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31화 (1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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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되짚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아삼이 자신을 부르는 전소평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 임성화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있느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돌리는 아삼의 행동에 전소평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선 한왕은 이번 일에 관련이 없는 듯 합니다. 알아온 정보에 의하면 한왕 쪽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합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일도 그렇고, 함부로 움직이기는 아무리 한왕이라도 껄끄럽지 않겠습니까?"

    - 그래? 그럼 임성화와 척을 진 이는 있더냐?

    "그것이…… 임성화 그 자에게 척을 진 인사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선황이 황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공신 중의 한 명이 바로 임성화 그자였으니까요. 선왕에 반하는 문무대신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자가 이득을 많이 취했더군요. 죄 없는 자들까지 엮어서 그들의 재산을 모두 꿀꺽 했으니 적대감을 가진 자들보다 호감을 보인 자들을 찾는 것이 더 쉬울 듯 싶습니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아직까지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하여간 윗대가리들이란 놈들은…… 적당히 해먹었으면 오죽 좋아? 쯧쯧쯧."

    "……."

    "죽어서도 일을……"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끌끌 찬 전소평이 투덜거렸고, 그런 전소평의 말을 자르며 얼굴을 굳힌 아삼이 그를 재촉했다.

    -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처리하도록 해라.

    "네? 이 많은 것을 저 혼자서 어찌? …… 허면 사람이라도 좀 붙여주시면……"

    잔뜩 굳은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삼의 눈길에 차마 말을 잊지 못하는 전소평이었다.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하는 그였다.

    "아…… 알겠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있는 전소평을 뒤로 하고 아삼이 전각을 나섰다. 그런 아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전소평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하라고! ……설마 그때 그 일을 아직도? 당두도 보기보다 뒤끝이 길구나. 젠장,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 에휴."

    각오를 다지며 다시는 경거망동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것도 잠시, 탁자 위에 쌓여있는 종이들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토해내는 전소평이었다.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같은 자리를 서성이던 인학이 이내 자리에 주저앉으며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뱉어내며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목내이로 변한 시신으로 인해서 청해성 근처에 있는 동창 요원들을 소집하는 소집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반푼이 같은 놈! 이런 멍청한 놈!'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뒤늦게 자책하는 인학이었다.

    '더 꼼꼼하게 마무리를 했어야 했거늘! 시간에 쫓겨서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구나.'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의심받지는 않을 거라 자신했던 인학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늘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고 이번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심하는 그였다.

    '이제 와서 자책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어떻게든 이번 사건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것 말고 따로 실수한 것이 있던가? …… 그것이 가장 큰 실수겠지만, 이렇게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서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좋을까? 그래 차라리 그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군.'

    결심을 굳힌 인학이 비장한 얼굴로 전각을 나섰다. 곧이어 일부러 그곳에 자원을 한 인학이 청해성으로 향했다.

    청해성에 도착한 인학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생각보다 소집당한 동창 요원들의 수가 많았고, 청해성 근처에 모여 있는 많은 무림인들의 모습에 자신이 저지른 일이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복수가 인근의 무림인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인가? 혹 내가 한 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때는……'

    생각만으로도 절로 몸이 떨려오는 인학이었다. 이내 상념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흔들던 그의 귓속으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다들 모인 것 같으니 나를 따르시오."

    관군을 따라 천천히 안찰사 안으로 이동하는 인학이었다. 이윽고 어느 전각에 멈춰선 관군이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했고, 그 모습에 위에 서있는 자를 확인한 인학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방금 소집령에 응한 동창요원들이 도착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관군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창 요원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삼을 바라보는 인학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저 놈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이지? 설마…… 내가 저 놈의 명에 따라야 하는 것인가?'

    잔뜩 굳은 얼굴로 깊은 한숨을 뱉어내는 인학이었고 그 모습을 발견한 아삼 역시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불편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학의 눈빛을 애써 외면한 아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관군을 향해 손짓을 보냈다.

    아삼의 손짓에 동창의 요원들을 데리고 온 관군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고 그 모습에 뒤에 선 동창 요원들 또한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내 관군과 함께 사라지는 인학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이 씁쓸해하며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이렇게 대면하게 된 상황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성화와 관련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그들이었지만 딱히 이렇다 할 것들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말을 타고 움직인 낯선 자의 움직임과 수상한 자 몇몇이 장원 근처에 머물렀다는 사실만 포착했을 뿐이었다.

    며칠 뒤, 곤륜파의 국원호와 만난 아삼이 전소평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아삼의 눈빛을 접하고 그의 뜻을 이해한 전소평이 짐짓 날선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물었다.

    "그래, 시신은 확인해 봤소? 그대들의 말처럼 마공이 맞았소? 아니면 다른 드러난 사안이라도 있는 것이오?"

    전소평의 물음에 국원호가 뭔가가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것이…… 일반적인 마공은 아니었소. 허나 이런 것을 본 적 또한 없소이다. 대신 사악한 무공임에는 틀림없소."

    국원호의 대답에 실망한 듯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나 자신이 놓친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역시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시신 말고 그쪽에서 알아낸 다른 것은 없는 것이오?"

    전소평의 물음에 순간 국원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흔들며 답하는 국원호였고 그런 국원호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 아삼이었다.

    흉흉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세한 표정까지도 살펴야 했던 그였다. 비록 살짝 굳어지고 잠깐 느려진 반응이었지만 그 반응을 살핀 아삼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딱히…… 알아낸 것은 없소."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국원호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삼의 눈빛이 빛났다. 이내 전소평을 향해 눈짓을 보내는 아삼이었고 그 눈빛에 고개를 끄덕인 전소평의 시선이 국원호를 향했다.

    "알겠소. 혹, 다른 뭔가 알아낸다면 그때 알려주시오. 우리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된다면 알려주겠소."

    "알겠소이다."

    포권을 하며 전각을 나서는 국원호였고 그런 국원호의 모습이 사라지자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로 명을 내리는 아삼이었다.

    - 아무래도 뭔가를 숨기는 듯 하군. 저들이 숨기는 것이 무엇인지 네가 알아보도록 해라. 그리고 요원들을 풀어 청해성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 보거라. 우리가 놓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삼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아삼이었다.

    아삼의 명으로 청해성 주변을 샅샅이 뒤진 동창이 마교의 인물들에게 살해된 시신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아삼이 다급히 전각을 나섰다.

    시신들이 놓여있는 곳으로 들어선 아삼을 향해 동창 요원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 그런 동창 요원들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가 이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시신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에 시신을 살피던 자들이 옆으로 비켜서면서 지금껏 발견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각한 얼굴로 시신들을 꼼꼼히 살피던 아삼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죽은 시신의 몸속에 깃든 흔적은 그에게도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내 드러난 시신들 중 몇 구를 더 확인한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미 한참 전에 죽은 시체인데, 그 내부는 너무 차갑다. 음한 장력에 당한 것인가? 미미하게 느껴지는 이것은…… 소수마공이라고 불리던 그 기운이 아닌가!'

    살수지무의 공능으로 느껴지는 미미한 기운이 이전에 죽을 고비를 가지고 온 그 기운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삼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마교라고 불리는 곳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 건가?'

    그렇게 고심하는 아삼의 곁으로 다가선 전소평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덩달아 심각한 얼굴을 보이며 아삼을 향해 전음을 보내는 그였다.

    - 청해성 근처에 마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오문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아삼에게 전하는 전소평이었고 소식을 들은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교라…… 하지만 분명 그들은 흡혈공으로 죽었다. 황궁에서 죽은 그 모습 그대로인데…… 그 흡혈공이라는 것이 마교 측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과 황궁의 일이 연관되어 있었던 건가?'

    복잡하게 꼬인 일들을 하나하나 다시 되짚어보는 아삼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마교의 출현도 그렇고 소수마공으로 당한 시신들도 그렇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꼬여만 갈 뿐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심하고 있는 아삼과 달리 저 뒤에서 묵묵히 시신들을 바라보고 있던 인학의 얼굴에 의구심이 어렸다.

    '무슨 이유로 저렇게 고심을 하는 거지? 전소평, 저놈이 무슨 정보를 물어온 것인가?'

    자신과 연관된 일인지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쉬이 넘기지 못하는 인학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은 항시 아삼의 주위를 맴돌았고 그가 총괄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라고 믿는 인학이었다.

    이윽고 그곳을 빠져나가는 전소평과 아삼이었고 마음을 굳힌 그가 그들의 뒤를 쫓았다. 멀어져가는 아삼을 향해 달려간 그가 그를 붙잡았고 그 모습에 인상을 구긴 전소평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그를 노려봤다.

    "네 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아삼에게 할 말이 있다."

    "아삼? 있다? 하! 일개 번역이 당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냐?"

    전소평의 이죽거림에 인상을 구긴 인학이었지만 이내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의 시선에 구긴 얼굴을 폈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고 무뚝뚝한 그 눈빛이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그인지라 자존심을 굽히면서 다시 말을 이어가는 인학이었다.

    "다…… 당두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꼬리를 내리는 인학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켜보는 아삼이었지만 옆에 있던 전소평의 얼굴에는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전소평의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는 인학이었지만 애써 그를 무시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옆에서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조금 전에 확인한 시체들은 황궁에서 봤던 그 시체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마공이 아니라 황궁의 그 마공인 듯 싶습니다."

    아삼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이 생각해낸 듯 그 의견을 말하는 인학이었지만 정작 그의 의견을 반기는 사람은 전소평이었다. 도움이 된다는 그 말에 인학의 학식이 얕지 않음을 알고 있는 그가 애처로운 눈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그 많은 서류를 저에게 떠넘길 생각은 아니시겠죠?'

    강렬하게 눈으로 물어오는 전소평이었지만 아삼은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인학이라는 놈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되었다고 해라. 그 시간에 다른 이들과 함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으라고 전해라.

    - 하오나. 저놈이 돕는다면 임성화와 원한이 있을만한 자들을 더욱 빨리 찾아낼 수……

    채 전음을 끝내기도 전에 돌아서는 아삼이었고 그 모습에 얼굴을 구기는 전소평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나서는 아삼의 모습에 멍한 상태로 그를 바라보는 인학이었고 그런 인학에게 짜증을 내는 전소평이었다.

    "괜히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 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라. 끈 떨어진 연 주제에 뒤늦게 무슨 연줄을 잡으려고. 쯧쯧."

    "이익……"

    전소평의 비아냥거림에 얼굴을 붉힌 인학이 죽일 듯이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는 전소평이었다. 그런 그가 뒤늦게 아삼을 쫓으면서 투덜거렸다.

    "젠장, 귀찮은 일은 다 나한테 떠넘기네. 그나저나 신강에 있어야 할 놈들이 뭘 주워 먹겠다고 나타나는 거야? 나타나기를……"

    멀어져가는 전소평의 말과 함께 그를 노려보던 인학이 마지막 말을 듣고 움직임을 멈췄다. 신강에 있어야 할 놈들이 나타났다는 말에 한 단체를 떠올린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 자리에 서서 고심을 하는 인학이었고 자신이 살아날 실마리를 찾은 듯 그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전소평이 투덜대던 그 말에서 마교 쪽 인사가 나타났으리라고 여기는 인학이었다. 조금 전에 아삼이 심각하게 고민하던 일이 바로 마교의 등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렇군. ……이번 일을 마교의 소행으로 몰고 간다면?'

    그렇게만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인학이 아삼과 전소평이 사라진 곳을 보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조금 전에 수치스러웠던 일은 모두 잊은 듯 몸을 돌리는 인학이었고, 이 상황을 타개할 수만 있다면 흡혈공의 구결까지 드러낼 생각을 마친 그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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