불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폭파시키면서 아삼을 길동무로 삼으려는 인학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아삼이 흡수된 기운들을 분출하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말썽이군. 빌어먹을 놈.'

    의도적으로 기운을 뿜어내는 아삼의 힘에 박혀있던 인학의 손이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아삼의 몸에서 기운이 흘러나왔다. 전신으로 뿜어진 그 기운이 아삼의 몸을 보호했고 그와 동시에 요대에 넣어둔 용아를 빼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기운을 폭주시키던 인학의 입에서 처절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끄으아악! 아…… 삼!"

    순간 섬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꿀렁대던 인학의 몸뚱이에서 머리가 굴러 떨어졌고 부릅뜬 눈으로 아삼을 올려보는 그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크게 아삼을 부르짖던 인학의 붉게 충혈 된 눈이 아삼을 노려보고 있었다.

    퍼어엉.

    충돌하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잃은 인학의 몸이 터지면서 그의 피와 육편이 비처럼 뿌려졌다. 그리고 뿌려진 그것을 아삼이 분출한 기운이 막아냈다.

    몸을 둘러싼 둥근 막이 쏟아지는 것들을 막아냈고 붉은 피 안개가 걷히자 여섯 조각으로 나뉜 인학의 몸이 바닥을 뒹굴었다.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한 것처럼 죽어버린 인학의 모습에 씁쓸해하는 아삼이었다.

    억울하다는 듯 부릅뜬 눈을 한 얼굴은 폭발에 휘말려서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내 기운을 갈무리한 아삼이 걸음을 옮기며 그곳을 벗어났다.

    애증이 섞인 인학의 눈빛이 그의 머릿속에 아른거렸고 드러난 정황과 변해버린 자신의 몸에 적응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에 뿜어낸 양의 기운이 호신강기처럼 인학의 육편을 막아냈고 정확히 음기와 양기가 조화를 이루게 된 아삼의 몸이었다. 환골탈태가 가능한 육신이었지만 혼란스러워하는 정신 때문에 그 시기를 살리지 못 했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삼은 그저 회복된 몸에 만족할 뿐이었다.

    시체만 즐비한 아삼이 도망간 말을 찾아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안찰사로 향해 돌아가는 그의 얼굴에는 복잡함 감정이 묻어났다.

    ***

    아희의 손에 이끌려 도망가 듯 그곳을 벗어나던 장무영이 이내 그녀를 멈춰 세웠다. 동생인 장호영의 꿍꿍이를 알 수 없었던 그였기 때문에 그의 이목을 벗어날 수 있을 아희를 붙여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돌아온 그녀였고 고강한 무공을 지닌 그 관인을 아는 듯한 태도에 의아해 하던 그가 그녀를 바라봤다.

    "호영은 어떻게 됐지?"

    "죽었어요."

    "죽어?"

    "…… 소교주의 말처럼 일을 꾸미고 있더군요. 사혈대도 이미 포섭이 된 상황이었어요."

    "역시…… 그랬군. 그렇다고 직접……"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 일의 배후에는……"

    "……."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아희였지만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장무영이었다. 아희가 쉽게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천요희조차도 교주의 아들인 장호영을 지켜봤으니 그녀의 제자인 그녀도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팔려왔던 그녀였기에 집에 대한 증오가 더 컸으리라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복수를 한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비록 동생이라고 하지만 서로 본체만체하는 사이였고 어떻게 보면 소교주라는 자리를 다투는 적일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장무영이 슬픈 표정을 보이는 아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관인의 이름을 부른 것을 떠올리며 그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침음을 삼켰다.

    "그 자는…… 알고 있는 사람인가?"

    "……."

    자신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희였고 그 사실에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오는 장무영이었다. 이내 그 감정을 떨쳐낸 그가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마공의 출처를 확인하기는커녕, 사혈대와 장호영까지 모두 죽었으니 그 책임을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장호영이 아희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복수라는 명분이 있다지만 교주의 직계를 해한 아희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그녀였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장무영이었지만 마음에 품은 여인이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엄청난 무위를 지닌 관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제 3의 세력들이라……'

    이내 생각을 정리한 그가 아무런 말도 없이 서 있는 아희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고개를 돌리는 아희였고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침음을 삼키는 장무영이었다.

    "이대로 묻어두자."

    "……."

    "사혈대와 장호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 둘은 그들과 관군의 추격에서…… 힘겹게 벗어났음이다."

    "하지만…… 거짓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저뿐만 아니라 소교주께서도……"

    "너와 내가 감안해 내야겠지."

    "소교주께서는 이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지 않습니까? 저 혼자서 감당할 문제 입니다."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모두를 이끌었던 내 잘못이다. 응당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지는 것뿐이다. 신경 쓰지 마라."

    "하지만……"

    "내 여인을 지키는 일이다. 내 사람을 지키지도 못하는 놈이 신교는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단 말이냐."

    "……."

    갑작스런 장무영의 말에 아미를 찌푸리는 아희였다. 그의 이런 태도는 고마우나 쉽게 마음을 열 수는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붉어지는 볼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아희였고 그 모습에 만족할 만한 웃음을 짓는 장무영이었다.

    아삼에게 베인 상처를 지혈하고 기운을 보충한 두 사람이 다시 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새로 나타난 세력과 청해성에서 있었던 일이 꽤 중하게 여겨졌고 그 일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여기는 장무영이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두 사람과 한참을 떨어진 곳에서 옆구리가 갈린 검은 복장의 사내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창백한 그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져 있었고 비틀거리는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지독한 한기다. 도대체 그놈은 누구지? 크윽.'

    다시 신음을 내뱉은 그가 기운을 끌어올렸지만 파고든 한기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요동을 치는 듯 했다.

    '빨리 복귀를 해야 한다. 이 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사람은…… 사부님과 공자뿐이다.'

    밀려드는 한기를 참아내며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사내였다. 그런 그의 시선이 신강을 향해 있었다. 이제 바뀔 교의 세력과 함께 자신의 위치도 견고해질 거라는 생각에 만족할 만한 웃음이 지어졌지만 다시 날뛰는 한기에 비틀린 입술로 고통을 참아내는 그였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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