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33화 (133/204)
  • 0133 / 0204 ----------------------------------------------

    복수라는 이름으로

    몇몇의 동창 요원들과 관군들이 무림인들과 마찰로 죽었다는 보고에 아삼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관에 적대적인 무림인들과 관군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걱정이 현실로 나타나버렸다.

    "당두, 어떻게 할까요? 인학이라는 그놈, 혼자서 간신히 살아온 것을 보면 무림인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전소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삼이 그를 향해 전심어서를 날렸다.

    - 아무래도 군을 움직여야겠다. 군이 움직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들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청해성의 도사(都司)에 연락을 취해라. 천호(千戶)와 함께 그 아래에 있는 병력을 움직인다.

    "…… 너무 과한 조치가 아닐는지요?"

    - 군은 무림인들을 압박하기 위해서 움직일 것이다. 단지, 보여주는 식이니 되도록이면 무림인들과 부딪히지 말라고 전하거라.

    아삼의 전심어서에 전소평이 고개를 숙이며 읍을 했고 이내 고심에 빠진 아삼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목내이 사건에 대한 진전은 보이지 않았고 자꾸만 다른 일들에 엮이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자꾸만 커져가는 음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제는 무공을 사용하면 그 현상이 더욱 뚜렷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일만으로도 지금 아삼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 있어서 다른 어떤 일보다도 '규화보전'을 익힌 사실을 감추는 것이 더욱 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관군과 무림인들이 충돌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이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게 변해갔다. 결국 더 이상의 충돌을 막기 위해 군을 동원하는 아삼이었고 그 소식을 들은 인학이 남몰래 안찰사를 빠져 나갔다.

    주변을 살피며 허름한 객잔으로 들어선 인학이 익숙한 걸음으로 구석진 방으로 들어섰고 그가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검은 복색의 낯선 인영이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검은색 경장과 함께 영웅건을 둘러쓴 자는 바로 장호영이었다.

    "무슨 일이냐? 뭔가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는 것이냐?"

    들어서자마자 인학을 향해 나직이 묻는 장호영이었고 그런 그를 향해 어쩔 수 없이 가볍게 목례를 한 인학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곧 군이 움직일 것이오. 이전에 있었던 일로, 무림인들과의 마찰을 잠재울 요량으로 청해성 지부의 위(衛)에서 약 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라는 명이 있었소."

    인학의 말을 들은 장호영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하는 장호영이었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인학이었다.

    "군이라? 어차피 이번 일의 책임은 그자에게 있으니 나와는 상관없지 않는가? ……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버려야하는 것이 아깝구나."

    짧은 한숨과 함께 조용히 뇌까리는 장호영의 말을 놓치지 않던 인학의 눈이 빛났다.

    '그자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마교에서 혼자 온 것이 아니란 말인가? 적의를 가지고 그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마교의 소교주도 청해성에 있다 이 말인가?'

    자신의 생각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이는 인학이었다. 책임이 소교주에게 있다는 말은 이 일을 해결하러 소교주가 나왔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아쉬워하는 장호영을 바라본 인학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혹…… 소교주도 이곳에 온 것이오?"

    "……."

    "크윽!"

    "네 놈이 함부로 언급할 이름이 아니다!"

    인학의 말에 그의 목을 틀어쥐는 장호영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려던 그였지만 이미 집어삼킨 고독이 그의 움직임을 멈칫하게 만들었고 목을 틀어쥔 채 살기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장호영의 눈빛에 인상을 굳힌 인학이 소교주의 존재를 확신하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소교주라는 존재가 드러난 것이 그렇게 흥분할 일이요?"

    "……."

    "우선 이 손을 놓고 말하는 것이 어떻소? 크윽. 내게 좋은 계책이 있소."

    "계책?"

    "당신이 그 소교주를 없애고 공을 세울…… 계책이오."

    인학의 마지막 말에 회가 동한 장호영이 그의 목을 놓으며 그를 바라봤다. 이내 날카로운 그 시선에 붉어진 목을 쓸어내리던 인학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군을 이끄는 수장을 죽인다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도 있을 것이오."

    "타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를 처리하면서…… 당신이 말하는 그 소교주…… 크흠. 그 자를 없앨 수도 있을 것이오."

    "…… 계속 말해 보거라."

    확신어린 인학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는 장호영이었고 그 모습에 인학 역시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수장을 죽인다면 동창과 관에 혼란을 줄 수 있을 것이오."

    "수장? 수장이라는 자가 누구냐?"

    장호영의 물음에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힘주어 답하는 인학이었다.

    "아삼이라는 자요. 일전에 내가 말했던 그 자요. 한 사람을 처리해 달라고 했었던……"

    인학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장호영이었고 그의 반응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잇는 인학이었다.

    "아삼, 그 놈이 없어진다면 모든 움직임이 마비될 것이오. 허면 그 사이에 진상을 밝히고 청해성을 빠져 나가면 될 것이오."

    "무슨 수로 진상을 밝힌단 말이냐? 이제 막 도착해서 제대로 된 정보 하나 가지고 있지 않거늘."

    간단하다는 듯 말하는 인학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장호영이었고 그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던 인학이 뭔가를 결심한 듯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 황궁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소. 목내이로 변한 시신이 궁내에서 발견되어, 한동안 궁이 시끄러웠소. 그리고 황제가 직접 그 일을 해결하라는 명을 내린 적이 있었소."

    "뭐라? 황궁에?"

    인학의 말에 놀란 장호영이 되물었고 그런 장호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인학이 말을 이어갔다.

    "황궁에는 황궁무고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비급들이 존재한다고 들었소. 아마도 이번에 드러난 무공도 그곳에서 나온 무공인 것 같소. 그래서 이 먼 곳까지 동창이 움직인 것이오."

    황궁무고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한 장호영이 마공이 나왔다는 소리에 의문을 가지며 되물었다.

    "황궁무고? 황궁무고라…… 그곳이 그리 중한 곳이냐?"

    "그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 그곳이오. 아무리 권력이 높은 자나 심지어 황족이라 할지라도 황제의 인가 없이는 접근 할 수 없는 곳이오."

    인학의 말에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호영이었다. 자신이 속한 신교에도 교주인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존재하니 만인지상이라 불리는 황제가 사는 곳에서는 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진상은 그와 연관 지어서 꾸며도 될 일이나, 그 아삼이라는 놈을 잡는 것은…… 당신이 소교주가 될 수 있는 중한 기회가 될 것이오."

    이어지는 인학의 말에 장호영의 두 눈이 빛났다. 이내 뚫어져라 인학의 입만 바라보는 그였다.

    "수장인 아삼을 죽이기 위해 소교주를 끌어 들이면 될 것이오. 아삼의 무공이 만만치 않으니 소교주를 끌어 들인다면 손쉽게……"

    "하하하하하."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장호영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인학이었다. 그런 인학을 향해 콧방귀를 뀌며 말하는 장호영이었다.

    "고작 관의 나부랭이 따위가 소교주를 대적할 수 있다 생각하느냐? 소교주의 무공은 이미 나를 넘어선지 오래다. 나 하나도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는 네놈들이 소교주를 해한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헛소리를 듣고 있었다니!"

    기분 나쁜 듯 인상을 구기는 장호영이었고 그런 장호영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변명하는 인학이었다.

    "소교주의 무공을 폄하하려던 뜻은 아니오. 나는 다만 견토지쟁(犬兔之爭)을 말하려던 것뿐이오. 아삼과 소교주, 두 사람이 싸우다 힘이 빠졌을 때 그때를 노린다면 당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 아삼이라는 놈의 무공이 소교주의 힘을 빼놓을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냐?"

    "부끄러운 일이나…… 아삼, 그놈의 무공은 이미 나를 뛰어넘은 것 같소."

    "흐음."

    "그뿐만 아니라 동창의 고수들이 소교주를 대적한다면 충분히 힘은 빼놓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당신이 거둔 자들까지 포함시킨다면…… 아무리 소교주라고 해도 위험하지 않겠소?"

    인학의 계책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기는 장호영이었다. 그의 무공도 그렇게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발출한 자신의 무공을 막아내는 것을 보면 적어도 소교주의 발목정도는 잡고 늘어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는 그였다.

    '흠…… 그렇다면 사혈대를 움직여야겠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겨있는 장호영의 모습에 만족한 듯 엷은 미소를 짓는 인학이었다. 이내 장호영을 향해 다시 한 번 자신의 뜻을 밝히는 그였다.

    "아삼 그 놈만 죽여준다면, 내가 계속 당신을 도와줄 수 있소."

    "훗, 고작 지방의 번역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냐?"

    인학의 말이 어이가 없는 듯 비웃는 장호영이었고 그런 장호영을 향해 정색한 얼굴로 나직이 말하는 인학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자원하여 내려와 있으나 한때 동창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던 나요. 한 번의 실수로 이리 되었지만…… 당신이 도와준다면 능히 요직에 앉을 수 있을 것이고 머지않아 동창을 이 손 안에 넣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팽가의 양자인 나와 손잡는 것이 당신에게도 손해는 아닐 것이오."

    인학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심하는 장호영이었다.

    '팽가의 양자라? 그리고 동창을 손에 넣는다? 제법 머리는 돌아가는 것 같으니 가능성이 없는 일도 아니질 않는가?'

    "알았다. 그 일은 염두에 두마. 이 일이 모두 끝나면 그때, 논의해도 충분할 것이다."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지만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듯 일단 한 발 물러서는 장호영이었고 그런 장호영의 모습에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는 인학이었다.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하긴 믿음을 쌓을만한 시간도 없었으니 차차 믿음을 심어준다면 내 뜻대로 될 터. 우선은 아삼 그 놈을 없애는 것에 만족할 수 밖에……'

    어느새 두 눈을 빛내며 비릿한 미소를 짓는 인학이었고 그런 인학을 뒤로 하고 조용히 객잔을 나서는 장호영이었다.

    ***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장호영의 모습에 장무영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내 싸늘한 목소리로 장호영을 꾸짖는 장무영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냐?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그리 일렀거늘!"

    "……."

    "관군을 해한 것도 모두 네 짓이더냐?"

    "……."

    그 어떤 반발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장무영의 호통을 묵묵히 감내해내는 장호영이었다. 우선은 인학의 계책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몸을 사리면서 그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둘째도 돌아왔으니 이대로 청해성을 벗어난다. 마공의 존재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제 3의 세력이 있다는 것이 더 큰일이다. 일부러 우리를 공격한 것을 보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대로 물러선 다는 말입니까?"

    생각지 못한 하명에 놀란 듯 장호영이 큰소리로 되물었고 그런 장호영을 향해 심각한 얼굴의 장무영이 나직이 말했다.

    "같은 복장을 가진 자들이 서로 다른 무공을 사용한 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무공을 사용하는 움직임도 매끄럽지 않았다. 별다른 반응도 하지 못하고 간단한 수에 죽어나가는 놈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검법이나 그 초식은 분명히 위력적이고 유명한 문파의 무공이었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보법은 한참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지난번의 싸움을 떠올리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말을 잇는 장무영의 말을 이어받는 아희였다. 그리고 그녀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장무영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가 나선 시기에 공교롭게 공격을 해오는 것도 그렇고, 정파의 유명한 검법만 익힌 듯한 모습도 그렇고 누군가가 정과 마의 싸움을 원하는 것일 지도 모르지."

    장무영의 추측과 함께 어느덧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원치 않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한 모습에 초조한 장호영이 침묵을 깨며 나섰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진상은 밝히고 가야지요. 그런 놈들이 무서워서 신교의 무사들이 그냥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어찌 이리 돌아간단 말입니까? 그리고 저에게 마공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계책이 있습니다."

    자신만만한 장호영의 말에 장무영이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이내 의아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장호영이었다.

    "제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황궁무고에 있는 비급이 유출됐다고 합니다. 허니 이것은 신교의 무공과 관련이 없는 것이지요."

    "그것을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요?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낸 거죠? 그 짧은 시간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장호영을 향해 묻는 아희였다.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희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구겨지는 장호영이었지만 이내 가슴을 활짝 편 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것이 내 능력이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다면 마공의 출처는 물론이고 정파와 관의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정파와 관군의 충돌?"

    "우리 신교를 적대하는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지금 이곳으로 천여 명의 관군이 움직이고 있다하니, 그들이 오기 전에 그 수장을 잡아서 정파의 짓처럼 꾸민다면 우리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정파의 짓으로 꾸민다?"

    그의 말을 들은 장무영이 그 말을 곱씹으며 장호영을 바라봤다. 자신만만한 그 눈빛과 함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다.

    새로 나타난 알 수 없는 세력으로 경각심을 높인 그였지만 이대로 물러서기는 찝찝한 면이 있었다. 마공의 출처도 그렇고 관과 정파의 충돌을 이끌어내려는 계책이 꽤 솔깃하게 느껴지는 장무영이었다.

    이내 장호영을 바라보던 장무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대로 진행해 보거라. 관과 정파를 충동질 시킨 그 이후에 이곳을 벗어나도록 한다."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한 장무영이 장호영을 향해 긍정의 뜻을 밝혔다. 그의 허락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은 장호영이었고 돌아서는 그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야 어울리는 자가 소교주라는 직위를 갖게 되겠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웃음을 보이는 장호영이었고 그 음흉한 미소에 아미를 찌푸리는 아희였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