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20화 (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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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락(一段落)

    다급히 사운풍과 정석건의 뒤를 쫓았던 정자현이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앞서나간 그들을 그녀가 쫓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모습을 놓친 그녀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분명 이쪽으로 가셨는데……"

    어떻게든 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 주변을 살피던 그녀였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고 한참을 헤맨 끝에야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을 들을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곳으로 다가간 그녀는 쓰러져있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쓰러진 자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간 그녀가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떠졌다.

    객잔에서 봤었던 고운 피부를 가진 자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처에 사운풍과 싸웠던 건장한 덩치를 가진 자가 쓰러져 있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그녀가 가슴에 피를 흘린 채 싸늘하게 죽은 그를 바라보고 이내 아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이봐요. 괜찮아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봐요! 이봐요?"

    불안한 마음에 아삼을 흔들며 소리치는 정자현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삼이었고 아삼의 모습에 정자현이 고개를 숙이며 아삼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댔다.

    "어…… 다행히 아직 숨은 쉬는구나."

    얕은 숨을 뱉으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삼의 가슴에 정자현의 얼굴에 안도감이 비췄다. 이내 다시 한 번 아삼을 흔들며 깨우는 그녀였다.

    "이봐요. 정신 좀 차려봐요."

    하지만 여전히 꼼짝하지 않는 아삼이었고 그럴수록 더 세게 아삼을 흔드는 정자현이었다. 그때, '툭'하는 소리와 함께 아삼의 품속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어, 이것은…… 이 사람 관인이었구나."

    떨어진 명패를 확인한 정자현이 의외라는 눈빛으로 아삼을 빤히 바라봤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 하얀 피부를 가진 아삼인지라 관인이라는 사실이 영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유명한 동창이라는 사실에 아미를 찌푸린 그녀가 정신을 잃은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절로 내려가는 시선과 함께 스스로 한 행동이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힌 그녀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며 아삼을 둘러메는 정자현이었다. 여인인지라 온전히 멜 수는 없어서 정신을 잃은 아삼을 질질 끌 듯이 옮기는 그녀였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힘겹게 아삼을 끌고간 정자현의 발걸음이 '산서부'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문 앞에서 멈췄다. 축 늘어진 아삼을 옆으로 뉘인 그녀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곧 이어 사내 하나가 얼굴을 내밀며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기에 이 밤중에 관아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냐?"

    "여기…… 이 사람이 관인인 것 같은데……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데리고 왔어요."

    정자현이 사내를 향해 명패를 내밀며 말했다. 명패를 확인한 사내의 두 눈이 크게 떠졌고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아삼을 훑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를 향해 정자현이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깨워도 의식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관의 사람이니 좀 도와주세요. 그럼 전 이만……"

    돌아서려는 정자현을 급히 잡은 사내가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동창의 명패를 가진 아삼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깐…… 이 자를 아느냐? 이 자가 어찌 이리 부상을 입은 것이냐? 혹 이 자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아는 것이 있느냐?"

    "이봐요. 길가에 쓰러져 있는 걸 데리고 왔다고 했잖아요. 그런 제가 이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겠어요? 전 다만 이 사람 품속에서 떨어진 명패를 보고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뿐이에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전 급한 일이 있어서…… 아! 그리고 그 옆에……"

    "그 옆에?"

    "아…… 아니에요."

    괜한 일에 끼어든 것이 아닌지 고민하던 정자현은 말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석건이 객잔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분명히 객잔에서 기다리라고 당부하던 정석건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나와있다는 것을 알면 큰 꾸중을 들을 것이 뻔했다.

    그렇게 붙잡을 새도 없이 경공을 사용해서 관아를 벗어나는 정자현이었고 남겨진 아삼을 보며 고민을 하던 사내가 할 수 없다는 듯 그를 둘러메고 관아 안으로 들어갔다. 사연이 어찌됐든 우선은 사람부터 살리고 볼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뗀 아삼이 불안한 듯 주변을 살폈다.

    '여기가 어디지?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낯선 장소에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하려던 아삼이 몸을 일으켰고 가슴과 오른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구겨야만 했다.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응어리가 진 듯 답답한 가슴은 꽤 깊은 내상을 입은 것 같았고 시큰한 고통이 느껴지는 오른쪽 어깨는 무언가에 묶인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아삼을 향해 우직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부상이 심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함부로 움직였다간 큰일이 날 거요. 외상은 치료했으나 내상은 시일이 걸릴 것이니 우선은 안정을 취하도록 하시오."

    낯선 사내의 음성에 아삼이 고개를 들어서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자 사내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아삼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나는 이곳 산서부의 순무, 우겸이라 하오. 어떤 여인이 길가에 쓰러져있는 당신을 발견하고 이곳 산서부로 데리고 왔소. 명패를 보아하니 동창의 사람인듯한데…… 동창이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오? 또 어찌하여 그리 큰 부상을 입은 것이오?"

    우겸의 물음에 아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지금 관아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주시하는 우겸이었다.

    '관아라고? 어떻게…… 혹시 한왕과 관련이 있는 건가? 한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일이 힘들어지는데.'

    "동창이 이곳까지 무슨 일로 온 것이냐고 물었소."

    다시 되묻는 우겸의 목소리에 상념을 떨쳐낸 아삼이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고심을 해야만 했다.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던 아삼이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고 그것을 읽은 우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감찰(監察).

    '감찰? 감찰이라? 동창에서 종종 지방으로 감찰을 오기도 한다지만 저렇게 부상을 입은 이유가…… 이 근처에서 부상을 입었다면 한왕의 사람은 아닌 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우겸이었고 그런 우겸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키는 아삼이었다.

    '낙양에서 멀지 않는 곳이다. 한왕의 손길이 이곳에까지 뻗어있다면…… 아무래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군.'

    "그럼 이만 쉬시오."

    힘들어 보이는 아삼을 우선은 쉬게 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한 우겸이 방을 나서려 돌아섰지만 그런 우겸의 팔을 재빨리 잡는 아삼이었다.

    "……어찌 그러시오? 어디가 불편한 게요?"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삼을 바라보며 묻는 우겸이었다. 그런 우겸을 향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아삼이었다. 급한 마음에 그를 붙잡기는 했지만 말을 하지 못하니 어떻게 물어야할지 난감한 아삼이었다. 그렇다고 처음 본 사람에게 전심어서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앞에 선 이 자가 한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혹, 이걸 찾는 것이오?"

    아삼에게 지필묵을 내밀며 묻는 우겸이었다. 자신이 물었을 때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겸이 내밀 지필묵을 받아든 아삼이 재빨리 글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른쪽 어깨를 다쳐서인지 한 자 한 자 쓰는 게 힘에 부쳤고 당연히 글씨는 괴발개발이었다.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그 여인은 누구요? 그리고 혹 내가 쓰러져있던 그 근처에 있는 시신은 못 봤소?'

    "혹, 신원을 알 수 없는 그 시체와 관련이 있는 것이오?"

    아삼의 글을 읽은 우겸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다그치며 다시 묻는 우겸이었다.

    "어떻게 된 거요? 혹 이 상처도 그 시체와 관련이 있는 것이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인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살피던 우겸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여인의 이름은 모르오. 그저 지나는 길에 쓰러진 당신을 발견하고 당신의 명패를 확인하고 알고 이곳으로 데려 왔다고 했소. 너무 어두워서 확실하지 않으나 곱상한 외모에 자주색 목면을 입은 여인이었다고 하오."

    자신이 아무리 물어도 답을 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아삼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는 우겸이었고 그런 우겸의 말에 아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전에 객잔에서 만났던 그 여인인가?'

    '그러면 그 시체는 어찌 되었소?'

    생각에 잠겼던 아삼이 다시 붓을 들어 우겸을 향해 물었고 그 물음에 진지한 얼굴로 답하는 우겸이었다.

    "그 시체는 관에서 이미 수습을 했소. 신원 미상이라 어찌 처리해야 할지…… 우선은 연고를 찾아 연락하려고 하오."

    '연고를 찾을 필요 없소. 그냥 몰래 처리해주시오.'

    아삼이 쓴 종이를 읽던 우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 우겸의 눈길을 접한 아삼이 다시 한 번 다짐을 하고 나섰다.

    '명심하시오. 꼭 은밀히 처리해야 하오.'

    "…… 흐음."

    '중한 사항이라 더 이상 언급할 수는 없소.'

    "……알겠소. 당신 뜻대로 하겠소."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다짐을 구하는 아삼을 향해 우선은 고개를 끄덕이는 우겸이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이상 물어도 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조사해보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이리 보살펴줘서 고마웠소.'

    어떻게든 관을 벗어나야겠다 결심한 아삼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겸을 향해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그런 아삼을 붙잡으며 우겸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 것이오? 아직 움직이는 것은 무리이니 몸을 더 보중하고 가시오."

    자신의 팔을 붙잡은 우겸의 손을 떼어내며 아삼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그런 아삼을 보낼 수 없다는 듯 다시 아삼의 팔을 단단히 붙드는 우겸이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서둘러 움직이려하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몸 상태로는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오. 그러니 우선은 몸부터 살피시오."

    단호한 얼굴로 아삼을 다시 침상으로 데리고 가는 우겸이었고 그런 우겸의 행동에 할 수 없이 다시 자리에 눕는 아삼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힘에 겨웠기 때문이다.

    "그럼, 좀 쉬시오."

    미소와 함께 방을 나서는 우겸이었고 그런 우겸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자 아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괜히 움직이려고 하다가 저 자의 의심을 사게 될 수도 있다. 우선 기력을 회복시키고 난 이후에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저 자가 한왕의 사람…… 일 수도 있으니, 우선 몸을 회복해야겠군.

    생각을 정리한 아삼이 두 눈을 감고 운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낙양과 멀지 않는 곳이고 한왕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관아이다 보니 더 불안한 듯 잔뜩 찌푸린 아삼의 미간이 펴질 줄을 몰랐다.

    며칠 동안 몸을 추스른 결과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선 아삼이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라면 황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일의 처리를 도운 우겸이었고 한왕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그의 행동에 우겸을 향해 고마움을 표하는 아삼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빨리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붓을 들어 고마움을 표시하는 아삼이었고 우겸은 그런 아삼의 글을 보고 놀라워했다. 처음 봤던 그 이상한 필체는 온데간데없고 상당한 유려한 글이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이만하길 다행이오. 그나저나 꼭 이리 다급히 가야하는 거요? 회복되었다하나 아직 먼 길 떠나기에는 무리일 듯 싶은데……"

    걱정스런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우겸을 향해 아삼이 결심을 굳힌 듯 종이를 내밀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괜찮습니다. 너무 오래 지체되었습니다. 이만 돌아가야지요.'

    "허면 더 이상 잡지 않겠소. 조심해서 돌아가시오. 연이 있다면 다시 또 만나지 않겠소?"

    따뜻한 미소를 건네는 우겸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우겸 또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한왕의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그나저나 저런 앳된 자가 사파의 고수를 처리할 정도로 고수라는 말인가?'

    관아를 나선 아삼이 힘겹게 말 위에 올랐다. 자신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우겸을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아삼이 말의 옆구리를 차며 관아를 벗어났고 그런 아삼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겸이 아삼의 모습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진지한 눈빛의 우겸이 주변을 살피며 뭔가를 적기 시작했고 이내 어딘가로 전서구를 날렸다.

    관복 차림의 중년인이 따뜻한 미소와 함께 정화의 처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 중년인을 반갑게 맞이하며 정화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양 학사께서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어서 자리에 드시지요."

    정화가 권한 자리에 앉은 양사기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폐하를 뵙고 나오는 길에 오랜만에 정 공공과 담소를 나눌까 해서 이리 왔소이다. 그래 그간 어찌 지내셨소?"

    "보시다시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소인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사기를 향해 정화가 따뜻한 차를 권하며 말했고 그런 정화를 향해 웃음을 보이던 그가 이내 진지한 눈빛을 보이며 나직이 물었다.

    "혹시…… 동창에 있는 사람을 섬서성으로 보낸 일이 있습니까?"

    "…… 섬서성이요? 그것은…… 무슨 연유로 묻는 것입니까?"

    뜬금없는 양사기의 물음에 놀란 정화가 되물었고 정화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양사기였다.

    "나와 알고 지내는 관인이 며칠 전에 크게 다친 사람을 돌봐줬다고 하더이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아직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떠났다며 걱정하기에…… 혹시 공공이 데리고 있는 그 사람이 맞는지요? 말을 하지 못 한다고 하던데……"

    걱정 가득한 정화의 얼굴을 살피며 양사기가 물었고 그런 양사기의 물음에 그저 얼굴을 굳히는 정화였다.

    "한왕의 인사가 아닌가 걱정하였는데…… 아무래도 공공의 사람인 것 같아서 묻는 겁니다. 눈치를 보니 그자가 아삼이라는 자가 맞나보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동창의 명패를 가진 말을 하지 못 하는 인사라서 공공을 찾아 온 것인데……"

    "한왕의 인사라니요?"

    "요 근래 한왕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소. 정 공공께서야 정계를 떠나셨으니 잘 모르시겠으나 아무래도 큰일을 벌이고 있는 듯 싶소.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오. 그의 말로는 한왕 쪽 인사는 아닌 것 같다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좋지 않겠소?"

    양사기의 말에 정화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중신들까지 한왕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 정화였지만 애써 표정을 지우는 그였다.

    "정 공공께서도 잘 알다시피 지금의 폐하께선 너무 온화하시지 않소? 후덕하신 성품을 어찌 탓하겠냐마는 한왕을 너무 경계하지 않으시니 이렇게 중신들이 알아서 경계를 할 수 밖에요. 내 기우(杞憂) 때문에 정 공공께 괜한 걱정을 끼친 것 같아 송구하오."

    "아닙니다. 양 학사의 충심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정화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고 그런 정화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양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니 고맙소이다. 허면 나는 이만 가 보겠소이다."

    "벌써 가시렵니까?"

    "정 공공께서도 공사가 다망하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꽤 중한 상처를 입고 움직였다고 하던데…… 그 인사가 걱정이군요."

    "……."

    "어린 나이에 대단한 무공을 지닌 듯 싶습니다? 사파의 거두라고 알려진 자를……"

    "사파의 거두라니요?"

    "그 일 때문에 간 것이 아닙니까? 흐음. 제가를 뭔가 잘못 알고 있었나 봅니다."

    "……."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간혹 들를 터이니 정세에 관해서 논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네. 살펴 가시지요."

    자리를 뜨는 양사기를 배웅하며 예를 표하는 정화였다. 이내 사라지는 양사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화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산서 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큰 부상을 입은 듯한 아삼의 안위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사파의 거두라……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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