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03화 (1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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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자의 부탁

    황제가 친정을 떠나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황태자가 대신해서 정무를 돌보기 시작했다. 봉지에 가 있는 한왕 주고후는 친정을 간 황제가 두려웠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겉으로 보이는 황궁은 평화로웠다.

    비급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인학은 정훈이 숨겨뒀을 거라고 여기던 비급을 찾기 위해서 죽은 정훈의 방을 배회했다. 한층 강화된 황궁의 경비를 피해서 조심스럽게 그의 흔적을 뒤쫓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양피지의 절반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을 바꾼 그는 '송화'라는 무인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그런 모습은 팽가에서 자신의 위치를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비춰졌다.

    아삼은 용유검을 익히기 위해서 틈틈이 연검을 손에 쥐었고, 이내 기본이 되는 초식을 수련할 수 있었다.

    용답상운(龍踏上雲).

    용이 구름 위를 밟는다는 뜻의 이 초식은 용유검을 익히기 위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초식이었다. 낭창낭창 휘어지는 연검이었기에 아무리 그 특성을 알고 손에 익었다고 하더라도 부딪치거나 휘두름에 있어서 그 움직임을 놓치는 경우가 간혹 발생했다.

    그런 점을 사전에 방지하고, 연검이라는 무기를 무인의 의지 아래에 두기 위해서 만들어진 초식으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초식 중 하나였다.

    휘어지는 연검에 내기를 간헐적으로 흘려서 그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마치 자유로이 구름 위를 노니는 용처럼 그렇게 연검의 흐름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초식이었다.

    이 초식을 익히기 위해서는 내기를 조금 더 섬세하게 다뤄야만 했기 때문에 그 수련 자체가 아삼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연검을 빼들 수 없는 상태에서도 수시로 손끝으로 기운을 뿜어내면서 연습을 하는 아삼이었고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져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수련장에서 내서당의 훈육생들과 함께 수련을 끝낸 아삼이 지친 몸을 이끌고 처소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낀 그가 자연스럽게 걸음 속도를 줄이면서 주변의 기척을 살폈고 커다란 기둥으로 몸을 숨기면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면서 사라졌다.

    아삼이 모습을 감추자 그 기둥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환관이 어리둥절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삼의 뒤를 쫓았던 그의 눈이 주변을 살폈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자신을 찾는 모습에 그 환관의 얼굴을 확인한 아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 차례 본 적이 있는 환관이었고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에구머니나, 이 놈아 그리 갑자기 나타나면 어쩌누……"

    얄궂은 눈초리로 아삼을 째려보던 환관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진정이 됐는지 아삼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말을 내뱉었다.

    "황자마마께서 찾으시니 조용히 나를 따르거라."

    나직이 속삭이며 앞장서서 걷는 환관이었다. 땀을 흘린 상태라 의복을 갈아입고 가기를 희망했지만 그를 재촉하는 진지한 환관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르는 아삼이었다.

    "마마, 아이를 데려왔사옵니다."

    "어서 들라하라."

    가느다란 환관의 목소리에 기다렸다는 듯 재촉하는 주고희였다. 뭔가 조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삼이 전각 안으로 들어서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되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예를 표하는 아삼을 말리며 주고희가 아삼을 향해 손짓했고 그의 손짓에 아삼이 조심스럽게 황자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아삼을 바라만 보며 연신 입술만 축일 뿐 쉬이 입을 떼지 못하는 주고희였다. 그런 주고희의 행동에 뭔가 다급하고 중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린 아삼이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이 있는 곳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주고희가 미간을 좁히면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더니 아삼을 향해 책 한 권을 내밀며 나직이 말했다.

    "……며칠 전 황궁무고에서 가져온 서책이다. 네 필체로 쓰인 책들 중 하나다. 무술기공(武術氣功)이라는 이 서책을 읽던 도중에 이 책 사이에서 낡은 양피지가 바닥으로 떨어지더구나. 주워서 읽어보니 그것은…… 이전에 읽었던 규화보전의 내용이었다."

    주고희의 말에 아삼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규화보전! 어떻게…… 피로 얼룩졌던 비급에 적힌 무공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던가?'

    송화가 익힌 무공이라는 맨위 적혀있던 글을 떠올린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놀란 아삼의 얼굴에 주고희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바로 무고로 가져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황태손께서 찾아와 잠깐 담소를 나누러 후원에 갔다와 보니 그 양피지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더구나. 이 전각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누군가 손을 댔는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비급도 아니고 규화보전이라 그 중함을 잘 알기에 내 잘 갈무리해뒀는데…… 이를 어쩐단 말이냐?"

    "……."

    "너도 알다시피 내가 무고에 출입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더냐? 그간 사마택이 그리 가고 또 너도 없어서 무고에 발길을 끊었다마는……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다시 출입을 한 것이 이리 큰 사단이 날 줄이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주고희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삼도 미간을 좁혔다. 다른 무공도 아닌 '규화보전'이었다. 그저 황자의 넋두리를 듣고 끝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없이 심각해진 아삼이었고 자신의 말에 공감을 하듯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아삼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 황자가 말을 이어갔다.

    "내 예전에 필사된 비급의 구결을 본 기억이 있어서 그 양피지에 적힌 구결이 규화보전의 구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잃어버린 그것이 그저 불쏘시개로 사라지는 것은 다행이나…… 행여라도 무림인의 손에 떨어진다면…… 피 바람이 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내 그 벌을 받아서 죽는 건 두렵지않으나 나 때문에 큰 분란이 인다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주고희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어떤 세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을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마음을 터놓게 된 아삼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전부였고 동창에 있는 아삼의 손을 빌릴 수 있을까 하여 고심 끝에 그를 부른 것이었다.

    황제의 혈육으로 태어났으나 그 고귀한 혈통 때문에 늘 살얼음 판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삶을 살았던 주고희였다. 그간 자잘한 오해로 목숨을 잃는 황족들도 많이 보았고 권력을 탐하다 목숨을 내놓은 황족들도 부지기수였다. 황족으로서 이 궁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며 아무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그였지만 막상 이런 일이 닥치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주고희의 모습에 붓을 든 아삼이 그를 향해 물었다.

    '혹시 짚이는 인사라도 있으십니까?'

    아삼이 내민 종이를 받아든 주고희가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것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이 넓은 궁에서 그걸 누가 가져갔는지. 전각을 드나드는 이만 해도 수십 명이니 쉬이 감이 오지 않는구나."

    "……."

    "내 너를 이리 부른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밖에 부탁할 만한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은밀히 알아봐 주겠느냐? 그 양피지를 찾아서 원래의 자리로 돌려다오. 그저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부탁하마."

    자신의 손을 굳게 잡으며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주고희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며 아삼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큰일을 맡기는 주고희였지만 모른 체 할 수도 없었다. 그저그런 일이라면 대충 에둘러서 빠져나올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몰래 익히고 있는 그 비급이 풀리는 일이었다.

    '쉽게 익힐 수 없다고 하지만…… 규화보전이 아닌가? 이대로 그것이 무림으로 흘러들어간다면…… 후우.'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는 아삼이었지만 선택의 도리가 없었다. 결심을 굳힌 듯 길게 읍을 하는 아삼이었고 그 모습에 그제서야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 주고희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이내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던 아삼이 붓을 놀려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 비급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황자마마의 주변 사람들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이 전각을 드나드는 환관이나 궁녀들은 필히 확인을 해야 합니다. 허나…… 지금의 제 직위로는 그 한계가 있습니다. 황자마마께서 그들을 잡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셔야 합니다."

    아삼이 내민 종이를 읽어 내려가던 주고희가 난처한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나도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으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 궁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질 않느냐? 다른 형들처럼 직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같은 모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껏 이렇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아삼아, 혹 네가 위험해진다면 나는 너를 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이런 부탁을 하면서도 너를 지켜주지도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구나."

    어느새 쓸쓸한 얼굴로 긴 한숨을 토해내는 주고희였다. 그 모습에 괜한 걸 부탁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아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자신의 힘으로 잡아들일 수 있는 환관들부터 조사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고희에게 읍을 하고 전각을 빠져나온 아삼은 그때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주고희를 모시는 어린 환관들을 찾아다니는 아삼이었다. 동창이라는 직위와 함께 공공연하게 알려진 정화의 사람이라는 후광으로 생각보다 쉽게 원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너에게 한 가지만 묻겠다. 며칠 전 황태손마마께서 오셨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매서운 눈초리의 아삼이 겁먹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환관을 향해 종이를 내밀며 물었다. 그러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린 환관이 대답했다.

    "저…… 저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마당에 있었습니다."

    '마당? 거기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다시 한 번 재빨리 붓을 놀린 아삼이 어린 환관의 눈앞에 종이를 내밀며 되물었다. 쏟아지는 매서운 눈빛과 환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그의 이름에 겁을 집어먹은 어린 환관이 말을 더듬으면서 사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그것이…… 갑자기 곽태감께서 마당이 더럽다고 호통을 치셔서…… 모두들 마당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환관의 말에 아삼의 두 눈에 의구심이 어렸다. 이내 다시 종이에 뭔가를 적은 아삼이 환관에게 내밀었다.

    '너희들이 마당을 청소하는 동안 곽태감께서는 어디에 계셨느냐?'

    "그것이…… 황자마마의 처소에 계셨습니다."

    '확실한 사실이더냐?'

    "예. 확실합니다. 본래 기관지가 좋지 않으신 곽태감께서는 꼭 저희들에게 마당 청소를 시키실 때에는 먼지가 난다하여 황자마마의 처소에 들어가 계셨습니다."

    원하는 정보를 얻은 듯 아삼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다른 환관들도 조사해봤지만 모두가 어린 환관과 같은 말을 했고 어느새 혐의는 곽건이라는 환관에게 좁혀지고 있었다.

    '곽건이라? 그 자가 황자를 위험에 빠트린 이유가 있나? 우선 그에 대해서 알아봐야 하는 것인가?'

    심각한 얼굴로 고심하던 아삼이 어느새 생각을 정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전소평의 처소에 들린 아삼이 심각한 얼굴로 그를 향해 종이를 내밀었다.

    "곽건에 대해서 조사해달라고? 곽건이 누군데? 왜?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아삼이 내민 종이를 읽은 전소평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는 아삼이었다. 그 모습에 씁쓸하게 웃던 전소평이 이내 포기한 듯 힘없이 대답했다.

    "알았어. 나야 뭐…… 번역나리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요 뭐."

    서운한 듯 입술을 삐죽거리는 전소평이었지만 고심에 빠진 아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각에 황자의 처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곽건의 입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자의 입을 열기 위해서는 그 자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 자가 아닐 경우도 대비해야 하고……'

    우선은 곽건이라는 환관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소평을 찾은 아삼이었다. 그나마 그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전소평을 통한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 빠른 시일 내로 곽건에 대해서 알아 올테니까. 따로 나를 찾아온 것을 보면 이건…… 조용히 처리할 일이겠지?"

    심각한 어투로 되묻는 전소평이었고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삼이었다. 꽤 유용하게 쓰이는 전소평이었지만 아직 모든 것을 말하기에는 껄끄러운 점이 많았다. 그런 전소평의 어깨를 두드리며 처소를 나서는 아삼이었다.

    그로부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전소평을 통해 곽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확인한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 아무래도 정화 태감의 손을 빌려야겠군. 내가 처리하기에는 일이 너무 크다.'

    생각보다 커진 일에 정화를 찾는 아삼이었다. 황자를 돕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규화보전의 비급에 관한 일인지라 아삼으로써도 묵과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불타오르는 아삼이었다. 다만 그 뒤에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자가 너무나 거대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정화의 손을 빌려야만 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느냐?"

    심상치 않아 보이는 아삼의 얼굴에 정화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고 그런 정화를 향해 주고희와의 일을 소상히 고하는 아삼이었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 이렇게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네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뜻일 테지? 의심가는 이가 누구냐?"

    - 아무래도 황자마마를 모시는 곽건이라는 환관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본래 제일 가까이에 있는 이가 위험하지. 그래, 그 곽건이라는 환관의 뒤에 있는 자가 누구더냐? 네가 이리 나를 찾아온 것을 보면 그 뒷배가 만만치 않은 게로구나."

    - 아무래도 한왕 주고후 황자마마의 사주를 받은 듯 합니다. 전소평을 통해서 하오문에 알아본 결과 근래에 곽건과 한왕 그리고 조간왕의 왕래가 빈번했다 합니다.

    "…… 곽건이 한왕과 조간왕, 두 사람과 왕래가 빈번하다 했는데 너는 어찌 한왕을 꼭 집어 의심하는 것이냐? 그리 생각하는 연유라도 있는 것이냐?"

    생각지 못한 정화의 물음에 아삼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 그…… 그것이 지금껏 한왕께서 공공연히 야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아무래도 황제 폐하께서 친정을 떠나신 이때, 분란을 일으키시려는 것이 아닐 듯하여……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없는 듯 말끝을 흐리는 아삼이었고 그런 아삼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정화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네가 잘 못 짚었구나. 호탕하고 대범한 한왕이 그런 치졸한 수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직위도 가지고 있지 못한 황자마마는 아마도 한왕의 머릿속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황태자마마와 황태손마마가…… 의중에 있을 터. 어찌되었든 곽건 이라는 놈을 잡아들여서 조사를 해보면 알게 되겠지."

    정화의 말에 아삼의 고개가 끄덕여 졌다. 아직까지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생각이 좁았음을 뒤늦게 깨달은 아삼이었다.

    "가서 곽건 그 자를 끌고 오거라. 은밀히 데려와야 하느니라."

    단호한 정화의 말투에 그를 보필하던 환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뛰어난 무공을 가진 듯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그의 모습에 아삼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이미 그 기운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저런 신법을 보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새삼 궁에서 실력을 감추고 있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린 아삼이었다. 정화의 주변에 어렴풋이 느껴지는 고수들의 기운과 함께 조금 더 정진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그였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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