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15화 (11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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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락(一段落)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말 위에 올라탄 아삼의 눈에 저 멀리 회색빛의 기암괴석들이 들어왔다. 얼핏 봐도 험준하고 가파르게 보였지만 우뚝 솟은 기암괴석들의 그 수려한 경관은 오악(五岳) 중의 하나라는 화산(華山)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저곳이 화산인가? 조금만 더 가면…… 이제 곧 만날 수 있겠구나.'

    동생들을 생각하는 아삼의 두 눈에 설렘과 함께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저 단순한 인연이라고 여겼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여길 수만은 없었다. 스스로가 그 두 아이를 생각할 때 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내 고삐를 더 단단히 쥐며 말의 속도를 높이는 아삼이었다.

    어느덧 아삼이 화산 근처에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멀리서 보았던 것과 달리 더 웅장한 화산의 기운을 느낀 아삼이 그 모습을 좇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투레질을 해대는 말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에서 내려선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한 객잔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화산으로 올라가려고 하거나, 화산에서 떠나기 전에 쉬어갈 만한 최적의 장소에 위치해 있는 객잔으로 벌써 많은 사람들로 들어차 있었다. 그 객잔을 향해 아삼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객잔으로 들어서는 아삼을 발견한 점소이 하나가 아삼을 향해 달려왔다. 이내 말의 고삐를 건네받고 힘찬 목소리를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요. 안으로 들어가면 자리가 있습니다. 따로 안내를 할 놈이 나올 겁니다요. 여물을 먹이고 쉬게 하겠습니다."

    "……."

    노련하게 고삐를 받아든 점소이를 뒤로하고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또 다른 점소이가 자리로 안내하고 재빨리 행주질로 탁자를 치우며 물었다.

    "손님, 무엇을 드릴까요?"

    점소이의 물음에 객잔을 둘러보던 아삼이 자신의 옆에 있는 탁자를 조심스럽게 가리키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그러자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저것과 같은 음식을 내어오라는…… 말씀입니까?"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그런 아삼의 행동에 점소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지는 점소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껏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아삼이었다. 오히려 여기저기 얽히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삶에 만족했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나와 보니 새삼 자신이 벙어리라는 것이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써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전심어서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화산까지 오면서 의외로 그런 부분에서 고충이 있었기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아삼이었고 이내 상념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흔든 그가 천천히 객잔 안을 훑었다. 화산의 길목에 있는 객잔이라 그런지 드문드문 검을 차고 있는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몇몇의 사내들과 구석에 앉아 요기를 하는 듯한 중년의 사내와 곱상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눈빛과 아삼의 눈빛이 마주쳤다. 무심한 눈으로 그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이 이내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에 아미를 찌푸린 여인이 앞에 있던 중년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저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인가 봐요."

    아무 말 없이 옆의 식탁을 가리키며 주문하던 아삼의 모습이 신기한 듯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고 그런 여인을 향해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직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요기나 하거라. 괜한 분란이 일어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쳇, 근데 무슨 피부가 저렇게 곱죠? 여자인 나보다 더 고운데……"

    "어허!"

    중년인의 핀잔에 입술을 삐죽 내민 여인이 조용히 시선을 거둬들이며 탁자 위의 음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여인이 막 젓가락을 들었을 때, 갑자기 객잔 안이 시끌벅적해졌다. 푸른색의 도복을 입은 사내 몇 명이 객잔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고생했다. 오늘은 수련을 끝내고 하산을 한 기념으로 내가 거하게 살 것이니 그동안 산에서 있었던 답답함을 모두 풀어보자. 하하하."

    다부진 체격의 사내 하나가 짐짓 호탕한 목소리로 말을 했고 그를 향해 다른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아닙니다. 형님. 오늘은 제가 한 턱 내겠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하산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형님 덕분인데 이런 날은 응당 제가 사야지요. 이 석형복이가 형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온전히 수련을 마치고 화산의 속가제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면을 추켜세우는 석형복이었고, 그런 석형복의 말에 옆에 선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모두가 형님 덕입니다."

    "오늘은 제가 크게 사겠습니다. 이봐! 여기 술하고 고기를 가져오거라."

    석형복이라는 사내의 말에 점소이가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새 그들이 앉은 탁자 위에 술과 고기가 가득 차려졌고 모두들 굶주린 듯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화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먹은 음식은 대부분이 풀 쪼가리였기 때문이다. 낙양 유지의 아들이자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자란 석형복이 제일 힘든 것은 풀로 된 식사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먹는 고기와 술이 유난히 달게 느껴지는 그였다.

    특히 산에서는 아예 접하지도 못한 술이 그에게는 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연거푸 여러 잔을 들이키는 그의 얼굴이 금세 붉게 변했고 취기가 올라오자 그의 행동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 긴장해야만 했던 화산의 생활이었다. 언제 꾸중을 들을지 몰랐기 때문에 단단히 붙들었던 정신을 지금에서야 풀어버리는 그였고 조금씩 화산으로 가기 전의 습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몇 순배의 술잔이 더 돌면서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는 더 높아져만 갔고 금세 객잔이 시끌벅적해졌다. 그런 사내들이 못마땅한 듯 객잔 안의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사내들을 흘끗거렸지만 스스로 속가제자라고 하던 그들의 말에 차마 그들을 말려서는 사람은 없었다.

    '거슬리는군. 화산의 속가제자들인가?'

    생각보다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화산과 관련된 자들이었지만 그 모습이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취기가 오른 그들을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실상 문파를 유지하기 위해서 받아들인 속가제자였지만 그들 중 몇은 인성보다는 그 집의 부를 기준으로 뽑힌 자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그들 또한 본산에 와서 일정 기간 동안 수련을 거쳤기 때문에 그 기간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 했지만, 하산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이런 식으로 동문들과 회포를 풀면서 연거푸 술을 마셔대는 그들이었다.

    화산이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누누이 들었고, 가르침을 받은 그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에게 그 가르침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때, 아삼의 눈에 취기가 오른 듯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구석에 앉아 있는 여인을 음흉하게 바라보고 있는 석형복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를 대로 오른 취기에 예전의 성격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석형복이었고 미소를 띤 채 구석의 여인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실례예요."

    "……."

    날선 여인의 말에 채 말을 꺼내지도 못한 석형복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내 민망한지 헛기침을 해대던 그가 뒤를 돌아 다시 일행에게 다가서려고 했지만 그대로는 면이 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그 여인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죠?"

    "……."

    말없이 그 여인을 직시하는 석형복이었고 그 모습에 아미를 꿈틀거리는 여인이었다. 이내 그 불쾌한 시선을 참을 수 없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그녀가 앞선 무례한 사내를 노려봤다.

    불쾌해 하는 행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그가 이번에는 위 아래로 그녀를 훑자, 참지 못한 그 여자가 옆에 세워둔 칼자루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덥석.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일행으로 보이는 중년인의 제지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챈 중년인이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행동을 막아섰고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보아하니 취한 것 같은데 그만 하는 것이 어떻겠소?"

    조용조용한 음성이었지만 힘이 실린 그 목소리에 앞에 서있던 석형복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인상을 찌푸린 그가 되려 화를 내면서 목소리를 키웠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그만 하라는 것이오!"

    "되었소. 그만 두는 것이 좋겠구려."

    오히려 화를 내는 석형복의 행동에 중년인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이내 뒤로 물러서는 그였다. 괜한 일을 벌여봤자 자신에게 좋은 점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파라는 곳에서도 손에 꼽히는 화산이 지척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물러서는 그였고 그 모습에 석형복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화산이라는 이름에 겁을 집어먹은 것인가?'

    처음으로 그 이름의 위상을 알게 된 석형복이었다. 지난 날, 본산에서 있었던 힘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고 지금 그 보상을 받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미소를 짓던 그가 자신감을 얻은 듯 그 여인을 향해 다시 진중하게 말을 건넸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그 오해도 풀 겸, 식사를 대접하고……"

    "괜찮으니 그냥 가세요."

    "…… 지금 내 성의를 무시하는 것이오?"

    "그만 비켜주시오. 싫다고 하지 않소?"

    "뭐라? 이놈! 내가 뭘 했더냐?"

    얼굴가득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는 석형복의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중년인이 노성 띤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백주대낮에 여인을 희롱하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당당한 사내라 할 수 있겠소?"

    중년인의 호통에 석형복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이내 못마땅한 듯 중년인을 위아래로 훑으며 쏘아보던 석형복이 크게 소리쳤다.

    "뭐라? 지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대 화산의 속가제자인 나를!"

    "화산의 이름을 들먹이면서도 지금 이 행동이 부끄럽지 않다는 말인가!"

    "이익…… 단지 조금 전의 일이 미안해서 이렇게 나선 것뿐이었다. 보아하니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꼴에 칼을 찼다고 앞으로 나서는 것이냐?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 모르겠으나 저렇게 젊은 처자를 어떻게 해보려는……"

    "닥쳐라!"

    결국 그 말에 참지 못한 중년인이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섰다. 그 기세가 흉흉했고 풍기는 기운도 살벌했지만 이미 술에 취한 석형복은 그저 중년인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에게 이런 일은 낯설지가 않았다. 이미 낙양에서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했던 적이 없었고 거기에 화산의 속가제자라는 이름까지 얻은 상태였으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다르게 화산이라는 이름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중년인이었다. 오히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년인이었고 힘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 그였다.

    "화산의 위명이 듣던 것과 많이 다르군. 정도를 걸어야 하는 화산의 제자라는 자가 대낮에 여인을 희롱하다니…… 무뢰배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당신이 화산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인가?"

    중년인의 호통에 석형복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내 화를 참지 못한 그가 살기어린 눈빛으로 중년인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네 놈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는구나. 내 오늘 화산의 두려움을 똑똑히 각인시켜주마."

    석형복이 치켜 뜬 눈을 부라리며 중년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매서운 속도로 다가간 석형복이 중년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고, 그런 석형복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중년인이 비어진 그의 가슴을 향해 장을 날렸다.

    퍼억.

    가슴에 장을 맞은 석형복이 멀리 떨어져 나가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고통스러운 듯 조금 전에 먹었던 것을 게워내는 그 모습에 함께 온 일행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중년인을 향해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지금 무슨 짓을 벌이는 것이냐? 화산과 맞서겠다는 것이냐!"

    "네놈들이 정녕 화산의 제자가 맞는지도 의문이 드는구나. 명문 정파를 자처하던 화산의 속가제자가 어찌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은 없다. 이대로 끝내는 것이 좋을 듯하니……"

    "흥! 이제 와서 겁이 나는 것이더냐? 화산의 이름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보니, 정파의 인사는 아닌 것 같군. 헌데…… 형복을 저렇게 만들고 나서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다?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사파의 무인이 화산에서 활개 치는 꼴은 보고 있을 수 없지."

    어느새 중년인과 대치하게 된 그들이었다. 흉흉하게 변한 객잔의 분위기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고, 음식을 먹던 아삼도 마지못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엮여봐야 자신만 피곤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도 때마침 등장한 일련의 무리들에 의해 멈춰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관인들이 객잔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관인들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섰던 아삼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제 관까지 엮인 건가? 낙양과 멀지 않는 곳이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한 쪽에서 서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는 아삼이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저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짧은 순간에 중년인과 화산인 그리고 관인들까지 엮여서 서로를 향해 경계하는 그들이었고 객잔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긴장감을 깨며 푸른색 도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객잔 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것이냐?"

    노성 띤 사내의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화산의 속자제자라는 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리고 갑작스런 낯선 사내의 등장에 중년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기어코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저는 화산의 장영이라 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저희 문파의 속가들이 실례를 범한 듯 한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장영이 포권을 하며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형과 그의 객을 모시기 위해서 미리 장소를 알아보려던 참에 소란스러운 객잔을 확인하고, 안에서 대치중인 익숙한 모습에 뛰어든 장영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년인 한 명에게 오늘 하산하려는 속가 제자들이 적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 사람을 핍박하는 듯한 그들의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였지만 무엇보다 앞선 중년인의 기도가 범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사숙을 뵈옵니다."

    "이게 무슨 짓이더냐!"

    "그것이…… 아! 저희는 화산을 업신여기며 무시하는 사파 놈이 있기에 그것을 참지 못하여……"

    "뭐라? 본 파를 무시해? 사파?"

    사파라는 말과 화산을 무시했다는 그들의 말에 장영이라고 밝힌 사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내 앞에서 굳은 표정을 보이는 중년인을 바라보던 장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고 이내 그를 향해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잔뜩 굳은 얼굴로 중년인을 향해 묻는 장영이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런 장영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을 밝히는 중년인이었다.

    "정석건이라 하오."

    "저…… 정석건! 귀검 정석건?"

    "…… 그런 별호를 가지고 있소."

    "……."

    정석건의 말에 장영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못마땅한 듯 잔뜩 굳은 얼굴로 정석건을 바라보는 그였다.

    "귀검께서 화산에는 어인 일이시오? 아무리 그 위명이 높다고 하나 화산이 지척인 이곳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는 것은…… 우리 화산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오?"

    "흐음. …… 오해가 있는 것 같소. 우리는 그저……"

    "저들입니다. 저들이 먼저 시비를 걸고 저를 먼저 공격을 했습니다. 그 기습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한 채…… 쿨럭."

    검은 피를 토해내는 석형복의 행동에 정석건과 장영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서로 그 의미는 달랐지만 석형복의 행동은 그만큼 시의적절했다. 그의 의도대로 분위기를 끌고가는데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더욱 살벌해진 분위기와 함께 객잔 가득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로 노려보는 두 고수의 눈빛과 함께 한 발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던 아삼의 눈이 객잔의 입구를 향했다. 엄청난 기운을 가진 존재가 느껴졌다.

    이내 객잔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고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아삼의 눈이 커다래졌다. 예전에 한 번 본적이 있던 자와 함께 그와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동행을 한 채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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