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95화 (9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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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始作)

    붉은 색 면포를 입은 사내의 등장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특히 그 기척을 읽지 못했던 만태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고, 뒤에서 지켜보던 아삼 역시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 고수다. 숨겨진 기운으로만 봐서는 만태산보다…… 더 강한 자로군.'

    낯선 사내의 등장에 모여있던 자들이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끼어든 사내는 대수롭지 않은 듯 팔짱을 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유로운 사내의 모습은 동창과 만상표국 두 세력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고 주변을 살피던 그자의 물음에 한껏 고조된 긴장이 맥없이 풀리는 듯 했다.

    "사황련으로 움직이는 표물들인가?"

    "그…… 그렇소."

    사내의 물음에 현창석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행동을 바라보던 만태산이 소리를 지르면서 그의 정체를 추궁했다.

    "웬 놈이냐? 어떤 놈인데 함부로 관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냐?"

    만태산의 다그침에도 그것을 무시한 사내가 표두인 현창석을 바라봤다. 자신을 주시하는 낯선 사내의 모습을 훑던 현창석이 눈을 빛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는 관이라는 이름에도 전혀 주눅이 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이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경계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현창석의 모습에 엷은 미소를 보인 사내가 그를 보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 경계할 것 없소. 지나가다 '사황련'이라는 단어를 듣고 이렇게 끼어든 것뿐이오. 나는 사황련에서 지월대의 대주직을 맡고 있는 위명도라고 하오. 우리 사황련과 관련이 있는 일이오? 관과 대치하고 있는 연유가 무엇이오?"

    위명도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동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들은 현창석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그제서야 안도가 된 듯 위명도를 보고 포권을 했다.

    "무명이 쟁쟁한 위 대협을 뵙습니다. 저희는 만상표국의 사람들입니다. 지금 사황련으로 이 표물들을 전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관인들이 이 표물을 내어 달라 하여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현창석의 말에 위명도의 미간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사황련의 무력단체 중 하나인 지월대의 대주이자 사파의 이름난 무인 중 한명이 바로 그였다. 사황련의 큰 축을 담당하는 가문의 자제로 어려서부터 독고화연과 같이 자라면서 마음속에 그녀를 품고 있던 위명도였지만 그런 독고화연은 사운풍을 찾아서 사황련을 떠났고 위명도는 그런 그녀를 잊지 못해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이제는 혼인을 한 위명도였지만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여인인지라  산짐승에 의해 하체가 훼손된 상태로 돌아온 독고화연의 시체를 보고 아려오는 가슴을 참아내야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 연모의 감정을 가졌던 여인을 위해서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였고 지금 그의 앞에 독고화연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관인들이 있었다. 당연히 그런 관인들을 보는 위명도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제 아무리 무림인들을 아래로 보는 관이라 하나 이것은 너무 한 처사가 아닌가? 불문율로 여겨지던 관과 무림의 관계를 깨뜨린 것도 모자라, 응당 주인에게 돌아갈 물건을 강탈하겠다니? 그런 관과 비적들이 다를 게 무엇인가!"

    날선 위명도의 말에 만태산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웬만하면 사황련의 고수들과 엮이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제는 이들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태산이었다.

    "비적이라니? 말이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수사에 관련된 물건이라 건네 달라 했을 뿐이다. 수사가 종료되면 응당 사황련으로 보내 줄 것이니 순순히 그 물건을 내어주거라."

    "하하하하. 관의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우리가 네놈들이 무서워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 같더냐? 다시 사황련으로 보내준다? 죽고 싶다면 다시 한 번 그딴 말을 지껄여 보거라."

    독고화연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 위명도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거친 그의 말에 분기를 참지 못한 만태산이 매섭게 소리쳤다.

    "네 이놈, 지금 우리를 능멸하는 것이냐?"

    "능멸? 능멸이라? 하, 능멸할 가치도 없다."

    "뭐라? 네 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하하하. 죽고 싶어 환장을 했다? 알량한 네놈의 무공을 믿고 지껄이는 것이냐? 아니면 궁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황제를 믿는 것이더냐?"

    "이…… 이놈! 그 입, 닥치지 못 할까!"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자신을 비웃는 위명도의 행태에 허리에 차고 있던 군도를 빼든 만태산이었다. 그 노기를 참지 못하고 앞에 있는 위명도를 향해 군도를 휘두르자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뒤로 물러선 위명도의 얼굴에 차가운 살소가 걸렸다.

    살기 가득한 서로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들도 마른침을 삼키면서 다시 긴장을 했고, 곁눈질로 그들의 전력을 살피던 아삼은 비등한 전력에 미간을 좁혔다.

    '사황련에서 나왔다던 고수는 저자를 포함해서 고작 다섯……명 인가? 만상표국의 표사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겠군.'

    그렇게 상황을 살피는 아삼이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만태산은 군도를 쥔 손에 힘을 더하면서 뒤에 있던 동창 요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을 잡아서 꿇리거라. 내 그 죄를 엄히 물을 것이다."

    만태산의 말에 뒤에 선 동창요원들이 일제히 군도를 빼들며 위명도와 표사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괜한 짓을 벌리는 만태산의 행동에 못마땅한 표정을 드러내는 아삼이었다. 평소 어지간한 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삼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칠 정도로 멍청한 짓을 해대는 만태산이었고 이런 자가 어떻게 첩형이라는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군도를 빼든 동창의 모습에 앞에 서 있던 위명도가 한쪽 입가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살짝 들어 올린 그의 손과 함께 붉은 면포의 사내들이 튀어나오면서 위명도의 뒤에 시립했다. 정확히 위명도를 포함한 다섯 명의 인원들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궁을 기어 나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말을 마친 위명도가 만태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만태산 역시 달려드는 그에 맞서서 뽑아든 군도를 휘둘렀고 뒤에 선 동창의 요원들과 붉은 면포를 입은 사내들 역시 서로를 향해 칼을 맞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단발마의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현창석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갔다. 관과 사황련의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나중에 탈이 없을까? 관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는 운송하던 표물을 내어줘야만 한다. 표국인 우리가 쉽게 표물을 내어준다면…… 망한다는 것은 명백한 일일 터. 위명도의 무명이 소문과 다르지 않다면……'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현창석이 결심을 굳힌 듯 비장한 얼굴로 칼을 빼들면서 표국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는 표물을 지킨다."

    의도치 않게 사황련과 함께 하게 된 만상표국이었다. 결국 사황련과 연합한 표국까지 상대해야하는 동창이었고 그들의 선택에 침음을 삼킨 아삼이 군도를 들었다.

    수적으로 우세를 보이는 쪽은 아삼이 속한 동창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수가 적은 그들이었기 때문에 조금씩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아삼이 위명도와 함께 나타난 붉은 면포를 입은 자들 중 한 명을 상대하고 있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동창의 요원들은 상대적으로 고수인 그들에게 두, 세 명씩 달라붙을 수 밖에 없었다.

    '만태산, 저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온전한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아삼은 두 사람의 대결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처우를 결정해야만 했다. 지금은 비등하게 맞서고 있지만 만태산이 무너지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만태산과 위명도의 대결을 주시하는 아삼의 태도에 그와 맞서던 무인이 화를 참지 못하고 검을 찔러 넣었다. 생각보다 빠른 공격에 보법을 밟으면서 뒤로 물러서는 아삼이었지만 실력을 숨긴 상태에서 온전히 그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날카로운 검첨에 꿰뚫린 옷 사이로 붉은 피가 새어나왔고 자신의 부주의를 탓한 아삼이 다시 찔러오는 검을 피하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비어진 상대의 가슴을 향해 도를 휘둘렀지만 그와 맞서던 상대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회수한 검으로 아삼의 도를 막아내면서 가까이 다가온 아삼의 얼굴을 향해 장을 뻗어냈고 날아드는 장을 후려친 아삼이 뒤로 물러섰다.

    "제법이구나."

    "……."

    앳된 모습의 상대의 실력에 감탄을 내뱉은 사내였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 옆을 힐끗거리는 그 모습에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또래에 비해서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실력이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난 사내가 다시 그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섬전 같은 찌르기에 고개를 비튼 아삼의 관모가 떨어져 나갔다. 검에 살짝 베인 관모의 끈이 잘렸고 비튼 아삼의 고갯짓에 관모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이어지는 검격을 의도적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아삼이었지만 상대하던 사내는 어린놈의 운이 좋다고 여길 뿐이었다.

    빠른 검격에 베어지는 아삼의 검은색 목면은 넝마가 되어갔고 조금씩 두 사람의 움직임은 격렬해졌다. 간간이 휘둘러지는 아삼의 날카로운 도격이 마주하는 상대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아삼의 도격에 살소를 짓던 사내가 기를 끌어모으면서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사내의 행동에 아삼의 눈이 번뜩였다.

    분뢰공과 함께 사내의 품에 파고든 아삼의 도가 빠른 속도로 상대의 가슴을 갈랐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속도에 경악하는 상대였고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이 구겨졌다.

    "어떻게……"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내리는 사내를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아삼이 쓰러진 사내의 검을 차내면서 한쪽으로 쏘아보냈고 이내 바닥을 박찼다.

    위명도를 상대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던 만태산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아직까지 맨손인 그를 향해 강맹한 공격을 뿌려대는 만태산이었지만 제법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상대는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이런 고수가 나타난 거지? 사황련이라……'

    제대로 된 고수와의 일전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다. 이전에 천요희를 쫓으면서 한번 부딪쳐 본 적은 있지만 급하게 자리를 피했던 그녀였기에 제대로 된 부딪침은 없었다. 마교의 장로를 쫓아냈고 비록 가짜라지만 당새아를 잡아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만태산이었다. 절정에 이른 고수라고 하지만 다른 자들에 비해서 경험이 부족했다.

    "크윽!"

    쏟아지는 위명도의 장력을 막아선 만태산이 저릿한 손에 신음을 삼켰고 그런 약한 모습에 미소를 지운 위명도가 요대를 풀었다.

    '저런 놈들에게 연매가 당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이 떠도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지?'

    생각보다 한참 못 미치는 만태산의 무공에 위명도가 자신만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더 이상 이런 자와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에 빨리 끝을 내려는 생각을 가졌다. 풀어진 요대와 함께 '휘리릭'소리를 내면서 낭창낭창 휘어지는 얇은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검(軟劍)?"

    생각지도 못한 무기에 놀란 듯 그 이름을 내뱉던 만태산이었고 그런 그를 향해서 위명도가 검을 뿌렸다. 크게 휘어지면서 들어오는 검첨이 만태산의 눈을 어지럽혔고 종잡을 수 없는 검로에 침음을 삼킨 그가 군도를 휘둘렀다.

    '저런 얇은 검이야 단단한 도에 부딪치면 무용지물이 될 터.'

    강력한 내기를 품은 만태산의 도가 푸른빛을 띠었고 얇은 위명도의 연검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도를 피하듯 위명도의 검첨이 아래를 향했고 허공을 가르는 만태산의 도와 함께 다시 고개를 든 연검이 만태산의 손을 타고 뻗어왔다.

    휘리릭.

    휘어진 연검이 도를 쥔 만태산의 손을 타며 감겨왔다. 마치 뱀이 먹이를 감는 듯한 모습에 다급함을 느낀 만태산이 팔에 내기를 주입하면서 팔을 빼냈지만 이미 그의 손에 감겨진 연검이 뒤로 당겨지면서 감겨진 팔을 잘라왔다.

    "끄으윽!"

    주입한 내기가 만태산의 팔을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연검의 예리함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피로 물든 팔과 함께 군도를 떨어뜨린 만태산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목을 향해 위명도의 일격이 뻗어나갔다.

    꼿꼿하게 선 연검과 함께 섬전처럼 쏘아진 검첨이 만태산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그 목을 향하던 위명도의 검첨이 방향을 돌려서 날아오는 검을 처냈다.

    채앵.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위기를 넘긴 만태산이 재빨리 떨어뜨린 도를 주워들면서 뒤로 물러섰다. 아삼이 차낸 검이 위명도를 향해 날아든 것이었다. 시의적절하게 날아든 검으로 만태산은 위명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고 그 공격을 받은 위명도가 아삼의 얼굴을 바라봤다.

    '제법이군.'

    자신에게 검을 날린 자를 살핀 위명도가 쓰러진 붉은 면포의 사내를 보고 다른 자를 향해 달려드는 아삼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자가 상대의 무리에 속해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자신을 보필하던 자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그가 속전속결로 만태산을 처리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만태산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대로는 힘들다. 최대한 시간을 끈 이후에 저놈들을 이용해서 살아남아야겠다.'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는 동창 요원들의 모습에 빠져나갈 궁리를 모색하는 만태산이었다. 이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위명도의 위협적인 공세가 이어졌고, 더 이상 경시하지 못하던 만태산은 바닥을 구르면서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노력을 했다.

    나려타곤의 수를 보이면서까지 버티는 만태산의 행동에 쓰게 웃던 아삼은 무영보법에 분뢰공의 묘를 섞으면서 붉은 면포를 입고 있는 자들을 기습했다. 살수지무로 기척을 숨긴 아삼의 움직임은 은밀했고 협공을 하면서 필사적으로 그들에게 맞서는 동창 요원들의 노력에 힘입어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치열했던 싸움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고 있던 옷이 넝마가 된 만태산이 가슴에 새겨진 긴 검상에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제법 지친 모습을 보이는 위명도가 연검을 들고 있는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붉은 면포를 입은 자들은 모두 쓰러졌지만, 그 많던 동창의 요원들도 아삼을 제외한 세 명만 겁에 질려있는 표국의 표사들을 노려볼 뿐이었다.

    "…… 이놈, 이놈을 맡아라. 이놈을 죽여!"

    악다구니를 쓰는 만태산이었지만 지금은 표사와 대치중인 요원들이었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만태산이 바닥을 끌면서 뒤로 물러섰고 그런 만태산을 향해 위명도가 달려들었다.

    "하압!"

    힘을 쥐어 짜듯 큰 소리를 외친 만태산이 검기를 날리면서 그를 견제했고 기운을 불어넣은 연검으로 그 공격을 상쇄시킨 위명도가 조금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

    촤아악.

    순간 바닥에 흙을 모으던 만태산이 그것들을 차올리면서 위명도를 향해 뿌렸다. 절정에 든 무인의 치졸한 행태에 위명도의 몸이 멈칫거렸다. 그리고 그 틈에 몸을 뺀 만태산이 아삼을 향해 달려갔다.

    '무슨 짓이지?'

    갑자기 뛰어드는 만태산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는 아삼이었지만 자신을 향해 뻗어진 만태산의 공격에 급히 허리를 숙였다.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노골적인 행동을 보일 줄은 생각지도 못한 아삼이었다.

    숙여진 아삼을 뛰어넘은 만태산은 그대로 바닥을 박차면서 그곳을 벗어났고 순식간에 사라진 그의 모습에 남은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크으윽!"

    들려오는 신음에 그제서야 고개를 돌린 아삼의 눈에 동료를 쓰러뜨린 위명도가 가득 들어왔다.

    "좋은 상관을 뒀구나. 그것이 관의 의리인가?"

    "……."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위명도가 깊게 베인 어깨를 지혈하고 연검을 늘어뜨린 채 아삼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낀 아삼이 군도를 다잡으며 숨긴 기운을 일깨웠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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