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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
금의위와 동창의 대결은 연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도지휘사인 주재, 정화와 오건휘의 등장으로 그 끝을 확실히 매듭지을 수는 없었지만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인 두 세력이었다. 특히 네 번째로 나선 아삼과 무당 출신의 무인의 대련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검까지 빼어든 그자의 치졸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동창 번역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에 당황한 가영호는 아삼에게 당한 왕호라는 자는 이미 무당에서 내쳐진 자였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거두기 위해서 데리고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파를 대표하는 무당이라는 곳에서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규정을 어긴 자를 감싸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이 부각된 점이 탐탁지 않은 아삼이었다.
'아직까지 불안해. 음기를 최대한 제어하려고 했지만 온전히 제어할 수 없었어. 규화보전의 내기에서 음기를 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은 기운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곤혹스러운 일이구나.'
일전에 가진 무당파 출신의 왕호라는 자와의 대련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비록 자신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무당 특유의 부드러운 무공을 처음 접하면서 부족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고 지닌 내기를 발출하면서 그 장단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규화보전의 강력한 음기는 그 속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아직 아삼이 제어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무당 출신의 사내가 마지막에 오줌을 지렸다는 둥, 연무장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는 등의 말을 들은 아삼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제어하지 못한 음기로 주변이 얼어서 물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맞이한 상황이니 지금 후회해 봤자, 되돌릴 수는 없겠지. 조금 더 조심할 수 밖에…… 이제 내가 할 일은 몸 안에 쌓이는 기운을 온전히 내 의지 아래에 두는 것이겠지?'
마음을 다잡은 아삼은 그렇게 가부좌를 틀며 단전에 쌓인 기운에 대해서 알아가고자 했다.
***
황궁 무고를 나서는 정훈의 발걸음이 유현이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다시 자신을 불러주겠다던 유현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답답한 무고에서 자신을 꺼내 줄 사람은 유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정훈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도 그동안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계속 눈도장이라도 찍어놓는다면 쉽게 나를 버리는 일은 없겠지.'
단단히 각오를 다지면서 유현의 전각을 향하던 정훈의 눈에 번들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환관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기다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마상이라는 자로 이전까지 자신의 밑에 있던 놈이었다.
"정 태감, 그간 잘 지내셨는가?"
자신을 보며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 마상의 말에 정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런 정훈의 굳은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거드름을 피우는 마상이었다.
"헌데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는가? 혹, 유 공공을 만나 뵈러 가는 것인가?"
"흠……"
헛기침과 함께 마상을 무시하며 지나치려던 정훈이 그의 이어지는 말에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가봤자 만날 수 없을 것이네. 유 공공께서는 황후마마의 부름을 받고 가시었다네. 내가 방금 뵙고 오는 길이라 잘 알고 있지."
자신을 내려 보면서 웃고 있는 마상의 얼굴에 간신히 화를 참아낸 정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정훈의 모습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어보이던 마상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래. 무고에서의 생활은 어떤가? 내 한번 가 봐야지 하면서도 내서당에서의 교육이 너무 바빠서 말이지. 이거야 원…… 짬을 낼 수가 있어야지. 자네도 알다시피 내서당의 일에, 유 공공도 모셔야 하고, 참 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서. 나는 책만 바라보는 자네가 부러우이. 허허허. 아! 이거 참 미안하네."
마상의 말에 정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짐짓 괜찮은 척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그가 마상의 얼굴을 바라봤다.
"괜찮네. 자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 그런 말투는 사마택이라는 자 이후에 처음 들어보는 군. 그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을 테지? 아무튼 고맙네."
"고……고맙기는…… 크흠. 그래도 한 때 한솥밥을 먹던 사이인데 이정도 안부는 물어야 하지 않겠나? 그럼 다음에 또 보세. 난 또 내서당에 일이 바빠서……"
살기어린 정훈의 말투에 질려가던 마상이 급히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직으로 떨어진 정훈이었지만 그래도 가진 머리는 비상한 놈이었다. 뒤늦게 정훈이 꺼낸 말의 속뜻을 헤아리던 그가 급히 자리를 떴고 그런 마상의 모습을 바라보던 정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마상 이놈! 한 때 내 밑에서 굽실거리던 놈이 감투를 썼다고 기어오르는 꼴이라니……'
마상의 행태에 씩씩거리면서 무고로 들어선 정훈이 결국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쳤다.'쾅'하는 소리가 적막한 무고에 가득 울려 퍼졌고 그 화를 풀어내지 못하던 정훈이 도끼눈을 뜨면서 유현의 처소가 있는 곳을 노려봤다.
'이 모든 게 다 유현 그 능구렁이 같은 놈 때문이다. 결국에는 나를 이곳으로 쫓아내고 그 자리에 마상이라는 반푼이 같은 놈을 앉혀? 두고 봐라. 유현! 나를 버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모습을 숨긴 채로 조용히 정훈의 모습을 바라보던 장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진중하지 못한 저 인사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를 참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곳을 노려보는 그 행동에 혹시라도 비급이 있는 곳으로 들어설지 지켜보던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미 내 자리는 없어졌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가 설 곳은…… 없겠지. 아니 유현 그 놈에게는 절대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한번 나를 버린 놈이니 다음에도 다시 나를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놈을 믿는 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겠지. 흐음…… 허면 이제 어떡한단 말인가?‘
고민하던 정훈의 눈이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책장들로 향했다. 저들 중에서 하나만 제대로 익히더라도 이렇게 힘없이 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었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힘. 그리고 그 힘이 되어줄 것들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정훈이었다. 천천히 옮겨지는 걸음과 함께 앞에 놓인 책을 들려는 그의 손이 멈칫거렸다.
'그 귀신같은 놈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할 정도로 다급해졌다는 말인가? 하아.'
새삼 무거워진 무고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 누군가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절로 소름이 돋아나는 듯 팔뚝을 쓸어내리던 그가 힘겹게 눈을 돌리면서 다시 탁자로 걸어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그 능구렁이 같은 유현. 그놈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정훈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이제야 그런 방법을 찾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을 버린 유현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복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정훈이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리고 부례감 유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정훈이 찾은 사람은 장인태감인 송기득이었다. 은밀히 연락한 자신을 내치지 않고 이렇게 부르는 것을 보면 자신의 생각이 무모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장인태감 송기득의 처소로 향하는 정훈의 발걸음이 근래에 들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송 공공, 소인은 정훈이라는 환관이옵니다."
거만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 보는 장인태감 송기득을 바라본 정훈이 허리를 숙이면서 예를 표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송기득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스쳤다.
"내 자네를 잘 알고 있지. 그 유명한 유현의 개가 아닌가? 유현에게 버려진 자가 어찌 나를 찾은 것인가?"
조소를 보이는 송기득의 모습에 그를 찾아온 정훈의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이미 감내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였기에 미소를 지은 채 굽실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송구합니다. 그간 공공께 문안 인사도 드리지 못한 소인을 용서하십시오."
"되었네. 그래 이렇게 나를 찾은 연유가 무엇인가?"
이내 웃음을 지우고 딱딱한 표정으로 얼굴을 바꾼 송기득의 차가운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정훈이 무릎을 꿇으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송 공공, 소인을 받아주십시오. 이제 송 공공의 사람이 되고자 이리 찾아왔습니다. 받아만 주신다면 견마지로(犬馬之勞)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정훈의 말을 들은 송기득이 피식 웃더니 이내 파안대소하며 정훈을 바라봤다.
"하하하, 견마지로? 충성을 다한다? 그걸 내가 어찌 믿겠느냐? 한번 주인을 바꾼 개가 두 번은 못 바꾸겠느냐? 내가 너를 받아주면 유현, 그 자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 공공 소인은."
"괜한 분란을 만들어서 유현이라는 놈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거라."
손사래를 치며 축객령을 내리는 송기득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정훈이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송기득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송 공공, 유현과 척을 지고 싶지 않으시다 하셨지만 이미 두 분은 모시고 있는 분도, 그리고 가고자 하시는 길도 다르지 않습니까? 어차피 나중에 적으로 만날 사이입니다. 걸림돌이 될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저 같은 놈 하나 들이신다고 크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
"지피지기면 백전백전승이라 했습니다. 저만큼 유현에 대해 아는 자도 드물지요. 저를 거둬주신다면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송 공공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습니다."
비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훈의 모습에 고심을 하던 송기득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그를 바라봤다. 이내 정훈을 향해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고 그 모습에 조심스럽게 다다가는 정훈을 보고 나직이 속삭였다.
"내 사람이 되고 싶다 했느냐?"
"예. 공공."
"좋다. 내가 너를 받아 준다면,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겠느냐?"
"하명만 하시지요. 소인이 목숨을 다해서라도……"
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지만 이어지는 송기득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멈춰야만 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유현이 아니다. 유현 그런 인사쯤이야 기회가 온다면 얼마든지 치울 수 있다. 내가 누구냐? 사례감의 우두머리가 아니더냐?"
"하오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네가 있는 황궁 무고의 비급이다. 그것을 내게 가져다 줄 수 있겠느냐?"
"……."
생각지 못한 송기득의 말에 정훈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자신도 그것을 얻지 못해서 이렇게 달려왔는데 앞에 있는 송기득은 그것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훈의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기득은 앞에 있는 정훈이라는 놈을 보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는 사마택이라는 그 놈 때문에 실패를 했지만…… 그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정훈, 저놈을 이용한다면 무고의 비급을 얻을 수 있겠구나.'
기대에 찬 눈으로 정훈을 바라보는 송기득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을 접한 정훈은 절로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난색을 표하던 정훈이 송기득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공공, 송구하오나 소인의 깜냥으로는 불가합니다. 무고에는 소인 말고도 무공이 높은 고수가 밤낮없이 그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무공이라고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소인이 어찌 그런 고수의 눈을 피해서 비급에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시도도 못 해보고 발각이 될 것입니다."
잔뜩 기대했던 송기득이 정훈의 말에 실망한 듯 얼굴을 구기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훈을 바라봤다. 싸늘한 그 눈빛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정훈이었다.
"그렇다면 너와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을 듯하구나. 이만 돌아가 보거라."
돌아앉는 송기득의 모습에 다급해진 정훈이 소리치며 말했다. 이전부터 생각만 하고 유현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써먹을 때가 온 것이다.
"비급은 불가하오나 소인에게 한 가지 묘책이 있습니다."
"묘책?"
"예. 들어보시면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자신 있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훈의 모습에 송기득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런 송기득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정훈이 덤덤히 물었다.
"혹시 당새아를 기억하십니까?"
"당새아?…… 갑자기 당새아라는 이름이 왜 나오는 것이냐?"
"…… 송 공공의 사람으로 그 당새아를 잡아들인다면 동창에서 송 공공의 영향력이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동창에 영향력을 키우다 보면, 그 조직이 송 공공의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정훈을 향해 송기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당새아를 잡기위해 수많은 비구니 여승과 여도사들을 잡아들였지만 결국에는 못 잡지 않았더냐? 아니, 그 많은 관군을 동원했지만 그년의 머리카락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헌데, 어찌 잡는단 말이냐?"
당새아를 놓친 관군을 향해 호통을 치던 영락제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 듯 송기득의 몸이 움찔거렸다. 움츠려든 송기득의 모습을 바라보던 정훈이 나직이 속삭였다.
"간단한 일입니다."
"간단하다?"
"공공께서는 가짜 당새아를 잡아들이면 됩니다."
"가짜…… 당새아?"
뜻밖의 말에 송기득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듯 물었다. 황제를 속이는 짓을 벌이자는 정훈의 말에 질겁하는 송기득이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훈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걱정하실 사안이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 노여워하던 몇 안 되는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을 공공께서 해결하신다면 능히 흡족해 하실 것입니다."
"지금 나보고 황상을 속이라는…… 것이더냐?"
"황실의 위신을 세우는 일입니다. 폐하께서도 위엄을 세운 송 공공을 치하하실 것입니다. 송 공공의 사람으로 가짜 당새아를 잡아들여서 공을 세운다면 동창에서의 송 공공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잘만하면 진짜 당새아가 나타날 수도 있지요."
"……."
"스스로 불모(佛母)라 칭했던 여인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사용해서 일을 꾸민 것을 알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습을 드러내면 숨어있던 그 여인을 나타나게 만든 공은 공공께 돌아가실 것이고, 만일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황실의 위엄을 세운 공공에게 폐하께서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정훈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흡족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보이는 송기득이었다. 그런 송기득의 모습에 정훈이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흠…… 알겠다. 내 숙고해 볼 터이니 우선 무고로 돌아가 있거라. 나중에 내 따로 연통을 넣어줄 것이다."
"예, 송 공공. 허면 소인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달라진 말투로 자신을 대하는 송기득의 모습에 읍을 해보이던 정훈이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전각을 나섰다. 그가 나설 때 까지 웃어보이던 송기득의 얼굴이 차갑게 변해 있었다. 황궁에서 장인 태감의 지위까지 올라간 송기득이었다. 쉽게 표정을 감추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의 표정이 정훈에게 안도감을 심어주었다.
'가짜 당새아라…… 그리 쓸모없는 인사는 아니었구나. 유현 그놈이 아끼던 이유가 있었던가? 허나 주인을 바꾸려는 개를 어찌 믿는단 말인가? 이런 일일수록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적을수록 좋겠지. 일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개는 삶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훈이 사라진 자리를 매섭게 노려보던 송기득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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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