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16화 (11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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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락(一段落)

    객잔 안의 공기가 긴장감에 얼어붙었다. 마치 시위를 당긴 활 같이 곧 부딪쳐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였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행동과 함께 살얼음 위를 걷던 분위기는 깨져나갔다.

    "정 형님?"

    "장영! 무슨 일이냐?"

    의아한 표정으로 정석건과 장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었다. 바로 사운풍과 조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노려볼 뿐 아무런 말이 없는 두 사람이었고 할 수 없다는 듯 조충이 정석건에게 다가가 예를 표하며 말했다.

    "화산의 조충이라 하오.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선 그 화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어떻겠소?"

    조충의 물음에도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말이 없는 정석건이었고 그런 정석건을 대신해 장영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신 답했다.

    "조 사형. 저자는……"

    "네가 설명을 해보거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차가운 조충의 눈빛에 장영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조충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사운풍이 인상을 구기며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하! 정 형님께서 그럴 리가 없소."

    "그 말은 저들이 모두 거짓을 고하고 있다는 뜻이오? 아무리 사형의 객이라고 하나…… 당신도 사파……"

    "어허! 말이 심하구나."

    "……."

    인상을 굳힌 조충의 모습에 장영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딱딱하게 굳은 사운풍의 모습을 본 조충이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지만 그의 얼굴을 펴질 줄을 몰랐다. 그런 사운풍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선 조충이었고 그가 속가 제자들을 쏘아보며 차갑게 물었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이냐? 무턱대고 싸우지는 않았을 터. 시시비비를 가린다면 누구의 잘못인지 알게 되겠지."

    화산 내에서도 가장 대하기 어려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조충이었다. 매화검이라는 별호를 가진 그는 무림에서도 그리고 사문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꺼려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스스로 잘못을 했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이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들통이 날 것 같았기 때문에 석형복이 뒤에서 눈치를 살피다 앞으로 나섰다.

    "저들이 먼저 저희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어떻게 사파가 정파의 성지나 다름없는 화산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 자체가 저희 화산을 업신여긴 것 아닙니까?"

    자신의 잘못이 탄로 날까 두려웠기에 어떻게든 사파와 정파의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석형복이었지만 그런 석형복의 말에 조충이 노성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들이 너희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물었다. 단지 사파라는 이유만으로는 이러는 것이라면 말이 되질 않는다. 단지 그것뿐이었더냐?"

    매서운 조충의 눈빛에 순간 석형복의 뺨이 움찔거렸다. 이내 표정을 숨기려고 조충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석형복이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장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저놈들이 먼저 시비를 건 것 같군.'

    잘못은 화산의 속가제자들이 먼저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사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화산의 앞마당에서 사파의 무인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커진 일에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장영이었다.

    "우리 손으로 해결할 일이 아닌 듯싶으니 관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무슨 소리냐?"

    "우리가 아무리 일을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막상 다른 말이 나올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차라리 공정하게 정도, 사도 아닌 관에 이 일을 맡긴다면……"

    "그건 더 말이 안 되오. 어찌 무림의 일에 관을 끌어들인단 말이오!"

    "단지 이번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말이오. 애초에 그대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요. 시시비비를 가린 이후에 관을 배제하고 우리들이 서로 잘못을 사죄한다면 그것이……"

    "화산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이곳에서 그 아래에 있는 관이 어찌 공정하겠소? 나는 그런 관을 믿을 수 없소이다."

    장영의 말에 정석건이 고개를 흔들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정석건의 말에 조충이 난감하다는 듯 사운풍을 바라봤고, 사운풍 역시 뾰족한 수가 없는 듯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때, 상황을 주시하던 여인이 앞으로 나서서 예를 갖추며 나직이 말했다.

    "소녀는 정자현이라 합니다. 아무래도 이 일은 제 삼자에게 묻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화산의 사람도 아니고 우리와도 연이 없는 사람이 제일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정자현의 의견이 타당하다 생각되는 듯 조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비가 붙었던 객잔 안에는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도 제때, 빠져나가지 못 해서 남아있었지만 객잔의 주인을 비롯한 남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표정은 화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인근에서 사는 그들이 화산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에 아미를 찌푸린 정자현이었지만 오히려 먼저 말을 꺼낸 그녀가 고맙다는 듯 재빨리 말을 받는 장영이었다.

    "연이 없는 자라? 그래, 적당한 인물은 있소?"

    "…… 저기 저 사람에게 묻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아하니 화산의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우리 쪽 사람도 아니니 저 사람이라면 시시비비를 가려줄 듯싶습니다."

    정자현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고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아삼이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나.'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삼을 바라보던 사운풍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삼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낯이 익는데……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그였기 때문에 만난 사람도 많았던 사운풍이었다. 아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그였고 이내 뭔가가 생각난 듯 미소를 짓던 그가 딱딱하게 굳은 아삼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때 부상을 입었었던…… 그 자였군.'

    사운풍이 아삼을 본 기억을 떠올렸지만 일부러 아는 체를 하지는 않았다. 만약 지금 그를 알고 있다고 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할 수 없이 나서는 아삼이었다. 어차피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이상 이대로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고 괜히 관과 엮인다면 자신의 정체가 알려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빨리 빠지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에 탁자 위에 놓인 찻물로 그 위에 글을 적는 아삼이었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자는 화산의 속가제자라고 하는 저 자요. 저 자가 먼저 저 여인을 욕보였고 그걸 말리던 자와 시비가 붙은 것이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가 놀라는 듯 했다. 말을 하지 않고 글을 적는 그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그 목에 있는 상처를 확인한 조충이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진상이 밝혀지자 장영이 대노하여 속가 제자들을 노려봤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조충이었고 그들을 대신해서 정석건을 향해 사과를 했다.

    "속가들의 잘못인 듯한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소."

    조충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에 정석건 역시 고개를 숙였다. 정석건도 모종의 일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화산과의 관계를 생각해야만 했다. 처음부터 그래서 피했던 그였기에 조충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아니오. 큰 부딪침 없이 시시비비가 가려져서 다행이오."

    "뭣들 하느냐? 어서 사과드리지 않고."

    멍하니 서 있는 제자들을 향해 조충이 노성 띤 목소리로 소리쳤고 그 목소리에 정석건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하는 그들이었다. 잔뜩 주눅이 든 채 고개를 숙이는 화산 속가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정석건이 이내 고개를 돌려서 아삼을 바라봤다.

    - 이거 괜한 일에 끼어들게 해서 미안하오.

    자신을 향해 전음을 날리는 정석건을 향해 아삼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아삼을 향해 감사를 표하는 정석건이었다.

    탁자 위에서 말라가며 사라지는 아삼의 글을 읽던 조충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당한 명필이다. 헌데 내가 이 글을 본 기억이 있던가?'

    조충이 그 글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자신의 일은 끝났다는 듯 객잔을 벗어나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뒷모습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조충이었다. 그리고 정자현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멀어지는 아삼의 뒷모습을 좇았고 사운풍도 웃음을 지으며 사라지는 아삼을 바라봤다.

    "이 모든 것이 제 불찰이니 화산에 대한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소.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교육을 시키겠소. 허면 이만 실례하겠소.…… 사대협, 그 일은 내 잘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리다."

    다시 한 번 정석건을 향해 사과를 한 조충이 사운풍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포권을 하는 사운풍이었고 그를 뒤로하고 장영을 노려보는 조충이었다. 그 눈빛에 속내를 들킨 듯 뜨끔해하던 장영이 그의 눈짓을 보고 객잔을 나섰다.

    "뭣들 하느냐? 어서 따르지 않고."

    속가 제자들을 데리고 사라지는 장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괜한 일에 엮어들어 사형인 조충에게 일장 연설을 들을 생각에 절로 머리가 아파오는 그였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정석건을 바라보는 사운풍이었다. 이내 그를 반기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석건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정 형님, 이거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

    "오랜만이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리 떠돌아다닐 것인가? 이곳에서 자네를 만날 줄은 몰랐네 그려. 이제 그만 떠돌고 정착을 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사운풍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정석건이 반갑게 물었고 멋쩍은 듯 웃어보이던 사운풍이 말을 이어갔다.

    "이게 제 천성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역마살이 끼었는지 이리 떠돌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것을요. 하하하. 그건 그렇고 형님께서 화산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궁금했다는 듯 사운풍이 물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사파의 내로라하는 고수가 정파의 구역에 발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운풍의 물음에 안색을 굳힌 정석건이 자리에 앉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자네 혹시…… 독고화연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어느새 진지한 눈빛으로 사운풍을 바라보는 정석건이었고 그런 정석건의 물음에 사운풍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나도 이번에 련주인 은무강의 부탁으로 안 사실이네만…… 독고화연 그 아이가 죽었다고 하더군."

    "죽어요? 화연이? 흐음."

    "…….'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미간을 좁히는 사운풍이었다. 자신을 쫓아다니던 그 여인이 죽었다는 말에 쉽게 입을 떼지 못했고 그 두 사람의 사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석건도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허면…… 근래에 성가장이 한 무인에게 풍비박산 났다는 소문이 돌던데, 혹…… 독고 선배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그런 일이 있었던가? 흐음. …… 확실히 나에게 연통이 온 이유가 있었군 그래. 은무강의 말이 독고패가 련을 나왔다고 하더군. 그래서 은무강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네. 해서 내가 이 곳까지 온 것이고."

    어느새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운풍은 사운풍대로 독고화연이 죽었다는 소식에 침울했고 정석건은 정석건대로 은무강의 부탁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선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골치 아픈 일은 잊어버리고 먼저 제 술을 한 잔 받으시지요."

    어느덧 표정을 바꾼 사운풍이 점소이를 부르며 술을 시켰다. 그런 사운풍의 행동에 웃음을 보인 정석건이 골치 아픈 일을 털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를 향해 술잔을 내미는 사운풍이었고 그의 술잔을 건네받은 정석건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거리를 했다.

    "받아야지 암. 자네가 주는 술잔을 내 또 언제 받겠는가? 이리저리 떠도는 인사라 이렇게 만날 때 밖에 더 있겠는가?"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를 향해 환히 웃는 두 사람이었고 객잔 안의 분위기가 두 사람으로 인해 어느새 떠들썩해졌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정자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찻물로 글을 적던 고운 피부의 사내를 떠올리고 있었다.

    객잔을 빠져나온 아삼이 빠르게 화산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온 그가 인근의 객잔에 말을 맡기고 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화산 수려한 산세 사이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아른거렸다.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아삼이었고 화산파의 입구에 다다랐다. 그리고 낯선 사내의 등장에 입구를 지키던 푸른 도복을 입은 사내들이 아삼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일로 오셨소?"

    사내의 물음에 걸음을 멈춘 아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땅 위에 글을 쓸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은 하지 않은 채 주변을 살피는 듯한 아삼의 행동에 사내들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지금 뭐하는 것이오?"

    긴장한 채 아삼을 경계하는 그들이었고 그런 사내들의 모습에 아삼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맨 손으로 바닥에 글을 적으려 하는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왔는지 조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어인 일이요? 볼일 이라는 것이 화산에 있었던 것이오?"

    아삼을 향해 질문을 쏟아내던 조충이 아삼이 객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고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조금 전에는 고마웠소. 덕분에 화산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소. 그리고…… 그 일로 화산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오. 본 파의 뜻과 달리 간혹 그런 자들도 있으니……"

    조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아삼이 한 곳에 떨어진 막대기를 주워 땅 위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동생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화산에 적을 뒀다 들었는데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삼의 글을 읽던 조충이 그제야 뭔가가 생각난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 혹시 아호와 아영를 만나러 온 것이오? 어쩐지 필체가 낯이 익다 했더니…… 관에 있다던 그 오라비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의 모습에 조충의 얼굴에 어느덧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혈육을 그리워하던 아호와 아영이 좋아할 모습에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이곳에 사마은령이라는 여인이 있습니까?'

    "사마은령?…… 사마은령은 어찌 찾는 것이요? 그 아이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이요?"

    동생들뿐만 아니라 사마은령도 찾는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충이었다. 어려서부터 사마은령을 봐왔던 그인지라 새삼 아삼과의 인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문에 대한 일을 알고 있는 그였기 때문에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불안한 듯 묻는 조충의 말에 아삼이 오해를 풀려는 듯 급히 글을 적었다.

    '그 여인의 아버지와 연이 있었습니다. 그 아비의 부탁으로 만나려 하는 것이니 자리 좀 마련해 주시지요.'

    "알겠소.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겠소."

    '사마가의 여식부터 만나겠습니다. 동생들은 그 후에 보도록 하지요.'

    "흐음. 알았소. 내 그리 자리를 마련하겠소."

    아삼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서는 조충이었다. 이윽고 한적한 처소로 아삼을 안내한 조충이 나직이 말했다.

    "허면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 은령을 이곳으로 보내겠소."

    조용히 문을 닫고 처소를 나서는 조충이었고 그런 조충을 향해 아삼이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조용히 방안을 둘러보던 아삼이 이내 조심스럽게 처소 안으로 들어서는 여인의 모습에 두 눈을 빛냈다.

    "저…… 저를 찾으셨다고요?"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사마은령이 아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던 아삼이 탁자 위에 놓인 지필묵을 향해 다가갔고 이내 무언가를 적어서 내밀었다.

    '혹시 사마택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아삼이 내민 종이를 읽던 사마은령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낯익은 아삼의 필체와 조충의 언질에 아삼이 아호와 아영의 형과 오라비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였고 그런 아삼이 어떻게 자신의 아비를 알고 있는 것인지 더 의아한 그녀였다.

    "저희 아버지를 아시나요? 아버지는…… 어떻게……"

    조심스럽게 묻는 사마은령을 향해 아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품속에 갈무리해둔 빛바랜 서찰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 이게 뭔가요?"

    '아버님이 남기신 서찰입니다. 이걸 꼭 당신께 전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아삼이 쓴 글을 읽던 사마은령의 두 눈이 어느새 촉촉이 젖어들었다. 이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서찰을 꺼내든 그녀의 눈동자에 '내 딸 은령에게' 라는 글씨가 선명히 새겨졌고 그 글과 함께 급격히 무너져 내린 사마은령이 어깨를 떨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아삼이 조용히 처소를 나섰다. 사마택과 사마은령의 마지막 만남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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