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25화 (12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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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초경사(打草驚蛇)

'용아'를 꺼내들며 들이치는 아삼의 모습은 흡사 비호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뒤집어 쓴 복면을 때렸고, 가까이 다가온 임성화의 놀란 모습에 눈을 빛낸 아삼이 연검을 찔러 넣었다.

'임성화가 확실하군. 생각보다 덩치가 더 좋은 것 같은데?'

빠르게 찔러 넣은 연검이 낭창거리며 특유의 소리를 냈고 놀란 임성화가 뒤늦게 반응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대로 휘둘러진 연검이 그의 목을 베어버릴 것 같았지만 용답상운이라는 초식으로 일부러 연검의 검신을 휘게 만들면서 그를 살리는 아삼이었다.

충분히 죽일 수 있는 한 수였지만 일부러 그를 죽이지 않는 아삼의 행동은 임성화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고 조롱당한 듯한 느낌에 물러선 그가 붉어진 얼굴로 검을 빼내며 아삼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커다란 외침과 함께 검을 찔러 넣는 임성화였고 아삼이 뒤로 물러서며 그의 검을 피해냈다.

'이 자를 전각에서 물러서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죽이는 것은 한왕을 꾀어낼 수 없으니……'

노한 임성화의 눈을 살피며 공격을 피해내며 물러선 아삼에게 다시 임성화가 들이치며 검을 휘둘렀다. 살짝 허리를 틀어서 그 공격을 피한 아삼이 그를 향해 연검을 뿌리려 할 때, 찔러 넣었던 그의 검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아삼의 발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북경을 지키는 무장이라 이 말인가!'

생각보다 그의 무공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 아삼이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자신의 발을 노리고 떨어지는 검첨을 피해 뛰어오른 그가 숙여진 임성화의 머리를 뛰어 넘으며 연검을 휘둘렀다. 마치 물레방아가 돌듯 커다란 원을 그리며 몸을 뒤집은 아삼의 얼굴이 아래로 향했고 위에서 휘두른 그의 검에 식겁한 임성화가 초식을 펼치려던 검을 억지로 회수하며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채앵.

"크윽!"

쇠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임성화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런 임성화를 돕기 위해 그의 수하들이 빠르게 달려 나왔고 임성화를 뛰어넘은 아삼은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허리를 숙여야만 했다.

"죽어라!"

커다란 외침과 함께 허리를 숙인 것조차 부족하다고 느낀 아삼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길게 찢어진 다리가 바닥을 긁었고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위로 기다란 창두가 스쳐지나갔다.

"쥐새끼 같은 놈."

그 상황에서도 공격을 피해내는 아삼을 보며 인상을 구긴 사내의 외침과 함께 몸을 일으킨 임성화가 아삼을 노려봤고 전각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운에 조금 더 이목을 끌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임성화를 향해 뛰어드는 아삼이었다.

달려드는 아삼을 보며 마음을 다잡은 그가 다시 검을 뿌렸다. 그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듯 한결 빨라진 속도와 함께 검신에는 푸른빛의 검기가 어렸다. 그런 검을 향해 연검을 마주 뿌리던 아삼이 기운을 일으켜서 휘어진 연검으로 검기가 어린 검신을 때렸고 휘청거리는 그의 팔을 향해 다시 연검을 찔러 넣었다.

용요단완(龍繚斷腕).

임성화의 팔을 감은 용아가 시린 빛을 뿜어냈고 아삼과 눈이 마주친 임성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런 임성화를 바라보던 아삼이 단호한 눈빛을 보이며 용아를 잡아당겼다.

'팔 하나는…… 가져간다!'

당겨진 연검에 휘감은 그의 팔이 찢겨져 나가리라 예상하는 아삼이었다. 하지만 찢겨진 그의 의복과 함께 당겨진 용아의 검신에서 불꽃이 튀었다. 드러난 그의 팔에는 단단한 갑주가 채워져 있었고 그 모습에 미간을 좁히는 아삼이었다.

'덩치가 크게 느껴진 이유는 저것이었나?'

전장을 돌아다니던 무장답게 그 안에 단단한 갑주를 입고 있던 임성화였다. 그가 입은 것은 일반적인 갑주와는 상당히 달랐다. 몸에 착 달라붙은 그것은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 것 같았고 용아의 검날에도 상하지 않은 것을 보면 강도도 상당히 단단해 보였다.

뜻밖의 일격에 팔이 잘릴 상황이었지만 입고 있는 갑주 덕에 그 공격을 피한 임성화가 식은땀을 흘러내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지금 앞에 있는 놈은 무림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뒤로 물러선 그의 주변으로 커다란 방패를 가진 자들이 늘어서며 그를 막아섰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조금 전에 창을 찔러 넣었던 무장이 아삼의 뒤를 쫓았고 순식간에 뻗어진 창두를 확인한 아삼이 고개를 숙이며 그 공격을 피했다.

파앙. 파앙.

찔러낸 창이 공기를 때리면서 시원한 파공음이 가득 울렸지만 정작 그 공격을 피해내는 아삼의 몸은 땀으로 젖어갔다. 그자를 제외하고도 다른 한 명의 장수가 더 합세하며 그를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공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아삼이었다. 실로 절묘하게 합공을 해오는 그들의 실력에 조금만 방심을 하면 그대로 몸이 꿰뚫릴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아삼의 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전소평이었다. 응당 위험한 일은 자신에게 맡겨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손수 위험한 일에 나서는 아삼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자신이 보아온 상관들은 몸을 사리면 사렸지 앞으로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괜찮은 놈을 상관으로 모셨다는 뜻이겠지?'

목표했던 곳으로 들어선 전소평이 몸을 일으키며 숨겨둔 전표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다시 모습을 감추며 호흡을 골라야만 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서두르지 않고."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다수의 발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순식간에 그곳에서 멀어져가는 그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안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전소평이 침음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빨리 끝내지 않으면 괜찮은 상관이 더 위험해지겠어. 빨리 전표를 찾아서 빠져나가자.'

비장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는 전소평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빛났다. 이윽고 비밀스런 장소를 찾아낸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먼지가 내려앉은 곳에서 유독 한 귀퉁이만 닦여진 평범한 탁자가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교묘하게 감춰진 이음새를 확인한 그가 그곳을 누르자 책장의 한 곳이 툭 튀어나왔다.

조심스럽게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긴 전소평이 안으로 이어진 비밀스러운 장소에 들어서며 얼굴을 굳혔다. 저절로 닫히는 문과 함께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은 한치 앞을 볼 수 없었고 눅눅한 곰팡이 냄새만이 가득했다.

빛 한점 들지 않는 그곳에서 당황하던 그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주머니였고, 그 주머니를 열자 흐릿한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듬성듬성 날아가는 그것들이 주변을 밝혔고 안력을 돋운 전소평이 쌓아둔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반딧불이에 의지해서 힘겹게 주변을 뒤지던 그가 한왕의 직인이 찍힌 서찰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흐릿한 빛으로 그 내용을 읽어보려 했지만 제대로 읽을 수는 없었고 이내 그것을 갈무리하고 전표까지 찾아낸 그가 닫힌 문을 다시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직도 바깥은 소란스러웠고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는 듯 했다. 아삼이 제 역할을 하는지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려 있었고, 자신이 지체할수록 그가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한 전소평이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조금씩 아삼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를 상대하는 두 장수도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자신들의 합공을 막아내는 그 모습에 조금씩 호흡이 거칠어졌고 처음보다 떨어진 힘에 입고 있는 갑주와 들고 있는 무기가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점점 느려지는 그들이었고 기회를 잡은 아삼이었지만 번번이 결정적인 공격은 피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성화가 이상한 듯 미간을 꿈틀거렸고 시간을 끄는 듯한 아삼의 행동에 정신을 차린 그가 크게 소리쳤다.

"장원! 장원 안에 누군가 더 있다. 소추! 장원을 틀어막아라!"

다급한 임성화의 목소리에 근처에 있던 무장이 답을 하며 남은 병력을 이끌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얼굴을 굳힌 아삼이 임성화를 노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지만 임성화의 얼굴을 웃고 있었다.

'제법 머리를 썼다만, 네놈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의도를 파악한 임성화의 웃음에 미간을 찌푸리는 아삼이었지만 이내 멀리 보이는 붉은 원을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임성화의 뒤에 있는 장원 근처의 야산 중턱에서 붉은 원이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을 그리며 타오르는 붉은 불빛이 아삼의 눈에 가득 들어왔고 그 불빛에 만족한 듯 엷은 미소를 짓는 아삼이었다. 전소평과 미리 말을 맞춘 신호로, 전표를 확보하고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멀리 원을 그리는 붉은 신호를 확인한 아삼이 거칠어진 호흡을 내뱉는 두 무장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감춰둔 기운을 끌어올리며 바닥을 박차서 언월도를 든 자를 향해 쇄도하자 상대 무장의 언월도가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날아드는 언월도를 본 아삼이 안으로 더 파고들며 그 공격을 피했고 당혹스런 얼굴의 상대를 향해 용아를 휘둘렀다. 섬뜩한 소리를 내며 쏘아지는 용아의 검신에 상대 무장이 뒤로 허리를 젖히며 그 공격을 피했고 허공을 가른 용아의 검신이 크게 휘었다.

허공을 가르는 검신과 함께 아삼의 손목이 비틀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용답상운.

우측으로 휜 검신이 아삼의 내기에 다시 반대로 크게 휘어들어갔고 공격을 피해내고 상체를 일으킨 무장의 얼굴을 후려쳤다.

터엉.

쓰고 있던 투구가 돌아가며 얼굴을 얻어맞은 상대가 피를 뿜으며 바닥에 처박혔고 그런 아삼의 뒤를 잡으며 날카로운 창이 날아들었다.

찌이익.

간발의 차로 그 공격을 피한 아삼의 옆구리가 창두에 걸려 길게 찢겼고 차가운 공기가 찢어진 옷을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 땀을 식히는 그 공기에 쓰게 웃은 아삼이 검은색 야행복을 찢은 창대를 옆구리에 끼우며 남은 무장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아삼의 옆구리에 잡힌 창대에 인상을 찡그린 그가 그것을 빼내려고 힘을 썼지만, 내기를 끌어올린 아삼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압!"

큰 기합성과 함께 창을 든 장수가 손을 비틀자 끼워진 창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그 움직임에 창대를 붙잡은 아삼의 팔이 벌어졌고 얼얼한 피부에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그런 아삼을 향해 창을 든 사내가 다시 창을 찔러 넣었지만 분뢰수로 창대를 후려치자 그의 아귀가 찢어지며 창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임성화가 손을 들어 올리며 우측을 바라봤다.

무장을 한 병력들 중 일부가 손에 활을 든 채로 아삼을 노려봤다. 어느새 그의 뒤에 있던 방패수들이 방패를 들어 올렸고 그 모습에 기겁한 아삼이 떨어진 창을 차올리며 아귀가 찢어진 장수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푸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창을 쓰던 장수의 어깨가 꿰뚫렸다. 고통스러워하는 장수를 천천히 옆으로 옮기던 아삼이 그를 방패삼아 활을 든 병력들을 견제했다.

'꽤 훈련이 잘된 자들이 아닌가? 무인들이 황군을 꺼리는 이유는 이것이었던가?'

일전에 상대한 두 명의 장수들도 그렇고 지금 임성화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 병력들도 그렇고 모두가 경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한 명, 한 명 떼어놓고 보면 수월하게 상대할 그들이었지만 딱딱 맞아 들어가는 합격술과 일사불란한 병력의 움직임은 다수의 싸움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무인이라는 놈이 대적했던 장수를 볼모로 잡는 것이더냐!"

"……."

정확히 활이 날아들 자리에 고통스럽게 서있는 수하를 보며 분통을 터뜨리는 임성화였고 그런 임성화의 말에 아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방패수……'

그 앞을 막은 방패수들을 확인한 아삼이 눈을 빛냈다. 이윽고 용아를 쥔 아삼이 기운을 더하자 빳빳하게 세워진 검신과 함께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쉬이익. 퍼엉.

임성화를 향해 날아든 검기가 방패에 가로 막혔고 그 충격에 그들의 몸이 들썩거렸다. 쇠로 된 방패에 깊은 검흔이 새겨졌고 막혀진 공격에 안도하던 임성화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저자를 잡자고 충성스러운 수하를 잃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다른 병력들이 이곳으로 올 터. 시간만 끈다면……'

아삼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임성화였지만 이어지는 아삼의 행동에 떠올리던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다시 검기를 날리는 아삼이었고 방패수들이 그 공격을 막아갔다. 전방을 가로막는 방패수들의 모습과 함께 기운을 끌어올린 아삼이 분뢰공의 힘을 섞은 무영보법을 극성으로 펼쳤고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 위로 뛰어 오르며 임성화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그들의 방패가 임성화의 몸을 가렸고 막힌 방패를 확인한 아삼의 얼굴이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터엉. 타다다닥.

큰 충격과 함께 출렁거리는 방패였고 그 위에 부딪치는 소리에 모두가 긴장한 듯 더욱 힘을 주며 충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큰 충격은 이어지지 않았고, 주변에서 놀람 섞인 감탄이 터져 나오자 의아해하며 방패를 치우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멀리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복면인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방패를 디딤돌로 사용한 아삼이었다. 제일 먼저, 임성화의 안위를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에 임성화를 공격하는 척하며 늘어진 방패를 밟고 장원을 빠져나왔고 그런 그의 뒤로 뒤늦게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미 아삼은 사라진 이후였고 애꿎은 화살만 부러진 채 땅바닥에 틀어박혔다.

***

보고를 위해 정화의 처소를 찾는 아삼의 얼굴에 고심이 가득했다. 먼저 증좌를 확보해놔야 할 것 같아서 보고 없이 움직였는데, 정화의 눈치가 이상한 지금 괜한 일을 벌인 것은 아닌지 뒤늦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과는 또 별개로 새로운 생각이 아삼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자금이 부족한 마당에 눈앞의 수많은 전표를 보니 마음이 흔들리는 아삼이었다. 한참동안 전표를 바라보던 그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전표를 다시 품속으로 갈무리했다.

'이런 종이 쪼가리보다 정화 태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표를 빼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 것 같았다. 지난번의 독고패와의 일전을 두루뭉술하게 넘긴 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화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고 혹시라도 발각이 되면 더 많은 것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굳힌 아삼이 호흡을 고르며 정화의 처소에 들어섰다. 이내 자신을 바라보는 정화의 모습에 아삼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고 그런 아삼을 바라본 정화가 나직이 물었다.

"그래, 어인 일이냐?"

- 도지휘첨사 임성화가 한왕과 손잡은 증좌를 확보했습니다.

아삼이 품속의 전표와 한왕의 서찰을 정화에게 바치며 전심어서로 그간의 일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고 아삼에게서 건네받은 전표를 바라본 정화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렇게 많은 전표가 오갔단 말이냐?"

"……."

생각보다 큰 액수에 새삼 한왕의 능력을 확인한 정화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금액을 임성화에게 건넬 만큼 한왕의 자금력이 탄탄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낙양에 적을 두고 있는 상단에서 나온 전표입니다. 아무래도 한왕이 그 상단의 뒤를 봐주고 있는 듯합니다.

아삼의 전심어서에 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 송구합니다. 도지휘첨사 임성화에게서 그 전표를 찾아내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 사료되어 멋대로 움직였습니다. 그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아삼이 고개를 숙이며 정화에게 죄를 청했고 그런 아삼을 향해 정화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아니다. 일의 시급함 때문에 어쩔 수 없었거늘, 어찌 죄를 청한단 말이냐? 고생했구나."

만족한 듯 엷은 미소를 띠우며 아삼을 바라보는 정화였고 그런 정화를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을 뒤로하고 한왕의 직인이 찍힌 서찰을 바라보던 정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흐음. 이 서찰은…… 큰 쓸모가 없겠구나. 그저 안부를 묻는 것뿐이거늘. 허투루 이런 것들을 남길 한왕이 아니지…… 결국 그 전표도 낙양 상단과 관련되었다는 것이 전부구나."

- 그것들로 한왕의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우선 그것만으로도 뱀을 놀래키기에는 충분하다."

이윽고 은밀히 홍희제를 독대하는 정화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지휘첨사 임성화의 관직을 박탈하라는 황명이 내려졌다. 그리고 황제의 명을 받은 동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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