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29화 (129/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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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라는 이름으로

    의도치 않았지만 인학의 개인적인 복수가 무림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오기 시작했다. 목내이로 변한 시체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모든 무림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은 마교라고 불리는 곳까지 흘러 들어갔다.

    커다란 탁자의 정중앙에 앉은 사내가 주위에 앉은 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긴 백발을 늘어뜨린 사내가 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교주 장위적이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주위를 내려 보며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목내이 시체가 발견됐다고?"

    "예. 교주. 청해성에서 마공으로 죽은 듯한 목내이 시체가 여럿 발견됐다고 합니다."

    장위적의 물음에 마태령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고 그 옆에 앉은 검마 하도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어떤 놈의 짓일까요? 우리 교에서는 최근에 그쪽으로 간 이가 없는데…… 괜히 우리 교가 다시 한 번 세간에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겠군요."

    검마 하도강의 말에 군사 제명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검마의 말씀처럼 빨리 진상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를 바라보는 무림의 시신이 곱지 않을 것입니다."

    "흥, 그깟 무림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아 봤자 지. 그놈들이 우리를 곱게 보지 않는 것이 뭐 오늘 내일 일입니까? 그까짓 시선이 무에 그리 대수라고……"

    못마땅한 듯 이죽거리는 마태령의 말에 장위적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그렇지 않아. 우리가 하지 않은 일로 왜 그런 시선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시선이야 그렇다고 쳐도 마공을 쓴 자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야겠지. 우리 쪽 인사가 아니라면 더더욱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는 장위적이었고 그런 장위적의 눈치를 살피며 군사인 제명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렇다면 빨리 진상을 밝혀야하지 않겠습니까? 제법 중한 사건인 만큼 이번 일은 소교주께 맡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소교주께 맡기자니요?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립니까?"

    "가당찮다니요?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응당 소교주께서 나서주셔야지요. 이런 일에 소교주가 아니면 누가 나선단 말입니까?"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마태령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제명현이었고 그런 제명현의 태도에 마태령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장자인 장무영이 소교주가 된 뒤로 둘째 장호영이 한없이 밀려나는 것 같아서 떨떠름해 하던 그였다. 이내 수긍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호히 맞서는 그였다.

    "아무리 중차대한 일이라 하나, 이까짓 일로 소교주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번 일은 둘째 공자께 맡겨도 충분할 듯 싶습니다. 만약 소교주께서 직접 나선다면 무림인들의 이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내이로 변한 시체 때문에 우리 신교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 소교주께서 나서신다면 그 의심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마태령의 말에 장위적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검마 하도강이 마태령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마 장로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이 상황에 소교주께서 나서신다면 괜한 의심만 더 살 것입니다."

    "의심을 살 수 있다하여 이번 일을 허투루 처리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겨야지요. 소교주께 맡긴다면 그 진상을 금방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그런 경험을 쌓게 만드는 것도……"

    "허투루? 믿을만한 사람? 허면 제 군사는 둘째 공자를 믿지 못 하겠다는 말이오?"

    제명현의 말에 발끈한 마태령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고 그런 마태령을 향해 제명현이 짐짓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마 장로께서 제 말을 곡해하신 듯 합니다. 저는 소교주께서 능히 해결하실 수 있다 했을 뿐 둘째 공자를 믿지 못 하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혹…… 둘째 공자를 믿지 못하는 것은 마 장로가 아닐는지요?"

    모른 체 시치미를 떼는 제명현의 모습에 고리눈을 뜨며 그를 노려보는 마태령이었다. 이내 그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 군사,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지 마시오! 둘째 공자의 능력을 스승인 내가 믿지 못할 리가 있겠소?"

    "찢어진 입이라니요? 말씀이 지나치시오."

    서로를 노려보는 마태령과 제명현의 모습에 순간 그곳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모습에 잔뜩 미간을 구긴 장위적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중재를 하고 나섰다.

    "그만들 하시게. 그대들의 의견은 충분히 알았으니. …… 천 장로,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아무 말 없이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천요희를 향해 장위적이 나직이 물었지만 대충 얼버무리며 넘기는 천요희였다.

    "저야 뭐…… 교주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그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온 천요희라 딱히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 전부터 교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 않아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장위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그인지라 별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모두 못난 자식을 둔 자신의 탓이었기 때문이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 장위적이었다.

    "이번 일은 소교주에게 맡기도록 하지. 사안이 중한 만큼 둘째가 소교주를 도와서 일의 진상을 알아내도록 하게."

    장위적의 하명에 모두들 고개를 숙였고, 기회를 놓치지 않던 제명현이 장위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새로운 사실을 건의하며 나섰다.

    "허면 함께 할 인원은 소교주께서 직접 꾸리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중한 일이니 아무래도 손발이 맞는 인사와 함께 하는 것이 부리는데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좋겠네. 그리 하도록 하지."

    제명현의 제안에 장위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그 모습에 마태령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이내 그곳을 나서는 장위적을 향해 예를 표한 그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지만 그곳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교주를 중심으로 일을 진행시킨 제명현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 미소가 흘렀지만, 그런 사실이 못마땅한 마태령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리고 중립을 지켜온 천요희의 얼굴에는 미묘한 감정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검마 하도강은 딱딱한 표정과 함께 눈을 빛내고 있었다.

    ***

    열심히 말을 달려서 청해성에 도착한 아삼과 전소평이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로 향했다. 안찰사는 한 성의 사법과 감찰을 주관하는 곳이었고, 목내이로 변한 시신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안찰사(按察司)에 있다던 그 목내이가 황궁에서 있었던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요?"

    - 그거야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우리가 청해성까지 온 이유가 아니더냐?"

    "그…… 그렇긴 하죠."

    아무런 말도 없이 말만 모는 아삼의 행동에 입에서 단내가 나는 듯 하여 운을 떼어본 전소평이었지만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답을 하는 아삼이었다. 어느새 안찰사에 도착한 둘은 시끌벅적한 그곳의 상황에 미간을 찌푸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어찌 안 된다고 하는 것이오? 이는 비단 관만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뭔가가 못마땅한 듯 푸른색 목면을 입은 사내가 관인을 향해 소리쳤지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호히 맞서는 그였다.

    "글쎄, 지금 조사 중인 사항이라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다고 하지 않소!"

    "말씀 드렸지 않았소? 우리는 곤륜파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무슨 연유로 갑작스럽게 마공이 튀어나왔는지 알아보러 나왔다고 하지 않았소. 우리들이 목내이로 변했다는 시신을 확인하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요. 그러니……"

    "곤륜파든 나발이든! 우리야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명을 수행하는 것이오."

    "……."

    곤륜파에서 나왔다는 사내를 향해 단호하게 말하는 관인이었지만 마지막에 그들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와 함께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싸늘하게 바라보는 눈빛에 마른침을 삼키던 관인이 손에 든 창을 다잡으며 주변을 둘러봤고 그의 동료들이 괜한 소리를 내뱉었다는 듯 눈치를 주면서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본 파를 무시하는 것이오?"

    "그…… 그게, 그게 아니라……"

    "아무리 관이라고 하나, 이런 식으로 우리 곤륜을 무시하는 처사는……"

    "멈춰라."

    무거워진 분위기와 함께 관군을 바라보는 자들의 기도가 변했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소평이 끼어들며 그들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모두의 시선이 전소평을 향했고 그 시선을 받은 그가 뒤에 있는 아삼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겼다.

    '이런 일은…… 꼭 나만 시키지.'

    "크흠. 무슨 일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 뉘시오?"

    갑자기 껴드는 전소평의 행동에 다행이라고 여긴 관인이 그의 정체를 물었고 명패를 꺼내든 전소평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황명을 받고 북경에서 왔다. 이들은 무엇이냐?"

    "충…… 충! 곤륜파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그 시신을 보자고 하여……"

    '곤륜?'

    전소평이 건넨 명패를 보며 긴장한 듯한 관인이었고 그의 말에서 나온 '곤륜'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삼이었다. 이내 그들이 전소평을 향해 시신을 확인하자는 뜻을 밝혀왔고 그 말을 전해들은 그가 아삼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직 그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그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수락할 수는 없었고 고개를 흔드는 아삼의 행동에 전소평이 불가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소?"

    "나중에 따로 협조를 해 주면 좋겠소. 우선 이렇게 모여 있는 것 자체가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니 이만 비켜줬으면 좋겠소만?"

    "…… 아무리 관이라고 하나 이렇게 본 파를 무시해도 되는 것이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우리들도 참을 수가 없소."

    전소평의 말에 뒷 편에 서있던 앳된 사내가 화를 내며 소리쳤고 그 소리에 전소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모습에 앞에 있던 중년인이 뒤를 노려봤고 그 시선을 받은 자가 붉어진 얼굴을 숙이며 뒤늦게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행태를 두고 볼 전소평이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던 그가 곤륜파의 무인들을 향해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참을 수가 없다? 하! 참을 수가 없다! 한낱 일개 문파 따위가 지금 대 명의 관과 대적하려 함이더냐!"

    "오해요. 그저 답답한 마음에 내지른 어린 아이의 치기였을 뿐이오. 그리고…… 본 파는 일개 문파 따위가 아니오. 누가 감히 곤륜을 일개 문파로 취급한단 말이오!"

    "지금 네놈들의 행동이 관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더냐! 아무리 칼을 차고 돌아다닌다고 하나 지금 이 행동이 잘했다는 것이냐?"

    괜히 일을 크게 벌이는 전소평의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는 아삼이었고 더 이상 참지 못한 그가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를 날렸다.

    - 그만 하고 돌려 보내거라.

    "……."

    하오문을 무시하는 무림인들을 향해 그간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전소평이 유독 딱딱하게 들리는 아삼의 전심어서에 뜨끔해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우선 길을 비켜서라."

    "이 청해에서 우리 곤륜을 업신여긴다면……"

    "그 곤륜이 대 명의 대군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이더냐?"

    "……."

    "황명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것이 곤륜이든, 소림이든 중한 사건에 함부로 외인을 들일 수 없으니 더 이상 그것을 방해한다면…… 황명을 거역한 죄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어느새 전소평의 등 뒤로 많은 관군들이 나열해 있었고 그 모습에 침음을 삼키며 앞선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만 돌아간다."

    잔뜩 굳은 얼굴로 돌아서는 사내였고 그런 사내를 따라 못마땅한 표정의 그들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짓던 전소평이 관군들을 향해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들 단단히 지키거라."

    전소평의 명에 관군들이 우렁차게 대답했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전소평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관아로 들어섰다.

    '천하의 곤륜도 황명에는 어쩔 수 없지. 크큭.'

    똥 씹은 표정으로 물러서는 그들의 모습에 묘한 희열을 느끼는 전소평이었지만 그를 지켜보는 아삼의 얼굴을 펴질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 전소평이 머쓱해하며 아삼을 바라봤다.

    "평소 하오문을 무시하는 놈들이라…… 송구합니다."

    "……."

    아무 말도 없이 걸음을 옮기는 아삼이었고, 그 모습에 괜한 짓을 저질렀다고 자책하는 전소평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목내이로 변한 시신을 살피던 아삼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갔다.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던 아삼이 어느새 심각해진 얼굴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흡혈공이다. 황궁에서 발견됐던 시신들과 상태가 똑같다. 정훈, 그 자가 죽으면서 그때 일이 끝난 것 같았는데…… 황궁에 있는 누군가를 제외하고도 흡혈공을 익힌 자가 존재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궁에 있는 누군가가 우연찮게 지금 드러난 흡혈공을 익혔던 것인가?'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 아삼이었지만 영락제의 명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던 일이라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었다. 그때 제대로 파고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씁쓸해하던 아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는 지금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복잡해진 머릿속에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모습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전소평이 물었다.

    "당두, 어찌 그러십니까? 뭔가 짚이는 것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 지금 바로 임성화의 장원으로 간다.

    그런 전소평의 물음을 무시한 채 아삼이 전각을 나서며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를 날렸다.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전각을 나서는 아삼의 뒤를 전소평이 급히 쫓았다. 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아삼의 태도에 서운한 듯 전소평의 입이 한 자는 튀어나와 있었다.

    '조금 전에 그 일이 아직도 덜 풀린 건가? 쳇, 괜한 짓을 저질러서는……'

    한 눈에 임성화의 장원을 찾은 아삼과 전소평이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반쯤 타다만 장원의 모습에 그곳이 임성화의 장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그을음이 붙어 있는 흉물스럽게 변한 장원으로 들어선 두 사람이 얼굴을 찌푸렸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렸고 반쯤 타다만 곳에는 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샅샅이 뒤져봤지만 뭔가 흔적이 될 만한 것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불로 그 흔적이 지워져 있었고, 남아있다고 해도 불을 끄기 위해 들어선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된 증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당두, 여기서는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겠는데요."

    전소평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고 그 말에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삼이 뭔가가 떠오른 듯 전소평을 향해 전심어서를 날렸다.

    - 지난번에 임성화의 정보를 모은 것들이 아직 있던가?

    "네. 하오문의 지부를 찾으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그것들을 샅샅이 다시 뒤져봐라. 그와 원한을 진 이들이 있는지, 그의 장원에서 죽음을 당한 인사들의 인과관계까지 철저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

    - 그리고 한왕과 관련해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도 파악해 봐라. 하오문을 움직이면 가능 할 것이다.

    "사…… 샅샅이 다시 뒤지라고요? 하오문을 움직여서?"

    - 그래,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모두 다.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두 다시 확인해봐.

    아삼의 전심어서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읍을 하는 전소평이었다. 홀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내쉰 그가 멀어져가는 아삼을 보면서 급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에 그 일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 분명해. 우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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