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09화 (109/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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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심(野心)

    화려한 전각, 호화로운 의자에 기대어 앉은 중년인 아래로 다수의 사람들이 시립해 있었다. 마치 국정을 논하는 황궁의 태화전 같았고 그중 가장 상석에 앉은 사람의 행동은 황제를 연상시키게 했다.

    실제 그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이전의 황제인 영락제를 많이 닮아있었다. 호랑이를 닮은 얼굴상은 주변을 압도했고 그 모습에 이끌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해 그곳에 고개를 조아리며 시립해 있었다. 그리고 위에 앉아서 그들을 내려 보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동창에 속한 자들이 낙양으로 몰래 들어왔다지?"

    "예, 전하. 지금 근처에 있는 관아를 감찰하고 있다고 합니다."

    "감찰? 감찰이라……"

    '감찰'이라는 단어를 뇌까리는 한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머리를 조아렸다.

    "송구하오나, 그것이 단순한 감찰이 아닐 수도 있사옵니다."

    "단순한 감찰이 아닐 수도 있다? 계속 말해 보거라."

    "시기가 너무 공교롭사옵니다. 대업을…… 크흠."

    마지막 말을 얼버무리며 주저하는 그 모습에 한왕인 주고후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내 아래에 모여있는 수하들을 향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송숭과 가평천만 남고 나머지는 물러가도록 하라. 주변에 누구도 얼씬거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 전하."

    그의 명에 따라 남은 사람들이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송숭이 물러간 사람들을 확인하고 말을 이어갔다. 조금 전에 말하기를 주저하던 그 사람이었다.

    "전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가 한창인 이때, 낙양까지 감찰을 왔다는 사실이 너무 공교롭습니다. 혹, 낌새를 눈치 챈 것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

    "가평천, 자네 생각은 어떤가?"

    송숭의 의견을 들어본 한왕이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해 되물었고 그 말을 들은 가평천이라는 자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어갔다.

    "송 책사의 의견도 타당하나 그것이 단순한 감찰이라면……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옵니다. 지금 황제……께서 등극하시고 시국이 어수선한 이때, 그 기틀을 마련하고 치세를 보이기 위해서 대대적인 쇄신을 행하고 있는 와중에 지방 관아를 돌며 그곳을 감찰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괜히 과한 반응을 보여 의심을 사는 것도 두려운 일이 될 것이옵니다."

    "허나, 이대로 지켜볼 수도 없사옵니다. 그들이 감찰하는 곳에서 우리와 손을 잡았던 금의위의 부천호가 있다고 하옵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자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송숭과 가평천의 말을 곱씹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던 한왕이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고민할 게 무엇인가? 그들이 이곳에 왜 왔는지 직접 들어보면 될 것을…… 송숭 자네는 지금 관아로 가서 동창에서 나온 자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게나."

    호탕한 성격답게 직접 부딪쳐 알아낼 요량이었다. 그런 한왕의 뜻에 송숭이 고개를 숙이며 관아로 향하였다.

    "흠. 내가 아는 형님은 성군이 될 자질을 충분히 가지셨지. 허나 내가 있기에 그 자리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네. 어쩌겠는가? 이런 아우를 둔 형님의 잘못이지……"

    야망 가득한 눈으로 북경을 향해 조소를 날리는 한왕이었고 그런 한왕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이는 가평천이었다.

    관아에 다시 모인 아삼과 일행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던 전소평이 그들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힘없이 말했다.

    "모두들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내가 경솔했어. 정말 미안해."

    "도대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기에 앞뒤 분간도 하지 못 하고 뛰어든 거야?"

    송상호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전소평이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을 잔뜩 구겼다. 두 눈 가득 살기를 띈 그가 굳게 입을 다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런 전소평을 다그치며 송상호가 차갑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야. 황제의 명을 받고 온 거라고.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알아야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너의 그 경솔한 행동 때문에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는 많이 틀어진 상황이다. 이 일은 어떻게 책임을 질 거지?"

    송상호의 말에 더욱더 고개를 숙이는 전소평이었다. 그렇게 힘없이 축 늘어진 전소평을 바라보던 아삼이 송상호와 고기현에게 조용히 눈짓을 보냈고 그 눈빛을 이해한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무슨 일이야? 네가 그렇게 했을 때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겠지. 우선 그 이유를 알았으면 하는데?'

    빠르게 쓴 종이를 건너며 전소평을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행동할 전소평이 아니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아삼이었고 여전히 분을 참지 못하는 전소평의 모습에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송구합니다. 제가 경솔하게 행동해서 당두께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전소평이었다. 그런 전소평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삼이 조용히 붓을 놀렸다.

    '지금껏 봐왔던 너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 할 인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알아야만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다.'

    "송구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일이 잘못된다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군.'

    "……."

    '말하기 힘든 거라면, 그만 쉬어라.'

    이유를 말하지 않는 전소평을 강요할 마음은 없었다. 그가 불편해 하는 것 같자, 자리를 피해주려는 아삼이었다.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지 않는 것들은 한 두 개쯤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고, 그럴 때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을 나서려는 아삼을 부른 전소평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두님……  사실…… 살아있으면 안 될 놈을 봤습니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놈이 멀쩡히 숨을 쉬면서 웃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이 뒤집혀서……"

    예전보다 더욱 살이 올라서 풍채가 더 좋아진 왕상현의 모습이 떠오른 듯 전소평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이내 이어지는 전소평의 고백에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전소평의 마음이 이해가 간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난성의 한물간 퇴기의 아들로 태어난 전소평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머니와 3살 위인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고 비록 가난했지만 나름 단란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전소평이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기루의 잡일을 돕던 누이가 왕상현에 의해 겁탈을 당할 위기에 처했었고,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전소평이 누이를 구할 수 있었다.

    눈이 뒤집힌 전소평은 주변에 나뒹구는 물건으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이내 쓰러진 왕상현을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팼지만 오히려 관아에 끌려간 사람은 전소평이었다. 상대는 허난성의 지주인 왕가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아에 끌려와 감옥에 갇힌 전소평에게 평소 낯이 익던 점소이 하나가 찾아왔다.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는지는 몰랐지만 그를 찾아온 점소이는 걱정하는 듯한 말을 꺼냈다.

    "그들이 너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 그러길래 왜 하필 왕가의 아들을 건드린 거야?"

    안타까운 듯 점소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고, 그런 점소이를 향해 분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전소평이었다.

    "그럼 누이를 겁탈하려는 놈을 가만 놔둬요? 내가 힘이 있었더라면 그놈을 죽일 수 있었는데…… 젠장!"

    "…… 하긴 그런 놈을 가만둘 수는 없지. 그나저나 네놈만 불쌍하게 됐구나. 분명 저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

    "어쩔 수 없죠. 뭐."

    힘없이 쭉 늘어진 몸을 웅크리며 전소평이 말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어쩔 수 없긴? 허면 이대로 당하고 있을 테냐? 이미 저들이 네 누이와 어미의 목숨까지 끊어놨는데?"

    점소이의 말에 전소평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점소이를 다그쳤다.

    "누이와 어머니의 목숨을 끊다니요? 그들이 누이와 어머니를 죽였나요? 그럴리가…… 왜요? 도대체 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멍하니 주저앉는 전소평이었고 그런 전소평을 향해 점소이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기에 건드릴 놈을 건들었어야지. 자고로 우리 같은 것들은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해. 그렇게 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것을…… 어쩌겠냐?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지. 쯧쯧쯧."

    이미 안면이 있던 그의 말은 들리지 않은 전소평이었다. 아무리 강한 척을 하려고 노력하는 그였지만 아직까지는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어느새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다. 누이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억울한 감정도 컸다. 분명히 먼저 잘못한 것은 그놈이었다. 하지만 벌은 자신 혼자만 받았고 오히려 힘없는 가족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분했으며 슬펐다.

    제법 빠른 시간에 감정을 추스른 전소평이었지만 예사 놈은 아닌지 점소이가 찾아온 이유에 의아해하며 독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나한테 해주는 이유가 뭐죠? 그냥 누이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러 온 건가요?"

    "…… 내가 너의 복수를 도와줄 수 있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면 내가 너를 이곳에서 빼내줄 수도 있다."

    의뭉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점소이였고 그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전소평이었다. 감옥에 갇혀 헛되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누이와 어머니의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다짐하는 그였고 그렇게 하오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개방이라는 거지들의 그림자에 가린 하오문이었고, 고수들의 패악질을 두고 봐야만 했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고자 한 가지 묘안을 짜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황궁에 줄을 대고 자신들의 사람을 심는 것이었다.

    황궁에서 나오는 정보와 지방의 관아를 통제할 수 있는 힘. 약자들이 모인 그 집단에서 스스로 살길을 모색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황궁에 사람을 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궁에서 어린 환관들을 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들에게는 어린 사내아이가 필요했다.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하오문의 제안을 들은 전소평이 마른 침을 삼켰다. 복수를 도와준다는 말은 달콤하게 들렸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남성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의 그인지라 남성을 포기한다는 것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기루를 드나들며 어미를 도왔기 때문에 대강은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있었다.

    긴장한 듯 연신 두 눈을 굴리고 있는 전소평이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을 확인한 점소이가 일어서면서 나직이 말했다.

    "천천히 잘 생각해 보거라. 강요하지는 않으마."

    "아뇨. 하겠어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네. 왕상현 그 놈을 죽여주세요. 그 놈만 죽여주신다고 약조하면 자궁(自宮)을 하겠어요."

    전소평의 말에 점소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잠깐 생각에 잠긴 점소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알았다. 내 약조하마. 그 놈을 죽여주마."

    지금껏 거세하다가 죽은 아이가 부지기수였다. 이미 많은 아이들을 모았고 한 명 한 명에게 큰돈을 들여서 거세를 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전소평이 살아남을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다고 여기는 그였다. 그런 점을 생각한 점소이가 쉽게 약조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왕상현이라는 놈은 하오문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고 자신은 궁으로 올 수 있었다. 그 증표로 두툼한 손가락을 건네받았던 전소평이었지만 그 손가락은 왕상현이 아닌 다른 자의 손가락이었고 의도적으로 그 사실은 은폐했던 하오문이었다.

    사실 그들로서도 전소평이 이렇게 궁에 잘 적응을 하고 동창의 번역이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해 왕상현의 죽음을 알리고 손가락을 건네며 환히 웃던 점소이의 얼굴을 떠올린 전소평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그놈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물며 아삼을 향해 절규하는 말을 내뱉는 전소평이었다.

    "근데 그놈들이 절 속였습니다. 왕상현, 그놈을 죽이지 않았어요! 난…… 나는 죽일 고비까지 넘기면서 자기들을 위해 일해 왔는데……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분한 듯 두 주먹을 쥐는 전소평이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그런 전소평를 바라보던 아삼의 얼굴도 잔뜩 굳어 있었다.

    '이번 생이나 이전 생이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구나.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왜 자꾸 더 힘든 일만 생기는 것이지? 전소평 네 놈 인생도 참……'

    일의 전말을 다 듣고 나서야 전소평이 왜 그 자를 향해 칼을 빼들었는지 이해가 가는 아삼이었다. 가늘게 어깨를 떨며 울분을 토해내는 전소평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하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전소평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하오문과 연을 끊을 건가?'

    아삼이 내민 종이를 읽던 전소평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그깟 놈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억울한 듯 두 주먹을 쥔 채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이는 전소평이었다. 그런 전소평을 향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아삼이었다.

    '네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네가 그놈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연을 끊는 것이 너에게 득이 될까? 그동안 너를 속이고 이용해 온 그들이니 이번에는 네가 그들을 이용하는 것은 어때? 하오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너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거야. 울분을 삭이고 냉정히 생각해봐. 최소한 그 점소이라는 놈과 하오문의 윗선에게 복수를 하려면…… 막연하게 드러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니까.'

    아삼의 말을 곱씹던 전소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오문과의 연을 끊는 것은 자신에게만 손해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하오문과의 연결고리를 계속 이어가기로 결심을 하는 전소평이었다. 어차피 복수는 자신이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대화가 끝났을 때, 밖에 있던 송상호가 다급히 방으로 들어서며 아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왕이 보낸 사람이 관아로 찾아왔습니다."

    송상호의 말에 눈을 크게 뜬 아삼이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하얀 목면을 입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송숭이 뒷짐을 진 채 길게 뻗은 소나무를 올려보고 있었다. 그런 송숭을 향해 다가간 아삼이 그를 맞았다.

    "나는 한왕을 모시고 있는 송숭이라 하오. 다름이 아니라 황궁에서 감찰을 나왔다하여 한왕께서 그 노고를 치하하시고자 그대들을 초대했으니 나와 함께 지금 가시지요."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송숭이 아삼을 향해 말을 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초대라? 반란을 준비하는 자가 노고를 치하한다? 흠, 우리를 떠보려는 수작이겠지?'

    딱히 득이 될 게 없다 생각한 아삼이 송상호를 향해 전심어서를 날렸다.

    - 우리는 갈 수 없다고 말을 해라.

    아삼의 전심어서에 송상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왕의 초대를 거절한다는 것을 왜 자신에게 시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송상호였지만 마지못해 아삼의 뜻을 전하는 그였다.

    "송구하오나 이곳 관아에서의 일이 끝나지 않아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일이 끝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거절의 뜻을 밝히는 송상호였고 그런 송상호의 모습에 아삼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과연 송상호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지 확인해 볼 요량으로 시킨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따라준 송상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전서구가 도착하고 황궁에 연락이 갔을 터. 반란을 모의한 자의 최후는 그 죽음이겠지. 곧 죽을 자의 명을 들을 필요는 없음이다.'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보고한 아삼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송숭의 얼굴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이내 화를 참지 못한 그가 노성을 터뜨리며 그들을 다그쳤다.

    "뭐라? 지금 한왕의 호의를 무시하는 게요?"

    진노하는 송숭의 모습에 송상호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송상호를 향해 다시 한 번 전심어서를 날리는 아삼이었다.

    - 흔들리지 말고 강경하게 나가라.

    아삼의 전심어서에 송상호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진노하는 송숭을 달래지는 못할망정 강경하게 나가라는 아삼의 명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송상호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아삼의 뜻을 전했다.

    "송구합니다. 허나 저희는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이곳에 온 것입니다. 아직 명을 수행하지 못했는데 어찌 사사로이 움직이겠습니까? 저희의 사정도 봐 주시지요."

    최대한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는 송상호였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잔뜩 굳은 얼굴로 송상호를 향해 삿대질을 해대는 송숭이었다.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기색을 살피던 송숭이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

    "좋소. 당신들의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 허나 내 당신의 얼굴은 똑똑히 기억해 두겠소."

    송상호의 얼굴을 매섭게 쏘아보며 자리를 뜨는 송숭이었다. 그리고 그런 송숭의 태도에 불안한 듯 두 눈동자만 굴리는 송상호였다. 자신에게 그런 역을 맡기는 아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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