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12화 (112/204)
  • 0112 / 0204 ----------------------------------------------

    야심(野心)

    강렬한 살기에 뒤를 확인한 아삼은 여분의 말을 데리고 일행의 뒤를 쫓는 낯선 자들의 모습에 침음을 삼켰다. 지친 자신들의 말과는 달리 아직도 쌩쌩해 보이는 놈들의 말에 미간을 좁힌 그가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하고 군도를 빼들었다.

    그대로 힘을 더해서 허공에 도를 휘두르자 검풍이 일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가 탄 말이 그 힘에 주춤거렸다. 그만큼 강력한 공격이었지만 그의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앞서 달리던 왕현이 그 행동을 보자마자 말의 등을 박차고 뛰어나와 아삼이 날린 검풍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틈을 노리고 전소평이 움직였다. 꺼내든 비도를 날리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늦추려 했고 영악하게도 그가 뿌린 비도는 사람이 아닌 말을 향해 날아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왕현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을 노린 그 수는 정확히 들어맞았고 그들이 타고 있던 말들이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목을 잡은 전소평의 행동에 굳어있던 아삼의 얼굴이 살짝 펴졌지만 이어지는 왕현의 행동에 절로 인상을 구길 수 밖에 없었다.

    충분히 가까운 거리라고 느꼈는지 말을 버린 왕현이 경공을 펼치면서 그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이 자랑하는 제운종(梯雲縱)이었고 그 명성다운 표홀한 신법에 순간 고심을 하는 아삼이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저들을 상대해야만 하나? 우리가 앞선 길을 되짚어 가는 것이라면…… 배를 타면서 저들을 따돌려야만 할까? 어차피 숨긴 힘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면……'

    짧은 순간에 맹렬하게 돌아가는 머리와 함께 다가오는 왕현을 보고 결심을 굳힌 아삼이 옆에 있는 송상호를 바라봤다.

    - 이대로 이들을 이끌고 먼저 빠져나가라. 뒤는 내가 맡겠다.

    "…… 하오나."

    - 먼저 가서 배를 준비해 놓고 있어라. 이대로 가다가는 한왕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단호한 아삼의 명에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마친 송상호가 감격한 표정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이내 다른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 셋은 이대로 벗어난다."

    "뭐라고? 말도 안 돼!"

    "당두님의 명이시다."

    "…… 너네 둘이나 가! 나는 남아서 아삼을 도울 거다. 은혜도 모르고 제 목숨을 챙기는 그런 개자식은 되지 않을 테니까."

    나름 아삼을 생각하며 남겠다고 말을 내뱉은 전소평이었지만 그의 그런 모습이 아삼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자신이 힘을 드러낸다면 그것을 목격한 사람을 살려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오문과 연이 끊기지 않은 전소평은 앞으로도 중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하는 아삼이었기 때문에 그를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그 눈빛에도 고개를 흔들며 완강히 거부하는 전소평이었고 오히려 뒤쪽을 향해 비도를 뿌리고 있었다. 그런 전소평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린 아삼이 그를 향해 전심어서를 사용했다.

    - 송상호의 말에 따라라. 먼저 벗어나서 배를 준비해라. 일전에 왔었던 그 나루터로 움직인다.

    "……."

    갑작스런 전심어서에 전소평의 움직임이 멈췄다. 놀란 눈으로 아삼을 바라보는 그였고 그 모습에 쓰게 웃던 아삼이 다시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그 사이 쫓아온 왕현의 행동에 급히 도를 들어야만 했다.

    콰앙.

    왕현의 검이 아삼의 도에 막히면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빠르게 달려온 왕현의 몸은 뒤로 튕겨져 나갔고 아삼 역시 바닥으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놀란 말이 그대로 관로를 질주해서 도망가자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타고 갈 말을 잃은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오히려 그것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살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자들을 물리치고 낙양을 벗어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이전의 생의 자신을 떠올린 아삼이 씁쓸하게 웃었다.

    '전에는 생을 비관하고 스스로 투신을 했었는데…… 이제 와서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꼴이라니.'

    갑자기 떠오른 상념을 떨쳐낸 그가 주변을 살폈다. 송상호와 고기현이 멀어지고 있었고 전소평이 근처에서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전소평을 향해 왕현과 함께 온 자들 중 한 명이 달려들면서 검을 뿌렸다.

    뒤늦게 그의 검을 확인한 전소평이 비도를 뿌렸지만 가볍게 튕겨내는 낯선 자였고 그의 검이 전소평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기함을 토하면서 물러서는 전소평의 모습에 허공을 가른 자가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비도를 사용하는 만큼 경공과 보법에 있어서는 조예가 깊은 전소평이었다. 하지만 낯선 자의 공격은 피한 대신에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게 된 전소평이었지만 차라리 그것이 잘 된 일이라고 여겼고 아삼의 얼굴은 찌푸려졌다.

    전소평이 적을 맞는 사이, 뒤에 있던 다른 자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아삼 혼자만 잡으려는 것이 아닌 듯 그를 지나쳐서 뒤를 쫓으려는 모습을 보였고 그 움직임에 아삼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분뢰공과 함께 음기를 죽인 내기를 활성화 시킨 그가 옆으로 빠져나가려던 자를 향해 들이쳤다.

    임시방편으로 날렸던 검풍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직접 움직이는 아삼이었고, 무영보법에 스며든 분뢰공의 공능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아삼이 말의 다리를 자르며 움직이려는 자들의 발을 묶었다.

    커다란 먼지를 일으키며 꼬꾸라지는 말들이 고통스러운 울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뛰어내린 무인의 목에 붉은 실선이 그려지면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그의 무공에 순식간에 두 명이 더 쓰러졌다.

    왕현과 같이 온 다른 여섯 명은 그런 아삼의 무공에 눈치를 보며 움직이지 못 했고, 그 중 상태가 온전한 말을 확인한 아삼이 전소평에게 다가서며 전심어서를 날렸다.

    - 전소평! 너는 그대로 송상호의 뒤를 따라가라.

    "하지만……"

    - 네가 있으면 내 정신이 더 분산돼서 힘들어질 뿐이다.

    "……."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의 눈초리에 고개를 끄덕인 전소평이 뒤로 물러섰지만 낯선 무인이 그를 쫓았다. 그런 무인을 떨쳐내지 못 하는 전소평이었고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선 아삼이 군도를 찔러 넣었다.

    '낙화검.'

    급한 대로 도를 이용해서 쾌검술을 펼쳤고 빠르게 날아든 군도가 그자의 몸을 향해 쏟아졌다. 그 빠름에 기겁한 자가 뒤늦게 검을 휘두르려 마음을 먹었지만 쉽게 막아낼 공격은 아니었다.

    채앵.

    별다른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커다란 눈으로 눈앞에서 가로막힌 검을 확인한 무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뒤로 물러섰다. 눈앞에서 군도를 가로막은 것은 평범한 철검이었다. 그리고 그 검을 잡고 있는 왕현이 아삼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놈 상대는 나다."

    "……."

    살기어린 왕현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아삼이 그를 향해 다시 군도를 휘둘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막히는 공격이었고 상대는 큰 충격도 없는 것 같았다. 무당 특유의 부드러움이 충격을 줄여주면서 아삼의 강렬한 공격을 막아냈고, 들인 힘에 비해서 큰 효과를 보지 못 하는 듯 보였다.

    그 사이 경공을 사용하면서 그곳으로 부터 멀어져가는 전소평이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이 왕현에게서 몸을 빼며 무영보법을 밟아갔다. 순식간에 왕현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배회하던 말의 엉덩이를 후려치자 갑작스런 충격에 땅을 박차며 전소평이 달려가는 곳을 향해서 말이 질주했다.

    말을 딸려 보내는 아삼의 행동에 남은 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뒤늦게 다른 자들을 쫓으려 했지만 아삼의 손에 쓰러지는 동료의 행동에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뛰어난 놈이 아닌가? 그들이 했었던 말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데?'

    마치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여기저기 움직이며 한왕이 붙여준 자들까지 막아서는 아삼의 모습에 내심 놀라워하는 왕현이었다. 동생이 죽고 아삼의 뒤를 캐던 그였고 그가 알아낸 것은 동생과의 대련에서 아삼이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 했다는 사실이었다.

    운이 좋게 내뻗은 아삼의 공격에 적중당한 동생이 막무가내로 달려들면서 목숨을 잃었다고 알고 있는 그로서는 지난 몇 년 만에 달라진 아삼의 무력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또래에 비해서 제법 자질을 보이던 동생이었지만 자신과 비교해서 떨어지는 실력이었기 때문에 아삼이라는 자의 무공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왕현이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아삼을 좇는 그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보법하나는 수준급이지만…… 그래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려는 듯 낮게 읊조리며 아삼을 향해 달려드는 왕현이었다. 실제로 한 번 부딪쳐본 결과 도의 움직임이 단순했고 큰 힘이 실려 있지도 않았다. 충분히 자신이 받아낼 수 있는 아삼의 공격이었지만 그 속도만은 경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매섭게 달려드는 왕현의 공격이 아삼의 요혈을 찔러왔다. 살기 가득한 그 공격에 전방을 가득 채우는 검영을 향해 빠른 속도로 군도를 휘두르는 아삼이었고 극쾌의 음직임을 보이며 하나하나 걷어내기 시작하자 주변이 맑은 쇳소리로 가득 찼다.

    '후우. 후우.'

    제법 무리를 한 듯 숨이 가빠오는 아삼이었다. 실제 그 세 명을 보내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인 그였고 아직까지는 자신의 의도가 들어맞은 것 같았다. 하지만 사용한 내기의 양도 많았고 체력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호흡을 고르는 듯한 아삼의 모습에 다른 무인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아삼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도광이 번뜩이면서 달려든 자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런 그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왜 달려들지 않는 거지?'

    조금 전까지 죽일 듯이 달려들던 왕현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한 아삼이었다. 실제로 앞서 달려들던 자들과 함께 움직였다면 고전을 면치 못 했으리라는 것을 잘 아는 아삼이었지만 왕현은 그들과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명문 정파의 제자인 내가 저런 놈을 상대로 협공을 할 수는 없지.'

    무당에서 자라오면서 정파라는 이름하에 예와 협을 중시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던 그였다. 비록 복수라는 이름으로 아삼과 맞서는 왕현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박혀온 그 생각을 쉽게 고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아삼이라는 놈이 엄청나게 강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협공을 할 필요성도 없다고 판단하는 그였다.

    그런 그의 고리타분한 생각까지 고려하지 못한 한왕이었기 때문에 한왕의 의도는 이곳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스스로 전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많이 가다듬고 경험했다고 여기는 왕현이었다. 실제로 미진하다고 여겼던 부분을 많이 보완한 상태였고 익히고 있는 검술의 완숙도도 많이 끌어올린 상황이었다. 그런 자신감에서 부터 기인한 그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고, 어느새 그곳에는 지쳐 보이는 아삼과 왕현만 남아있었다.

    "숨을 골라라. 그 이후에…… 너를 벌 할 것이다."

    "……."

    왕현의 말을 들은 아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자신을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절로 반발심이 들었지만 우선은 먼저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막는 자를 치워야만 했고, 진한 살기를 뿜어내는 그놈의 행동에 마음을 다스려야만 했다.

    '나에게도 호승심이라는 것이 생긴 것인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가슴 속에서 무언가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 들자 스스로 신기해하는 아삼이었다. 이내 마음을 다잡은 아삼의 눈빛이 변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왕현이 검을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소청검법(小靑劍法).

    무당이 자랑하는 절기의 기수식이었다. 태청검법(太淸劍法)을 익히기 전에 익히는 검법이었지만 왕현이 가장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는 검법이었다. 실제 사람마다 쉽게 익힐 수 있고 몸에 잘 맞는 무공이 있는데, 왕현의 경우는 그것이 바로 소청검법이었다.

    무당의 검과는 다르게 진한 살기를 가득 품고 있었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경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도를 다잡은 아삼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낙화검'의 초식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도를 찔러 넣었다.

    섬광 같은 찌르기였지만 단순한 동작으로 수월하게 막아낸 왕현이 비어버린 아삼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진한 살기가 위험을 알려왔고 다급히 물러선 아삼이 왕현의 검을 쳐냈다.

    채앵.

    청명한 소리와 함께 다시 왕현의 검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순간순간 섬광이 번뜩거렸고 자연스러운 검로에 다급해지는 사람은 아삼이었다. 이전에 봤던 유운검과는 다른 검법이었다. 단순한 검로였지만 끊이지 않는 검격은 쳐내고 또, 쳐내도 그를 뒤따랐고 다시 요혈을 찔러오는 왕현의 검에 기운을 끌어올린 아삼이 검을 쳐내며 그의 옆구리에 도를 휘둘렀다.

    빠르게 쏘아지는 도격이었지만 튕겨나간 그의 검이 다시 아삼의 도를 쳐내며 그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가슴을 찔러 들어오는 검에 보법을 밟으며 옆으로 비켜선 아삼이 몸을 회전시키며 손에 든 도를 휘둘렀다.

    회전하는 아삼의 몸과 함께 머리를 노리는 도격에 고개를 숙이는 왕현이었고 가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크윽."

    언제 베였는지 기다란 검상이 가슴에 새겨있었고 아삼의 손에는 낭창낭창한 연검이 들려있었다.

    용재비아(龍齜秘牙).

    용이 숨은 어금니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이전에 익힌 용유검의 한 초식이었다. 발검과 함께 가까운 적을 향해 검을 뿌리는 것으로 지금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한 검법이었다.

    몸을 회전하면서 날리는 도격과 함께 그 뒤를 이어서 뽑혀진 연검이 왕현의 가슴을 벤 것이다.

    비열한 수에 당했다고 생각한 왕현이 분했는지 제법 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삼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이전보다 더욱 살기어린 그의 검법에 인상을 찌푸린 아삼은 용아를 뿌리며 그에게 대응했다.

    순식간에 검광이 번뜩이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쏟아지는 검격은 더욱 빨라졌고 기세 좋게 달려든 왕현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겨우 막아낼 정도였다. 이미 가슴을 베인 왕현이었고 검으로 펼치는 낙화검은 도로 펼치는 것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빨랐다.

    점점 뒤로 밀리는 자신의 불리함을 깨달은 왕현의 눈이 번뜩였다. 이내 날아오는 검을 막아설 생각도 없이 그대로 혼신의 힘을 쥐어짜서 검격을 날렸다.

    찔러 넣은 연검의 바로 밑으로 왕현의 검이 날아들었다. 이대로 목숨을 도외시한 왕현의 공격에 기운을 끌어올린 아삼이 연검에 내기를 불어넣었고 허공을 가르던 연검의 끝이 아래로 휘어지면서 교차되던 왕현의 검신을 때렸다.

    쩌엉.

    부딪치는 검과 함께 왕현의 검로가 틀어졌고, 그것을 미리 예상한 아삼이 몸을 더 안으로 밀어 넣으며 손목을 비틀었다.

    촤아악.

    무언가 베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삼의 옆구리에서 가느다란 피가 흘렀고, 왕현의 목에 연검이 감겼다. 왕현의 복잡한 눈빛이 아삼을 향하자, 그 눈빛을 접한 아삼은 이내 손을 거두며 연검을 털었다.

    투욱.

    베인 목과 함께 왕현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용답상운(龍踏上雲)이라는 초식으로 왕현의 검신을 때리며 그의 검로를 흔들리게 만들었고, 용요단경(龍繚斷頸)이라는 초식으로 그의 목을 감아내는 아삼이었다. 이전에 위명도이 펼쳤던 용요단완(龍繚斷腕)이라는 초식과 비슷한 것을 펼쳐낸 것이었다.

    이내 바닥을 구르는 왕현의 머리를 보던 아삼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곳을 벗어났다. 아직까지 한왕의 봉지를 벗어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온전한 말을 몰며 멀리 있을 황하를 향해 나아가는 아삼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떠난 곳에 일련의 무리들이 들이 닥쳤다.

    "그자의 목입니다. 모두 이곳에서 당한 것 같습니다. 헌데……"

    "헌데, 뭐냐?"

    "무당의 사람은 이자가 유일합니다."

    "뭐라? 그렇다면 다른 자들은?"

    "그들의 뒤를 쫓고 있거나……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싸운 흔적으로 봐서는 애초에 이곳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놈. 주군의 명을 가벼이 여긴 것인가? 그러니 이렇게 죽을 수 밖에…… 이곳에서 싸움이 있었다면 그렇게 멀리 가지는 못 했을 것이다. 속도를 더 올려라."

    무리를 이끄는 자의 외침과 함께 서른 명 정도 되는 인원이 아삼이 뛰쳐나간 곳을 향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잘 단련된 자들 같았고, 그들이 타고 있는 말들도 모두가 명마라 불릴 정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혼자만 나섰던 왕현이었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무당의 제자들은 모두 본산으로 돌려보낸 그였다. 괜한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고 오명을 남기는 것은 혼자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왕의 의도는 사소한 곳에서 부터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초식명을 짓기는 했는데 어색한 것 같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