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27화 (12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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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라는 이름으로

    팽명민을 만나기 위해서 팽가의 대문 앞에 선 인학이 긴 한숨을 뱉어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복잡한 기분을 내포한 그 한숨에 마음을 다잡은 그가 걸음을 옮겼다. 가문의 복수를 위해 자궁(自宮)까지 하면서 들어섰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그 복수를 위해서 이곳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가문의 복수를 위해서 스스로 남성을 버렸거늘! 그 짓도 부질없는 것이었던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팽가에서의 생활에 조용히 침음을 삼키던 그가 불현듯 떠오르는 아삼의 얼굴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결국 아삼…… 그 놈에게는 진 것인가? 나 보다 못하다고 여기던 놈이었는데. 후우.'

    씁쓸한 듯 미소를 짓던 인학이 상념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팽명민이 있는 곳으로 들어선 그가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팽명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그래 긴히 할 말이 무엇이더냐?"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온 인학의 행동이 못마땅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대하는 팽명민이었고 그 모습에 쓰게 웃는 인학이었다. 그 일이 지난 지도 꽤 되었건만 아직까지 인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팽가였다. 이미 그를 팽가의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그들이었다. 다만 아직까지 공표만 안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에 지방으로 내려갈까 합니다."

    "지방? 그건 무슨 뜻이냐?"

    뜬금없는 인학의 말에 팽명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고 그런 팽명민을 향해 인학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제 실력 미흡하여 팽가에 누만 끼친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지방으로 내려가서 제 자신도 돌아보고 견문도 넓혀볼까 합니다."

    '갑자기 지방이라…… 도대체 또 무슨 꿍꿍이인 거지? 저놈이 쉽게 권력을 놓을 놈은 아닌데……'

    인학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의뭉스런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는 팽명민이었다. 지금껏 보아온 인학이라면 어떻게든 위로 올라서려고 발악을 할 놈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소리에 아무런 이유 없이 저렇게 나서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팽명민이 그 이유를 물었다.

    "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 헌데 무슨 연유로 지방으로 간다고 하는 것이냐? 지방으로 가게 되면 지금껏 쌓아온 네 기반도 잃을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아깝지 않겠느냐? 한 번 내려가게 되면 다시 중앙으로 올라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잃을 기반도 없습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지방으로 내려가서 제 자신을 더 담금질해서 돌아오겠습니다. 팽가에 죄만 짓는 것 같아서……"

    "되었다. 고양이가 쥐를 생각하는 격이구나. 그런 놈이 일을 그따위로 만들어서 아예 동창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더냐? 훗, 개가 웃을 일이다."

    "……."

    신랄한 팽명민의 말에 인학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재빨리 표정을 지웠다.

    '망할 팽가 놈들! 네놈들이 제대로 지원만 해줬다면 나도 그런 짓은 벌이지 않았을 거다!'

    속으로 팽가를 욕하면서도 눈빛을 바꾼 인학이 비장한 눈으로 팽명민을 바라봤다. 꿈틀거리는 그 얼굴을 확인한 팽명민이었지만 이대로 그를 데리고 있더라도 딱히 쓸 곳이 없었다.

    '저놈을 내려 보내고 우리 팽가가 동창에서 손을 놓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아삼…… 그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좋겠어.'

    이내 마음을 굳힌 팽명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동창에서 팽가의 사람을 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입지도 거의 없어진 마당에 인학의 존재가 크게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차라리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그였다.

    "네가 그리 결정했다면, 내 아버님께 말씀을 드려보겠다. 허나, 만약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신중히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지난번 일처럼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다면……"

    "송구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중, 또 자중하거라."

    인학의 의견을 받아주면서도 못마땅한 얼굴로 재차 다짐을 받아내는 팽명민이었고 그런 팽명민을 향해 인학이 고개를 숙이며 읍을 했다.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상황이 나름 만족스러웠지만 그를 무시하는 듯한 팽가의 태도에 절로 인상이 구겨지는 인학이었다.

    '네놈들과의 인연도 여기에서 끝이다. 내 나중에 너희들을 내려 볼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특히 팽명민…… 언젠가 내 발밑에 바짝 엎드릴 것이다.'

    ***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말이 힘겨운 듯 연신 투레질을 해댔다. 그 위에 올라탄 인학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멈춰세울 수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빨리, 더 빨리 달려라!'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 인학이 점점 느려지는 말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말의 옆구리를 차면서 재촉했고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지친 말이 그 속도를 높였다.

    인학이 자청한 곳은 사천성의 성도였다. 사천성에 있는 성도는 북경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거칠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인들이 꺼리는 곳이었지만 임성화가 낙향한 청해성과 그나마 붙어있다는 이유로 그곳으로 가기를 자청한 인학이었다.

    빠르게 달려온 인학의 두 눈에 어느새 '청해성'이라는 세 글자가 가득 들어왔다. 굳건하고 커다란 성벽이 가까이 다가왔고 그 모습에 인학의 입가에 흡족해 하는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청해성인가? 빨리 달려온 보람이 있구나!'

    사천성으로 부임하기 전에 임성화와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달려 청해성까지 온 인학이었다. 시일을 단축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달려온 까닭에 부임하기까지 며칠의 시간을 더 벌게 된 그였고, 그 며칠 동안 임성화를 제거하고 성도로 돌아간다면 아무도 자신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게 청해성에 도착한 인학은 임성화의 동향을 살피기 시작했다. 임성화가 머무는 장원 근처에서 이틀에 걸쳐 신중하게 조사했지만 권세가 많이 꺾여서 그런지 임성화의 장원에는 임성화와 그의 가족 그리고 몇몇의 하인들이 전부였다.

    '아무리 문전작라(門前雀羅)라 하나 그래도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웠던 자인데 주변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다? 정말 이상하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인가?'

    장원을 지키는 최소한의 인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인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임성화의 뜻이었다.

    낙향한 이후로 의심 살 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임성화였다. 다행히 한왕에 대한 황제의 우애 덕에 역모의 굴레를 피할 수 있게 된 그였지만, 행여라도 역모로 엮였다면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문까지 온전치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겠다는 수하들을 모두 내치며 아무런 뜻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황제와 한왕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장원을 지키는 인원을 세우지 않은 것은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장을 겪은 그였기에 웬만한 살수나 무인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런 의도를 모르는 인학이었지만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혹시라도 지난 이틀간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감행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이틀을 소비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겠어. 오늘 밤 일을 치른다.'

    장원을 노려보는 인학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제 몇 시진 뒤면 자신의 가문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자들 중 한 명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려고 노력하는 그였다.

    달마저 구름 뒤에 숨은 어두운 밤, 검은 복면을 뒤집어 쓴 인학이 어둠 속에 몸을 맡긴 채 임성화의 장원으로 숨어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임성화가 있는 곳을 찾으려던 그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기둥 뒤로 몸을 숨겼고 곧 인학의 도에 지나가던 하인이 붉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원 전체가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들어서는 전각마다 임성화를 찾으려 눈에 불을 켜며 보이는 족족 사람들을 향해 도를 휘두르는 인학이었고,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피가 흥건하게 바닥을 적셨다.

    임성화를 찾기 위해서 다른 전각으로 들어선 인학의 두 눈이 빛났다. 값비싼 비단옷에 화려한 장신구를 한 앳된 소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 눈에 임성화의 여식임을 알아차린 인학이 단숨에 그 소녀를 향해 달려갔고, 이내 도를 높이 쳐든 인학이 좋은 생각이 난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결박하기 시작했다.

    "꺄아악!"

    가녀린 비명소리가 장원 안에 울려 퍼지자 놀란 사람들이 하나 둘 처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드러난 참상에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기겁을 했고, 임성화 역시 손에 검을 쥐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 임성화를 향해 겁에 질린 부인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상공, 저…… 저기……"

    부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임성화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낯선 복면인에게 결박당한 채 벌벌 떨고 있는 딸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다.

    "웬 놈이냐?"

    짐짓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인학을 향해 묻는 임성화였고 그런 임성화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차갑게 소리치는 인학이었다.

    "네 놈의 목을 취하러 왔다. 딸년의 목숨을 살리고 싶거든 네 목을 내놓거라."

    "……."

    딸아이를 인질로 삼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살기어린 시선에 침음을 삼킨 임성화가 주변을 둘러봤다. 장원에 남은 몇 안 되는 자들이 그대로 얼어붙어있었고 겁에 질린 듯 눈물을 흘려대는 딸아이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내 목을 취하러 왔다 했느냐?"

    "……."

    "그 아이를 풀어주고 이들을 놓아준다면, 스스로 목을 내놓겠다."

    "흥!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사뭇 비장한 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인학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자들을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인학이었고 그 모습에 인상을 굳히며 가지고 나온 검을 꺼내드는 임성화였다. 그리고 그런 임성화의 태도에 당황한 인학이 딸의 머리채를 힘껏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네 놈 눈에는 괴로워하는 딸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냐?"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뱉어내고 있는 딸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키는 임성화였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딸을 향해 나직이 말하는 그였다.

    "지켜주지 못 해서 미안하구나. 못난 이 아비를 용서하지 말거라. 허나! 네 복수는 꼭 해주마."

    "상공!"

    "흐으읍."

    비장한 얼굴로 재갈이 물린 딸을 바라보는 임성화였다. 어차피 자신의 목을 취하러 왔다면 가족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그였다. 하지만 그도 아비인지라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고 그런 임성화의 행동에 화가 난 인학이 얼굴을 붉히며 매섭게 소리쳤다.

    "복수? 적반하장이 따로 없군! 네놈이 한 짓을 잊고 복수를 운운하는 것이더냐!"

    "누구냐? 네놈은 누구냐?"

    "그 복수라는 것은 네놈이 아닌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화가 난 인학이 주변의 하인들을 향해 비도를 뿌렸다. 빠르게 날아간 비도가 그들의 몸에 박혀들었고 힘없이 무너지는 그들의 모습에 임성화의 얼굴이 잔뜩 굳어갔다.

    "내 목을 가지러 왔다 하지 않았더냐? 어찌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냐?"

    "네놈은 하늘 아래 떳떳하다는 말투로구나!"

    "……."

    빈정거리는 인학의 외침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임성화였다. 지난날의 업보가 이렇게 돌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에 인상을 굳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인학이 그의 옆에 있던 여인을 향해 비도를 날렸다. 하지만 재빨리 부인의 앞을 막아선 임성화가 날아오는 그의 비도를 쳐냈고 그와 동시에 딸을 거칠게 밀쳐낸 인학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인학이었지만 비교적 단순한 그의 도법은 임성화의 검에 번번이 막혔다. 자신의 공간을 침범한 낯선 자에 대한 분노와 함께 억울한 울분을 토해내는 임성화였고 휘둘러지는 그의 검에 검기가 맺혔다.

    생각보다 강한 그의 무공에 급히 기운을 끌어올린 인학이었지만 단순한 그의 도법은 임성화에게 큰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단순한 도격을 막아내는 임성화의 얼굴을 찌푸리게만 만들 뿐이었고, 이대로는 힘들다고 판단하는 인학이었다.

    '시간을 끌면 나만 위험해진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놈을 끌어내리자!'

    기운을 끌어올린 인학의 도가 잘게 떨려왔다. '우르릉'거리는 뇌성과 함께 새하얀 도광이 번뜩였고 그 공격을 막아낸 임성화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너무나 유명한 그 도법에 놀란 눈으로 인학을 바라보는 그였지만, 이어지는 인학의 행동에 경악한 그가 바닥을 박찼다.

    쉬이익.

    잠깐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서 인학이 품에 있는 비도를 뿌렸다. 빠르게 날아가는 비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임성화의 부인을 향해 날아들었고 그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임성화가 그곳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인학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죽어라!"

    등을 보인 임성화의 행동에 기운을 끌어올린 인학이 도를 뿌렸고 인상을 찌푸린 임성화가 비도를 쳐내며 뒤늦게 몸을 돌렸다. 휘둘러진 도가 그의 옆구리를 갈랐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확인한 인학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다시 달려들며 벽력도법을 뿌려대는 인학이었고 갈라진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그의 공격을 막아내는 임성화였다. 하지만 그때, 겁에 질린 채로 지켜만 보던 한 여인이 떨어진 비도를 부여잡고 인학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그 행동에 인상을 찌푸린 인학이 달려오는 여인을 향해 도를 휘둘렀고 새빨간 핏물이 튀며 그 여자가 무너져 내렸다.

    "부인!"

    그 모습에 임성화가 절규했고 그의 이성이 끊어졌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휘두르는 검에 놀란 인학이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동귀어진의 수법에 인학의 몸에 조금씩 검흔이 새겨졌다. 하나, 하나 늘어가는 검흔에 인학의 눈이 독기를 품었고, 다시 한 번 달려드는 임성화의 검을 피하지 않은 그가 임성화의 가슴을 갈랐다.

    푸욱.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인학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내 그의 앞에 뿌려지는 임성화의 피가 찌푸린 인학의 얼굴을 적셨고 흘러내리는 따뜻한 피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인학이었다.

    "전각대학사(殿閣大學士)를 지내셨던 이인후라는 존함을 기억하느냐?"

    "크흑. 네…… 네놈이!"

    "그분이 조부시다. 곧 네놈의 딸년도 네 뒤를 따라갈 것이다."

    "이…… 이놈! 크으윽."

    "그와 관련된 놈들은 곧 네 뒤를 따라갈 것이다. 억울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쿠웅.

    가슴이 갈린 임성화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던 인학이 자신의 배에 박힌 검을 뽑아내며 얼굴을 닦았다.

    얼굴 가득 느껴지는 비릿한 피와 함께 몸 곳곳에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흘러낸 피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고 자잘한 상처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특히 마지막에 일부러 받아냈던 그 공격은 절로 몸이 떨려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가까스로 임성화를 죽인 인학의 눈이 이제 장원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노려보던 인학이 마지막 힘을 끌어올리며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다가서는 곳마다 선혈이 낭자했고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이내 남은 자들을 모두 죽인 그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임성화의 여식을 바라봤다.

    "흐읍. 흐으읍."

    "…… 네 아비를 원망해라. 네년이 입고 있는 옷도 모두 다른 자들의 피와 한이 서린 것들이니…… 그 정도 누렸으면 억울하지는 않을 것 아니더냐?"

    "으읍! 으읍!"

    겁에 질린 눈으로 인학을 보며 뒷걸음질 치는 임성화의 여식이었지만 그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내 배 안을 파고드는 인학의 손에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을 치는 그녀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빠져나가는 피와 함께 점점 말라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 인학의 얼굴이 단전을 채우면서 들어오는 기운을 느끼며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임성화를 죽이는 과정에서 기운을 많이 소모한 탓에 양기를 보충해야만했고 흡혈공으로 그의 여식을 취하는 인학이었다. 이내 장원을 뒤지면서 남은 자들을 찾아내서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찾아낸 어린 아이들을 이용해서 흡혈공으로 양기를 보충하는 인학이었고 어느 정도 기운이 차자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목내이로 변한 자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겠어.'

    여기저기 목내이처럼 변한 채 쓰러진 시체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그였다. 기운을 많이 소모한 탓에 내기를 보충한다는 것이 귀찮은 일을 만들어 버렸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모했기 때문이다.

    인학이 다급히 주변의 시신들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장원에 불을 질렀다. 활활 타오르는 장원을 바라보던 그가 이내 그곳을 벗어나며 미리 잡아 뒀던 객잔을 향해 움직였다. 간단하게 치료를 마친 말을 타며 청해성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활활 타오르는 장원이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학의 계획도 촉박했던 시간과 함께 마지막에 틀어져 버렸다. 타오르는 장원을 확인한 백성들이 힘을 모아서 불을 끄려고 노력했고, 인근의 무관과 무인들의 도움으로 장원이 전소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참상에 모두가 경악을 했다.

    목내이로 변한 시신이 드러났고 새로운 마공이 출현했다는 소식이 곳곳에 전해졌다. 마교가 준동한다는 소문에 모든 중원 무림의 시선이 청해성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황궁에 전해진 임성화의 죽음이 황제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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